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기자칼럼] 이해준 기자의 심판도전기 "축구 심판이 되는 법"

[고해수]

[기자칼럼] 이해준 기자의 심판도전기 "축구 심판이 되는 법"

[ 2009-01-21 ]

이해준 기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즐겨보는 축구 팬이어도 좋다. K리그 경기장을 찾아가 “심판 눈떠라, 정신차려 심판!”을 외친 열혈 서포터라도 상관없다. 부상으로 축구화 끈을 풀어버린 전직 선수일 수도 환영한다. 축구를 너무도 사랑하지만 축구 선수가 되기엔 너무 늙어버린 사람들은 어서 오라. 이들 모두 축구 심판이 될 수 있다.

기자는 지난 1월 5일부터 9일까지 열린 서울시 3급 심판 강습회에 참가해 축구 심판에 도전했다. 기자석보다 좀 더 그라운드에 가까운 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비록 심판이 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어떻게 하면 심판이 될 수 있는가는 어렴풋이 알게 됐다. 때로는 성공보다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는 법. 축구 심판이 되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심판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

우선 두 가지-심판이 얼마나 좋은 지와 심판이 얼마나 괴로운 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고민하고 심판에 도전할지 말지 선택하라.

우선 심판의 장점이다. 축구의 일원으로 축구 발전에 보탬을 줄 수 있다. 심판을 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 지방 대회에 배정되면 공짜로 먹고 자면서 심판 수당까지 받을 수 있다.(바늘 구멍 같은 경쟁을 뚫고 월드컵 주심이 된다면 얼마를 받을까. 독일 월드컵에서 부심을 맡았던 김대영 심판 부위원장은 일시불로 4만 달러를 받고 하루 일비로 100달러씩 받았다. 물론 먹고 자는 것은 월드컵조직위원회에서 다 알아서 해준다.) 축구를 좋아하는 여러 사람을 두루 사귈 수 있다.

단점도 있다. 경기장에서는 쉴 새 없이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이 쏟아진다. 어린 선수들로부터도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선수가 다치면 웅성거리며 걱정하지만 당신이 경기 중 다치면 웃음거리가 될 확률이 크다.

강치돈 심판 강사는 “심판을 보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심판을 하다 보면 내가 이것을 하길 정말 잘했다는 짜릿한 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라.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당신의 휘슬에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멋지게 경기를 지휘하고 난 후에 느낄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서울시 3급 심판 강습회에 참가한 심판 도전자들. 앞줄 오른쪽에서부터 네 번째가 이해준 기자 ⓒ 서울시축구협회

# 올 해가 기회다

지난해에는 주로 지방에서 조별리그 후 토너먼트로 전국 대회가 치러졌다. 선택된 심판 몇 몇이 대회 기간 동안 지방에 머물며 집중적으로 경기를 진행했다. 비교적 적은 규모의 심판으로 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초중고 전면 리그제가 시행된다. 심판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심판이 되기만 한다면 거주 시도에서 열리는 경기에 배정받아 활동할 기회가 늘어났다.

# 이론 시험 커트라인은 60점

이론 교육에서는 17개 조항으로 구성된 축구 규칙을 두루 익힌다. 동영상 등을 활용해 생생한 실제 상황을 근거로 교육을 받는다.

30시간 이상의 수업을 들은 뒤 필기 테스트를 치러 60점 이상이면 3급 시험에 합격한다. 조금만 노력하면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다.

심판이 돼서 정확하게 경기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규정을 숙지해야 한다. “어떻게 심판이 규정도 모르냐”는 말을 듣게 될 지도 모른다.

오프사이드의 구체적 적용 방법, 경고인 경우와 퇴장인 경우 등을 배우면 그동안 자신이 지닌 축구 규칙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불완전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 심판 실기 교육

부심기 다루는 법, 호루라기 부는 법, 오프사이드 판정 실습, 주심의 위치 선정 실습 등을 한다. 부심기를 드는 일, 상황에 맞춰 호루라기를 부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프사이드를 실제 지적해 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서울 서포터 출신인 예비 심판 안용준씨는 “눈이 두개가 아닌데 최종 수비수와 공을 차는 순간을 동시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며 “앞으로 심판을 욕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체력 측정 테스트

목동 종합운동장에서 열렸다. 심판이 되는 최대 고비다. 필자도 여기에서 고배를 마셨다.

40m 구간을 6.4초로 6회 달려야 한다. 이것을 통과할 경우 150m를 30초 내에 달린 후 50m를 40초동안 걸어가는 과정을 14차례 반복하며 400m짜리 종합육상경기장 트랙을 7바퀴나 돌아야 한다. 근력과 순발력, 지구력이 없다면 통과할 수 없다.

달리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은데 뭐가 힘드냐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현역 심판들은 ”2700m를 12분내에 주파했던 이전 테스트 방식보다 더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강치돈 심판 강사는 “적어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운동을 하며 몸 관리를 해야 통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카드를 뽑을 때는 확실하고 결단력있게 뽑아야 한다. 2008 KFA 심판보수교육 현장 ⓒKFA

# 심판 실습

체력 측정에 통과하면 실전에서 직접 주심을 맡아 휘슬을 불고, 부심기를 들고 오프사이드를 지적해야 한다. 합격자들은 울산에서 주심 3번, 부심 3번을 맡았다. 이들의 소감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도대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내가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서에 밝혔듯이 올해는 심판이 대규모로 필요해 심판 실습에서 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탈락시키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좋은 심판으로 육성해나가기 시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심판에 필요한 자질들

“심판이 되려면 산도적처럼 무섭게 생긴 것이 유리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훌륭한 심판이 모두 우락부락하게 생긴 것은 결코 아니다.

K리그 심판들을 교육시켰던 독일축구협회 심판 강사 하이트만은 심판에게 필요한 최고의 자질을 캐릭터(character)라고 말했다. 냉정하고 엄격한 태도로 경기를 운영할 수도 있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선수들의 복종심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심판마다 스타일이 제 각각이지만 훌륭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어야 선수와 경기를 무리 없이 통솔할 수 있다.

스스로를 믿는 자존감과 어지간한 일에는 움츠러들지 않는 강심장도 필요하다. 선수들은 승리를 위해 심판을 현혹하거나 속이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벤치에 앉은 감독과 팬들도 불평을 쏟아내며 심판을 늘 압박한다. 때로는 거칠게 항의하기도 한다. 그럴 때 평상심을 유지하며 상황을 돌파해나가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두꺼운 얼굴도 필요하다. 스스로는 불확실한 판정을 내리더라도 얼굴 빛이 변해서는 안된다. 심판의 얼굴이 흔들리면 벤치와 선수들이 더 동요한다. 설령 오심을 했다는 것을 알더라도 보상 판정을 내려서는 안된다.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실수를 깨끗하게 인정하는 일도 필요하다. 심판은 신이 아니기에 모든 것을 볼 수는 없는 게 당연하다.

동작도 중요하다. 같은 동작을 해도 멋지게 나오는 사람이 심판을 볼 때 선수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

/ 이해준 일간스포츠 기자

부상선수를 체크하는 것도 심판의 몫이다. ⓒ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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