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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하이성(靑海省)의 티베트인
화르던 돈릅
티베트사람은 유목민으로서 옛날에는 토번(吐蕃), 지금은 중국에서 장족(藏族)으로 불리고 있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태양과 제일 가까운, 평균 해발이 3500m-5000m 되는 티베트고원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기후는 대체적으로 건조하고 습도가 낮다. 연 강수량은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적어진다. 기온의 일교차는 보통 18도 정도이고 또 고도가 높아 평균기온도 낮다. 고원기후의 특징은 지대가 높아서 공기가 희박하며 수분함량이 적으며 건조하고 일조시간이 긴 것이다. 또한 심한 일교차 때문에, 특히 여름철에는 하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정도이다. 그리하여 여기서는 "한여름에 저녁이면 난로를 마주앉아 수박을 먹는다"는 재미있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낮과 밤의 온도차이가 심하다.
칭하이성성은 중국의 서북부에 위치하여 있고 전체 면적은 72만 평방 킬로미터이며 중국에서 인구밀도가 제일 낮은 省이다. 성 정부소재지는 씨닝. 그리고 그 주위로 하이뚱(海東)지역와 여섯 개의 티베트자치주로 되어 있다. 1996년 중국의 공식적인 인구조사보고에 따르면 칭하이성성에 거주하는 전체 인구는 488만, 그중 티베트사람은 102만으로서 전체 소수민족인구의 48.8%를 차지하고 전체 칭하이성 인구의 21%를 차지한다.
티베트인의 기원
티베트사람의 起源에 대해서는 관세음보살의 비력(悲力)이 신비로운 원숭이로 化하여 나찰녀(羅刹女)와 합하여 여섯 아들을 낳았는데 그 후대가 티베트사람이라는 전설로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아직도 학자들마다 서로 의견을 같이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심하다.
기재(記載)에 따르면 중국의 진(秦)나라, 한(漢)나라 때부터 칭하이성 지역에서 강인(羌人)이 살았었다는 자료들이 남아있고 그이후의 시대에서는 선비인(鮮卑人), 토번인(吐蕃人), 한인(漢人)들이 칭하이성에서 더불어 살았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이런 것을 미루어 볼 때 칭하이성의 티베트사람은 칭하이성의 토착민과 강인, 선비인, 토번인, 한인 등 여러 민족이 오랜 세월을 더불어 살아오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쓰고 있는 언어는 시노티베트어족의 티베트미안마어군에 속하는 티베트어이고 문자는 4개의 모음과 30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진 통일적인 병음문자이다. 지역마다 방언을 사용하는 것이 틀림에 따라 암도(安多)방언지역, 캄바(康巴)방언지역, 라사(西藏)방언지역, 등 3대 방언지역으로 나뉘는데 칭하이호수(靑海湖)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 거주하는 티베트사람, 즉 하이뚱지역(海東地區)과 하이시(海西)몽골족, 티베트족자치주, 그리고 하이난(海南)티베트족자치주와 하이베이(海北)티베트족자치주, 및 꿔뤄(果洛)티베트족자치주와 황난(黃南)티베트족자치주의 티베트사람은 암도방언을, 위쑤(玉樹)티베트족자치주의 玉樹, 多, 囊謙 등 세 개 현(縣)의 티베트사람은 캄바방언을 사용하고 서장에서는 창뚜(昌都)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들에서는 라사방언을 사용하고 있다. 티베트사람들이 종사하고있는 직업은 주로 농업과 목축업이고 그 외에도 약간의 상업과 수공업, 그리고 약초채집과 수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농업기술의 진보로 전보다 많은 종류의 곡물과 야채가 재배되고 있기는 하지만 천연목장이 전체면적의 60~70%를 차지하는 이 땅에서 산업의 주축은 아직도 목축업으로서 목축업수입은 공업과 농업을 포함한 전체수입의 절반이상을 차지한다.
1. 목축업
[가축의 종류]
목축업은 티베트의 기간산업으로서 키우는 가축은 주로 티베트면양, 야크, 그리고 말이 있으며 그 외에 황소, 산양, 노새와 나귀, 등이 있다.
티베트면양은 티베트고원(靑藏高原)에만 서식하는 토종 양으로서 털이 굵고 산에 잘 오르며 쉽게 무리를 짓고 거친 방목에도 잘 견디며 멀리까지 방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채식하는 능력이 강하다. 티베트면양은 속도가 빠르며 각종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며 육질이 연할 뿐만 아니라 잡 냄새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칭하이성 전역에서 많이 키우고있다.
야크는 티베트사람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길들여온 야생 야크로서 칭하이성의 玉樹서북부에서는 아직도 야생 야크를 찾아 볼 수 있다. 칭하이성에서도 玉樹에 야크가 많은데 "세계에서 야크가 제일 많은 나라가 중국이고 중국에서는 청하이성, 청하이성에서는 玉樹."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玉樹에는 야크가 많이 있다. 야크는 야성적이고 성격이 강한 편이며 쉽게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암컷과 어린것에 대한 보호의식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몸체가 건장하고 사지가 짧고 키는 작지만 무거운 것을 잘 나르며 산에 잘 오르는데 아무리 험한 산지일지라도 평지 밟듯 함으로 "高原의 방주"로 불린다.
칭하이성에는 또 말이 많은데, 특히 玉樹의 말은 청하이호수(靑海湖)를 중심으로 있는 암도 티베트사람의 말과는 달리 산길을 잘 달리는 특징이 있다. 티베트면양, 야크, 그리고 말은 티베트사람의 세 가지 보배로서 아직도 목축업에 종사하는 티베트사람의 의식주행(衣食住行)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방목]
계절의 변화에 따른 여름목장과 겨울목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에는 해마다 물과 풀을 따라 이동했지만 지금은 농촌에서 밭을 떼서 나누듯 목축지도 나누었는바, 이것이 목축민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왜냐 하면 시간이 갈수록, 식구가 들어갈수록 목축지가 자꾸 밭 전(田)자 모양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이것은 파도가 밀려오듯 양떼가 한번 지나고 일정한 시간동안 풀이 자라는 기회를 없애기 때문이다. 목축민은 한해동안 크게 두 번 이동하는데 두 번의 이동 속에는 여러 번의 작은 이동이 포함된다. 이것은 주로 겨울철에 큰 눈이 산을 덮어 풀이 말랐고 얼었으므로 가축들의 안전한 월동(越冬)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좋은 목장을 택해서 움직여야하기 때문이다.
