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浮石寺]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
개설
부석사(浮石寺)는 부석사 극락전(浮石寺極樂殿)에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석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浮石寺極樂殿木造阿彌陀如來坐像)이 있었던 고려 시대의 사찰이다. 돌이 떠 있다는 ‘부석(浮石)’이라는 절 이름은 마치 서해 바다에 떠 있는 절이라는 신비감을 주고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전설에 의하면 통일 신라 시대 승려 의상(義湘)[625~702]이 677년(문무왕 17)에 절을 세웠다거나, 또는 고려 후기 유금헌이 머물던 자리에 승려 책감이 절을 세웠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다. 의상의 창건설은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榮州 浮石寺)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데, 서해를 통한 중국과의 빈번한 교류에 의해 생겨난 창건설이라고 생각된다. 1330년(충숙왕 17)에 부석사에서 조성된 금동관음보살상이 일본 쓰시마 섬[對馬島, 대마도] 소강이라는 포구의 작은 마을에 있는 관음사에 봉안되어 있는데, 금동관음보살상에서 복장 유물이 발견되었다. 조선 초기 무학(無學)[1327~1405]이 다시 지었다는 것을 1530년(중종 25)에 찬술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여현(韓汝賢)이 1619년(광해군 11)에 쓴 『호산록(湖山錄)』에 따르면, 부석사는 앞에 큰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고 하였다. 근대에 승려 경허[1849~1912]와 만공[1871~1946]이 머물면서 선풍을 진작시켰다고 한다. 1995년 부석사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였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부석사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부석사의 건물로는 부석사 극락전, 부석사 안양루(浮石寺安養樓), 심검당, 요사채[목룡장], 산신각, 범종각과 만공토굴, 부석바위 등이 있다. 부석사 극락전에는 조선 후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석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었으나 1980년 도난당하였고, 마곡사에서 이전 봉안한 1867년(고종 4) 제작의 「부석사 극락전 아미타후불탱(浮石寺極樂殿阿彌陀後佛幀)」이 있다.
1669년(현종 10)에 조성된 부석사 극락전의 범종은 현재 수덕사(修德寺) 성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부석사에는 1689년(숙종 15) 제작된 용봉사 아미타불좌상을 봉안하여 놓았다. ‘부석사’ 편액은 만공이 썼고, ‘심검당’ 편액은 경허가 썼다고 한다. 부석사 안양루는 1층 건물로 사람이 다니는 누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안에는 불좌상과 열반상 그리고 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으며, 산신각에는 ‘선묘각’, ‘산신각’, ‘용왕각’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만공토굴은 만공이 수도한 토굴이라고 한다. 부석사 극락전 옆에는 ‘부석’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는 부석바위가 있다. 부석사 극락전을 중심으로 목룡장과 심검당을 잇는 모습은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래서 약수를 우유 약수라고 하고, 부석사 극락전 옆의 큰 바위는 소뿔 형상이라 한다. 개울 아래 소가 마실 물이 흐르는 여물통이 있는데, 이 여물통에 물이 계속 넘치면 음식이 풍족해진다고 한다. 현재 부석사에서는 템플스테이와 생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산시의 서쪽인 부석면 취평리 도비산에 위치하며, 전면에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의의와 평가
서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도비산의 부석사는 바닷길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진 절로, 부석 즉 떠 있는 돌이란 이미지는 영주 부석사에서 가져온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호산록(湖山錄)』
『서산시지』(서산시지편찬위원회, 1998)
전통사찰관광종합정보(http://www.koreatemple.net/)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2023-09-12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