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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선생에 대한 간략한 소개
이정우 선생은 박홍규 선생 밑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를 하면서 본격적인 학문생활을 시작했습니다(85년 학위취득). 사실 박홍규 지도하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는 거의 전무합니다. 박홍규 자신이 거의 플라톤을 다루고 따라서 으레 지도학생들도 플라톤을 다루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공대생이라는 그의 배경이 플라톤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흥미를 느끼게 한 듯 합니다. 박홍규 선생이 학문 자체에 철저한 분인데 이정우 선생은 그 분의 감화를 받아 철학에 입문했고 그 분 밑에 있었다는 것은, 이정우 선생이 오늘날 항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학문을 행하는데 있어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좋은 선생이 있고 학생이 그에 충실히 따른다면 추후에는 그 자신이 또 좋은 선생이 되는 것이죠. 이정우 선생은 현재 희랍철학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간간히 희랍철학에 대한 깊은 조예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러한 학문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홍규 선생 정년 이후, 이정우 선생은 박홍규 선생에게서 배운 존재론적 사유를 토대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푸코·들뢰즈 등의 프랑스철학에 천착했고 그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땄습니다(94년 학위취득). 그리고 본격적인 학자생활 이후에는 동북아 사유 쪽에도 눈을 돌렸습니다. 그는 폐쇄되고 경직된 강단철학계에서 자신의 사유를 펼치는 데 한계가 있자 교수직에서 물러나 사설교육기관인 철학아카데미를 설립하였고 이후 동서와 분과학문을 넘나드는 깊고 풍부한 사유를 계속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그는 독일 관념론이나 영미 분석철학이 주류를 이루던 철학계에서 프랑스 철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부상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으며, 특히나 김재인, 이진경과의 들뢰즈 논쟁은 많은 철학도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현재 이정우 선생은 박홍규 선생과 자신이 직접 대화하는 방식에 보다 발전된 존재론적 사유를 담아내는 연구, 그리고 들뢰즈를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 해석하는 연구를 중점적으로 해나가고 있습니다.
*북새통 2006년 4월호 인터뷰
자유의 정신, 격자화되기를 거부하는-철학아카데미 공동대표 이정우
이정우 약력
1959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공학과 미학을 공부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은 <담론의 공간>으로 출간되었다.
1995년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취임했으며, 1997년에는 90년대 한국사회의 문학적 모순을 다룬 『가로지르기』를 출간했다. 1998년 서강대학교에서 사임했으며, 2000년 최초의 대안철학학교인 철학아카데미를 창설해 현재까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 사이 전통 - 근대 - 탈근대의 문제를 다룬『인간의 얼굴』을 출간했으며,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특강을 실시, 그 결과가『시뮬라크르의 시대』『삶, 죽음, 운명』『접힘과 펼쳐짐』 『주름, 갈래, 울림』으로 출간되어 나왔다. 『기술과 운명』『개념 - 뿌리들』 1,2권을 출간했다.
이번에 출간하신 『탐독』을 잘 읽었습니다. 부제가 ‘유목적 사유의 탄생’이라고 되어 있는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요?
지금은 ‘철학’이라는 말이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원래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특정한 대학이나 전공 등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사유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근대 대학제도가 창설되면서 대학이나 전공을 선택해서 그것에만 몰두하게 되는, 즉 기능적 지식인들이 양산되었습니다.
근대의 체계나 대학제도가 그어 놓은 기능적 격자들에 구애받지 않는 사고, 격자들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보다는 자기의 관심사나 생각을 가지고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사색하며 글을 쓰는 방식을 저는 유목적 사유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탐독』은 한편으로는 독서 에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문학과 철학에서의 핵심 내용들, 제가 읽어 온 책들의 핵심 사상, 저에게 영향을 주고 지금까지 제가 사고해 오고 있는, 저를 만들어 온 사상들과 사유에 대한 기록입니다.
출간하신 저서 중에 『가로지르기』란 책이 있는데.