방목의 관리는 허술한데 일년동안 계속하여 천연목장에서 방목하며 울타리나 사료보충 같은 것은 필요 없이 밖에서 먹이고 자게 한다. 목축민들은 목초를 재배하거나 사료를 저장하여 월동하는 지식이나 습관 같은 것이 없다. 면양은 연령, 성별, 경제적인 용도 등에 따라 구분하여 키우는 것이 아니라 마구 섞어서 키운다. 그러나 어린 야크에 한해서만은 어떤 목축민들은 따로 무리를 나누어 자기네가 사는 텐트근처에서 방목한다. 대개는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5월까지 겨울철목장에서 방목하고 6월 하순부터는 여름철목장으로 이동한다. 여름철목장은 보통 지대가 높고 먼 곳을 택하는데 비해, 겨울철목장은 양지바른 쪽을 많이 택한다. 계절목장은 엄격한 구분이 되어있어 목장에 대한 관리도 엄하며 절대로 두 목장에서 동시에 방목하지 않는다. 목축민들에게는 "여름에는 겨울용 풀을 먹이지 않고 겨울에는 여름용 풀을 먹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방목하는 사람은 천천히, 그리고 가축을 흩어서 방목하는 것이 기본원칙이다. 야크나 양의 털 색깔이나 체형이 다름에 따라 다 제각기 이름이 있는데 한 마리라도 없어지면 방목하는 사람은 금방 알아낼 수 있다.
[가축의 교배]
야크가 교배하는 계절은 매년 8~10월 사이이다. 그때가 되면 목축민은 암컷의 머리와 앞다리를 나무기둥에 매놓고 수컷을 끌고 와서 교배를 시키는데 방법이 원시적이어서 배태율이 낮다. 교배가 끝나면 목축민은 암컷의 등에 똥을 잔뜩 칠해서 표시도 하는데 수컷이 다시 쫓지 못하게 하는 작용도 한다. 면양의 교배는 대개 9~10월 사이에 이루어지는데 그때를 제외하고는 수양의 하복부를 두꺼운 천으로 가려서 교배하는 것을 막으며 교배시킬 때면 가리운 천을 벗겨버린다.
목축민은 가축의 어린것에 대해 각별히 아끼고 사랑하는데 송아지가 태어나면 송아지 몸에 묻은 어미의 점액을 말끔히 닦은 다음, 우유를 먹인다. 털이 마르고 스스로 설 때에 어미한테 끌고 가서 어미젖을 먹게 한다. 뿐만 아니라 송아지가 어미젖을 잘 먹게 하려고 정해진 시간에만 젖을 짜며 어미 소에게 신선한 풀이나 고기국물, 산양고기를 먹여 몸을 보충하게 한다. 송아지가 한살 되면 입에 세모로 된 나무환(環)을 씌우는 방법으로 차츰 젖을 떼게 하면서 어미 소는 계속 젖을 내게 한다. 겨울이면 바람을 막고 설사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소똥을 말려서 송아지울타리를 만들어 줄뿐만 아니라 복부에 보온용 가죽을 둘러주며 어떤 목축민은 아예 집이나 텐트에서 어린 가축과 같이 살기도 한다. 양이 새끼를 나으면 더욱 극진한데 체질이 약한 것에 한해서는 가죽부대에 우유를 넣어서 전문으로 먹이고 겨울철에 방목하는 도중에 새끼를 낳으면 자기의 품속에 넣고 체온으로 따스하게 해주기도 한다.
[축산품]
주로는 소고기와 양고기, 그리고 가죽과 버터, 요구르트 등이다. 생산도구는 원시적이고 방법도 간단하다.
[젖 짜기]
젖 짜는 기계가 없이 여자들이 손으로 짜는데(남자는 이 일을 할 수 없다.) 젖을 내는 야크는 각기 아침과 저녁에 한 번씩 짠다. 젖을 짜기 전에 먼저 젖을 살살 주물러서 야크가 놀라지 않게 해야한다. 젖을 짤 때, 세 개의 유두에서만 젖을 짜고 하나는 남겨서 송아지가 먹게 한다. 야크는 젖을 많이 내지 못하지만 영양성분은 고른 편이다. 보통 야크가 젖을 내는 시기는 150일 좌우이다.
[생산도구]
목축업의 생산도구는 간단한바, 주로 포승(捕繩), 나무통, 가죽부대, 밀대, 풀무, 등이 있다.
포승은 소나 양을 방목할 때 많이 쓴다. 길이는 1.5m정도이고 양털을 꼬아서 만들었다. 채찍으로도 쓰인다.
밀대는 양가죽을 이길 때 쓰는 길이가 한자쯤 되는 이가 무딘 목기이다. 잘 이겨놓은 양가죽 한쪽 끝은 나무기둥에 고정하고 한 손에 밀대를 가지고 아래위로 밀면서 가죽을 이긴다. 나무통은 버터를 만들 때 쓰고 가죽부대와 풀무는 불을 피울 때 쓰인다.
[도살]
소나 양을 잡을 때 사지를 꽁꽁 묶어놓고 입과 코를 막아 질식시켜 잡는데, 농민과 목축민이 섞여 사는 지역에는 직업백정이 따로 있다.
[수양(壽羊)]
보통 집의 노인들이 장수하시기를 바라는 목적에서, 혹은 집에 있는 어떤 환자의 생명이 연장되기를 바라는 목적으로 점을 쳐서 고르거나 노인이 직접 나서서 마음대로 한 마리 혹은 여러 마리의 양을 골라, 그 위에 깨끗한 물을 뿌려놓고 양의 귀에 빨간 천으로 표시를 해놓아 수양으로 삼는데, 사원에 보내거나 집에서 키우면서 스스로 수명을 다할 때까지 절대 잡지 않는다.
2. 수공업
[가내의 수공업]
티베트사람의 수공업은 농업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수공업공장이나 이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극히 적고 농사나 목축업의 여가를 이용해서 집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주로 방직공, 목공, 철공, 은장이, 석공, 제지공, 조각공, 토기장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방직업]
텐트를 엮어서 만드는 일을 남자가 하고 그 이외 나머지 방직업은 주로 여자들이 한다. 공구는 간단한 나무기계뿐이다.
[재봉업]
주로 남자가 하는데 각종 옷, 신발, 텐트를 만드는 것이 포함된다. 도구는 가위, 바늘, 나무로 만든 자, 등인데 바느질이 괜찮은 티베트 옷 한 벌을 만드는데 보통 3~5일 걸리며 늙은 양가죽으로 잠바 하나를 만드는데는 하루정도면 끝난다. 손재주가 뛰어난 재봉사는 전문 비싼 티베트 옷만 만들거나 화려한 텐트만 만들어 팔기도 한다.
[은장이]
은장이는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일상 그릇으로부터 시작하여 장식품, 그리고 종교행사에 쓰이는 법기(法器)나 나팔 같은 것까지 못 만드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 불교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들은 용이나 봉황이나 사자, 괴물 같은 장식을 많이 쓴다.
[철공]
농기구를 만들고 수리하거나 칼을 만든다. 도구는 크고 작은 망치, 집게, 풀무, 등인데 목탄을 주 연료로 쓴다. 어떤 철공은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칼은 만들지 않고 전문적으로 사원과 농민, 목축민을 위하여 가마 같은 것만 만들었다.
