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등생도, 날라리도 아닌 평범한 아이였다. 전북 군산에서 보낸 학창시절, 친한 몇몇과도 하루 몇 마디 섞지 않았다. 어쩌다 입을 떼면 주위에서 “얘가 말을 한다”며 신기해했다. 일주일에 두어 번 시내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
그런 과묵한 아이가 스무 살, 배우가 됐다. 군산에 둘밖에 없는 극단 중 한 곳에 들어가 무대에 서더니, 상경해 대학로 극단(연우무대)에 들어갔다. 이젠 영화도 한다. 올해 출연작만 네 편이다. 그 중 하나가 ‘변태엽기 사또’ 변학도로 출연한 300만 흥행작 ‘방자전’이다. 추석엔 ‘시라노; 연애조작단’ ‘해결사’ 두 편에서 얼굴을 보여줬다. 내년엔 로맨틱 코미디 ‘위험한 상견례’의 주연이다. 초고속 주연 데뷔다.
충무로에서 요즘 가장 ‘핫’한 신인이라는 송새벽(31). 이젠 그가 스크린에서 입을 열면 관객들은 빵빵 터진다. 꽃미남도 아니고, 그렇다고 슬랩스틱이나 애드리브(즉흥연기)가 도드라지는 것도 아니다. 대사가 튀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경찰로 나온 ‘해결사’의 “도시가슨데, 껐어요”라는 대사. 예사롭던 말이 송새벽 입에서 나오니 사람 미친다.
“한 번도 일부러 웃기려고 한 적은 없어요. ‘방자전’ 때도 대본에 씌어진 대로만 했어요. 코미디 연기를 한 게 아니라 정극(正劇)연기를 한 건데 상황이 웃겨서 그런가….” 고향의 기운이 살짝 배어나는 말투도 ‘범인’이다. ‘방자전’ 김대우 감독이 “어둔한 느낌”이라고 한 그 말투.
사실 ‘도시가스’는 원래 그냥 ‘가스’였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는데 가스 냄새가 나면 부탄가스겠지 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밸브가 잘려 있는 걸 보니깐 도시가스라고 해야겠구나 생각한 거죠.” 나름의 논리에 맞춰 진지하게 준비하는데 폭소가 돌아온다. ‘머피의 법칙’이 아니라 ‘송새벽의 법칙’이라도 있는 건가. “너무들 웃으니 어쩔 땐 ‘내가 그렇게 덜 떨어져 보이나’ 싶기도 해요.” (웃음)
첫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 연우무대 주연으로 섰던 ‘해무’를 본 봉 감독이 데려갔다. 원빈이 입에 문 사과를 발차기하는 형사역이었다. 현장 감식하면서 “요즘 애들은 CSI 이런 거 봐서 되게 샤프해요”라고 하는 대사도 돌이켜보면 참 송새벽답다. ‘마더’를 본 김대우 감독이 만나자고 했을 때만 해도 변학도로 뜨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시나리오 읽어보니 변학도가 기존 통념을 뒤집는 정말 재미난 인물이었거든요. 욕심은 났지만 유명한 분들이 물망에 올라있다고 해서 기대도 안 했어요.”(하지만 김 감독은 그날 즉석에서 송새벽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다음은 전문가에게 ‘연애조작’을 부탁하는 의뢰인을 연기한 ‘시라노’ 캐스팅. ‘시라노’ 편집을 맡게 된 ‘방자전’ 편집기사가 추천했다. 연말 개봉하는 ‘부당거래’에는 ‘방자전’의 이도령 역 류승범이 형 류승완 감독에게 권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캐스팅이다.
“20대 초, 중반에 영화 오디션을 몇 번 본 적이 있어요. 하나같이 1차에서 떨어졌죠. 낙담도 됐지만 반성도 많이 했어요. 준비도 안 됐으면서 첫술에 배 부르려고 욕심 부린 게 아닌가 하고요. 다시 연극에 몰두했죠.”
고시원과 반지하방을 거쳤던 대학로 시절은 지금은 든든한 자산이다. “무대 아래서 똑바로 살아야 무대 위에서도 잘한다” “내 삶도 연기의 한 부분”이라는 깨달음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름처럼 동터오는 새벽을 맞았으니 이제 성큼성큼 큰 걸음을 뗄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