『가로지르기』는 1997에 출간한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격자에 구애받지 않는 학문방식, 학문 스타일을 이야기했죠. 어떻게 보면 『가로지르기』와 『탐독』은 쌍둥이처럼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로지른다는 것이 학문과 학문, 사유와 사유 사이의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하셨는데, 현실적으로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학문과 학문 사이, 혹은 어떤 직업과 직업 사이를 가로지른다는 것이 쉬운 일 같지는 않습니다.
학문과 학문을 가로지르는 것하고 직업과 직업을 가로지르는 것은 상당히 다른 것이라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학문의 세계를 가로지른다는 것은 언어의 세계, 곧 사유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것이고, 직업의 세계를 가로지른다는 것은 사유나 언어의 차이뿐만 아니라 실제 현실세계를 가로지른다는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직업의 세계를 가로지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가로지르기’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담론 세계, 언어의 세계, 학문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로지르기라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전공을 부정하기보다는 전공 자체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어떤 일정한 주제나 방법, 사유 스타일이 없이 이것저것 한다는 막연한 의미의 가로지르기가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가로지른다는 것은 기존의 다른 사람들이 분절해 놓은 전공과는 다른, 어떤 독특한 전공을 창조하는 것이죠. 가로지르기는 격자화되기를 거부하는 자유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구할 수 있는 삶의 태도인 것입니다.
우리의 철학은 서구의 이론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고들 합니다. 선생님의 논지로 본다면 지금의 우리 철학은 가로지르기를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나요?
가로지르기에도 여러 가지 맥락이 있습니다. 주제별, 영역별, 개념별 등 많이 있는데, 지금의 물음은 지역의 문제이겠죠. 우리 같은 경우는 근대 이후에 학문을 주재해 온 서구 중 한 나라, 더 엄밀히 말하면 서구의 한 언어권(영어권, 독일어권 등등)을 선택해서 그 테두리 안에 침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한국에서 주체적인 사상이나 철학이 나오게 될 기본조건입니다. 그 벽을 돌파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학자나 사상가들은 영원히 특정한 한 언어권에서 이루어진 성과를 전달해 주고 소개해 주고 재현하는, 전달자라는 틀을 벗어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죠. 그 돌파의 전제조건은 번역이겠죠.
여러 언어권의 저작에 대한 믿을 만한 번역본들이 나와 있다면, 그 다음에는 우리가 그 번역본들을 가지고 자기 사유를 할 수 있게 되겠지요.
우리의 번역 수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번역의 양과 질이 좋아졌고, 그래서 우리나라도 이제는 그저 어느 언어권을 선택해서 오로지 그 텍스트에 매몰되는 그런 레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이,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마련되었다고 봅니다. 일본하고 비교하면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일본은 노력을 엄청 해 왔지요.
그래서 믿을 만한 번역이 축적이 되었고, 8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굳이 서양의 것을 따라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는 문턱에 와 있습니다. 다만 과감하게 그 문턱을 넘어서는 노력이 부족하지요. 과감하게 모험을 하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무언가 창조하겠다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글쎄요. 이전에 해 왔던 타성 때문인지…….
과감하게 모험을 한다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나는 독일철학이다, 영국철학이다, 또는 근대 헤겔 전공자다, 하는 방식으로 더 이상 사유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와 체험들을 중심에 놓고, 언어권과 시대에 관계없이 광범위하게 지식을 섭렵해서 자기 문제와 체험을 주체적인 사유로써 언어화해야 한다는 것이죠.
단번에 서양철학의 거장과 같은 수준에 이르는 것은 아니더라도 일단 시작을 해야 합니다. 조금 서투르고 부족하더라도 후배들이 그것을 보고 넘을 수 있도록. 영원히 멈칫멈칫하면서 안 하고 있는 것이 우리 실정이죠.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시다가 3년 만에 사임하셨는데, 이유는?
학문적인 것과 비학문적인 이유가 있는데, 비학문적인 이유는 굳이 말씀드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학문적인 이유를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이라는 공간 속에서 자기 생각을 하고 자기 사유를 하기가 굉장히 힘들게 되어 있습니다.
