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淸溪山)을 다녀와서
만삭인 출산전에도 지극한 모성으로 아기를 위해 행동과 언어를
각별히 조심하면서 생후에도 성장하는 아이의 정서에 큰 영향을
주는 태교에도 전심(全心)을 기울이게되고 출산 후에도 지니고 있는
재능이나 역량 등을 떨쳐 드러내는 보호본능이 발휘(發揮)되니 영아
(嬰兒)때의 아이에게는 엄마에게서 생명줄이 이어지듯 엄마의 지극한
사랑과 정성이 아기에게는 밥이고 약입니다. 아기또한 태어나서 제일
먼저 인지(認知)하는 것이 엄마의 사랑이고숨결과 말들을 교감(交感)
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아기를 수태(受胎)를 하고 출산을 하는 과정의
엄마의 사랑은 그 깊이를헤아릴 수 없는 신(神)만이 아는 가장성스럽고
고귀(高貴)한사랑이라고 합니다...이와같이 출산은 누구이던 의무적인
성업(聖業)인데 옛날엔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쉽게 날 수 있는 결혼적령기
(結婚適齡期)인 20대 중반쯤에 결혼을 했었는데 요즘은 30대말이나 40대초에
결혼을 하고선 교육비 부담 때문에 아이 낳기를 포기한다하고 그 시기의
미혼 남녀들은 결혼은 하고 싶은데 아이는 낳기 싫다고 한다니 대한민국의
전도(前道)가 심히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2017년5월6일 일요일 오늘은 인터넷 카페 "5060아름다운사람들" 산행동호회에서
청계산을 오르는 날 교통거리가 까다로워서 아침 07:30분에 집에서 출발 버스로 양주역
에가서 전동차에 승차하여 07:50분에 출발 회기역에서 경의~중앙선으로 환승하여 가다가
왕십리역에서 분당선으로 환승하고 선능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 강남역으로 가서 신분당
선으로 환승하여 가다가 청계산입구역에서 하차하니 09:08분 2번 출구로 나가니 아무도
나와있지 않아서 다시 지하역사로 내려와서 기다리니 열시까지 다들 나오셔서 열시가
되니 다들 나오셔서 밖으로 나가 청계산 입구에 들어서서 오늘 참석한 인원을 점검하니
20명 가다 쉼을 반복하며 원터골을 오르고 진달래능선을 오르며 매봉 가는 길에서 선미를
틀어 예정에 없는 옥녀봉에 올라 옥녀봉(玉女峰)이 아니라 옹녀봉(雍女峰)이면 좋았을텐데
하는 우스겟 말을 건네기도 하면서 올라오느라 힘들었던 다리를 10여분간 쉬다가 다시
오르기를 시작 최종목적지 매봉 정상에 올라 넓어진 시야를 바라보니 편서풍(偏西風)을
타고 날아온 봄의 불청객 중화(中華)의 모래 바람에 서울이 온통 미세먼지에 휩싸
여 엷은 안개속을 보는듯 했습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바람이 덜한 장소에
자리를 펴고 앉아서 각자 마련해온 간식을 나누며 스스럼없는 대화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산사랑하는 마음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쓰레기를 수거하여 짊어
지고 가던길을 되돌아오는 원점회귀(原點回歸)를 하여 동행하신 분의 초등생
동창이란 분이 운영한다는 애마라는 업소에 가서 긴 시간의 뒷풀이를 하고
2차로 간 곳에서 여흥을 즐기다가 귀가하니 밤 아홉시 이십분이었습니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에 우뚝 선 청계산(淸溪山)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 국립현대미술관을 둘러싼 푸른 산자락이 바로 청계산이다.
서울 양재동과 과천시, 성남시, 의왕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청계산은 관악산
산자락이 과천 시내를 에둘러 남쪽으로 뻗어내린 것이다. 산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서남쪽으로 뻗어나가 의왕시의 백운산, 모락산, 오봉산으로 이어진다.