[목공]
주로 집을 짓거나 수리하거나 또는 가구나 천 짜는 기계, 그리고 나무그릇 같은 것을 만든다. 일반목공은 쉬운 일만 하지만 기술이 높은 목공은 잘사는 집이나 사원을 위하여 불탑을 만들거나 불상을 만드는, 등 정교하고 세심한 일을 한다.
[조각공]
주로 사원 같은 곳에서 흙으로 불상이나 가면을 만들거나 버터로 꽃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그림을 잘 그릴뿐만 아니라 구상도 기묘하여 만든 것을 진짜로 착각할 정도로 기가 막히게 잘 만들어낸다.
[석공]
주로 불교에 관련된 물품을 만드는 것인데 칭하이성 지역의 많은 사원에서 볼 수 있다. 어떤 석공들은 불상을 조각하기도 하며 이것을 평생의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쓴다. 또 어떤 독실한 불교신자들은(중을 포함하여) 덕을 쌓고 불교를 널리 전하기 위하여 전문 길목에 있는 바위나 돌산에 불교의 경문을 쓰면서 일생을 보내기도 한다.
[토기장이]
계절성격을 많이 띤 생산으로서 농사일이 한가할 때 만들어서 장 보는 날이면 갖고 나가서 팔기도 했는데 옛날에는 구리로 만든 것이 비싸서 보통은 흙을 구워서 만든 것을 많이 썼다고 한다.
[제지공]
지금은 없지만 이전에 어떤 농민들은 한가할 때 제지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일부 전업제지업자들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사원에서 경문을 인쇄하거나 정부일군들한테 종이를 공급했다고 한다. 옛날에 위수의 낭쳰(囊謙)에서는 종이 한 장과 0.4 kg의 쌀을 바꿔먹을 수 있는 정도였다.
3. 농업
[특점]
농사를 지은 역사는 오래되지만 옛날에는 한해씩 건너 농사해왔기 때문에 생산량이 많지 못하다.
[품종]
지금은 여러 가지를 심지만 이전에는 칭커(靑 )라고 불리는 한가지 곡물밖에 심지 않았다. 색깔이 틀림에 따라 크게 白靑 , 黑靑 , 藍靑 , 紫靑 , 등 네 가지로 나뉘는데 사람들은 보통 白靑 를 즐겨 먹는다.
[농사짓기]
파종은 대체로 4월 하순이나 5월초에 시작한다. 이전에는 라마사원에서 점을 쳐서 얻어낸 시일을 기준으로 했다. 규모가 비교적 큰 사원들에서는 아예 일년행사를 미리 짜서 붙어놓으면 농민들은 그 일정대로 따라했다고 한다. 때로는 농사일을 오래 해온 사람의 경험을 따르기도 했는데, 그 방법은 강변의 꽃이 필 때나 나무이파리가 돋아날 때, 아니면 태양이 집안을 비추는 것을 벽에 표시해놓는데 그것이 변함에 따르는, 등 방법을 취하는데 이러한 비과학적인 방법은 일년농사를 망칠 때가 더 많았다. 밭갈이는 남자들이 한다. 두 마리의 소로 밭을 가는데 멍에를 소뿔에 매는데, 티베트사람은 소의 힘이 뿔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파종할 때면 밭에 나가는 사람은 누구나 새 옷을 입고 나가야한다. 김매는 습관이 없고 그저 대개 눈에 보이는 큰 풀만 뽑아버린다. 하여"돌무더기 위에 씨앗을 뿌리고 잡초 밭에서 칭커(靑 )를 거두어들인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그들의 농사는 엉성하다.
[농사에서의 금기]
파종기로부터 시작하여 추수 할 때까지 그들은 천지수토(天地水土)에 있는 4신(神)을 노엽게 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한다. 만약 天神을 노엽게 하면 우박이 내리고 地神을 노엽게 하면 서리를 맞게되고 水神을 노엽게 하면 가뭄을 당하고 土地神을 노엽게 하면 병충해를 입게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여 神을 노엽게 하지 않으려고 기도하고 라마승을 모셔다가 불경을 읽게 하는 방법으로 풍년을 기원한다. 농사철에는 부엌이나 음식을 절대로 가로타고 건너서는 안되며 불길한 말을 해서도 안 된다.
4. 부수업
약재 캐기와 사냥이 있는데 약재로는 주로 동충하초(冬 夏草)가 있다. 먼 곳으로 사냥을 나갈 때는 여러 사람이 함께 나가고 가까운 곳에서 사냥할 때에는 보통 혼자 한다. 수렵대상은 사향노루나 여우, 황양, 들소 같은 것이며 이런 사냥을 통해 사향이나 가죽, 고기를 얻는다. 때로는 함정을 파서 잡기도 한다. 사냥에 일정한 위험이 따르고 또한 꼭 잡는다는 아무런 보장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사냥을 나가기 전에 제사를 드리면서 산신령께서 사냥감을 보내 주시고 평안히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염불한다. 사냥을 나가지 전에 여자가 총기를 만져서는 절대 안되며 여자가 잡은 짐승은 독이 있는 것으로 취급당하여 먹어서는 안 된다. 사냥할 때 꼭 수컷을 잡고 암컷은 잡지 않는다.
생활습관
1. 음식
[주식]
짬바라고 불리는 쌀가루와 소, 양고기를 주식으로 하는데, 지금은 먹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전에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닭이나 오리고기, 그리고 물고기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농민은 하루에 보통 세끼씩 먹는데 아침과 점심에는 차를 마시면서 중국식 만두와 야채 같은 것을 볶아먹으며 저녁에는 밀가루국수 같은 면식을 먹는다. 목축민의 음료는 주로 차와 우유인데 목축지역에서 스스로 가공하여 만든 버터차도 즐겨 마신다. 목축민들은 보통 하루에 다섯 번 정도 식사하는데 아침 6시경에는 작은 그릇에 약간의 짬바와 버터, 쳐라를 넣고 거기에 차를 붓는다. 차를 마시고 나서는 손가락으로 그릇의 짬바를 찍어먹는데 이것이 아침 첫 식사이다. 10시경에는 양고기 같은 고기붙이와 곁들어 짬바와 버터차를 먹고 오후 3~4시쯤에 먹는 것은 점심식사와 먹는 것과 비슷하다. 저녁 7~8시에는 양고기를 데쳐서 버터차와 같이 먹고 밤참은 열한시쯤에 그 양고기국물에 국수를 넣고 끓여서 먹는다. 목축지역에 나가있는 몇 개월 동안은 야채를 거의 먹을 수 없다. 많이는 양을 잡아서 먹는데 식구가 네 명인 집에서 보통 양 한 마리를 잡아서는 텐트 안에 걸어놓고 먹을 때마다 저며내어 데쳐먹는데 열흘이면 다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땔감을 구하기 어려운 목축지역에서 티베트사람들은 불에 익혀먹는 것보다는 그들의 생활습관에 맞는 나름대로의 간편한 식생활을 보존해왔는바; 때로는 아예 말린 생고기를 갖고 다니면서 차고 다니는 티베트칼(藏刀)을 이용해 베어먹기도 한다. 그 외에 우유를 가공하여 만든 요구르트 같은 것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일년 내내 계속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짬바]
靑 는 칭하이성의 특산품으로 짬바를 만드는 방법은 먼저 큰 가마에 넣고 타지 않게 모래를 섞어 靑 를 볶는데 볶는 작업이 끝난 다음, 채로 쳐서 모래와 靑 를 분리시킨다. 그리고 나서는 靑 에 뭍은 흙먼지 등을 깨끗이 닦아서 햇볕에 바싹 말려서 가루를 내는 것이다.
