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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별점: ★★★★☆ (9.0)
- 경제사적 가치: 4.4
- 개인적 만족도: 4.6
1부 우리의 과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1부 1장 개혁 강화는 종속 심화라는 아이러니
장하준: 지금의 우리 경제는 무척 역설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외환 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 정책을 이끌어 온 김대중 · 노무현 정부는 박정희 모델을 ‘수철 의존형’ 또는 ‘대외 의존형’ 등으로 비판하며 경제 개혁을 부르짖던 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분들이 개혁을 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외 의존은 더욱 심화되고 말았거든요.
지금 해외와 연결되어 있는 수출 부문만 잘 돌아가고, 내수는 바닥을 기고 있지 않습니까. 수출과 내수의 고리가 끊어졌다고 표현할 수 있겠지요. 반면 예전에는 수출이 잘 되면 이게 투자를 유발하고, 투자는 고용 및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수요가 활성화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수출과 내수가 양극화되어 버렸어요. 수출 쪽에 있는 사람들만 잘나가고, 그 움직임이 내수로 연결되지 않는 거죠.
정승일: 통계를 보니까 1997년 이전까지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 성장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기여율이 40%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김대중 정부의 경제 개혁이 시작된) 1998년 이후엔 60% 정도로 올라갔습니다. 우리 경제가 수출에 의존하는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죠.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1980년대 이후 GDP 성장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내려가는 추세에 있다가 외환 위기와 경제 개혁을 거치면서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만큼 수출 의존도가 높아졌고 외부 충격에 취약해진 거죠. 어떻게 보면 더 종속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된 거죠. 이게 이른바 경제 개혁의 결과입니다. 14~15
장하준: (···) 최근의 현상은 한국 경제가 신자유주의적 구조로 바뀐 결과입니다. 신자유주의의 기본 특징이 바로 저투자, 저성장, 고용 불안이에요. 예컨대 고용이 불안하니까 노동자(소비자)들은 돈이 생겨도 쓸 수가 없습니다. 모아둬야 하니까요. 또 기업들의 투자가 줄어든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신자유주의의 특징인 적대적 M&A(인수합병)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적대적 M&A로 경영권이 불안해지니까 수익금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사주나 사들이는 거죠. 때문에 어느 나라나 신자유주의 체제로 들어가면 성장률이 떨어지게 마련인데, 우리도 이제 그런 체제로 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16
장하준: 우리나라 보수 언론들은 경제 성장을 위해 신자유주의적 정책, 즉 탈규제와 노동 시장 유연화(고용 불안)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신자유주의는 저성장주의이며 저성장을 위한 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이유를 간단히 설명드린다면, 신자유주의는 금융 자본을 위한 자본주의이기 때문입니다. 금융 자본이 기업 경영의 주도권을 장악한 시스템인 것입니다. 그리고 금융 자본의 입장에서는 경제 성장이 그리 달가운 현상이 아닙니다. 경기를 안정시켜 물가상승률을 낮춰야 (투자한 돈에 대한) 자본 이득을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금융 자본은 또 장기적 투자엔 관심이 없습니다. 이 회사에 갔다가 안 되면 다른 회사로, 이 나라 갔다가 신통치 않으면 다른 나라로 이동하면 되니까 장기 투자에 대한 안목이 없을 수밖에요.
여러 나라들이 경제 성장률을 높인다면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하는데도 실제로는 개혁 이후 경제 성장률이 높아진 나라가 거의 없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17~18
장하준: (···) 예전, 즉 1997년 이전의 한국 경제에서 정말 ‘항상적으로 과잉 투자’가 이뤄졌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로 재벌들이 엉터리로 투자해서 ‘항상적 과잉 투자’가 있었다면 당시의 우리 경제가 과연 40년 동안 고도 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요?
자본주의 경제에서 과잉 투자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 때문에 생산물 공급이 너무 많아져서 판매가 안 되고, 그래서 경제가 급속히 침체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정말 ‘항상적 과잉 투자’가 있었다면, 한국 경제는 지난 40년간 ‘항상적 공황 상태’를 겪어야 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항상적 과잉 투자’라는 개념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20~21
이종태: 외환 위기 이전엔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익성이 워낙 낮았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 필연적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장하준: 수익성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른 문제입니다. 이자 비용이 높았기 때문에 수익, 그러니까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순이익률이 낮게 나오는 건데요. 만약 수익성을 이자 비용을 포함한 영업 이익률로 본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익성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때는 높은 이자 비용을 문제 삼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의 이자 비용이 높았던 이유는 기업 구조가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금이 없는 상태에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신산업에 진출하려다 보니 빚을 많이 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던 겁니다.
정승일: 그런 현상은 국민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좋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기업에 대출한 은행들은 이자 형태로 수익을 얻을 수 있었고, 은행에 예금한 시민들도 명목금리에 불과하지만 10% 이상에 이르는 이자 덕분에 상당한 소득을 기대할 수 있었으니까요. 한마디로 선순환 구조라고 말할 수 있겠죠.
1997년 이전까지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러한 선순환 구조 속에서 은행 예금과 보험 저축을 지속적으로 늘려 왔던 거고, 그에 따라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축률과 그에 기반한 높은 기업 투자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장하준: 그런데 기업들이 주주들에게 고배당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돈이 이제는 국내 고소득자나 외국인들한테 나가고 있어요. 그 경우 국내 고소득층들은 서민층에 비해 소득 대비 소비비율, 즉 소비 성향이 낮은 관계로 전체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내수가 죽는다는 거죠. 24~25
이종태: 그러나 1997년 말의 외환 위기는 재벌들의 과잉 투자가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 아닙니까.
