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으로 섬기는 삶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 할지니라』(7:5-6).
사도는 원리를 먼저 말씀한 후에 이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전개해 나갑니다. 7장에는 그 원리(原理)가 1-6절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잘 파악한다면 7장을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그렇지 못하면 중심주제(中心主題)에서 이탈하여 곁길로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7장의 원리중에서도 열쇠는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 할지니라”(6하) 하는 말씀입니다.
①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5) 합니다. 이는 율법 하에 있었을 때의 상태인데, 세 마디로 되어 있습니다.
㉠ 첫째는, “육신에 있을 때”란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가? 이를 문맥적으로 앞의 말씀과 결부하면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기”(4) 이전 상태요, 뒤에 말씀과 결부시키면 “의문(儀文)의 묵은 것으로”(6) 섬기던 상태를 가르킵니다.
㉡ 둘째는, 그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5중), 즉 율법이 “하지 말라” 하면, 도리어 우리 속에 있는 죄성(罪性)을 자극하여 행하고 싶도록 충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 그리하여 셋째는,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5) 합니다. 이는 4절의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와 반대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결국 사망에 이르는 열매입니다. 이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섬기는 것은 소망이 없는 비참한 상태라는 말씀입니다.
②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4),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6상) 하고 말씀합니다.
㉠ 이는 세 마디로 되어 있는데,
㉮ 율법은 우리를 “얽매었다” 하고 말씀합니다.
㉯ 그런데 “죽었으므로”,
㉰ “벗어났다” 하고 말씀합니다.
㉡ 율법이라 한들 죽은 자를 주관할 수는 없기 때문에 벗어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출애굽 당시 홍해를 건넘으로 바로의 주관 하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점을 8:2절에서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말씀하고, 갈라디아서에서는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때까지 갇혔느니라”(갈 3:23) 하고 말씀합니다.
③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 지니라”(6하) 합니다. 여기에 7장의 핵심이 있고, 이 말씀이 7장을 해석하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 사도는 “의문(儀文)과 영(靈), 묵은 것과 새로운 것”을 대조해서 제시하고 있는데,
㉮ 부정적으로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하고”,
㉯ 긍정적으로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④ 7장의 내용은 “의문의 묵은 것으로 섬기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고, 8장의 내용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상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 “의문(儀文)의 묵은 것과, 영(靈)의 새로운 것”이라는 주제는 로마서만의 원리가 아니라,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한마디로 표현한 원리(原理)인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갈등과 저항도 “묵은 것과, 새로운 것”의 충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눅 5:38) 하셨습니다.
㉡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유대주의자들로부터 무엇 때문에 박해를 당했습니까? 이는 “의문의 묵은 것으로부터, 영의 새로운 것”으로 개혁(改革)하려(히 9:10)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갈 5:11) 한 것입니다.
⑤ 의문의 묵은 것으로 섬기느냐?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느냐 하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인가 하면 밖에 있는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신약교회 안에 있는, 그것도 예루살렘 본부 교회에 있는 자들까지도 의문의 묵은 것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 사도행전 15장의 제1차 예루살렘 회의의 의제(議題)가 그러하고, 갈라디아서 2장에 나오는 안디옥에서 바울이 베드로를 면책(面責)한 충돌이 이를 말해줍니다. 이점을 고린도후서 3장에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는데,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후 3:14) 하고 말씀하면서,
㉮ 의문의 직분(7)과, 영의 직분(8),
㉯ 정죄의 직분과, 의의 직분(9),
㉰ 죽이는 것과, 살리는 것(6)을 대조해서 제시합니다.
㉡ 그리고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儀文)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靈)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 3:6) 합니다. 이것이 본문 6절에서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 할지라”(6)는 의미입니다.
⑥ 그렇다면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 첫째로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모세의 성막(聖幕)과, 솔로몬의 성전(聖殿)에 충만(출 40:34-35, 대하 7:1-2)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어찌나 충만한지 “모세나, 제사장”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섬기는 자들이 밖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 그러나 신약시대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은 다락방에 충만한 것이 아니라, 120문도에게 충만했습니다. 어떤 차이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聖殿)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 안에 내주(內住)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 둘째로 옛 언약은 돌비에 기록되었으나, 새 언약은 심비에 영으로 기록하셨다(고후 3:3) 하고 말씀합니다.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히 8:10, 10:16) 하십니다.
㉣ 그러므로 셋째로 구약시대는, 섬기는 법칙(法則)이 밖에 있었으나, 신약시대에는 그 표준(標準)이 자기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벌이 두려워서 마지못해 복종하는 태도가 아니라,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의 삶을 살 수가 있고, “사랑의 강권함”(고후 5:14)을 받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수 있는 원동력(原動力)인 것입니다.
㉤ 의문의 묵은 것으로 섬기는 삶과,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삶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면,
㉮ 의문으로 사는 사람은 무서워하는 종의 영에 지배를 받으나, 영으로 사는 사람은 아들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습니다(8:15).
㉯ 의문의 사람은 형벌이 두려워서 눈가림을 하듯 법을 지키려하나, 영의 사람은 자기 안에 계신 성령을 근심시켜 드리지 않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사모합니다.
㉰ 의문은 사람을 정죄하나, 영은 허다한 죄를 가려줍니다.
㉱ 의문으로 섬기는 자는 손가락으로 법조문을 짚으면서 문자에 관심이 있으나, 영으로 섬기는 삶은 그 정신을, 그 의미를 생각합니다.
㉲ 그러므로 영으로 섬기는 삶은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탕감해 주지만, 의문으로 사는 사람은 100데나리온 빚진 자의 멱살을 잡고 재판장에게 끌고 갑니다.
㉳ 의문으로 섬기는 자는 자기 힘으로 하려하기 때문에 성화도 이루지 못하나, 왜냐하면 자기 혼자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으로 섬기는 사람은 자기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시고, 성령께서 우리 연약함을 도우심으로(8:26),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게 합니다(8:13).
㉴ 의문으로 섬기는 사람은 그가 실수하고 넘어졌을 때에, 그를 용서해 주고 위로해 주며 기름으로 유하게 하며 싸매어줄 이가 없습니다. 다만 냉혹한 송사와 정죄와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영으로 섬기는 사람은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합니다.
㉵ 의문으로 섬기려는 자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7:24) 하고 비명을 지르나, 영으로 섬기는 자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하고 선언합니다.
㉶ 내가 죄를 범하면, 벌을 받고 내게 손해가 있을까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문에 누를 끼치고 거룩하신 주의 이름에 모독을 돌리게 됨을 가슴 아파 합니다.
⑦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 할 지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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