[버터]
소나 양젖에서 가공하여 제출된 버터의 일종인데 색깔은 황색, 또는 백색을 띤다.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나무통에 넣어 만드는 법이 있고 소나 양의 창자에 넣어서 만드는 법이 있다. 나무통에 넣어 만드는 법은 높이가 1.2m정도 되고 직경이 0.3m정도 되는 나무통에 뚜껑의 가운데 구멍을 뚫고 막대기를 넣는데 그 끝에는 십자모양의 날개가 있어 그 통속에 끓여서 식힌 우유를 쏟아 넣고는 끊임없이 아래위로 젓는다. 이렇게 3시간쯤 지나면 기름알맹이가 분리되어 위에 떠오르게 되는데 이것을 찬물에 적신 손으로 걸러내면 된다. 소나 양의 창자에 넣어서 만들 때에는 우유를 끓인 다음, 식혀서 깨끗하게 씻은 창자에 넣고 바람을 넣어 부풀게 한 다음 양끝을 꽉 졸라맨다. 그런 다음 평평한 땅에 놓고는 두 손을 앞뒤로 움직이면 우유가 차츰 분리된다. 여름철에 만든 것은 약간 노란색을 띠고 기름기가 많고 향긋한 냄새가 진하지만 겨울철에 만든 것은 백색을 띠며 기름기가 적으며 향긋한 냄새도 별로 없다. 버터는 영양가가 높은바; 80~90%의 지방질 외에도 단백질, 칼슘, 인, 철, 비타민A 등이 풍부하게 함유되어있어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 티베트사람들의 주식인 짬바를 먹는데 없어서는 안될 조미료의 하나로 되었다.
[쳐라(曲拉)]
우유에서 버터를 만든 다음 나머지를 끓여서 여과시키면 쳐라를 얻을 수 있다. 쳐라에는 풍부한 단백질과 전분이 들어있어 영양분이 많으며 짬바를 먹을 때 맛을 돋구는 조리료의 하나이다. 소화를 촉진하고 설사를 멈추게 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버터짬바]
먹는 법이 두 가지인데 혀로 핥아먹는 법과 손으로 반죽하여 먹는 법이 있다. 짬바는 갖고 다니기 편하고 먹기도 편할 뿐만 아니라 영양가치도 높아 유목민들이나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이들이 늘 갖고 다니는 작은 소가죽주머니에는 짬바, 수유, 曲拉 설탕, 등이 들어있다.
[양고기요리]
보통 양고기를, 특히는 갈비를 찬물에 소금을 좀 넣고 끓인 것이다. 물이 끓이면 양고기를 넣었다가 금방 건져내어 먹는데 고기 맛이 신선하면서도 부드러우며 향긋하다. 한 손에는 고기를, 한 손에는 칼을, 이렇게 먹는다고 칭하이성 사람들은 手 羊肉라고 부르는데, 칭하이성의 대표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고기를 다 먹은 후 그 고기국물에 국수를 넣고 끓여 먹기도 한다.
[케익]
잘 갈아놓은 쳐라(曲拉)를 흑설탕이나 설탕, 복숭아씨, 포도, 등과 같이 버터에 섞어서 크기가 부동한 용기에 담아놓는다. 이것이 냉각, 응고되면 꺼내서 먹는다.
[만두]
한족이 먹는 것과 비슷한데 모양은 동그랗고 만두 속은 주로 소고기나 양고기로 한다.
[요구르트]
우유를 끓여서 식힌 다음, 젖산균을 넣고 양가죽 같은 것으로 감싸서 일정한 온도를 보장한다. 이렇게 만든 요구르트는 소화에도 좋고 수면에도 좋아 티베트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의 하나인데 보통 식후에 먹거나 잠자기 전에 먹는다.
[灌腸]
우리의 순대와 비슷한바; 티베트사람의 특이한 음식의 하나로서 양의 창자를 깨끗이 씻은 다음, 안에 고기부스러기, 비계와 밀가루를 넣거나 양간이나 식혀놓은 피를 넣어서 만든다. 밀가루를 넣은 灌腸외에는 절대로 푹 익혀먹지 않는데, 특히는 피를 넣고 만든 血腸은 그냥 끓는 물에 데쳐내어 먹는데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창자에 바늘로 구멍을 몇 개씩 뚫어놓는다.
[말린 고기]
겨울과 봄에 먹을 고기를 장만해놓는 방법으로서 해마다 겨울이 되기 전에 소나 양을 잡아서는 고기를 길게 베여 바람에 말려 저장해두었다가 이듬해 4~5월에 고기가 부족할 때 꺼내서 먹는대 맛이 괜찮다.
[얼린 고기]
머리를 떼 낸 양이나 소를 그냥 달아매서 얼리거나 몸체에 물을 넣어서 얼리는 방법이다.
[차]
티베트사람은 茶를 특별히 좋아하는바; "좋은 말하고는 천리 길을 같이 가지만 좋은 차는 평생을 같이 한다.", "밥을 사흘 굶더라도 차는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차를 좋아하는데 타지방사람들과는 달리 몸에 열을 내게 하는 차를 좋아하며 차를 마시는 방법과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다.
1) 淸茶: 먼저 큰 덩어리로 된 차를 부수어서 찬물이 담긴 가마에 넣고 소금을 조금 넣고 한약 다리듯 다린다. 그런 다음 다시 말렸다가 차를 마실 때마다 그 말린 것을 조금씩 컵에 집어넣고 물을 부으면 된다.
2) 우유차: 淸茶에 신선한 우유를 섞어서 끓이면 우유차가 된다.
3) 버터차: 보통집안에서는 우유차를 버터가 들어있는 그릇에 담으면 버터차라고 하지만 부유한 집안에서는 전문 버터차를 만드는 작은 나무통이 있어 먼저 차를 쏟아 넣고 거기에 버터를 넣은 다음 다시 신선한 우유를 넣으면서 얼마동안 아래위로 저어서 만들어낸다.
4) 骨湯茶: 평소에 먹고 남은 소나 양의 뼈를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한겨울 추위가 닥쳐오면 모았던 뼈들을 부수어서 소금을 넣고 끓이는데 그냥 마실 수도 있고 淸茶와 섞어 마실 수도 있다. 骨湯茶에는 칼슘이 많이 들어있어 병약자거나 노인, 또는 산모의 보신용으로 쓰인다.
