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
나는 '편한 게스트하우스'라고 믿는다.
밥? 비타민은 알약으로 해결된다. 가끔 맛나게 영양가 있게 먹으면 된다.
MSG 덩어리 볶음밥이라도 먹어서 에너지만 보충되면 된다.
그런데 잠은 그렇게 함부로 되질 않는다.
잠 제대로 못자면 다음날 아무것도 제대로 못한다.
그러면, 편한 게스트하우스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깨끗하고 보송보송한 침대? 틀면 나오는 온수?
아니다. 편한 게스트하우스는 '주인'이 만든다.
'론리 플래닛' 가이드북에는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할 때
'freindly'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친절한' 정도가 되겠지만,
이 경우엔 직역이 옳다. '친구같은' 주인이 있는 게스트하우스...
여행다녀본 사람들은 안다.
그렇게 '프렌들리'한 게스트하우스가 세상에 널려 있지 않다는 것.
낡고 삐걱거리는 침대에 누워서도 푹 잘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는 것.
그곳이 바로 '프렌들리'한 주인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라는 것.
레에서 그렇게 편한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스물일곱 네팔 출신의 노총각 알비가 운영하던 오아시스 게스트하우스.
우리가 어쩌다 그 게스트하우스로 가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는 너무 길다.
그냥 인연이 또 우리를 그리로 데려간 거라고 얘기하면 된다.
수많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그렇게 착한 주인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없었다.
주인이 결국은 '내 동생'이 되고 만 게스트하우스도 없었다.
열몇 살 어린 나이에 알비는
날품팔이 노동자로 네팔에서 라닥으로 건너오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레로 왔다.
알비의 아버지는 끝내 아들을 학교에 보냈고,
그래서 알비는 영어를 배울 수 있었고,
게스트하우스 종업원이 될 수 있었다.
착실히 돈을 모아 게스트하우스를 차렸다.
물론 돈이 많지 않았으므로 자기 소유의 건물은 가질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잘 꾸려왔던 그 게스트하우스의 집세가 너무 비싸져서
할 수 없이 외진 골목에 다시 세를 얻어 새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다.
그곳이 오아시스 게스트하우스였다.
알비에겐 누이동생이 둘 있었다.
올해 스무살인 큰 여동생은 마날리로 시집가서 잘 살고 있다고 했다.
둘째 여동생 보비는 오빠를 도와 함께 게스트하우스를 꾸려가고 있었다.
보비는 열여섯.
그 보비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열한 살 알비는 보비를 업고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젖동냥을 가고
때론 새끼를 낳은 어미 염소에게도 데려갔다.
알비가 그 얘길 했을 때, 나는 내 막내동생 찬이를 기억해야 했다.
나도 그 나이에 찬이를 업고 엄마에게 젖을 먹이러 가야 했다.
그래도 나와 찬이에겐 엄마가 있었다.
참나원....
그 오래된 기억을 하필이면 오래된 미래라는 라닥에서 맞닥뜨릴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보비는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다.
손님들의 빨래를 하고
손님들에게 커피와 짜이를 내오고
손님들과 오빠를 위해 밥을 하고
손님 방을 청소했다. 화장실도 청소했다.
보비의 손은 거칠었다.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느라 거칠었던 내 누이들의 손을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아침 내가 정원으로 내려가면 보비는 커피를 끓여왔다.
어느날 레 시내로 나갔다가 99루피짜리 로션을 하나 샀다.
내 하룻밤 방값에서 1루피가 빠지는 돈이었다.
서울에 돌아와선 커피 한 잔 마실 수 없는 2천원, 참 하찮은 돈이었다.
보비에게 로션을 건네주었다.
보비는 로션을 받고 참 환하게도 웃었다.
라닥의 하늘만큼이나 환하게, 환하게....
내 누이들에게 주지 못했던 로션을
라닥에서 새로 얻은 어린 여동생에게 줄 수 있었다.
보비에겐 친구들이 있었다.
보비는 힌두였지만, 두 친구는 무슬림이었다.
뒷줄 왼쪽의 소니는 보비와 함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했다.
보비에게 로션을 선물했다고 말했을 때,
한국인 여자 여행자는 내게 물었다.,
"왜 소니에겐 안 줬어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소니에겐 엄마가 있잖아요.
레를 마지막으로 떠날 때
알비는 새벽 2시에 나를 오토바이에 태워 정류장으로 데려다 주었다.
내가 매일 마셨던 커피값도 받지 않았고
내가 몇 번 먹었던 밥값도 받지 않았다.
그저 이미 싸게 해 준 열흘치 방값만 받았다.
알비가 말했다.
레에서 돈을 벌면
네팔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난한 고향 사람들을 위한 일을 시작할 거라고.
그때가 되면 연락하겠노라고.
꼭 자기 고향에 와서 자기 집에 묵으라고.
그때는 돈을 받지 않을 거라고.
왜냐면 나는 자기 형이고 보비의 오빠이기 때문이라고.
다시 라닥에 가야 한다.
네팔에도 가야 한다.
나는 두 동생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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