정승일: 그건 일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외환 위기가 1970년대 이후 이뤄진 ‘항상적 과잉 투자’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1993년 금융 시장 개방 이후 한동안 외국 자본이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는데, 그로 말미암아 과잉 투자가 3~4년 동안 진행되다 결국 1997년에 터진 겁니다. 일례로 우리나라 기업의 부채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난 기간도 1994~1996년입니다. 그전엔 오히려 부채비율이 내려가고 있었거든요. 빚을 갚아 나가고 있었던 거죠.
장하준: 통계를 봐도 부채비율이 떨어지다가 1993년 금융 개방 이후 다시 올라가지요.
정승일: 1980년 중반 및 후반기의 3저 호황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이 수익을 많이 냈어요. 그러자 증권 시장이 활황을 누리게 되면서 1990년대 초에는 주가지수가 1200 가까이 올라가게 되는데, 바로 그때 기업들이 유상증자를 많이 하면서 부채비율을 현격히 떨어뜨립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기업들이 은행에서 빌려 온 돈을 갚아 나가니까 은행들도 외국에서 가져온 차관을 상환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대외 부채도 줄어들게 된 거죠.
(···) 하지만 금융 시장 개방의 결과 은행과 기업들이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외국 자본을 빌려 올 수 있게 되면서 외채 규모가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김영삼 씨가 대통령이 된 1993년엔 400억 달러에 불과했던 외채가 그가 퇴임한 1998년 초엔 1500억 달러에 달하게 될 정도였으니까요.
이때가 바로 기업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과잉 투자를 했던 시기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1993~1997년 사이엔 분명히 무분별한 과잉 투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것은 이 같은 무분별한 투자를 조장하고 도와줬던 것이 바로 무분별한 외국 금융 자본이었다는 점입니다. 결국 과잉 투자 역시 정부 주도형 경제 성장 체제의 문제가 아닌,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하준: (···) 그런 식의 금융 자유화로 자본 시장을 개방한 뒤 금융 위기를 겪은 나라는 우리나라뿐만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투명성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같은 나라들조차 1980년대 말 금융 시장을 개방한 이래 금융 위기를 맞아 여러 해 동안 고생을 겪었으니까요.
정승일: 핀란드와 스웨덴은 1992~1993년에 금융 위기를 경험하는데, 그 패턴이 한국과 대단히 유사합니다. 두 나라 모두 금융 시장을 개방하면서 대출이 크게 늘어나는데, 핀란드의 경우에는 기업 대출이 급증했고, 스웨덴의 경우에는 가계 대출이 크게 불어나다가, 그것이 결국 ‘펑’하고 터지면서 금융 위기가 초래된 거죠.
1997년 말 동아시아에서는 한국 등 5개국은 금융 위기를 맞았고 중국과 대만은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대만은 금융 시장 자유화를 하지 않은 나라들이에요. 물론 금융 위기를 겪은 5개국도 그 원인은 조금씩 다릅니다. 한국의 경우 기업 부문의 대출 때문에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면,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은 태국과 필리핀에서는 부동산 시장에서 부실이 발생했으니까요. 그러나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 나라들은 모두 금융 시장 개방 이후 외국 자본이 국내에 급격히 유입되면서 거품을 일으켰고, 그러다 그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 위기가 발생하는 식으로 동일한 패턴을 밟았다는 겁니다. 26~28
정승일: 저투자 현상의 구조적 문제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자본 시장, 즉 주식 시장의 압력이라고 봅니다.
장하준: 주주들에 대한 배당률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어요. 현재 대다수 기업들의 경우 가뜩이나 부채비율 상승이 두려워 대출을 꺼리는 생황인데, 이렇듯 배당률까지 올라가니 투자할 돈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죠. 게다가 주식 시장이 요구하는 높은 수익률을 맞춰 줘야 하니 섣불리 투자에 나설 수도 없고요. 수익률이 떨어지면 당장 경영권에 대한 압박이 들어올테니까요.
이게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어느 나라나 주주 자본주의를 도입하면 배당률이 올라가고 투자율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도 1980년대 이후 주주 자본주의가 강화되면서 배당률은 계속 올라가고, 투자율은 갈수록 떨어지거든요.
정승일: 심지어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부 유보금이 없어서 투자를 못하는 기업이 말이죠. 28~29
장하준: 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순조로운 경제 성장과 그로 인해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저성장 체제로 들어간다고 할 때 가장 피해 보는 집단은 노동자들입니다.(···) 재벌 체제를 깨면 일반 노동자들에게 적잖은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보는 듯한데, 글쎄요···.
사실 그 과정에서 이익을 챙기는 것은 금융 자본과 외국인 투자자들입니다. 1997년 이후 지속적으로 재벌 개혁을 해 왔습니다만 솔직히 노동자들이 덕 본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일자리 불안해지고, 비정규직 많아지고···. 31
장하준: 자본 종속이란 자본의 소유가 외국으로 넘어가 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경제 자체가 넘어갔다는 이야기지요. 이게 바로 외국인 직접투자와 차관의 차이입니다. 차관은 이자만 주면 됩니다. 외국인들이 기업 운영에 간섭할 수 없는 거죠. 그러나 직접투자를 한 외국인은 국내 회사를 소유하면서, 운영에서 존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정승일: 1997년 이전에는 대부분의 외국 자본들이 소유권을 지향하는 주식 형태가 아니라 은행 대출(차관) 형태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엔 대부분 주식 형태로 들어오고 있는데, 주식은 바로 소유권입니다.