전공 영역이라는 것이 소유의 개념으로 딱딱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막말로 하면 밥그릇도 걸려 있기 때문에 굉장히 갑갑합니다. 교수가 되기 전에는 교수에 대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되고 나니 정말 내가 생각한 교수의 꿈은 하나의 환상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여기서 박제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철학교육의 문제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고등학교에 철학 과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 나이면 서서히 철학적 의문이 생길 때인데 그것을 채워 줄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있고, 설사 되어 있다 하더라도 모든 교육이 입시 위주로 가니까 정상적인 교육이 안 되는 것이죠.
옛날만 하더라도 대학에 들어오면 철학을 공부했죠. 하다못해 하는 척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조차 없어요. 대학이 완전히 옛날하고는 판이한 성격의 공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죠. 현행 교육제도에서는 체계적인 철학교육을 받을 조건은 없다고 봐야죠. 완전히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철학의 대중화를 많이 생각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철학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계신 것도 그런 측면인 것 같은데, 철학의 대중화가 과연 가능한지, 또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대중화가 되어야겠지요. 대중화라는 방식을 음악으로 비유하면 사람들에게 고전음악을 들을 기회를 많이 주고, 해설도 많이 해 주면서 친절하게 이끌어 주는 방식이 있겠고, 또 하나는 예컨대 30분짜리 교향곡을 3분짜리로 압축하여 틀어 주는 게 있겠죠. 두 가지 방법 중 후자의 방법은 굉장히 안 좋은 방법이죠. 차라리 모르는 게 낫지요.
저는 대중화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독을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상업주의적이고 빗나간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어요. 그럴 바에는 안 하는 게 낫습니다. 원래의 것을 보존하면서 사람들에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마련해 주고, 접할 수 있는 단계를 친절하게 만들어 주는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해야만 합니다.
선생님의 철학의 근본으로 삼고 있는, 혹은 사상적 원류로 생각하는 철학자가 있다면?
저는 박홍규 선생님을 만나서 학문을 배웠고, 그것이 저에게는 학문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박홍규 선생님의 학문은 플라톤에서부터 베르그송에 이르기까지 전개되어 온 서양의 존재론사가 핵이지요. 그러다 보니 저 자신에게도 그게 하나의 핵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사회적인 사건과 그에 대한 역사의식 형성에 영향을 준 마르크스나 푸코 같은 정치사상가나 사회사상가들이 중요한 축이 되지요.
한국철학의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한국철학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굳이 구분한다면 한자 공용권, 한자를 사용하는 동북아 문화권에는 어느 정도 의미를 두죠. 해서 동북아 한자 문명이 근대 문명, 특히 서구 중심으로 이뤄진 문명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현실을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또 내가 여기 사람이라고 해서 그걸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안 가지는 것이 좋지요. 자칫하면 그게 거꾸로 위험한 것이 됩니다. 서구에 종속된 것이나 우리 것에 집착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봅니다.
그래도 어쨌든 서구 일변도로 일방적으로 진행되어 온 근현대사의 흐름에서 우리 사회가 가진 고유의 특색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이 일정 정도 개입하면 상당 부분 학문이나 문화 발전에 공헌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지요.
이화여대에서의 강의 내용을 엮은 『시뮬라크르의 시대』와 『삶·죽음.운명』이라는 두 권의 책을 『사건의 철학』으로 묶어 다시 출간하셨는데, 사건이라는 말의 의미와 중요성이 무엇인지요?
전통철학은, 이 말도 너무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현상들을 영원한 원리에 흡수시켜서 이해합니다. 반면에 제반 사건들을 영구불변의 신과 같은 것에 귀속시켜서 이해하기보다는 그것이 현실 속에서 가지는 의미 자체를 포착하는 것이 니체 이후의 현대철학의 입장이지요.
쉽게 말해서 생성, 사건, 과정 같은 것을 영원한 것에 빗대서 순간적이고 허무한 것이라고 폄하하기보다는 그것의 실재적 의미를 살려내자는 것이 ‘사건의 철학’이죠.
