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사촌인 성녀 엘리사벳(Elisabeth)은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 성 즈카르야(Zacharias)의 아내이자 구세주의 오심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Joannes Baptistae, 6월 24일)의 어머니이다. 루카 복음서 1장에 따르면, 성녀 엘리사벳은 사제 아론(Aaron)의 자손으로 남편과 함께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었지만 나이가 들도록 아이가 없었다. 그녀가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을 뿐 아니라 부부가 이미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성 즈카르야는 자신의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주님의 성소에 분향하러 들어갔다가 주님의 천사를 만났다. 주님의 천사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성 즈카르야에게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며 자신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예고하러 파견된 가브리엘(Gabriel, 9월 29일) 천사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나이가 많았던 그는 이 사실을 의심함으로써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말문이 막혀 말을 하지 못했다.
성녀 엘리사벳은 동정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들었을 때 이미 임신한 지 여섯 달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표징이 되어 마리아의 응답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방문을 받았을 때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2-45) 이렇듯 성녀 엘리사벳은 성모 마리아와 함께 루카 복음에서 하느님의 구원역사를 여는 주도적인 인물로 전해지고 있다.
성녀 엘리사벳이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자 이웃과 친척들은 모두 기뻐하며 아기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했다. 그때 성녀 엘리사벳은 아이 이름을 요한이라 해야 한다고 했다. 의아해하는 이들에게 성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에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고, 그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했다. 성령으로 가득 찬 그는 이렇게 예언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카 1,68-79) ‘즈카르야의 노래’(Benedictus)는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 루카 1,46-55) · ‘시메온의 노래’(Nunc Dimittis, 루카 2,29-32)와 함께 루카 복음서에서 대표적으로 아름다운 하느님 찬가이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매일 시간 전례(성무일도) 기도를 바칠 때 아침기도에서 ‘즈카르야의 노래’를, 저녁기도에서 ‘마리아의 노래’를, 그리고 끝기도에서 ‘시메온의 노래’를 바친다.
옛 “로마 순교록”은 11월 5일 목록에서 사제이자 예언자이며 성 요한 세례자의 아버지인 성 즈카르야와 선구자의 어머니인 성녀 엘리사벳의 기념일을 기록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23일로 기념일을 옮기고, 루카 복음 1장이 전해준 주님의 선구자인 성 요한 세례자 부모의 이야기를 간단히 설명하였다. 정교회에서는 이들 부부의 축일을 9월 5일 또는 6월 24일에 기념하고 있다.♧
굿뉴스에서 따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