장하준: 그렇죠. 1997년 이전에는 외국인이 직접투자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비율이 제한되어 있어 외국인에 의한 인수 · 합병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풀려 버렸거든요.
정승일: 정확하게 말하면 (외국인들이) 기업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었다는 거죠.
이종태: 예컨대 한국 경제에서 주요 부문의 키를 모두 외국인들이 잡게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하긴 최근 몇 년 사이 국민 경제를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대기업들과 은행들에 대한 외국인들의 주식 소유 비율이 급격하게 높아지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주식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들에게 넘어간 상태이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면 주주 자본주의와 종속이라는 현상들은 꽤 유기적으로 얽혀있다고 할 수 있겠군요. 주주 자본주의를 수용하지 않았다면 외국인들이 주요 기업 및 은행들의 소유권을 장악하기는 어려웠을 터이니까요. 32~34
장하준: 우리와 남미의 가장 큰 차이는 우리나라의 경우 자본 종속 상태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자본 시장도 개방되지 않았고요. 그와 관련해 가장 제시하기 좋은 지표가 외국인의 100% 소유를 인정하느냐의 여부입니다.
1980년대 후반에 나온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당시 수출자유지역의 경우에는 외국인의 100% 소유를 인정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에 진출한 외국 투자 기업 중 외국인 100% 소유 기업은 6% 정도에 불과했어요. 나머지는 모두 외국 기업과 한국 기업 간의 합작 기업이었는데, 그 합작 기업들에 대한 경영 지배권은 대부분 한국 측이 행사하는 식이었고요. 반면 브라질의 경우 외국인이 100% 소유하고 지배권을 행사하는 기업의 비율이 50%, 멕시코는 60% 수준이었습니다. 35~36
정승일: 당시 한국 경제가 종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근거는 ‘외국 차관을 도입해 왔다.’ ‘기술은 모두 외국 것이다.’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차관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들여오긴 했지만 외국인의 경영권 장악은 차단했으니 자본 종속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장하준: 이른바 기술 종속은 경제 개발 초기엔 불가피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정승일: 어차피 기술만큼은 후발국이 선진국에게 배울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지만 현재는 오히려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수준이 세계 수위예요. GNP(국민총생산) 대비 R&D(연구개발) 투자 비율에서 보면 세계 5~6위로 영국과 이탈리아를 앞설 정도니까요.
장하준: 미국 특허청에서 외국인에게 부여하는 특허 있잖아요. 그 특허의 개수를 GDP(국내총생산) 대비로 따져도 한국은 세계 5~6위 수준입니다. 기술 부문에서는 선진국을 그만큼 따라잡았단 이야기죠. 37~38
정승일: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을 노동 시장 유연화라고 한다면, 적대적 인수 · 합병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자본 시장 유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 시장에 재벌처럼 기업 집단이란 것이 존재하면 자본이 마음대로 이동할 수가 없으니까 이걸 깨 버리고 모든 것을 자본 시장에 맡기자는 것이 자본 시장 유연화의 논리죠.
그런데 적대적 인수 · 합병이 발생하면 경영자가 해고되고, 그 경우 해당 경영자와 노조가 맺은 단체 협상도 무효화되기 쉽습니다. 자본 시장 유연화와 노동 시장 유연화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는 셈이죠. 39
이종태: (···) 두 분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게 되겠군요.
‘오늘날 이른바 경제 개혁을 추진한 결과 어처구니없게도 한국의 경제 종속은 더 심화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신자유주의적 구조를 맹목적으로 도입한 데에 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는 금융 자본을 위한 시스템으로 저성장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IMF 사태 직전 몇 년 동안의 과잉 투자는 우리나라 경제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자유화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국 자본이 우리나라 기업들의 질적 수준을 높여 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남미의 경우 외국 자본을 도입하였지만 실질적으로 산업 공동화만 초래하였을 뿐이다.’ 42~43
1부 2장 박정희의 개발 독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정승일: (···) 저는 경제 개발에 관한 한 박정희가 성공했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그가 시장 주도형이 아닌 국가 주도형 경제 개발 노선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시장주의 덕분에 경제 개발에 성공했다는 것이죠.(···) 반민족에 대해 말한다면, 386 정치인들이 박정희 시대의 한국 경제를 식민지로 간주했던 인식은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박정희 체제는 경제 문제와 관련 오히려 종속당하지 않기 위해 상당히 민족주의적인 입장을 표방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46~47
이종태: (···) 먼저 ‘박정희는 경제 개발에 성공했다.’는 명제를 입증해 주셨으면 합니다.
