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드리 헵번의“파계”...계명은 어떻게 지키는 것인가?
영화 오드리 헵번의 “파계“(“the nun's story”1965년개봉)는 벨기에의 유명한 의사의 딸인 헵번이 삶의 고비를 만나 수녀가 되기를 결심하고 수습수녀부터 시작되는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종신수녀가 되어 유능한 수녀 간호사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하지만 부닥치는 현실과 수녀로서 가져야하는 신앙사이에서 오는 갈등을 견디지 못하여 마침내 파계하고 수녀원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종신수녀로 가는 길은 참으로 험난했습니다.,,,, 복도를 오가는 걸음걸이에서부터 옷 입는 법, 식사, 대화 법 등 행동의 수칙 뿐 만 아니라 미움과 질투, 오만과 자랑, 인간적인 애착이나 애정을 금지하는 계율을 지켜야합니다.
헵번은 우수한 재능을 가진 간호사로서 자질을 겸비하였지만 겸손과 자만 그리고 인간애로 갈등하면서 계명을 완벽하게 지켜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부적당감으로 늘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수녀가 처음 될 때 원장수녀가 한 말이 늘 마음에 남아서 그럽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자기 자신과 주님은 속이지 못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임지가 정해질 때마다 그는 자신의 의지를 주님 앞에 내려놓는 훈련을 하며 순종하려고 필사의 노력을 경주하지만 인간적인 고뇌와 계명사이에서 생겨지는 갈등으로 힘들어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적어도 겉보기에는 자신이 감당해야할 일들을 잘 감당하는 것처럼 보여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습니다.
아프리카 콩고의 선교 현장에서 미신을 믿는 주술사의 영향을 받은 현지인이 수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을 돕는 현지 간호 보조인에게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 살인범을 용서해 준다고 해서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독일 나치의 폭격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녀는 아버지를 가해한 그 무리들을 용서하지 못하여.....마음속 깊은 곳에서 순종하지 못하든 지금까지의 모든 갈등이 중첩되면서 끝내 견디어 내지 못합니다. 아무리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는 자기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고 마침내 파계를 결정하게 됩니다.
계명을 마음으로 따라가지 못하면서 행동으로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건가? 영화를 보고나서 자신에게 물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읽고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유교문화에서 자라난 우리들이 율법이나 계율 계명이라는 단어들에 대하여 어떤 잠재적이지만 고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느냐 부터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삼강오륜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1. 군위신강(임금과 신하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2. 부위자강(어버이와 자식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3. 부위부강(남편과 아내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
오륜
1. 군신유의(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로움이 있어야 함.)
2. 부자유친(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함.)
3. 부부유별(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함.)
4. 장유유서(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함.)
5. 붕우유신(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함.)
소위 삼강오륜은 우리가 지켜야할 기본 도덕법입니다. 지금은 많이 헐거워졌지만 아직도 부모자식간의 도리나 장유유서의 질서는 여전하지요. 대표적으로 노인 폄하 발언을 하면 선거에서 표를 얻지 못하고 동생이 형을 얕보는 일은 지탄을 받게 되어 선후의 구별을 분명히 하게 되는 것.... 등등 ...사회생활에서 규칙을 지켜야하고 그런 행동의 기준이 삼강오륜과 그 하위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지요. 그 예(禮) 라는 것은 유교에서 인간의 도덕성에 근거하는 사회적 질서의 규범과 행동의 표준적 절차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삼강오륜이 예의지국에서 지켜야 될 예(禮)의 표준 계명인 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밖으로 나타나는 예를 지켜 행하는 것에 아주 익숙합니다 ..감히 거부반응을 표출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용보다는 형식적인 절차나 모양에 익숙하게 된 문화 속에 자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리학자 C, G, 융의 설명대로 동방예의지국인 우리한국민의 집단 무의식 속에는 예(禮)(계명)를 지키고 잘 준수하면 도덕적으로 칭송받는 사람이 되고 복 받는 사람이 된다는 가치의식이 깔려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삼강오륜 같은 그 계명들을 잘 준수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잠재의식적인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가진 우리가 성경말씀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겠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15,21)
계명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런 성도를 하나님이 사랑하신다고 하니 계명을 지키라고 교회에서 가르치게 되고 성도들도 당연히 계명을 행동으로 나타내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계명이라면 십계명이 대표적이지요 ....성경책의 앞뒤에 큰 글자로 별도로 인쇄하여 붙여 두고 있습니다. .....우상숭배 절대 안 된다. 그래서 점치는 것이나 죽은 부모에게 절하는 것은 귀신에게 절하는 것이니 안 된다... 주일 성수 칼같이 해야 한다...기도 전도 헌금 하지 않고 복 받을 생각하지 말라 ...동방예의지국에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제대로 예의를 지켜야한다.....이것은 기본이라는 것입니다. 삼강오륜을 지키는 마음으로 자동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 열과 성을 다하게 되고 그러지 못하면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은 내가 지킨 그 계명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 마음대로 하지 말고 예수님 자신이 지킨 그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십계명의 문자적인 조항이 아니고 십계명에 대하여는 다음에 자세히 전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지키셔서 본을 보이신 그대로 지키라는 말씀이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지킨 그 계명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겠지요. ......예수님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율법사의 질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하였습니다. (마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래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예수님이 어떻게 지켜 행하셨는가를 로마서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증하셨는데 확증하신 내용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으심이고 그 죽으심이 계명을 완전히 지키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명은 아버지로부터 받았다고 하십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요한 10;17-18)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지킨 그 계명을 지켜야 되는 것이고 그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같은 죽음으로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그것이 예수님이 지킨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이 사실은 다른 어떤 의의도 달수 없는 명백한 예수님의 말씀이고 선언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어떤 책보다 논리적으로 앞뒤가 완벽하게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모순을 찾아 볼 수 있는 빈틈이 없다는 것입니다.
