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군 김균( 鷄林君 金均)의 묘...조선의 개국 공신
계림군 김균은 경주 김씨 계림군파의 파조(派祖)로써 ,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43세손이다.
고려 공민왕 9년(1360)에 성균시에 합격하여 공양왕때 전법판서(典法判書)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한 뒤 태조 이성계를 추대한 공로로 개국공신 3등 15명 중 제 2人으로 정해져 중추원부사, 계림군으로 봉해졌다.
이 묘는 경주 김씨 계림군파의 시조묘(始祖墓)로서 의미가 있다. 김씨는 원래 623本이었으나 현존하는 것은 363本이며, 그 중 인구가 확인 된 것은 112本 정도라고 한다.
모든 김씨는 가락국(駕洛國) 수로왕(首露王)계와 신라 김알지(金閼智)계의 두갈레로 나뉘는데, 그 연원에 대하여 역시 두가지 설로 나뉘어 있다. 첫째는 국내인 출신설이고, 둘째는 중국인 즉, 흉노(匈奴)인 출신설 이다.흉노(匈奴)는 중국 이민족(異民族)의 하나로 몽고평원을 지배하였던 기마민족이다.
국내인 출신설
하늘에서 내려 온 황금알이 동자(童子)로 변해 되었다는 수로왕계는 김해김씨(金海 金氏)가 대표이며, 김해 허씨(許氏)와 인천이씨(仁川 李氏)도 수로왕의 후손들이다.경주김씨(慶州金氏)계의 시조인 김알지는 신라 탈해왕(脫解王)때 경주 시림(始林.鷄林)의 금궤(金机)에서 태어 났다 하여 성을 "김(金)'이라 했다고 전헤 진다.
모두 금궤, 알에서 태어났다는 등 신화적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역사적 실존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김알지(金閼智)는 백제에 멸망 당한 마한(馬韓)의 왕자이고, 김수로는 변한(弁韓) 추장의 하나인 아도간의 아들로 보는 견해이다.
이 중 김알지계는 경주 김씨를 중심으로 광산(光山), 안동(安東),강릉(江陵),의성(義城),선산(善山),청풍(靑風),금녕(金寧),나주(羅州), 전주(全州),풍산(豊山) 등 수십본으로 갈라진다. 이 밖에 안동 권씨,광주 이씨,수성 최씨 등도 김알지係이다.
중국인, 즉 흉노족 출신설
김알지, 김수로 모두 한무제(韓武帝)의 총애를 받은 흉노(匈奴)의 왕족인 김일제(金日啼)의 후손이라는 설이다. 김일제는 흉오王의 태자로서 한나라 무제(武帝)로부터 총애를 받아 투후(투후)라는 관작(官爵)과 함께 "김"이라는 성을 하사받아 세계최초의 김씨가 된다는 것이다. 그 후 정치상황의 변화로 그는 한반도로 도망와서 그 후손들이 각각 김알지, 김수로라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모든 김씨는 흉노족 출신인 셈이다. 실제로 신라 문무왕과 그의 동생 김인문의 비석에는 김일제의 7대 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묘를 중심으로 한 전원주택 마을 계림마을이라고도 하고 원래의 지명을 따라 수레실마을이라고도 한다. 묘 저편에 보이는 전원주택은 탈렌트 백일섭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