장하준: 객관적인 통계 수치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유럽의 산업혁명 있잖습니까? 그때 경제 성장률이 얼마였는지 아시나요? 1.1% 정도입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1인당 소득의 연평균 성장률이 0% 내지는 0.1%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한국 경제는 본격적으로 경제 개발이 시작된 1960년대 이후 1인당 소득의 연평균 성장률이 매년 6% 정도를 기록합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니까 1%나 6%나 그게 그것인 것 같죠? 하지만 천지차이입니다. 1%씩 성장을 하면 국민소득이 2배가 되는 데 70년 정도 걸립니다. 그러나 성장률이 6%가 되면 12년 정도면 국민소득이 2배로 늘어납니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치면, 매년 1%씩 성장하는 국가의 경우 두 세대가 지나야 소득이 2배가 됩니다. 하지만 매년 6%씩 성장하는 국가의 경우에는 두 세대가 지나면 소득이 64배가 됩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이야기지만, 1961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82달러였습니다. 당시 가나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의 2배가 넘는 179달러였고, 아르헨티나는 그 2배가 넘는 400달러였습니다. 당시의 우리나라는 그토록 가난한 나라였던 겁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경제 발전을 추진하지 않은 나라는 없습니다. 그러나 1961년 당시 한국의 2배였던 가나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금 350달러에 불과하죠. 아르헨티나도 당시엔 우리나라의 5배였지만 지금은 3분의 2 정도밖에는 되지 않고요.(···) 지금은 경제 발전이 이뤄 낸 성과를 우리 모두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경제 발전이란 것은 단순히 잘 먹고, 좋은 옷 입게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병을 앓지 않고, 오래 살고, 어린 자식을 잃지 않도록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경제 발전입니다. 48~51
정승일: (···) 경제 발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노동자들이 희생당하고 착취당한다고 해서 반드시 경제가 발전하는 것도 아니고요.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아랍 등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 중에서 제대로 된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가 몇 군데나 됩니까? 한국, 대만, 싱가포르 전도 아닌가요?(···) 과거 식민지 국가들 중에는 지금도 못하는 나라가 많은데, 이 나라들이라고 해서 지배층이 민중을 착취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경제 발전에 성공한 나라의 지배층과 실패한 나라의 지배층 간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바로 착취로 빨아들인 부를 어디에 사용했느냐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승만 체제와 박정희 체제의 차이는, 전자의 경우 민중들로부터 수탈한 부를 흐리멍텅하게 낭비해 버렸다는 겁니다. 남미도 마찬가지고요. 그에 비해 박정희 시대의 국가는 자본이 노동자를 착취해 수탈한 부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투자하도록 강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유명한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 때 박정희가 당시 이병철 회장을 불러 ‘당신, 이제부터는 중화학 공업 등 제대로 된 산업에 투자하라.’고 강요했던 것 아닙니까?(···)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한국의 경제 발전은 착취 때문에 성공했다기보다는 착취한 부를 효율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장하준: 정 박사님 말씀대로 단기적으로 착취를 많이 한다고 경제가 잘 되는 것은 아니죠. 그 부를 산업 시설, 교육, 사회간접자본 등에 얼마나 잘 투자했는가가 중요합니다. 52~54
정승일: 물론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성공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필리핀이나 남미와는 달리 토지 개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죠. 맞습니다. 당시 중국 대륙과 북한에서의 토지 개혁이 당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자, 그것을 두려워한 미국이 대만의 장개석 정권과 남한의 이승만 정부를 부추겨 토지 개혁을 수행하게끔 도왔고, 그것이 이후 해당 국가들의 공업화의 토대가 된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토지 개혁으로 자기 땅을 얻게 된 농민들이 논 팔고, 소 팔아가면서 자식 교육에 헌신한 결과 1960년대 이후의 공업화에 필요한, 근대적 교육을 받은 인력의 양성과 대량 공급이 가능해진 것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토지 개혁 자체만으로는 그 이후의 경제 발전을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한의 경우 1940년대 후반에 농지 개혁이 시작되었지만, 그 성과가 쉽게 나타난 것은 아니지요. 1950년대 후반기에는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될 정도였으니까요. 54~55
장하준: (···) 이런 맥락에서 언급할 수 있는 이야기가 ‘미국의 경제 원조’와 ‘한국의 경제 발전’ 간의 관계입니다. 물론 미국이 원조했기 때문에 한국이 경제 발전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미국의 경제 원조라면 칠레도 많이 받았고, 아프리카에는 한국보다 더 많이 받은 나라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나라들은 경제 개발에 실패했어요.
토지 개혁이든 경제 원조든 주요한 조건들이니까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과 무관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 조건들 때문에 ‘경제 발전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곤란하죠.(···)
제 견해를 이야기하자면, 이 박정희 식의 경제 정책, 더 넓게 나아가면 대만·싱가포르·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정책에는 일정한 역사적 뿌리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역사적 뿌리에는 물론 일본 군국주의의 흔적도 있지요. 하지만 2차 대전 이전에 동아시아에 형성되었던 맑스주의의 영향력도 상당히 강했습니다. 박정희가 어느 정도로 공산주의를 신봉했고, 또 어떻게 남로당에 들어가게 됐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한때 분명히 공산주의자였어요. 더욱이 박정희의 정책은 신고전파 경제학적인 시장 경제 노선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오히려 맑스주의나, 좀 더 넓게 보면, 고전파 경제학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해할 때 갖출 수 있는 시각이지요.
만약 박정희가 ‘정통 시장 경제 노선’으로 한국 경제를 운영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와 관련된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1960년대 중반, 당시 미국에서는 박정희 정부에 대하여 시장 경제 노선을 채택하라고 수없이 촉구했어요. 맥키논 박사 같은 양반들이 한국에 와서 자본 자유화나 시장 개방 정책 등을 실시하라고 권고하는 식이었죠.