모든 사건이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 않나요?
‘모든 사건이 의미가 없다’고 말할 때는 이미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을 가르고 있는 것이거든요. 의미가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을 가르는 그 방식 자체가 사실은 항구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르는 기준 자체가 어떻게 형성이 되고, 어떻게 변해 왔는가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청소년기에 영향을 받은 책은?
중학교 때 감동적으로 읽은 것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였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땐 입시공부 때문에 많이 읽지 못했고, 대학에 들어가서 읽었던 것은 카뮈의 『이방인』이었죠. 뒤에 철학 공부를 하게 되면서 박홍규 선생님의 글이라든가, 푸코나 베르그송이 제게 영향을 많이 끼쳤지요.
공대를 진학하셨었는데, 철학을 하시게 된 계기는?
공대를 다니면서 공학보다는 물리학과 같은 순수과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죠. 저는 실용적으로 응용하는 것보다는 사유하고 이론화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성격이에요. 그러다 보니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더 나아가 철학을 하게 되었죠.
또 하나는 1980년대는 격동의 시절이었기 때문에 역사라든가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테두리가 지워진 갑갑한 사회보다 조금 더 나은 인간이나 역사에 대해 사유하고 싶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핵심적인 이유였던 것 같아요.
철학으로 방향을 바꾸고 대학교수도 사임하신 걸 보면 남들이 하기 힘든 결정들만 하셨던 것 같은데요.
사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인데, 굳이 말하자면 어떤 하나의 길을 굉장히 집요하게 이어 온 것 같아요. 그 길이라는 것을 딱 꼬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어떤 문화적인 성취에 대한 욕망이지요. 음악 같으면 위대한 곡을 쓰고 싶은 게 될 것이고, 소설이라면 위대한 작품이겠죠.
여하튼 문화적인, 학문적인, 사상적인 것에서 위대한 것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 있었고, 내가 사는 현실이 그 욕망을 방해하거나 장애가 되었을 때 그 현실을 버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과감히 그걸 포기했던 것 같아요. 안정적인 현실을 계속 포기하면서 오로지 내 길을 가고 싶어서 여태 오지 않았나 합니다. 어찌 보면 그래서 고생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렇게 살아 온 것 같아요.
청소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세상을 비판적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매몰되지 말라는 것이죠. 세상이 이렇게 굴러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끝없이 생각하고 비판하고, 또 책을 읽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책이거든요.
철학 아카데미를 운영하시면서 좋았던 일이나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기분이 좋은 것은 역시 여기 오시는 분들이 강의를 열심히 듣고, 열정적으로 배우는 것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하지요. 그런 게 저에게는 즐겁고 좋은 일입니다.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는데, 저는 그저 강의만 하니까 모르지만, 아마 있다면 재정 문제겠죠. 하지만 이 일이 즐겁고, 하는 보람도 있고, 사람들도 모두 즐겁게 공부하는 걸 보면 돈이 뭐 문제가 될까요.
철학자의 입장에서 요즘 사회를 진단한다면?
사회를 이끄는 뚜렷한 가치관이 상실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돈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권력으로 군림하는 사회에서 뚜렷한 가치관이 없다 보니까 아주 오락적인 것들, 스포츠라든가 연예인들에게 빠지면서 판타지가 현실보다 더 위에 서는 그런 세상이 왔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로서도 상당히 혼란스럽고 방향이 안 잡히는 게 많은 것 같아요.
계획하고 계신 책이나 활동이 있다면?
두 가지 축이 있습니다. 하나는 박홍규 선생님의 존재론을 이어받아서 계속 존재론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제가 80년대에 겪었던 정치적 분위기나 상황, 사건들의 논의를 발전시켜 신자유주의 문제라든가 미국의 지배, 동북아 국가끼리의 갈등문제 등등을 국제정치로 이어갈 생각입니다.
존재론 쪽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박홍규 선생님과 제가 대화하는 방식으로 쓰고 있고, 정치 쪽은 『천 개의 고원』을 윤리학 쪽으로 해석해 보려고 합니다.
장시간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