계명을 문자 그대로 행하고 지켜야 된다면 실제로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고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야 합니까?
여기에서 성경에 번역된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원어적인 의미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번역된 율법이라는 단어와 계명이라는 단어는 그 쓰임에 있어서 상당한 경우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번역되는 것이 타당합니다. 율법이다 계명이다 하는 단어는 법정용어지요....법정용어는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을 하거나 해야 할 행동을 하지 않으면 거기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는 뜻이 함축된 용어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객관적인 행동이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그러나 율법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토라”는 넓게는 성경말씀을 말하고 특별히 구약의 모세오경을 말합니다. 제한적으로 제사법등을 말할 때 절차법으로 통용되기는 합니다.
그리고 계명으로 번역된 헬라어“엔톨레”도 물론 명령 훈령이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훈령이란 것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단어의 구조적인 해석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법으로 번역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되는 것이 더 무난하다는 것입니다. (요14;23 나를 사랑하면 내 말(말씀)을 지키리니)
이것이 왜 중요하냐 하면 율법과 계명이라고 하면 법조문으로 이해할 밖에 없고 법조문으로 알면 문자적으로 한 조항씩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지키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분쟁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 너 이러고도 부모를 공경한다고 할 수 있는가....아들 ; 아버지 지금보다 더 어떻게 공경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래서 부모 공경하는 하위 계명 수백 개를 법조문으로 만들었습니다.. 모든 경우를 대비하여 행동수칙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서 분쟁의 여지를 없애야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수많은 법조문 중에서 상황과 처지에 맞는 조문을 찾아주는 율법사가 따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내용보다는 형식으로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말씀을 행동하는 수칙으로 보는 유대인과 같이 예(禮)를 중시하는 유교권의 우리도 행동수칙으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편하게 느끼는 DNA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계명을 지킨다할 때 지킨다는 헬라어“태래오”는 어떤 행동을 먼저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보존하다 preserve 혹은 지키다 keep입니다. 보존하다 preserve는 물건, 사람, 그리고 충성, 믿음, 사랑, 순결, 같은 도덕적 가치를 마음에 품는 것을 말합니다.
빌 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러므로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은..........말씀을 마음에 품으라 입니다.....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라....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은 그 사건이 내 마음에 품어져서......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 내 마음에 일어나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김지영과 아브라함 편 참조).....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볼품없는 존재인가가 체험이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니면 지금의 자기 존재가 이 세상에서 없어 졌다는 것을 실감을 한 사람은.....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마음에 가득히 품어져서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는 진실한 사랑이 저절로 크게 나타나 개 될 것이고 적게 품어진 사람은 적게 나타 날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입니다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예수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가 아니고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
우리 주님의 사랑이 마음에 충분히 품어지시는 저와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첫댓글 오드리 헵번의 파계 (계명은 어떻게 지키는가?) ..........
계명을 마음으로 따라가지 못하면서 행동으로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건가----.
우리의 畏友` 안효영 목사님의 自問에 小弟도 同參합니다
‘헐리우드 키즈' 인 本人 김종갑은
1960년대 후반, 어느 년도에 ‘파계’를 관람했습니다---듣자하니, 2017년 8월에 EBS의 금요극장에서 ‘파계’를 방영했다고 하네요
60년대, 첫 출시때에 우리가 보고 느낀 것과~ 그로부터, 어마어마한 세월 `50여년이 흐른뒤 2017년에, 우리들의 後生들이 보고 느깐 것은ㅡ 확연히 다를 수가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