이런 충고에 따랐다가 경제가 거덜나는 바람에 한국 정부가 불가피하게 실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그 악명 높은 8·3 조치입니다. 어떻게 된 거냐 하면, 미국인들이 금융 시장을 자꾸 자유화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실질이자율이 삽시간에 25%로 뛰어오른거예요. 당연한 일이죠. 신고전파적인 정통 시장 경제 노선에 따를 것 같으면 실질이자율이 높아야 개인들이 저축을 많이 하게 되고, 반면 기업들은 높은 이자율 때문에 신중하게 돈을 빌려 효율적으로 투자하게 되거든요. 그 과정에서 과잉 투자는 당연히 사라지게 되고요.
어쨌거나 이런 제도를 1965년부터 1969년까지 시행했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냐 하면, 기업들이 이자 때문에 생존하기가 어렵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겁니다. 이자에 이자가 붙는 식으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경제 전체가 파탄 직전으로 몰리게 된 거죠. 결국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사채를 동결해 버립니다.(···) 8·3 조치 같은 경우 시장주의는커녕 사유재산 제도까지 폭력적으로 침해한 대표적 사례라 해야 할 것입니다. 56~59
장하준: 박정희뿐만 아닙니다. 일본의 전후 경제 부활을 주도한 경제 관료들도 대다수가 젊은 시절엔 맑스주의자였어요. 싱가포르의 이광요 수상도 원래는 사회주의자였고요. 그 때문인지 싱가포르의 경우 시장 개방도 많이 하기는 했지만, 토지는 모두 국유화되어 있고, 대부분의 주택이 공공 주택이며, 기업 대다수는 국영입니다.
(···) 대만도 이와 비슷합니다. 국민당 체계는 소련 공산당을 모방한 측면이 강하고, 삼민주의 등의 이념은 시장주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둔 체제입니다.(···)
이렇게 동아시아에서 경제 발전을 성공시킨 지도자의 대다수가 사회주의 혹은 맑스주의 운동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사회주의 운동으로 표출하기보다는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사용했다는 겁니다. 다분히 시사적이죠. 사실 맑스의 저서들을 아무리 읽어 봐도, 자본주의에 대한 탁월한 이해는 얻을 수 있겠지만, 정작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나와 있지 않거든요. 60~61
장하준: 박정희가 경제 발전에 성공한 요소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박정희는 시장을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시장을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컨대 북한의 경우 ‘꽁꽁 걸어 잠그고 우리 식으로 살자.’는 것이었어요.(···) 북한의 경우 한마디로 세계 자본주의 경제로의 통합을 거부했기 때문에 쉽고 저렴하게 들여올 수 있는 기술까지 부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수출을 확대해야 외화를 벌 수 있고, 이 외화로 고급 기술을 도입해야 경제를 고도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을 철저히 이용했던 거죠.
둘째, 박정희는 자본가를 통제했습니다.(···) 1980년대 남미 외채 위기 당시를 보면 브라질만 자본 시장을 통제하는 제도가 있어서 자본을 해외로 도피시키는 일이 적었습니다. 자본 시장을 규제하지 않았던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에서는 외채보다 자본 도피액이 더 많을 정도였어요. 박정희는 이런 현상을 막았지요.
박정희는 심지어 자본가들의 소비도 규제했습니다.(···) 박정희는 자신부터 솔선수범해 가며 부유층들이 외제와 사치품을 못 쓰도록 한 겁니다.(···)
박정희가 자본가를 통제한 세 번째 측면은 투자를 규제한 겁니다. 그게 바로 산업 정책이고 경제 개발 계획이죠. 그 배짱 좋은 정주영 회장도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을 박정희가 윽박질러 만들게 한 것이 현대조선 아닙니까?
정승일: 박정희는 자본가들의 ‘투자·소비·자본의 유출’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겠군요. 61~63
장하준: (···) 이승만과 박정희는 둘 다 독재 정권을 이끌었지만, 크게 다른 점도 있습니다. 이승만은 이미 1950년대 말부터 미국 식 경제 시스템을 흉내 내면서 시장 개방, 금융 자유화 등을 실시합니다. 그때 은행도 모두 민영화했죠. 이걸 박정희가 다시 국유화한 겁니다. 64
정승일: 중요한 건 수출 여부가 아니라, 그 나라의 국적 기업을 키워 냈느냐는 거죠. 즉 그 기업이 자국의 투자율과 고용, 소득을 높이고 국민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는가의 문제라는 겁니다.
브라질의 경우 폭스바겐, 벤츠, 크라이슬러, GM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들어가 승용차를 조립해 브라질 시장에 팔고, 일부는 수출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수출은 다국적 기업의 내부 거래에 불과해요.
그에 비해 한국은 1970~1980년대 내내 개방은커녕 엄격한 수입규제를 실시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국내 시장을 보호하면서 수출 주도형 공업화를 추진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국적 기업들을 키워 내는 데 성공한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한 국적 기업들이 경쟁력을 얻고 난 이후엔 마음껏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고요. 66~67
장하준: 세계적으로 봐도 지난 30~40년 동안 한국인들의 노동 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길었죠. 우리나라 사람들, 그만큼 열심히 일하고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임금도 많이 올랐다는 데서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은 나라도 너무나 많거든요.
그리고 지금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미국과 영국은 마치 고상하게 산업화 과정을 거쳤을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그 나라들도 한때 우리보다 더한 착취와 저임금의 시기를 거쳤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산업화란 것이 정말 가능한지 곰곰이 따져 볼 필요도 있습니다. 70
1부 3장 재벌 문제, 과연 해답은 없는가?
