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엿보기
모나크 나비처럼(한국문연)
한영채
경북 경주 출생. 2006년 《문학예술》로 등단. 시집으로 『모량시편』, 『신화마을』, 『골목 안 문장들』이 있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모나크 나비처럼」이라는 작품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이 시에서 표상되는 “모나크 나비”는 텍스트 자체에 대한 은유가 되기도 하지만, 시인, 예술가의 영혼이나 현신現身을 표상하는 메타포가 되기도 한다. “그녀 손길이 키워 낸 은색 실크 무늬”의 부드러운 결과 섬세한 문양을 조심스레 더듬어 보기로 한다.
검은 건반 위에 앉은 그녀
손가락 다섯이 둘 되어 건반 위에 논다
한번 오지게 피고 싶지만
웅크린 채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오른쪽 날개가 기우뚱
바람에 푸득인다
바람이 부는 대로 휘청이지만
모나코로 모나코로 푸른 죽지로 날고 싶은
아장아장 검은 건반을 밟는다
흰 건반이 리듬을 탄다
고개 숙인 고요의 시간
뒤뚱거리는 하루가 우울하다
피아노 앞에 앉은 번데기였다가
나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녀 손길이 키워 낸 은색 실크 무늬를
상처 난 푸른 날개에 심는다
날개가 건반 위에 춤춘다
바닥을 차오르며 징검다리 건너
음표는 활주로를 찾는다
모나크 나비처럼 무대로 선다
-「모나크 나비처럼」 부분
“검은 건반 위에 앉은 그녀”에 관한 도입부의 묘사는 “피아노 앞에 앉은 번데기”에 이어 “호랑 무늬 나비 한 마리”의 움직임으로 이내 전치된다. 이 작품에서는 이미지의 묘사가 중첩되어 있으며, 시인은 이행의 시간들을 포착하여 섬세하게 묘사된다. 예컨대, “바람에 푸득 거린다”, “웅크린 채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데다가, 나비의 “오른쪽 날개가 기우뚱”거리는가 하면, “바람이 부는 대로 휘청”거리기까지 하는 등 상황 자체가 매우 위태롭게 묘사되고 있다. 바람에 이리저리 불안하게 흔들리는 나비의 모습은 이처럼 나약하고 불안정하며, 미성숙하게 줄곧 묘사, 진술되고 있는 것이다. “아장아장 검은 건반을 밟는”, “그녀”의 손길은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아기의 몸짓처럼 “기우뚱”하고 마냥 불안하다. 나비를 바라보는 시적 주체, 화자의 시선 또한 그러한 상황을 내심 걱정과 동시에 불안해하지만, 카메라의 앵글처럼 연신 나비의 뒤를 놓치지 않고 따라 잡는 데에도 여념이 없다. 봄날, 유채꽃밭에서 배추흰나비를 쫒아가는 아이의 시선과 몸짓처럼, 시인은 나비의 뒤를 쫒는다. 그러나 하필 “오른쪽 날개가 기우뚱”한 나비, 곧 쓰러질 것 같은 그녀의 뒤를 쫒는 것인데, 시인의 마음은 다친 날개가 추락이라도 할까 연신 불안하고도 조심스럽다. 시인은 나비의 마음, 불안한 시선을 포기하거나 단념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뒤쫒아 가며 읽어낸다. 나비의 마음 즉 그녀의 의지는 곧 시인의 마음과 의지이기도 하다.
-김효은(문학평론가), 시집해설 「희망이라는 파르마콘, 그 슬픔의 알을 깨우는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