청계산은 조선 태조 이성계에 의해 고려가 멸망하자, 고려말 충신이었던 조윤
(趙胤)이 송도를 떠나 입산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청룡이 승천했던
곳이라고 해서 청룡산으로 불리기도 하며 풍수지리학적으로는
관악산을 백호, 청계산을 청룡이라하여 '좌청룡 우백호'의
개념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청계산은 울창한 숲과 아늑한 계곡, 공원, 사찰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가족산행의 명소로서 수 많은 등산로가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다. 과천쪽에서
바라보는 청계산은 산세가 부드럽고 온화해서 토산처럼 보이지만, 서울대공원
쪽에서 보이는 망경대는 바위로 둘러싸여 있어 거칠고 당당하게 보인다. 망경대
(해발 618.2m)가 바로 청계산의 정상이다.주암동쪽에서 망경대 쪽으로 오르다
보면 추사 김정희의 생부 김노경의 묘터가 있던 옥녀봉이 나타난다.
조선시대의 학자인 정여창이 피눈물을 흘리며 넘었다는 혈읍재를 지나
망경대 바로 밑으로 가면 정여창이 은거했다는 금정수가 있다.
이 약수는 정여창이 사사되자 핏빛으로 변했다가 이내
금빛으로 물들었다는 말이 전해온다.
풀향기 가득한 산길을 걷다보면 야생밤나무와 도토리나무, 머루와 다래
등이 종종 눈길을 끈다. 청계산 남쪽에 위치한 청계사, 과천 쪽의 동폭포,
금정수 가는 길 근처의 매바위와 돌문바위, 약수터 등도 들러 볼 만하다.
청계산(618m)은 산세가 수려하고, 2km에 이르는 계곡에는 항상 맑은 물이 흘러
시민들이 즐겨찾는다. 관악산과 함께 서울을 지켜주는 '좌청룡 우백호'의
명산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청룡산이라고도 했던 청계산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양재인터체인지를 지나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때 오른쪽으로
보이는 청계산은 순한 육산이지만, 과천 서울대공원 정문 부근에서 바라보는
청계산 정상인 망경대 주위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위압감을 느낀다. 정상인
망경대는 정부시설이 있어 등산이 불가, 국사봉(538m)과
545m봉을 연결 산행하고 있다.
백운호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담바라 꽃으로 유명했던 사찰이 하나 있는
데 우담바라(산스크리트어)는 불교경전에서 말하는 꽃으로, 인도에 나무는 있지만
평소에는 꽃이 없다가 3000년마다 한 번,여래(如來)가 태어날 때나 전륜성왕
(轉輪聖王)이 나타날 때에만 그 복덕으로 말미암아 꽃이 핀다고 하는 전설의
꽃이다. 그 꽃이 정말로 청계사에 피었단 말인가!
불상에서 피는 희귀한 꽃, 우담바라가 청계산의 청계사에서 나타난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때 창건되어 고려 충렬왕 10년(1284)에 중창된 사찰 청계사에는
청계사사적기비, 극락보전, 종각, 삼성각, 지장전, 수각 등 3동의 요사를 비롯
해서 감로지 등 볼만한 것들이 많다. 그 중 청계사의 동종과 목판은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조선 숙종 27년(1701)에 제작된 청계사의 동종은 조선 후기 범종의
대표로 보물 제 11-7호로 지정되기까지 했는데, 두 마리의 용 모양과 연꽃줄기를
든 보살상 4기, 그리고 보상화문 등의 정교한 무늬들을 볼 수 있다. 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된 청계사의 목판은 현재 18부 466판이 남아있다. 조선
시대 광해군 14년(1622)에 판각한 묘법연화경이 213판으로 가장 많다고 한다
.그 외에도 불교 의식에 관한 문헌과 천자문과‘천지팔양신주경판’도
전해져 오고 있다.
주요문화재
1) 청계사 동종(경기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96 호) 2) 청계사 목판
(경기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135 호)
2017-05-07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