정승일: 재벌과 대기업은 나눠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재벌이란 것은 대기업 그 자체라기보다는 대기업들이 하나의 거대한 집단으로 연결된 체제니까요.
장하준: 반재벌 논자 중엔 한국이 1960년대 이후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경제 발전 노선을 취해야 했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한국은, 경제 발전을 포기했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대기업 중심으로 나아가야 하는 국가였습니다. 왜냐하면 기술력이 너무 약했거든요.
유럽의 경우 전통적으로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이 기술력이 강한데, 이런 나라에서는 중소기업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처럼 기술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본과 기술을 축적해 언젠가 세계 시장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당당하게 경쟁하겠다고 생각했다면 대기업 중심으로 갈수밖에 없었다는 거죠. 74
장하준: 결국 자본 동원의 문제입니다.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떤 큰 사업을 진행하려다 보니 독자 기업 하나로는 힘들었던 거죠. 예를 들어 한국 기업이 반도체라는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는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그 경우 이미 반도체 사업을 하고 있는 세계적 대기업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과연 그런 세계적 규모의 경쟁을 당시 우리나라의 어느 특정한 기업이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나 이 기업이 지금 수익을 올리고 있는 다른 산업 부문의 기업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투자를 받을 수 있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삼성그룹의 경우라면 제일제당, 제일모직에서 설탕과 양복지 만들어 번 돈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해 주는 식으로 말입니다.(···)
우리의 경우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각화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개발 경제학 부문에서 세계적으로 저명한) 암스덴 MIT 교수 같은 사람은 이를 두고 독자적 기술이 없어서 기술력만으로는 다른 기업과 승부가 불가능할 때 유일하게 가능한 경쟁방법이라고 할 정도니까 당시로서는 현실적으로 타당한 방법이었던 겁니다.
정승일: 국내 일부 지식인들이 격찬하는 대만 경제와 관련지어서 이야기를 하나 할까요? 대만의 경우 중소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해서 1980년대에는 컴퓨터 부품, 전자 부품 등 IT 업종과 자동차 부품 산업을 많이 키웠습니다.(···)
IT 산업의 경우 성장한 중소기업들이 굳이 대기업들과 거래 관계를 형성할 필요 없이 독자적으로 상품을 생산·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었지요. 때문에 상당히 성공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세계적으로 IT 거품이 꺼지자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됩니다. 2000년 이래 IT 거품 붕괴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 바로 대만과 싱가포르라고 할 정도로요.(···)
반면 우리나라는 조선, 자동차, 전자 등 여러 업종들이 다양하게 있기 때문에 경제가 그나마 들쑥날쑥하지 않고 안정되어 있다는 평가가 당시 국제 산업 전문가들로부터 나왔습니다.(···) 다각화, 그러니까 삼성이 직물 하다가 전자에 투자하고, 현대가 건설 하다가 조선과 자동차에 투자한 것에도 나름대로의 정당성이 있는 겁니다.
(···) 물론 다른 방법도 있겠지요. 그러나 중화학 공업화에 필요한 거대 규모의 자본을 감안하면 재벌 외에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은 국영 기업밖에 없을 겁니다. 포항제철 같은 방식으로 말이에요. 76~78
정승일: (···) 재벌 총수의 경우 심각한 경영상 오류를 범해도 교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거죠. 그러나 한국 경제가 정부 주도형으로 움직일 때는 회장을 정부가 갈아 치웠죠. 당시에는 정부에 그럴 만한 힘이 있었으니까요.
장하준: 1인 독재든 집단 경영이든 모든 체제엔 장점과 단점이 함께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자동차 산업 진출을 모두가 실패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병철의 반도체나 정주영의 조선업 진출 등 성공 사례도 있어요. 비록 1인 독재이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물론 앞으로는 1인 총수 체제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병철, 정주영 등 카리스마가 넘치는 창업자들은 능력이 워낙 뛰어나니까 독재를 해도 성공할 확률이 높지만, 2세들에게까지 그런 능력을 기대하기는 힘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79~80
정승일: (···) 정경 유착과 관련해서 한마디 하고 싶은데요. 박정희 때의 정경 유착과 이건희 회장이 김영삼이나 노무현 대통령에게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다릅니다. 박정희 체제는 재벌들을 통제했고, 경영에 실패하면 갈아 치울 수도 있었어요. 그 메커니즘이 산업 정책이나 정책 금융으로 나타난 겁니다.
