1849 레어드 쿠윤지크(니네베) 발굴- 센나케립 궁전, 아슈르바니팔 도서관 점토판 다량 발견 -대영박물관 이송
1850 윌리엄 케네스 로프터스 와르카(우르크), 산카라(라르사) 탐사
1851 "오페르트" 바빌론 유적지 조사
1852 프랑스 영사 "빅토르 플라스", 학자 "프레넬", 비문연구가 "쥘 오페르트" & 롤린슨 코르사바드 공동발굴 시작
오스틴 헨리 레어드(Austen Henry Layard)
영국인 오스틴 헨리 레어드는 파리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을 이탈리아 피렌체, 영국, 스위스에서 보냈다. 수개국어에 능통하고 기질상 세계주의를 지향했던 그는 육로로 소아시아와 근동을 거쳐 인도와 실론까지 여행하는 꿈을 키워나갔다. 그는 1840년 스물두살 때 런던의 법률사무소를 벗어나 터키와 페르시아를 여행하였다. 1840년 4월10일 레어드는 모술에 닿았다. 강 건너에 니네베의 폐허일 것으로 짐작되는 거대한 둔덕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3년동안의 여행에서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온 그는 1845년 영국대사 스트랫퍼드 캐닝을 위해 비공식적인 외교업무를 수행하면서 신임을 얻고 그에게 외교관 신분증과 발굴경비 60파운드를 얻게되자 다시 모술을 찾는다.
티그리스 강변의 님루드의 폐허와, 에밀 보타가 이미 손을 대었던 모술 근처의 쿠윤지크 둔덕들이 그의 목표였다.
님루드에서의 발굴이 먼저 시작되었다. 님루드는 모술에서 동남쪽으로 30km 떨어진 티그리스 강의 제방에 위치한 유적이었는데 첫날 부터 궁전의 잔해들이 발굴되었다. 이후 1847년까지 2년동안 레이어드는 이곳에서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궁전을 포함하여 6개의 궁전을 발굴해낸다. 석회석의 벽부조에는 사람의 머리를 한 어마어마한 황소들의 석상과 유명한 블랙 오벨리스크도 발굴하였다. 그는 이곳이 니네베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사실은 BC 9세기까지 제국의 수도였던 칼후(Kalhu)유적이었고 이후 사르곤 2세에 의해 샤르킨(코르사바드)로 옮겨지기까지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었다.
“그 얇은 돋을새김은 전투 장면을 새긴 것이었다. 눈부시게 꾸민 전차 2대에는 각각 세 사람이 타고 있었다. 수염 없는 장수가 갑옷을 입고 활시위를 귀밑에까지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옆의 전사는 말고삐를 잡았고, 또 한 전사는 방패로 장수를 가리고 있었다. 전체가 짜임새 있고, 사람과 말의 근육까지도 세밀하게 새겨져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상과 부조는 끊임없이 쏟아져나왔다. 머리는 사람이고 몸통에는 날개가 달린 사자와 황소 조상은 열세 쌍이나 나왔다. 레어드가 님루드에서 니네베 유물을 찾았다는 소식은 슐리만으로 하여금 트로이 발굴에 더욱 힘을 쏟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레이어드에 의해 대영박물관으로 옮겨진 라마슈상 (Colossal statue of a winged lion from the North-West Palace of Ashurnasirpal II (Room B) Assyrian sculpture and Balawat Gates)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힘을 상징하는 괴물들은 암컷의 경우에는 수메르의 <라마(lama)>, 혹은 아카드어로 <라마슈(lamassu)>로, 수컷의 경우에는 수메르어로 <알라드(alad)>, 아카드어로는 <세두(Shedu)>로 불리웠다. 아시리아의 괴물상을 통상 <라마슈>로 부르기도 한다. [참고] Shedu
1849년 님루드유적에서 라마시석상을 옮기고 있는 이 판화는 1853년에 출판된 <Discoveries in the Ruins of Nineveh and Babylon>에 실린 것이다.
Layard discovered the Cyrus cylinder, Terracotta, Babylonian, ca. 539-530 BC. From Babylon, southern Iraq.
