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信仰)이란 말은 믿고 앙망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디까지 믿고 어디서부터 앙망을 하는지 알고 있는지 문제가 됩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설명하면서 요엘의 예언을 되새기고 다윗의 믿음을
모델로 제시하면서 예수를 믿으라 또는 그의 피를 믿으라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하지 않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세례(침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선포했습니다(행2:38) 이 원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까지든 유효합니다. 그러면 다윗처럼 보좌에 앉으신 주를
항상 앞에 모시므로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고 강력하게 증거합니다.
그리하면 이 패역한 세대에서도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합니다(행2:40)
그 당시 패역한 세대는 바로 유대교이지요. 이 시대의 패역한 세대는 어딥니까?
신앙은 원리가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십니다. 그 의에 성령이 임하셔서 진리를 알게 하시므로 주를 앙망하게 됩니다.
만일 신(信)과 앙(仰)이 융합이 되지 않으면 들은 말씀이 화합(결부)이 되지 않습니다(히4:2)
무슨 말이냐 하면 믿음이 앙망에 의해 실상이 된다는 말입니다(히11:1)
환상인지 꿈인지 보고 들었다며 그게 실상의 말씀이라고 떠드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잠꼬대 같은 소리밖에 아닙니다. 전에 토론인가 하는 걸 보니
나는 봤는데 당신들은 봤소 하고 들이대니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더라고요.
믿음과 앙망의 원리를 모르고 강해설교니 QT니 하면서 자신에게 감동으로 다가오는
말씀을 꽃다발로 엮어 재미있게 풀어내는 토크쇼를 하는 것이 바로 패역한 세대입니다.
롬12:3-13절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을 위한 교훈입니다.
롬1-8장까지 이루어진 사람들은 이 말씀대로 행하기를 위해 마음을 먹으면
그렇게 될 수 있는 능력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에 의한 행함의 원리입니다. 믿음이 살아 있어 의가 나타나면
그 의를 따라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 믿음의 분량이나 은사를 따라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행함의 수고를 하게 됩니다(골1:29)
이와 같은 신앙의 원리를 좇지 않으면 성경의 토크쇼를 즐기는 장난생활이 됩니다.
Q. 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십니까?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
A. 문장 속에 있는 명령어를 주제로 잡는 것이 좋습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이 거룩한 산제사의 원리입니다.
‘너희 중 각 사람’은 너희 안에 있는 각 사람 곧 너희들 안에 속한
자들이란 의미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의 총칭입니다
구원은 2인칭까지이기 때문에 그 호칭을 들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 선택이 된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껄끄러우면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쟤들은 안 되나요? 하고 묻습니다. 유다처럼...(요14:22)
이와 같은 사람은 자신이 안 된 것을 다른 이들을 이용해서 따지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너희’하고 나올 때에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려야 합니다.
‘저희’하고 3인칭으로 말씀하시는 속에서 하나님의 불공평에 대해서
항변하고 있으면 이거 보통일이 아닙니다. 성령 받지 못한 제자들과 같은 급입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은 쉽게 말해서 60점짜리가
80점 먹으려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습니다. 그 믿음의 분량을 따라 지혜롭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았으면 다섯, 2달란트는 둘, 하나 받았으면 하나만 남기면 100점입니다.
믿음의 분량이라고 말씀하심은 그 양이 각각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이 다르고 은사가 다릅니다.
누가 더 낫다 못하다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덕을 세우기 위해 각각 다른 믿음의 분량과 은사가 주어집니다.
Q. 왜 한 몸에 붙은 지체의식을 가져야 하는가요?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4-5)
A. 몸에 있는 지체의 경계를 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손이 발의 역할을 할 수 없고 발이 손의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지체는 한 몸에 붙어 있지만 다른 지체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지체가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지체의 우열이 아니라 기능과 역할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증거는 지체의식입니다.
샴쌍둥이가 둘인지 하나인지 머리를 때려봐서 같이 아프면 하나고
통증을 함께 느끼지 않으면 둘이라 분리 수술을 하게 되는 이칩니다.
Q. 은혜를 따라 받은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요?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 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6-8)
A. 은사를 가졌다 할지라도 주의 것으로 알고 섬겨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것은 내 것이지만 주의 것이며 또한 내 것입니다.
예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구원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루어져야만 구원이며 그 구원 안에서
반드시 진보가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이 예언이 됩니다.
그러나 남의 것을 커닝하여 차용해서 함부로 떠들면 안 됩니다.
자신에게 적용된 말씀에 대한 체험을 따라 증거를 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이 완성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선지자는 없습니다.
다만 주의 영으로 주의 말씀을 대언하는 증인들은 온 땅에 가득합니다.
자신의 믿음의 분수를 벗어나서 남의 것을 간접 체험한 다음에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듯 하는 자세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주 예수그리스도를 제대로 받은 사람 곧 그 분을 만난
사람들은 받은 믿음의 분량과 자신의 은사가 뚜렷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그 한계를 벗어난 일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Q. 사랑 안에는 왜 거짓이 없나요?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12:9)
A. 사랑하면서 거짓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한다면서 남의 이야기를 편집해서 토크쇼를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이 자신에게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겁니다.
자신이 심판 아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외식으로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에 속하라 선과 연합이 되어라 말합니다.
아예 선에다가 자신을 아교로 붙여버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여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0-11)
‘열심을 품고’는 성령 안에서 있으면 열심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은 기쁘다 미쁘다 바쁘다 예쁘다 4쁘라는 말을 하잖아요.
열심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사9:7) 그리스도인이 열정이 없다면 문제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람은 항상 바쁩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바쁩니다.
일복이라는 말이 있듯 할 일이 많은 사람은 그 자체가 복입니다.
Q.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기 위한 자세는 무엇인가요?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2-13)
A. 항상 살아 있는 자로서 자신의 영을 활성화 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죄에 대해 죽은 자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자로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를 것을 즐거워하며
항상 믿음을 기초로 주를 앙망하며 그 보좌 앞에 나아가는 기도를 힘쓰고
나누어 주는 일에 손이 짧아지지 않도록 해야 하며 특별히 손 대접을
잘 해야죠. 그 당시 나그네는 복음을 전파하는 손님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에 상응하는 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천사를 영접하고
대접하므로 이삭의 수태고지를 받듯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손 대접을
할 만한 복을 받았기에 남에게 나누어 주는 대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은 이기적이지만 의인은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첫댓글 할렐루야! 아멘!
주께서 영광을 받으소서! 알렐루야!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