가령 박정희 정권은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에게 포니 자동차라는 독자 모델의 개발을 강요하고,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정주영 회장이 이 사업을 순조롭게 추진하지 못하거나, 혹은 정경 유착에 빠져 정치권의 지원만 기대하면서 엉뚱한 경영을 하면 정책 금융을 끊어 버리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게 가능했던 게, 당시 우리나라 기업들은 외국에서 기술과 기계를 도입해야 하는 관계로 많은 달러화가 필요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지원해 주는 정책 금융을 끊어 버리면 그건 ‘죽어라’ 하는 이야기나 다름없거든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시아자동차입니다. 1970년대 초반 정부에서 독자 모델 자동차를 개발하라고 기아, 현대 등 여러 완성차 업체에게 지시했습니다. 그때 아시아자동차가 겉으로는 자동차를 개발한다고 약속해 놓고는 정작 이행하지는 않았어요. 그러자 박정희 정권이 아시아자동차를 강제로 기아자동차와 합쳐 버린 겁니다. 기업가 입장에서는 자기 회사를 뺏긴 거죠. 적대적 M&A를 당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박정희 정권은 이렇듯 비효율적인 경영자를 교체하는 기업 지배 구조가 나름대로 작동하는 체제였던 것입니다. 80~81
정승일: 레이거노믹스가 미국에 등장한 것이 1980년대 초반 아닙니까. 레이거 노믹스의 바탕인 자유주의는 이때부터 서서히 미국 유학파 학자들에 의해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IMF나 세계은행이 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채택하라고 우리 정부에 압력을 넣기도 했고요. 그러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에 자유주의가 우리 정부의 경제 정책에 중심적인 기조로 자리 잡게 되는데, 거기서 이상한 점은 이 같은 자유주의가 몇 년 뒤부터는 한국 민주화 운동 진영 일부와 결합해서 시민 운동으로까지 나타나게 된다는 겁니다.
장하준: 그 과정에서 재벌들이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예요. 시장주의(자유주의)를 들여오면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1990년대 중반 자유기업원 등을 만들어 미국 공화당 극우파들의 극단적 개인주의나 수입하고, 주주 자본주의 이론 들여오고 그랬거든요.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은 거죠. 자유주의를 수입해서 ‘정부는 기업에 간섭하지 말라.’고 해 놓고 보니, 그 논리대로 하면 그룹의 전체 주식 중 극소수만 보유했을 뿐인데도 그룹 전체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재벌 가문이야말로 대다수 주주들의 소유권을 침해하고 있는 셈이었거든요.(···)
정승일: 그러니까 정부의 통제에 대항하여 자본이 자유주의란 걸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켰던 겁니다. 결국 장 박사께서 말씀하신 ‘자본에 대한 통제’가 해체되는 과정은 1980년대 말에 시작되어 김영삼 정부 시절 세계화 정책을 거쳐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 개혁으로 완결되는 셈이죠. 83~84
정승일: 시민 운동 하시는 분들은 재벌 개혁을 경제 민주화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재벌 개혁은 경제 민주화와는 무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재벌이 박정희의 개발 독재 하에서 성장하여 발전해 온 것이기는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무모할 정도로 과감한 투자를 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재벌 시스템이었거든요. 즉 재벌은 경제 성장을 위한 시스템이었고, 그러한 경제 성장 자체는 경제 민주화와 어긋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
장하준: 아무튼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덕을 보게 되는 경우는 경제 성장이 잘 되어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것 아닌가요. 성장이 안 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노동자들이니까요.(···) 일각에서는 재벌들을 깨면 노동자들이 덕을 볼 거라고 생각하는 듯한데, 사실 그 과정에서 재미 보는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과 금융 자본입니다.
솔직히 김대중 정부 이후 재벌 개혁 한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어떤 이익을 얻었습니까. 없죠? 성장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그에 따라 일자리도 안 만들어지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스웨덴 식으로 나가는 게 낫죠. 스웨덴은 발렌베리 같은 엄청난 재벌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웨덴은 그 재벌을 인정해 주는 대신 세금도 많이 걷고 사회적 책임도 부담시켜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재벌이 없는 영국 같은 나라들보다 훨씬 더 평등하고 부유한 스웨덴 식 사회를 만들었거든요. 84~85
이종태: 정 박사께서는 예전에 쓰신 글에서 재벌 가문의 지배 체제에서 주주들의 지배 체제로 ‘민주화’되면서 노동자들이 오히려 피해를 본 사례를 소개하신 적이 있죠. 독일이었던가요?
정승일: 그렇죠. 초국적 금융 자본은 재벌과 노동자들을 함께 공격하거든요. 재벌에 대해서는 핵심 역량에 집중하지 않고 사업을 다각해서 주식 가치를 떨어뜨린다며 압력을 넣습니다. 동시에 노동자들을 위한 기업 복지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므로 복지 제도를 해체하든가 정리 해고를 하라고 경영자를 위협하고요.
이종태: 유럽의 경우 오히려 재벌 가문이 그룹을 지배할 때는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었죠.
장하준: 유럽 식 사회 계약이죠. 족벌 지배를 인정해 주는 대신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허용하고 세금도 많이 내라는 겁니다. 사실 특정 국가에 뿌리박고 있는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라도 타협하지 않으면 일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초국적 금융 자본가들은 그런 타협에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어요. 투자한 주식만 돈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 뒤에는 다른 나라에 투자하면 그만이니까요.