5) 牛油茶: 소의 골수를 끓여서는 짬바를 조금 넣고 淸茶와 섞어서 마시는 것이다.
6) 과일차: 봄과 가을에 피곤을 느낄 때 작은 나무통에 淸茶와 으깨놓은 복숭아씨를 같이 넣고 저어서 마신다.
7) 짬바차: 淸茶가 펄펄 끓을 때 짬바를 조금 넣고 끓인 것이다.
8) 靑 酒: 도수가 낮은 自作酒로서 우리의 감주와 비슷하다.
2. 복장
1) 藏袍: 티베트사람의 겉옷인데 넓고 크고 긴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玉樹티베트사람의 藏袍는 다른 지역의 티베트사람이 입는 藏袍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西藏이나 암도지역보다 조금 틀려서 금, 은이나 산호, 옥 같은 것을 많이 부착하고 모양이라든가 색상 면에서 비교적 화려한 색채와 색깔의 조화를 많이 강조함으로써 그들이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를 엿볼 수 있다. 藏袍는 여름, 겨울 그리고 평소에 입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감이 틀림에 따라 羊皮袍, 布袍, 袍, 夾衫袍, 料袍, 羔羊皮袍,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옷깃이나 소매의 길이가 모두 긴 것이 특징이다. (서장지역의 농촌이나 도시에 사는 여자들은 여름이면 보통 소매가 없는 옷을 입는데 이미 결혼한 사람은 허리에 채색가로무늬가 있는 앞치마를 두른다.) 남자의 옷은 그의 키와 같고 여자의 옷은 키보다 약간 큰데 입을 때 남자는 발목보다는 높게, 무릎보다는 낮게 입고 여자는 끌릴 정도로 길게 입는다. 평소에는 남녀를 막론하고 오른쪽어깨를 드러내지만 일할 때나 춤을 출 때는 양쪽 어깨를 모두 드러내고 옷은 허리띠로 허리에 묶는다. 겨울에는 제대로 옷을 입는다.
2) 羊皮袍: 양가죽으로 만든 옷인데 품이 너르고 보온이 잘 된다. 겨울에 많이 입는데 밤에는 이불처럼 덥기도 한다.
3) 袍: 양털제품으로 양가죽으로 만든 티베트 옷보다 품이 더 넓다. 빽빽하게 짜여져서 촉감이 부드럽고 보온이 잘 되고 비도 막으며 오래 견딘다. 이것으로 藏袍를 만드는데 색은 흰색, 커피색, 검은색으로서 여자는 검은색, 남자는 커피색이나 흰색으로 된 것을 입는다.
4) 羔羊皮袍: 새끼양의 가죽으로 만든 옷인데 옷소매와 옷깃에 비싼 수달피 가죽으로 장식한다. 보통 남자의 옷깃에 붙이는 수달피가죽은 너비가 0.5m정도 되고 여자 옷에 붙이는 것은 0.3~1m까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5) 僧服: 보통 중이든 라마중이든 겉에 입고 다니는 옷인데 자홍색으로서 길이는 발까지 덮는데 신분에 따라 옷감도 틀린다.
6) 내의: 순수한 목축민은 품이 너른 가죽바지를 입으며 농민들은 청색이나 검은색으로 된 넓게 만든 바지를 입는다. 여자들은 길게 발까지 덮으므로 옛날에는 바지를 입지 않았다. 적삼은 옅은 색깔의 천이나 실크로 된 것을 입는데 남자는 흰색을 좋아하고 여자는 연분홍색을 좋아하는데 옷의 구조가 특별하다. 옷소매는 땅에 닿을 정도로 길고 옷깃은 짧아 배꼽까지 온다. 단추는 대개 금이나 은이나 구리로 자기네가 만든 것을 쓴다. 중들은 여름에 셔츠를 입고 겨울이 되면 팔이 짧은 셔츠에 가죽옷을 걸친다.
7) 허리띠: 티베트사람의 허리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유명한 것은 소가죽에 은 같은 것을 박아서 만든 것인데 허리띠보다는 장식용으로 많이 쓴다. 평소에는 검붉은 색깔의 천으로 된 허리띠를 사용하고 명절이나 춤을 출 때는 여러 가지 색깔로 된 허리띠를 매는데 엉덩이 아래까지 드리운다. 여자의 허리띠는 좋은 소가죽으로 만드는데 양쪽은 폭이 좁고 가운데가 넓다.
8) 모자: 모양이 여러 가지 원통형으로 된 것도 있고 나팔모양, 둥근 모양, 나뭇잎 모양, 등이 있다. 모자를 만든 재료를 보면 양털카펫으로 만든 것이 있는가 하면 양가죽, 여우가죽으로 만든 것도 있다. 보통 여름과 가을에 쓰는 모자는 앞이 길면서도 넓어 직사광선을 막아주며 봄, 겨울에는 양가죽이나 여우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써서 추위를 막기도 하고 장식용으로 쓰기도 한다.
9) 藏靴: 장족의 신은 모양이 좀 특이하여 좌우구분이 없이 바꾸어 신을 수 있으며 남녀의 구분도 없다.
3. 거주환경
티베트사람의 거주환경은 그들의 생산조건과 생활조건이 다름에 따라 크게 흙집과 텐트로 나눌 수 있다.
농업지역과 농업, 목축업이 섞인 지역에는 흙집이 많은데 사용한 재료나 구조가 틀림에 따라 土木房과 石 樓로 나눌 수 있다.
