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짓게 하는 것
2024.06.16.(성령강림후제3주)
선한목자교회 김 명 현 목사
6/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 7/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 때문에 세상에는 화가 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을 일으키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8/ “네 손이나 발이 너를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서 내버려라. 네가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손이나 발 없는 채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9/ 또 네 눈이 너를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빼어 버려라. 네가 두 눈을 가지고 불 붙는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눈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마태 18:6-9)
들어가는 말
‘작은 사람들’이란 예수님에 의해 중심에 세워진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자신의 이름으로 영접하라고 말씀하셨으므로,(5) 제자들은 작은 사람들이 그들의 중심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볼 때 작은 사람들은 믿음이 적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작은 사람들은 어느 모로 보나 크거나 신뢰할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작은 사람을 죄 짓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작은 사람들을 중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밀쳐내는 것입니다. 그들은 환영받지 못할 때 바깥에서 죄에 휩쓸리게 됩니다.
작은 사람들이 하늘나라에서 밀려나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제자들이라면 그들을 맞아들이고 보호해야 합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이란 죄를 짓게 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그는 중심으로 들어오는 작은 사람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그 앞에 걸림돌을 놓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서로 앞서 나가기 위해 경쟁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장애물이 있는 반면, 내 앞에 장애물이 없다면 앞서 가기가 더 쉬울 것입니다. 또한 앞서 간 사람들의 바람은 다른 사람들은 기껏해야 따라오는 데 그치는 것입니다. 누구도 앞서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작은 사람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이 나보다 앞서도록 길을 내주거나 환대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제자들은 중심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 했습니다. 그것을 안다면 그렇게 시도해 볼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6) 예수님을 믿는 작은 사람들이 중심에 들어서는 것을 막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다.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제자들은 작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끌어야 하며, 그들을 막아서는 것은 죄가 될 뿐입니다.
그것은 왜 죄일까요? 하늘나라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 때문에 세상에는 화가 있다.”(7) 세상이 하늘나라와 달리 저주인 것은 사람들을 죄 짓게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하늘나라의 차이는 행복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그 나라를 한없이 행복한 곳으로 상상하면서 세상을 불행한 장소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행복한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 불행한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온갖 불평과 불만을 해 대면서도 세상에 남고 싶어 하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경험 속에서 세상은 가장 행복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더 행복한 하늘나라를 기대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기대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상과 하늘나라는 행복의 크기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 속에 세워진 하늘나라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신앙을 위해 세상적인 것을 최소화한 수도원들과 보다 나은 가치를 지향하면서 세워진 공동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나은 행복을 기대하며 수도원과 공동체를 찾곤 합니다. 하지만 금세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그곳이 이 세상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이 세상보다 더 행복한 곳은 어디에서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던 것입니다.
죄 짓게 하는 사람
예수님이 가져온 하늘나라는 죄를 짓게 하는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와 세상의 분명한 차이입니다. “네 손이나 발이 너를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서 내버려라. 네가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손이나 발 없는 채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8) 세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작은 사람들을 주변으로 몰아냄으로써 그들을 죄 짓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은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그런 적이 없다. 그들이 죄 짓는 것은 그들의 탓일 뿐이다.’ 세상이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기 때문에 세상은 죄의 소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작은 사람들을 환영하고 그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도원이나 공동체는 거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수도원이나 공동체가 이 세상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작은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내적이며 외적인 투쟁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는 일이나 기대하는 일이 잘 안될 때, 세상을 향해 푸념하고 저주합니다. 때로는 적은 노력으로도 우리보다 잘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비하하고 불공평한 세상을 저주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볼 때, 성공한 사람들만을 인정하는 세상에서 작은 사람들은 스스로 밀려나는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이것은 내 문제가 아니므로 세상이 저주받을지언정 내가 저주 받을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무의식중에 걸려 넘어지게 함으로써 죄 짓는 곳이며, 걸려 넘어진 사람들 또한 죄 짓게 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짓게 하는 그 사람에게도 저주가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작은 사람들을 죄 짓게 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제자들은 작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세워지는 하늘나라를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도래하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은 잘나가는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다.
죄 짓게 하는 것
그들은 하늘나라를 방해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작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맞아들일 생각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만족하든 불만족하든 세상을 벗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이루도록 요청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늘나라는 작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늘나라의 도래가 지연되는 것은 작은 자들을 받아들이라고 요청받은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그 요청을 무시하거나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의 중심을 차지해야 하는 작은 사람들을 외면하여 죄 짓게 함으로써 하늘나라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라는 성직자들 역시 작은 사람들을 교회의 가장 중심에 세우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중심에 놓고 있지만, 그것은 그저 상징적인 예수님일 뿐입니다. 교회가 실제로 그 중심에 두어야 하는 이들은 작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작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5) 그런데 예수님은 이와 같이 작은 사람들을 ‘나를 믿는 사람들’(6)이라고 말씀합니다.
‘나, 곧 예수를 믿는다’는 표현은 마태복음에서 오직 이곳에만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비롯한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기에는 믿음이 없거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향해 ‘나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자들이 믿음이 없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작은 사람들을 죄에 빠지지 않도록 환영하여 맞아들이는 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려지는 저주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을 자랑하면서 작은 사람들을 죄 짓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나가는 말
“또 네 눈이 너를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빼어 버려라. 네가 두 눈을 가지고 불 붙는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눈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9) 손, 발, 눈은 큰 자들의 우월함을 상징하며, 작은 사람들에 대한 판단의 도구임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손, 발, 눈은 작은 사람들이 중심에 들어오는 데 걸림돌이 됩니다. 능력을 상징하는 큰 사람의 손은 작은 사람들로 하여금 걸림돌이 되어 주춤거리게 합니다. 큰 자의 발은 다양한 곳에 미치는 권위를 상징합니다. 이들의 권위는 누구 앞에서도 내세울 것이 없는 작은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합니다. 큰 자의 눈은 작은 사람들을 매섭게 판단합니다.
한편 우리는 능력이 있으면 그것으로 작은 사람들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큰 교회는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작은 사람들을 위한 일을 많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과 권위들은 예수님의 시각에서 작은 사람들을 죄 짓게 하는 걸림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들의 권위는 작은 사람들을 착취해서 얻어낸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제거해야 합니다. 작은 사람들에 비해 많이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은 죄의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벗어 던지고, 겸손하게 작은 사람들을 섬기기 시작할 때 하늘나라는 우리 가운데 도래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