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패왕별희-더 오리지널>, 두 번째 보다
1. 장국영 사후 20주기를 기념하여 <패왕별희 : 더 오리지널>이 다시 개봉했다. 중국 전통 경극 배우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갈등을 청 말의 혼란과 중화민국 건립 그리고 일본과의 전쟁, 중국 사회주의 수립, 문화대혁명 이라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그려나간 작품이다. 지난 번 관람 때는 역사의 혼돈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인간의 숙명적인 삶의 본질에 주목해서 보았다면 이 번에는 특히 두 가지 점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2. 하나는 <문화 대혁명>의 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인 성격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이자 고발이라는 점이다. 어려서부터 경극 배우 훈련소에서 성장한 두 주인공은 성장하면서 하나는 패왕(항우)역(A)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희역(B)을 전담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지만 A가 홍등가 여인을 만나 결혼하면서 갈등은 심화된다. 하지만 갈등은 미움보다는 사랑에 또 다른 표현에 가까웠고 서로가 위험과 고통에 빠졌을 때에는 누구보다도 먼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렇기 위태롭지만 절실하게 유지되었던 관계는 ‘문화대혁명’이 붕괴시킨다. 문화대혁명은 전통 예술에 종사하던 사람들을 모욕했을 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게 함으로써 인간을 가장 비참하고 참담한 존재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홍의병에 사로잡혀 서로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장면은 인간이 절대적인 위협 상황 속에서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떤 과거의 좋은 추억도 남기지 않고 말살시키는 공포의 시간은 ‘문화대혁명’의 인간성 파괴라는 본질을 냉정하게 고발하고 있다.
3. 다른 하나는 정체성을 포기하고 살았던 한 인간이 겪게 될 수밖에 없는 비극이라는 측면이다. 우희역을 맡은 B(장국영)는 어렸을 적부터 예쁘장한 외모에 여성적인 분위기를 가져 경극의 여성 배역을 맡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남성성을 포기하라는 요구에 저항하지만 결국 외부의 압력과 폭력에 의해 남성을 포기하고 점차 경극의 여성 배역과 혼연일체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져 간 그의 여성성은 끊임없는 권력층의 성적 요구에 직면하게 하였고 , 스스로도 점차 패왕에 집착하는 한 여인의 모습으로 변모시켰던 것이다. 비참하게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이후, 문화대혁명이 끝난 지 11년이 지난 시점에 그들은 경극을 연습하기 위해 다시 만난다. 그때 B는 마지막으로 어렸을 적 저항하면서 불렀던 ‘사내’의 노래를 다시 불렀고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렇게 그는 오랫동안 포기하고 살았던 남성의 원래 정체성을 회복하면서 삶을 마무리한다. 외부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작된 삶을 살아야했던 인간의 비극적인 모습이다.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잃었을 때 어떤 성공과 명예를 얻는다 할지라도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그것은 경극의 분장처럼, 희랍 연극의 패르소나(가면)처럼 우리를 압도하는 위선과 거짓의 지배였다. 삶이 그것에 사로잡혔을 때 불행할 수밖에 없다. B는 죽음으로만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시대의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 또한 시대와 역사의 불행한 시기를 살았던 인간의 모습이다.
첫댓글 - 신기한 목소리와 투박한 악기 소리, 변해가는 얼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