土木房은 높이가 3~4m남짓한 土城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지붕이 평평하고 벽의 밑 부분은 돌로 기초를 쌓았으며 벽은 흙으로 되어있는데 창문은 작고 벽이 두터운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집안에 기둥이 있고 천정은 원목을 가로놓았다. 지붕 위에는 비나 쌓여있는 눈이 흘러내리는데 좋게 가장자리에 구멍이 뚫어 있다. 사면 벽이 약간씩 뒤로 경사져있는데 비에 흙으로 지은 벽이 손상을 덜 받게 하기 위한 조치이다. 집 구조를 보면 佛堂, 거실, 침실, 주방, 그리고 창고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佛堂이 있는 방에 아무 사람이나 드나들어서는 안되며 지저분하게 널린 것이 없이 깨끗해야 한다. 주방은 부엌과 온돌방사이에 높이가 7~80cm 되게 막고 두 개로 나누어놓는다. 온돌에는 양털이나 소털로 짠 두터운 카펫을 깔거나 한다. 石 樓는 돌을 진흙으로 쌓아서만든 집인데 대개는 뒤에 산을 의지하여 2층 구조로 만든 것이 많은데 위층에는 사람이 살고 아래층에는 가축을 매두거나 농기구 같은 것을 두는 창고로 쓴다. 생활이 나날이 좋아짐에 따라 이런 집들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
유목경제의 발전을 더불어 텐트는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티베트사람들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으며 오늘까지도 그들이 애용하는 물품중의 하나인데 재료가 틀림에 따라 소털로 만 든 것과 천으로 만든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검은색소털을 수공업으로 가공하여 텐트의 기본재료를 만드는데 특징이라면 팔각으로 되어있다. 어떤 종류의 검은색소털로 만든 텐트든 그것을 펴면 거북모양으로 되는데 전하는데 의하면 이것은 소나 양에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는다는 상징이라고 한다. 천정에는 구멍이 나있고 텐트 안은 가로받침대 하나에 기둥 두 개로, 밖에는 여덟 개의 나무로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천정에 나있는 구멍은 덮을 수도 있게 만들었는데, 통풍에 유리할 뿐 아니라 텐트 안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나가는 것을 도와주는 작용도 한다. (물론 연통도 있다.) 칭하이성의 대부분 목축지역은 삼림이나 탄광과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소똥이나 양똥을 말려서 기본적인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텐트의 문과 가까운 기둥에는 채찍이나 말안장 같은 것을 걸어놓는데 쓰이며 안쪽기둥은 념주나 부적과 같은 종교적인 물건을 걸어놓게 되어있다. 두 기둥의 가운데를 기준으로 부엌을 만드는데 남자는 부엌 왼쪽에, 여자는 오른쪽으로 자리가 정해진다. 부엌의 오른쪽은 여자들이 일하는 "주방"이기도 하지만 여자의 거처이기도 하며 물통이나 우유통, 그리고 모든 부엌살림은 오른쪽에 설치되어있다. 왼쪽은 "거실"이면서도 남자의 거처이다. 문과 떨어져있는 안쪽 기둥 뒤에는 불상을 모시는 곳인데 티베트 식 나무상자가 놓여있고 거기에 불상을 모시는 함이 있고 그 함 속에 구리로 만든 불상이 들어있다. 그 함 앞에는 한일자로 수유등잔을 놓고 깨끗한 물이 담긴 구리잔과 함께 약간의 곡식 같은 것도 올려놓아 부처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버터등잔은 날마다 한 번씩 기름을 넣는데 밤에 켜서 새벽을 맞을 때까지 밝힌다. 식사 때도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 이런 순위로 앉는다. 텐트밖에 세워놓은 기둥에는 불경을 인쇄한 천이 높이 걸려있는데, 귀신을 피한다고 여긴다. 이외에도 천으로 만든 텐트가 있는데 대개는 흰 천으로 만드는데 모양은 비슷하며 손님용으로 쓰거나 애들이 쓰기도 한다.
4. 교통
교통상황이 좋아져서 웬만한 곳에 가려면 거이다 성급(省級)도로가 되어 있고 버스가 통하고 있지만 玉樹지역은 산이 많고 하천이 여기저기 있어 교통이 불편한데 아직도 말과 야크가 주요한 교통운수도구로 쓰고 있는데도 있다.
야크는 사지가 짧고 인내력이 있으며 산길을 평지 밟듯 하는데 설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목축민들은 매번 거처를 옮길 때마다 야크의 덕을 톡톡히 본다.
예의와 풍속습관
1. 혼인
[등급에 따른 혼인제도]
이전에는 千百戶와 牧主들은 엄격한 등급에 따른 階級 내의 혼인제도를 실행하였다. 젊은이들은 어떠한 교제활동이나 연애 같은 것 없이 그들의 혼인은 완전히 집안어른의 손에 의해 좌우되었다. 千百戶나 牧主들은 권세와 가업의 계승을 위해 제일 중요시한 것이 가문에 맞는 혼인상대를 찾는 것인데 千戶는 千戶를 상대로, 百戶는 百戶를 상대로 하고 그리고, 牧主는 牧主를 상대로 혼인을 정하는 것이다. 만일 자녀들이 부모가 정해준 혼인을 거부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상대라도 찾게되면 부모는 자녀를 엄하게 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중의 권리를 이용하여 강제로 파혼할 수도 있었다.
시대가 발전하고 상황이 달라진 지금에 와서도 중매결혼이 있기는 하지만 연애를 걸친 결혼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일부 티베트지역에는 이런 습관도 있는데, 딸이 13살이나 15살(홀수를 숭배하는 그들의 습관과 연계가 있다.) 되면 집안에서 성인의식을 치른다. 성인의식을 치른 딸은 머리를 가늘게 여러 갈래로 따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젠 어른이니 남자들과 교제할 수 있다는 무언의 표시를 나타내며 부모형제가 거처하는 방과 동떨어진 자신의 방을 가질 수 있다. 렙궁의 쩬짜(尖 )의 일부 마을과 하이난의 뀌더(貴德)와 같은 유목민 지역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가 자기의 마음에 드는 남자와 함께 잠자리를 할 수 있는데, 이때 부모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잠자리를 함께 하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남자를 바꿀 수도 있다. 만일 임신하여 애를 낳게 되면 여자의 부모가 책임지고 키운다.
[혈연관계를 제외한 혼인제도]
어떠한 사람이나를 물론하고 혈연관계가 있는 사이에는 혼인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家庭제도]
주로는 一夫一妻制지만 아직도 약간의 一夫多妻制나 一妻多夫制, 그리고 남편이 없는 无夫家庭이 있다. 그중 一夫多妻制는 가정형편이 비교적 좋은 사람들 사이에 많이 있는데 서로 다른 집에서 나서 자란 두 여자가 선후로 한 남자한테 시집가는 것이다. 때로는 자매가 동시에 한 남자한테 시집가는 경우도 있고 母女가 한 남자한테 시집갈 때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결혼할 때 신부의 나이가 어리면 남자 쪽에서는 엄마가 먼저 딸을 대신하여 남자한테 시집올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런 혼인상황이 있게되는 것이다. 딸이 성인으로 자랄 때까지 엄마와 사위의 혼인관계는 계속 유지된다. 一妻多夫制는 형제가 많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집이나 가정형편은 괜찮으나 여러 형제의 화목과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여럿이 한 여자한테 장가드는 것이다. 시집 온 여자는 모든 형제를 똑같이 대해야 하며 서로의 감정을 잘 조화시키고 집안의 경제를 관리한다. 애를 낳으면 누구의 아이든 상관없이 형제 중 맏이만 아버지라 부르고 나머지 다른 사람은 삼촌이라고만 부르게 된다. 1949년 이전, 玉樹지방에 10만의 인구 중 남자가 38.5%를 차지하고 여자는 61.5%를 차자하였는데 남녀의 비율이 이토록 엄중히 파괴된 원인은 잦은 전쟁으로 남자들이 다량 학살을 당하였거나 많은 남자들이 집을 떠나 사원에 들어가 중이 되거나 사처로 돌아다니면서 유랑생활을 하였기에 여자가 결혼할 나이가 되어도 결혼상대를 구하기 어렵게 된 여자들은 이렇게 돌아다니는 남자들 중에서 아무나 한사람 혹은 여러 사람을 택하여 한동안 같이 동거생활을 하다가 남자가 다시 떠나면 낳은 아이는 여자가 맡아서 키우게된다. 이런 가정형태가 无夫家庭인데 이런 여자들은 비록 일생을 살면서 정식으로 결혼 한번 못했어도 하나, 혹은 여러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데, 애들은 자기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심지어는 어머니조차도 누가 누구의 아버지인 것을 모르며 애아버지의 이름이며 고향 같은 것도 모르고 평생을 고생하며 지낸다. 이런 여자들은 마음속으로 큰 고통을 참아가면서 대개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 일생을 끝마치는데 이들의 삶의 유일한 희망은 자녀들의 장래에 있다. 이런 풍속 때문에 지금도 티베트사람은 결혼을 하지 않고 낳은 아이를 절대로 업신여기지 않는다.