1847년 레이어드는 잠깐 영국에 체류하였는데 옥스포드는 그에게 학위를 수여했고 외교관보 자격으로 콘스탄티노플에 돌아올 수 있는 자격을 수여하였다. 그런데 바로 한 해전, 1846년에 파리의 루브르에서는 보타가 발견한 아시리아의 유물 전시회가 있었으나 레어드의 지지자 캐닝은 당시의 수상에게 레어드가 루브르를 압도할 유물을 발굴하였노라고 편지를 썼다. 대영박물관은 런던으로의 유물이송과 계속적인 연구를 위해 2천파운드를 제공하였다. 1848~1849년 사이에 그는 두 권의 책과 한 권의 삽화집을 출간하였다 [Nineveh and its Remains (vol. 1,2) (1848) The Monuments of Nineveh (1849)] 그의 보고서는 활달하고 강인한 성격이 잘 드러나는 내용으로 아시리아학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뛰어넘어 기행문학의 최고봉을 이룬다고 평가되고 있다.
자금에 여유가 생긴 레이어드는 1849년 이제 두번째 목표인 보타의 쿠윤지크 둔덕들을 발굴하기 시작해서 센나케립의 궁전을 찾아내고 앗슈르바니팔의 도서관에서 수만개의 점토판을 찾아낸다. 1849년 가을 그가 땅 속 6m에서 찾아낸 궁전은 피의 제왕 센나케리브의 궁전이었는데 레어드는 여기에서 엄청난 유적을 발굴했다. 센나케리브의 아들 아슈르바니팔이 세운 도서관이 그것이었고, 레이어드는 바로 니네베의 고대도시를 발굴해낸 것이었다. 이후 큰 성과는 없었지만 1849~1850년 사이에 레이어드는 바빌론도 발굴하여 1853년에는 각각 1권씩의 책과 삽화집 [Discoveries in the Ruins of Nineveh and Babylon, A Second Series of the Monuments of Nineveh]이 출간되었다. 소중한 부조작품과 조각상들도 다량으로 런던행 배에 선적되기 시작하였다. .(1853년 대영박물관의 니네베전은 큰 인기를 끌었다)
Description: The British Museum, Room 10 - Khorsabad Palace Reliefs and Assyrian Art
In this room there are reliefs from the palace and huge winged human-headed bulls from the city gates of the capital of Sargon II at Khorsabad. These lead to the Lachish Room with reliefs from the Southwest Palace of Sennacherib showing the siege of the Judaean city of Lachish, and from the North Palace of King Ashurbanipal (668-631 BC) in Nineveh. This includes the famous Lion Hunt reliefs, depicting a royal hunt, which have long been acclaimed as a masterpiece.
The British Museum, Room 10 - The Royal Lion Hunt
대영박물관의 아시리아관 10호실은 아시리아의 높은 예술수준을 엿볼 수 있는 신비로운 장소이다. 레어드는 이 고귀한 벽의 부조장식을 니네베에 있는 아수르바니팔의 궁전입구에서 떼어내어 대영박물관의 품격을 한없이 높여주었다. 광대한 평원에서 벌어지는 왕의 사냥장면은 사실적인 세부묘사, 무한한 역동성과 함께 세계를 호령하던 대제국의 위엄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러한 예술성과 스케일은 오직 아시리아에서만 존재했던 인류예술사의 경이이다.
(좌)Interior of Sennacherib's palace in Nineveh
(우)These alabaster panels were part of a series which decorated the walls of a room in the palace of King Sennacherib
Iraq Heritage Program, North Palace (.kmz)", Status Disclaimer: This is a work in progress, and the description here is subject to revision, Context: North Palace, Locale Description: Constructed by Ashurbanipal, this palace contains many sculptured slabs depicting lion-hunt sequences. Many of the some 24,000 cuneiform tablets that make up the "Library of Ashurbanipal" where recovered from the North Palace, and helped to reveal the ancient identity of the site as a royal capital., Additional Note: This is for demonstration purposes only. This is not a complete record of this context or its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