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충남 홍성군 자그마한 언덕 위에 위치한 풀무환경농업기술학교 전공부 학생이다.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어 군것질을 잘 하지 않지만 가끔 과일이나 간식거리가 당길 때는 학교 밑의 ‘풀무학교생협’을 이용한다. 맛있는 우리밀 빵과 깜부기면, 요구르트, 식혜, 치즈가 있고,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참기름, 들기름, 벌꿀, 복숭아, 사과, 딸기 등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쾌하고 기분좋은 농사 - 장바구니 따라 생산지까지
사람들이 유기농을 몰러도 너무 몰러
글/사진·여준민
나는 충남 홍성군 자그마한 언덕 위에 위치한 풀무환경농업기술학교 전공부 학생이다.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어 군것질을 잘 하지 않지만 가끔 과일이나 간식거리가 당길 때는 학교 밑의 ‘풀무학교생협’을 이용한다. 맛있는 우리밀 빵과 깜부기면, 요구르트, 식혜, 치즈가 있고,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참기름, 들기름, 벌꿀, 복숭아, 사과, 딸기 등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언젠가 당근을 저울에 달아 우리 선생님 이름이 적힌 포장지에 예쁘게 포장한 적이 있다. 풀무생협에 출하하는 거라 맛있게 먹을 소비자를 생각하며 꽤나 신경 써서 포장을 했다. 그런데 만날 라면이나 과자 포장지에 적힌 노동자 이름을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잘 아는 사람이 1년간 정성껏 땅을 만들고 아이 다루듯 작물을 키웠을 것을 생각하니 보통 감격이 아닌 것이다. 눈물이 찔끔 날 것 같기도 했고 냉장고에서 썩히지 않을 거라는 다짐도 생겼다. 아, 이게 이래서 필요한 거구나, 그때 깨달았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의 얼굴을 아는 것은 기회가 있을 때 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그 일에 함께해야만 작물 하나에 얼마나 손이 가는지, 생산자가 얼마나 땅과 몸 모두를 고민하며 농사짓는지 알 수 있게 되고, 그것을 알아야 유기 재배의 참 뜻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러던 가운데 기회가 생겨, 만나고 싶었던 생산자를 찾아갔다.
마음으로 짓는 농사 “아, 보여유, 보여. 그냥 거기 있어유. 내 그기로 갈게.” 저 멀리 빨간 스쿠터를 휘몰아치며 오시는 분이 손을 흔드신다. 나를 태워준 문찬영 선생님이 그 사이 쓰러져 있는 커다란 ‘송정농원’ 표지판을 세워 큰 돌로 쿵쿵 박고 계신다. 네 꺼 내 꺼가 없다. 선생님에게 마을 일은 모두 자기 일이다. “아유, 그게 왜 자꾸 쓰러지는지 몰러.” 고맙다는 표현을 그렇게 시큰둥하게 툭 지르신다. 선생님도 그 말에는 코대답도 않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딸기 좀 사러 왔어요.” 할 뿐. “딸기 없는디. 따 논게 읍어유. ” 내가 보기에는 2천 평 여섯 동 큰 비닐하우스 안에 길고 넓게 펼쳐진 것이 다 딸기구만, 부러 멀리서 사러온 사람에게 왜 딸기를 안 판다는 걸까? “딸기도 다 따는 때가 있는 법이여. 오늘처럼 더운 한낮에 따면 그 놈들도 뜨거워져서 퍼지거든? 그때는 만지면 뭉개지기 쉽지. 그래서 요즘은 아침 7시부터 아줌마들하고 작업을 시작혀. 게다가 오늘은 토요일이잖어. 주로 풀무 생협에 출하를 하는데, 생협이 주 5일 근무를 하잖어. 그래서 우리도 주 5일 근무여. 일요일에서 목요일까정.” 농장 주인 최순희(57세) 아주머니의 성격이 좀 깐깐한 듯 느껴지기도 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에이, 그래도 우리 학교 선생님이시고 별의별 작물을 다 아시는 분이니까 그냥 조심히 따가라고 하세요. 해 안 되게 잘하실 거예요.”라고 말하자, 못 이기시는 척 “그려, 그럼 이 박스에다 따 가시라구 혀” 하신다.
그런데 힘없이 작업 마루에 올라앉으시는 아주머니 폼이 영 심상치 않다. “에구~”소리도 자주 내신다. “요즘 허리가 안 좋아 서울에 있는 병원에 다녀유. 자꾸 수술하라고 허는디 그런다고 나질 것 겉지두 않구, 게다가 그동안 농사 못 지을 거 생각허니끼 엄두가 안 나네.” 보통 직장인들이라면 병가를 내거나 휴직을 하겠지만, 농부는 때를 놓치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농사란 계획 있게 해야 하고 머리도 써야 하지만, 그만큼 마음을 쓰고, 손과 발도 부지런을 떨어야만 가능하다. 특히 유기재배는 가능한 기계사용을 덜 하고 화학비료를 안 쓰기 때문에 첫 퇴비부터 추비로 쓰이는 액비까지 직접 만들어야 해서 실험정신이 필요하다. 여간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유기농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야 최순희 님은 남편이 다른 작물을 재배하고 있어 여섯 동 하우스 딸기 모를 기르고 수확해 포장하고 출하하는 일까지 온전히 도맡고 있다.