2. 생육
목축지역은 지대가 높고 추우며 산소가 부족한 등 자연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영아의 사망률이 높아 인구증가율이 낮다. 하여 목축민들은 어린이에 대하여 각별한 정이 있는데 태어난 아기가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상관없이 똑같이 기뻐한다. 여자가 커서 결혼하면 늘 불경을 읽으면서 기도하는 것이 신의 보호로 건강하고 예쁜 아이를 낳는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 일년이 지나도록 태기가 없으면 보통 노인들이 불교사원에 가서 향을 피우거나 점을 쳐서 태기가 있게 해달라고 염불한다. 하지만 여자는 임신하여 해산이 임박하여도 평소와 같이 방목을 하고 집안 일을 하는데 산후의 몸조리 같은 것은 운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아기를 낳을 때가 되면 아기를 낳고 며칠 쉬고는 계속 방목하러 나간다. 때문에 많은 여성들은 산후조리를 못하여 평생을 산후병으로 앓는다. 아기를 낳아 7일 동안은 문밖에 표시를 하여 낯 설은 사람이 텐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데 7일 후면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찾아와서 축하드리며 아기한테 카덕이라는 흰 천을 선물하는 것으로 축하를 표한다. 그들은 아기를 놓고 티베트사람 특유의 哲理나 유머로 아기의 장래를 축복한다. 애가 커서 4~5살이 되면 애한테 멋지고 뜻깊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그 집을 비롯한 친척, 친우들과 마을사람들의 최대의 관심사인데 라마승을 모셔서 이름을 짓기도 하고 집안어른이나 부모가 직접 지어주기도 한다. 라마중이 지어주는 이름은 종교적 색채가 짙은 반면, 집안어른이 지어주는 이름은 福, 祿, 長壽의 뜻이 담긴 이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아기가 자라면서 요절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보통 아기의 이름을 천하게 지어주기도 한다.
3. 장례
티베트사람의 장례는 주로 천장(天葬), 화장(火葬), 탑장(塔葬), 수장(水葬), 토장(土葬)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중 천장은 백성들이 보통 쓰는 장례 법이고 탑장은 최고의 장례 법으로서 판쳰라마나 달라이라마, 등에 한해서만 탑장을 할 수 있으며 화장은 일반적이 생불(活佛)이나 귀족에 한한 장례법이고 수장은 요절한 애들에 많이 쓰는 장례법이고 토장은 제일 천한 장례법으로 문둥병으로 죽은 자나 범죄자와 같은 惡漢에 한해서만 토장을 한다. 누가 죽든 상관없이 가족과 일가친척들은 그 해는 명절을 지내서는 안되며 명절옷차림으로 나들이 할 수도 없다. 만일 누가 이것을 어기면 인정이 없는 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의 멸시를 받게 된다.
[天葬]
목축지역의 티베트사람들의 제일 보편화되고 흔히 볼 수 있는 장례법으로서 鳥葬, 風葬, 혹은 野葬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은 후, 시신이 굳기 전에 먼저 끈으로 태아의 자세로 묶은 후, 천으로 시신을 감싼다. 보통 집안에 밤낮 사흘동안 두는데,(남자는 텐트의 왼쪽에, 여자는 오른쪽에) 그동안 라마승을 청하여 경을 읽게 하고 등불을 밝혀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한다. 4~5일째 되는 날이면 홀수 날을 택하거나 라마승이 점을 쳐서 얻어낸 7일 사이에서 길일(역시 홀수임)을 택하여 시신을 밖으로 내가는데 아들이(아들이 없으면 조카가, 조카가 없으면 사위가 대신한다.) 문 어구까지 업고 나가 효도를 표시한 후, 천장을 담당한 사람에게(직업천장인도 있다) 시신을 맡기면 그들이 지정된 천장 장소에까지 업고 간다. 시신을 업고 가는 동안 머리를 돌리거나 떠들거나 멈출 수가 없는데 만일 그러면 영혼이 다시 되돌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天葬場에 도착하면 시신을 묶은 끈을 칼로 끊고 옷도 벗기고 머리털을 자르고 나서 시신이 남성이면 왼쪽으로 옆으로 눕히고 여성이면 오른쪽으로 옆으로 눕힌다. 잘라낸 死者의 머리털은 바위틈에 감추고 옷이나 묶었던 끈은 태우고 시신을 태우고 왔던 말안장은 산산이 부수어 버린 다음, 제사의식을 행하는데 "六字眞言"이라는 주문을 외운다. 이때 천장장 상공에서 배회하던 매와 새들이 내려와 시체를 먹는데 깨끗이 먹을 때까지 계속 된다. 매가 많이 올수록, 시신을 빨리 먹을수록 길한 징조로서 죽은 자가 생전에 선한 일을 많이 하였고 덕을 많이 쌓아 이미 수행을 이룬 사람으로서 그 영혼이 이미 승천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반대일 경우, 죽은 자가 생전에 악을 많이 저질러 죄악이 넘쳐나므로 불경을 읽어주어야 하는 동시에 죽은 자의 살을 도려내어 짬바와 같이 섞어서 매한테 먹여야한다. 천장이 진행될 때, 同姓同宗인 사람은 참가할 수 없다. 천장은 일종의 원시적이면서도 오래된 장례풍속으로, 매가 어떤 젊은이를 도와 승천시켰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장례풍속이 있게된 것은 장족의 고유한 종교인 本敎와 라마불교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한편, 손에 쇠붙이 같은 것이 별로 없이 넓은 초원에서 물과 풀을 따라 유목생활을 하며 기나긴 추위를 이겨나가는 티베트사람을 놓고 볼 때 토장보다 천장이 더 실용적이면서도 간편하며 그들이 사는 환경에 적합한 장례법이었을지도 모른다.
