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진 여행칼럼니스트 tour0@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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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제 설피마을에서는 설피 신은 꼬마들이 눈싸움을 하고 얼음썰매를 타는 정경을 볼 수도 있다. | “멧돼지 사냥엔 고등어와 막걸리 미끼가 최고라니까.”
설피마을 토박이인 염씨는 사냥얘기를 꺼내며 신바람부터 냈다. 눈이 허벅지까지 쌓인 날이 멧돼지 사냥 가던 날이라며 추억에 잠기자 마을 이장은 “설피 신고 달리면 멧돼지보다 빨랐다”며 맞장구를 쳤다.
인제군 기린면 진동 2리. 바람에 소가 날아갔다는 쇠나들이를 지나 418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 인근 현리 사람들은 눈 많은 이 곳 진동리를 설피밭이라 불렀다.
“눈이 쌓이면 설피를 안 신고는 꼼짝할 방법이 없었지. 예전에는 물푸레나무나 다래덩굴을 삶아 틀을 만들고 소가죽으로 줄을 이었어. 요즘이야 나일론 끈이 대신하지만…. 그래도 집집마다 설피는 다 갖고 있지.”
이곳 주민들 말로는 한번 눈이 내리면 마을이 푹 파묻힐 정도였다고 했다. 겨울이면 길도 막히고 먹을 게 없어 돼지, 토끼 사냥을 나섰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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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피. | 이곳엔 쌓인 눈만큼이나 묻힌 사연도 많았다. 해발 700m 위 설피마을은 예전에는 작은 구멍가게 하나 없었고 10여년 전만해도 버스도 들어오지 않았다. 봄∼가을을 나기 위해 마을에 들어왔던 사람들도 첫눈이 내리기전 이곳을 떠났다. 야생화를 보려고 인근 곰배령으로 넘어가는 등산객들도 겨울이 되면 발길을 끊었다.
“돌 지난 세쌍둥이와 함께 숱하게 겨울을 맞았네요.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이곳에서 살 수 있어요.”
민박집 주인은 “이곳 진동분교 초등학생 졸업생 3명이 모두 그녀의 아들, 딸”이라고 했고, 첫 버스가 들어오고 나서야 중학교에 통학할 수 있게 됐다는 추억을 더듬었다.
인근 강선골에는 원숭이처럼 나무를 잘 타던 스님이 화제가 됐고, 곰배령에서 스노보드를 타며 혼자 살 집을 짓는 괴짜 청년도 입에 오르내렸다.
“점봉산 신령이 여신령이래요. 그래서 유독 이곳에서 혼자 사는 남자들이 많은가 보죠.”
설피마을의 사연은 50여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 끝나고 약초를 캐기 위해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단목령 너머 오색 거쳐 양양 장터까지 소금이며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오가곤 했다. 18가구까지 아담해졌던 마을은 외지인들이 휴양차 들어온 뒤 수십 가구가 옹기종기 살아가고 있다.
외진 마을, 주민들이 장터를 오가던 길은 한적한 눈길 트레킹 코스로 변했다. 진동분교에서 강선골까지 이르는 30분 코스는 눈과 잣나무 숲이 어우러져 가족 산행길로 좋다. 강선골을 거쳐 2시간 소요되는 곰배령까지 올라도 좋다. 진동리∼단목령∼오색 코스도 2시간이면 족하다. 민박집에 부탁하면 오색에서 다시 진동리까지 차를 태워주기도 한다.
새해를 맞아 이곳 설피마을을 시작으로 백두대간의 한 분기점을 밟을 수도 있다. 곰배령∼점봉산∼단목령 등 태백산맥의 능선을 거치는 7시간 코스와 단목령∼북암령∼조침령으로 이어지는 4시간 코스도 있다.
흐린 날에는 눈이, 맑은 날에는 별이 수없이 쏟아져 내리는 설피마을에서는 설피 신은 꼬마들이 눈싸움을 하고 얼음썰매를 타는 정경을 볼 수도 있다.
“열목어, 금강모치 산뚝지 등 1급수 냉수어종들만 이곳 계곡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시름 다 잊고 청정한 곳에서 쉬고 싶다면 이곳 설피마을이 좋죠.”
사연 많은 설피마을 사람들은 “양양군 서림리까지 조침령 터널이 뚫린 뒤로 오가다 들리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늘었다”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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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동리 전경. |
여 행 메 모
가는길=홍천을 지나 인제방향 44번 국도로 진입, 철정검문소에서 451번 지방도 상남방면으로 우회전한다. 현리에 진입해 방태천따라 방태산 휴양림 방향으로 우회전한 뒤 418번 지방도를 따라 달리면 진동 2리 설피마을에 닿는다. 서울 상봉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에서 현리까지 버스가 운행된다. 3시간30분 소요. 현리에서 진동리까지도 버스가 다닌다. 1시간 소요.
기타정보=마을에서 나오면 방태천 상류에 진동 막국수, 방동 막국수 등이 자리 잡았다. 이곳 막국수는 직접 메밀을 갈아 넣은 것으로 면발이 담백하다. 마을 초입에 송어횟집도 있으며 민박집에서는 점봉산 자락에서 나는 나물로 백반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인근 방태산 휴양림에 숙소를 정한 뒤 설피마을에 들려도 좋을 듯.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