딸기재배는 열네 달 농사라고 한다. 이 개월 동안은 어른 묘를 만들기 위해 별도로 신경 쓰며 키워야 하고, 그 놈들이 새끼(넌너)를 뻗으면 잘라서 또 홀로 설 수 있도록 하고 3월에 어미묘를 정식하는 것이다. 유기농 퇴비를 만들어 밭에 뿌리고 갈고 밭을 만들고 정식을 하고, 보통 꽃대가 4-5개 나올 때까지는 수확이 가능하다고 하니, 그때가 바로 5월 말경이다. 그 후에는 또 퇴비를 만들고 밭을 만들어 9월에 심고 11월부터는 수확이 가능하도록 해야 하니, 단지 짧은 한 철 따고 마는 게 아니라 한시도 손을 뗄 수 없는 농사인 것이다. “한 15년 됐나? 20년 됐나? 에이 모르겄네. 암튼 내가 시작한 건 아니고 우리 아저씨가 정농회 초창기 멤버가 되면서 시작한 거여. 처음에는 신났지. 돈이 돼서가 아니라 농약 냄새 안 맡고 좋은 거 한다는 맘이 있으니께, 몸이 힘들고 농사가 안 돼도 힘든 줄 몰렀지.” 헌데, 근 몇 년 동안은 정말 힘이 안 나신단다. 당신 몸이 아픈 탓이라 생각했지만, 실은 이 일, 유기재배를 계속해야 하나, 회의가 든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우리 생산자가 하나부터 열까지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몰러. 아 글씨, 뭐, 작은 티만 있어도 바로 전화해서 항의허고 중간에 있는 생협에서도 물어샀고 허는디, 마음이 상허제. 얼마 전에도 하얀 가루가 묻었다고 곰팡이 아니냐고 전화가 왔는디, 유기 재배로 허면 이런저런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왜 감안해주지 못하는겨.” 크고 잘생기고 반질반질한 놈들만 바라는 소비자의 마음과 태도가 영 불편하셨던 모양이다. “어떨 땐 다 그만 두고 싶어져. 옆집에서들 뭐라 하는 줄 알어? 왜 그 고생을 하고 있냐는 거여. 그냥 화학비료 치고 편하게 살지, 하면서” 그도 그럴 것이 생협에 전량 수매가 안 돼 일반 도매상인을 통해 출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때는 값도 똑같이 책정된다. 손해를 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넘기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 시장에 나가면 유기농인지 농약 덩어리인지를 따지지 않고 값을 매기고 똑같이 취급당하고, 아는 사람들은 저마다 의미는 둘째 치고 그렇게 고생하면서 할 까닭이 있느냐고 자꾸 핀잔을 주는 것이다. 그때마다 마음이 아팠는데, 이제는 갈등마저 생긴다. 딸기 농사를 짓던 첫해에는 병충해 때문에 별다른 방도 없이 수확도 하지 못하고 땅을 갈아엎었어도 신나게 할 수 있었다. 이미 각오를 하고 시작한 것이기에 첫 마음은 그랬단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신나고 확신이 생기고 편안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이기적인 모습만 내비치는 도시 소비자들에게 서운한 감정이 생기는 것을 넘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하니, 상처를 단단히 받으신 모양이다. “생협이나 일반 소비자들이 몰러도 너무 몰러. 얼매나 힘들고 어려운 과정인지 헤아려주지 않고 잘못된 것만 타박을 허지. 처음에는 서운혔는디 이제는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럽기까정 혀.” 힘든다고, 하지만 손자들 생각하면 다시 관행농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큰 아들이 사과과수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철저히 무농약으로 시작할 것이라며, 그래도 이 땅의 아이들과 땅을 생각하는 최순희 님.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오기 전 바로 딴 먹음직스런 딸기 하나를 입에 넣으며 단 한마디밖에 건네지 못했다. “아주머니, 딸기 정말 맛있어요.” “그려, 그럼 됐어. 어여 가봐”
여준민 님은 월간 함께걸음에서 기자로 있다가,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에서 탈시설운동을 했다. 지금은 휴식 중이며 지난 해 풀무학교 전공부에 입학했다. 몸의 기억을 믿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땅을 일구고 소농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조금씩 확신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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