[火葬]
옛날에는 귀족이 죽거나 생불이 죽게 되면 시신을 가부좌를 틀고 두 손을 합장한 자세로 만들 화장을 한다. 골회는 누른색 비단주머니에 넣어 塔안에 보관하며 봉양한다. 때로는 화장을 한 후, 짬바와 각종 약물과 함께 알맹이를 만들어 강에 던져 물고기를 먹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나라에서 만들어준 전문적인 화장터가 있어 많은 사람들은 화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塔葬]
유명한 생불(大活佛)이 죽으면 시신을 미이라로 만든다. 나중에 匠人이 와서 황금으로 한 번, 또 한 번 온몸을 칠해가면서 다듬는다. 자세는 두 손을 합장하고 가부좌를 틀고 앉은 자세인데 가사(袈裟)를 걸치게 하고 크고도 높은 靈塔안에 모신다. 탑 표면은 무수한 금, 은, 보석으로 장식하는데 이런 어마어마한 비용은 웬만큼 큰 사원이 아니고는 부담할 수 없을 정도이다.
[土葬]
티베트사람의 土葬은 두 가지가 있는데 관에 넣는 것과 천으로 시신을 동여서 묻는 것이 있다. 자세도 누운 자세와 앉은 자세로 나눈다. 한때 토장을 일종의 우아한 장례법으로 알아서 吐蕃시대의 황제까지도 죽은 후 토장을 했을 정도로 토장이 티베트사람 사회에서 인기를 누렸었지만 언제부터 시작해서인지 몰라도 어떤 지역에서는 불길하게 죽은 사람이나 문둥병환자와 같은 전염병환자가 죽었을 때만이 토장을 한다.
[水葬]
江河를 옆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장례법으로서 어린이가 요절하면 시신을 흙으로 만든 독에 넣어서 물 속에 떠내려보낸다. 전하는데 따르면 이렇게 하면 내생에서는 장수한다고 하기도 하고 또 한가지 다른 이유는 사람이 죽으면 강을 건너야하는데 이렇게 하면 어린이가 무사히 강을 건너갈 수 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장례에서 꺼리는 것]
텐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죽은 그 자리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을 꺼리는데 보통 7일이 지나면 텐트를 다른 곳으로 옮기며 49일 내에는 짐승을 잡는 것도 꺼린다. 티베트력으로 설날을 기준으로 하여 죽은 자의 가족이나 친척들이 명절옷차림으로 어떠한 경축활동에도 참가해서는 안되며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꺼리는데 만약 그 동네에 죽은 사람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산 사람이 있게되면 다른 이름을 지어야 한다. 티베트사람이 물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水葬을 하는 것과 관계가 있으며 닭고기 같은 것도 먹지 않는 것은 天葬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4. 행동습관
[존대말]
라사의 티베트사람의 사회구조에서 매 사람마다 그의 사회적인 지위, 직업, 친척, 연령에 분명한 차이가 있어서 상대방의 이러한 신분차이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도 틀리지만 캄바나 암도 지역에서는 보통사람들이 생불(活佛)이나 고승(高僧)에게 말할 때는 꼭 존댓말을 쓰는 외, 보통은 존댓말을 쓰지 않는다.
[길에서 만났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예의적인 행동은 만나면 서로 문안하는 것이고 가까운 사람을 만나게되면 말에서 내려 상대방의 손을 잡아 자기의 얼굴에 갖다대거나 한다. 어른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길을 양보해드린다.
[자리에 앉기]
텐트 안에 있는 두 개의 기둥을 기준 하여 보통 습관에 따라 남자는 왼쪽에, 여자는 오른쪽에 자리를 정한다. 중년남성이나 노인, 그리고 손님은 왼쪽, 여성과 아이들은 오른쪽에 앉는데 왼쪽에도 위쪽자리가 제일 좋은 상석으로서 귀한 손님이 오셨을 그 자리에 모신다. 손님이 오면 손님이 앉은 다음에야 주인이 앉을 수 있는데 남자손님이면 남자가 먼저 앉고 여자손님이면 후에 앉는다. 또한 노인으로부터 젊은이, 이런 순위로 앉기도 한다. 보통사람은 라마승의 윗자리에 앉지 못하며 여성은 남성의 윗자리에 앉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앉을 때 남성은 가부좌를 틀고 앉으나 여성은 반쯤 꿇어앉는 자세로 앉아야하며 남자가 쓰는 물건을 여성이 함부로 가로타고 건너서는 안 된다.
[손님을 맞이하는 법과 배웅하는 법]
손님이 텐트에 가까이 오면 어떤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온 집안식구가 텐트 밖에서 맞아들이는데 여성과 애들은 개가 손님을 물지 못하게 지키고 남자주인은 말고삐를 받아들고 손님을 부축하여 말에서 내리게 하면서 "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린다. 손님이 떠날 때 서로 축복하는 인사들을 하면서 주인은 손님을 부축하여 말을 태우고 나서 멀리 가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래드린다.
[노인에 대한 존경]
티베트사람 사회에서 노인은 전사회적인 존경의 대상인데 누구나 노인은 지식의 化身이며 풍부한 목축업지식과 생산경험이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노인이 집에 들어서면 젊은이는 반드시 일어서서 마중하고 노인이 앉는 자리에 다리를 뻗고 앉아서는 안되고 식사할 때 먼저 노인한테 드리고 술을 마실 때도 노인이 술잔을 들어야 젊은이가 들 수 있으며 고기를 먹을 때도 먼저 제일 연한 고기를 노인에게 드린다. 노인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되며 나이차이에 따라 할아버지나 아버지로 부름으로서 존경을 나타낸다. 길을 걸어도 노인이 앞서며 명절이 돌아오면 절을 올리는 것으로 존경을 나타낸다.
1. 姓氏와 호칭
[姓氏]
보통 티베트사람은 姓이 없다고 알고있는데 이것은 오해이다. 재미있는 것은 만일 대표적인 남자이름과 여자이름이 합칠 때는 여자이름이 되고 여자이름이 앞에 있으면 남자이름이 되는 것이다. 이름을 부를 때 전칭을 부를 때가 있고 약칭을 부를 때가 있고 애칭을 부를 때가 있다. 티베트사람은 이름과 姓을 다 갖고있는데 姓은 대대로 전해 내려오면서 혈연관계를 나타내주고 있으면서 재산상속 같은 것도 나타내준다. 평소에는 姓을 잘 쓰지 않고 이름만 쓰는데 그들의 姓은 복성(複姓)이 많고 지방이름이나 동네이름을 딴 것이 많다.
[호칭]
티베트사람은 친족지간의 호칭은 비교적 간단한바, 조부모나 외조부모를 부를 때 남자는 할아버지라 부르고 여자는 할머니라 부른다. 남자가 자기의 부모와 장인, 장모를 부를 때에도 그냥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면 된다. 큰아버지나 삼촌(혹은 외삼촌), 고모부나 이모부도 그냥 삼촌(혹은 아저씨)으로 통하고 여자는 아주머니로 통한다. 형제사이에는 그냥 형님, 동생으로만 부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