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이 좋아서 효자동을 떠나지 않는 신혼부부의 작고 귀여운 집이 있다. 느림의 미학이 실현된 그들의 집에는 여유와 행복이 가득하다.
효자동 작은 골목의 아담하고 귀여운 한옥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칼럼 취재차 만난 데미타세 김연화 실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보여주고 싶은 집이 있다며 그녀와 이웃을 맺은 블로그에 구경가게 된 것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찍은 사진이었는데, 부부의 발이 살짝 걸리게 찍은 침실 컷에선 청결해 보이는 하얀 침대 시트, 책과 CD를 꽂은 키 작은 책장 위에 올려둔 티볼리 오디오가 보였고 행복함이 느껴지는 짧은 글까지 덧붙여져 있었다. 감각적인 사진과 마음에 와닿는 글에 그들이 궁금해진 에디터는 집을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을 비쳤고, 어둑해진 평일 저녁 효자동 깊이 숨은 그들의 집을 찾아갔다. 검은 철문을 열자 따스한 노란빛이 새어나왔고, 칼라 브루니의 읊조리듯 나직한 멜로디가 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커피 드실래요? 원래 다른 메뉴도 되는데, 지금은 오늘의 커피만 드릴 수 있어요.”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린 장본인이자 집의 안주인인 언정 씨가 원두를 갈아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리는 동안, 15평에 불과한 집 구경은 금세 끝나고 말았지만 이 귀여운 집에 대한 애정이 새록새록 커졌다.
1부부의 드레싱 룸. 소파와 옷장, 서랍장은 모두 이케아 제품이며 소파 위의 사각 니트 쿠션은 솜씨 좋은 시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신 것이다. 2 효자동에 살면서 삶의 여유를 새삼 느끼고 있다는 유준영·이언정 씨 부부. 준영 씨는 언정 씨를 만나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사당동에서 옥인동 그리고 지금은 효자동으로 이사했고, DIY 수업을 들으면서 가구도 만들기 시작했다. 2침실 쪽에서 바라본 다이닝 리빙 룸. 천장의 서까래가 보이고 그 너머 남편 준영 씨가 작접 만든 커다란 테이블이 보인다. 문을 열자마자 집 안이 바로 보이는 것이 싫어 가벽을 세우고 책장을 짜넣었다.
그들이 이 집을 사게 된 것은 순전히 언정 씨 때문이란다. 꽃다운 20세에 서울 생활을 효자동에서 시작한 언정 씨는 느리지만 따스한 정이 있는 동네가 맘에 들었고 신혼집도 길 건너 옥인동으로 얻었다. 세모난 천장에 나무 서까래가 보이는 집을 꿈꾸던 그녀에게 효자동의 한옥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갖게 된 부부의 첫 집은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허름한 주방, 가로로 긴 방이 전부였는데 직접 도면을 그리고 신혼집 가구의 치수를 재어가며 골똘히 고민한 끝에 이 집이 완성된 것이다. 가로로 긴 방을 분할해 주방을 만들고 부부 침실을 마련했고, 남편이 헤펠레(Hafele)의 목공교실을 다니며 만든 커다란 집성목 테이블을 주방 앞에 놓아서 넉넉한 다이닝 공간을 만들었다. 남편은 선반 아래 걸어둔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책을 볼 수 있어 거실을 좋아하고, 아내는 서까래가 있는 주방을 가장 좋아한다. “가장 공들인 부분은 아무래도 주방 천장이었어요. 한옥이니까 서까래와 보가 있겠다는 확신에 천장을 뜯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드레싱 룸의 천장은 다시 막았고, 주방쪽의 서까래와 보는 꼼꼼하게 보수를 했죠.”
1, 2 슬라이딩 도어 너머로 블로그 사진에서 보았던 침실이 나타났다. 청결한 느낌의 침구 시트가 정돈되어 있고, 키 작은 책장에는 갖가지 음반들이 꽂혀 있다. 3 빛이 새어들어와 환한 욕실. 심야 전기를 밤새 돌려 아침이면 집이 훈훈해지지만, 욕실은 정신이 확 깰 만큼 공기가 차갑다. 4 침실 앞에 놓은 칠판.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커피 메뉴가 적혀 있다.
카페처럼 다정한 느낌을 주는 슬라이딩 도어는 사실 예산 절감을 위해 선택한 것이다. 공간을 분할하면서 벽을 세우게 되면 많은 비용이 필요했고 채광도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동향으로 지어진 한옥이라 오전과 점심나절이 지나면 빛이 넉넉하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창고로 쓰고 있는 화장실 뒷편의 베란다가 가장 채광이 좋을 정도다. 향후 집값이 올라 자산 가치를 높여줄 아파트도 아닌 데다, 어른들이 무조건 고집하는 남향의 집도 아니다. 도곡동의 회사까지는 출퇴근 거리가 꽤 되고, 장을 보러 가려면 사직동의 마트까지 가야 한다. 대신 그들 부부에게는 여유가 있다. 고요하고 나무가 우거진 청와대길을 산책하고, 주말에는 부암동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 일상이 더 행복하다. 느림의 미학을 인정하고 즐길 줄 아는 작은 한옥집에는 달콤한 냄새가 폴폴 풍긴다.
1 거실 식탁에서 주방을 바라본 모습. 준영 씨가 와인을 좋아해서 와인잔이 한가득이며, 냉장고 옆에는 그날그날의 지출을 기록하는 현명한 가계부가 붙어 있다. 2 창문을 열면 가로로 긴 창고가 나타난다. 실은 그 장소가 채광이 가장 좋은 곳이다. 3 현관문 열자마자 보이는 벽. 거실의 책장 바로 뒷부분인 셈이다. 이 작은 봉에 장바구니용 가방이나 줄넘기, 우산, 차 키를 걸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