반면 이탈리아의 피아트나, 스웨덴의 발렌베리, 한국의 삼성 같은 재벌 가문들은 ‘투자한 돈만 돌려받으면 우리 나갈게.’ 하는 식으로는 못합니다. 때문에 노동자들과 타협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죠. 하지만 투자자가 버진 아일랜드나 모나코 등 세금 피난처에 있는,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펀드인 경우, 이 초국적 금융 자본들이 무엇 때문에 노동자들과 타협하겠습니까?(···)
그리고 재벌들이 지금까지 성장하는 데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피와 땀이 투자됐습니까? 국민의 혈세로 부도 막아 주고, 외제에 비하면 형편없는 국산품을 애국이라는 미명 하에 거의 강제적으로 소비해가면서 시장을 보호해 줬던 것 아닙니까? 재벌들은 그런 속에서 기술력을 키워 세계적 기업이 된 거고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재벌기업들은 국민의 자산입니다. 85~87
정승일: 굳이 박정희 식의 폭력적인 통제까지 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아직 상당히 많은 정책 대안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도 계속되는 부동산 투기 열풍 있잖아요. 그 중요한 측면 중 하나가 은행들이 주택 담보 대출을 엄청나게 늘리면서 결과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그 경우 은행의 전체 대출 중 주택 담보 대출의 비율을 일정 선 이하로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이 한국은행법에 있습니다.(···)
장하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본 시장을 개방한 상태에서 자본을 통제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렇다고 자본 시장 개방이라는 것이 대외적인 약속인 만큼 되돌리기도 힘들고요. 게다가 국내에도 이미 자본 시장 개방 정책과 이익이 일치하는 집단이 굉장히 많이 생겨났습니다.(···)
정승일: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가 400조 원이 넘는 돈들이 생산적으로 투자되지 못하고 수익처를 찾아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인데, 결국은 주식도 안 되고 부동산도 안 되기 때문에 요즘에는 외국으로 빠져나가 버리고 있거든요. 한편에서는 생산적 투자가 안 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건 굉장히 역설적인 상황이고, 이 사실 자체가 자본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을 보여 준다고 생각해요. 88~89
1부 4장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시장 개혁인가?
정승일: (···) 지금 비판 받고 있는 과거의 경제 성장 방식은, 당장은 과감한 설비투자 등 신규 투자에 비례하는 만큼 수출과 매출이 늘어나지 않아 요소 생산성이 하락하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수출과 매출이 증대될 것을 기대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거기에 성공하였던 까닭에 결국 요소 생산성 역시 상승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거기에 비애 지금 개혁 세력이 주중하는 요소 투입 지양과 요소 생산성 위주 성장이라는 것은 아예 처음부터 과감한 설비 투자 등 장기적 투자를 ‘그렇게 하면 요소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방식입니다. 과거의 시스템이 장기적 수익 달성과 장기적 요소 생산성 달성을 겨냥하되, 단기적으로는 수익성과 요소 생산성 하락을 감수하면서도 과감하게 투자하는 체제였다고 한다면, 현재의 시스템은 단기 수익과 단기적 요소 생산성 달성만을 겨냥하며 저투자와 저성장을 지향하는 체제인 셈이지요. 99
장하준: (···) 진정한 기술 혁신 체제로 가려면 노동 시장 유연화를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죠. 제일 좋은 사례가 스웨덴과 일본입니다.
두 나라는 세계에서 산업 로봇을 가장 많이 쓰는 국가입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노동자들에게 고용 보장을 해 주거든요. 물론 방법은 틀리죠. 스웨덴은 국가 차원에서, 일본은 기업 차원에서 고용을 보장하는 겁니다. 노동자들이 설사 불가피하게 해고된다 하더라도 재교육을 통해 비교적 쉽게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식으로요. 그러니까 기술 혁신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약한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일본, 스웨덴 두 나라는 자동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거고요.
이와 대조적인 국가가 바로 영국입니다. 노조가 강하던 1970년대 영국 자본가들은 신기술을 도입하려고 하면 노동자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어요.(···) 노조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신기술이 도입되면 해고될 수밖에 없거든요. 한마디로 인생 종치게 되는 거죠. 그러나 스웨덴이나 일본 노동자들은 신기술이 들어와도 인생 종치게 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것을 허용하고, 오히려 빨리 적응하려고 하다 보니 기술 수준도 발전하게 되는 거예요.
반면에 우리나라처럼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면 기업 입장에서도 노동자들에게 기술 관련 투자를 할 인센티브가 없습니다. 걸핏하면 자르다 보니 장기적 투자를 계획하는 데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고요. 노동자 입장에서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데 ‘힘들여 새로운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느냐.’는 식의 태도가 불가피한 것 아닙니까? 109~110
장하준: ‘분배를 통한 성장’은 단기적 효과 이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지금 분배 상황이 워낙 좋지 않으니까 이를 개선하면 일시적인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러나 분배만으로 성장 동력이 마련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종태: 한국 진보 좌파들의 문제 의식엔 경제 성장이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제도권 좌파 정당인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고요. 115~116
장하준: (···) 진보 좌파들이 분배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한국의 소득 분배가 1997년 이후 급격히 악화된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한국의 금융, 노동, 무역 시장과 기업(재벌) 시스템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세, 복지 등 국가의 재분배 정책만 개선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겁니다.
민주노동당이 만약 현재 20% 수준인 한국의 조세 부담률을 독일이나 스웨덴의 40~50%까지 올릴 자신이 있다면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든 소득 분배는 개선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조세 부담률이 빠른 시일 내에 그 수준까지 오를 가능성은 희박한 반면, 시장 논리는 각 경제 부문에서 날로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소득 분배의 급격한 악화를 통제할 수단이 없는 겁니다.
진보 좌파는 시장이 돌아가는 논리, 즉 성장이라고 표현되는 부분과 소득 분배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는 것을 정치적으로 철저히 인식했으면 합니다. 117
장하준: 그들이 정말로 고민해야 할 것은 노동 시장이 유연화될 수밖에 없는 원인입니다. 현재 자본 시장 개방과 주주 자본주의 때문에 투자가 줄면서 일자리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라는 압력은 계속 거세지고만 있고요. 이런 원인을 그대로 방치한 상태에서 노동 시장만 뚝 떼어 내 보호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