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 10. 13. 01:44
▲농암 이현보 초상
■이현보(李賢輔)
[생졸년] 1467년(세조 13) ~ 1555년(명종 10) / 안동출신
[문과] 연산(燕山) 4년(1498) 무오(戊午) 식년시(式年試) 3등(三等) 20위(30/33)
[생원] 연산(燕山) 1년(1495) 을묘(乙卯) 증광시(增廣試) [생원] 2등(二等) 3위(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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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비중(菲仲), 호는 농암(聾巖)·설빈옹(雪鬢翁). 예안 출신. 아버지는 참찬 이흠(李欽)이다. 홍귀달(洪貴達)의 문인.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예문관검열·춘추관기사관·예문관봉교 등을 거쳐, 1504년(연산군 10) 38세 때 사간원정언이 됐다. 이때에 서연관의 비행을 탄핵했다가 안동에 유배됐으나 중종반정으로 지평에 복직된다.
밀양부사· 안동부사· 충주목사를 지냈고, 1523년(중종 18)에는 성주목사로 선정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이후 병조참지·동부승지·부제학 등을 거쳐 대구부윤· 경주부윤· 경상도관찰사· 형조참판· 호조참판을 지냈다. 1542년(중종 37) 76세 때 지중추부사에 제수됐으나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둔다.
이황(李滉)·황준량(黃俊良) 등과 교유했으며 고향에 돌아와서는 시를 지으며 한가롭게 보냈다.
저서로는 『농암집』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전하여오던 『어부가(漁父歌)』를 장가 9장, 단가 5장으로 고쳐 지은 것과 『효빈가(效嚬歌)』 · 『농암가(聾巖歌)』 · 『생일가(生日歌)』 등의 시조작품 8수가 전한다.
조선시대에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문학사에서 강호시조의 작가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612년(광해군 4) 향현사(鄕賢祠)에 제향됐다가 1700년(숙종 26) 예안의 분강서원(汾江書院)에 제향됐다. 시호는 효절(孝節)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