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흑산도 여행기
-여행동선:일산->서해안고속도로->목포연안여객터미널->
홍도->깃대봉->홍도 북항->
대흑산도항->흑산도 택시투어->목포연안여객터미널->일산
-여행일:2018.08.01~08.03
*여행기 작성일:2019년 1월13일
가마솥 더위로 뜨거웠던 지난여름 8월 첫날의 바다는 잠잠하여
흑산도를 거쳐 홍도로 가는 배는 아침 7시40분에 정상 출항했습니다.
그 옛 초겨울 어느날,거친 북풍을 뚫고
'푸른바다와 붉은바다,검은바다와 하얀바다'를 헤치고
흑산도로 유배갔던 손암 정약전이 건넜던 그 바다를 건너가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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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한지 100년이 훌쩍 넘은 목포항은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의 잔재를 고스란히 품고 서남해안의
어업 전진기지로 섬과 섬을 연결하는 관문으로 묵묵히
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목포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출항을 기다리는 쾌속선들이 시동을 겁니다.
흑산도와 홍도로 출항하는 배편은 오전 7시40분과
오후 1시에 출발하는 하루 두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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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산맥의 큰 줄기가 무안반도 남단에 이르러
마지막 용솟음을 한 노령산맥의 맨 마지막 봉우리이자
다도해로 이어지는 서남단의 땅끝으로 이어지는 유달산을 뒤로하고
쾌속선은 짙푸른 바다위를 미끄러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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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망망대해
혼자서 애태우며 출렁거리는 일이다.
(....)
생은 비늘처럼 부서지기만 반복한다
몸통인 듯 발인 듯 해저까지 딛고서
그래,생은 영원히 흔들리는 망망대해라며
횡으로 길게 입을 다물면
어떤 이는 구부러지지 않는 삶으로 읽는다
-김윤현,<수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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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를 만나는 것이 만만찮은것은
목포에서 115km,흑산도에서 22km 떨어져 있는 먼섬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바람이 거세지않고 날씨가 좋아야만 닿을 수 있는 섬으로
목포 연안여객터미널을 출항한 쾌속선은 약 2시간20여분을 내달려
이곳 홍도 북항에 무사히 닻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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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북항 선착장에 내려 1구 마을을 지나,
홍도분교를 따라 난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깃대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옵니다.
가파른 오르막으로 계단을 설치했지만 폭염에
휴가철 성수기에도 깃대봉으로 오르는 사람들은 드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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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대봉으로 오르는 초입,가파른 언덕 절벽에
원추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홍도의 특산종으로 일반 원추리보다 꽃이 크고 색깔도 선명하여
저녁에 보면 밤하늘 별들이
모두 홍도에 내려앉은 듯한 장관을 연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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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홍도의 해안선은 하늘과 맞닿아 끝없이 푸르렀고
폭염에 산을 오르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이따금 불어오는 해풍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고,섬이 안온하고 편안해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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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꽃은 제 가슴을 찢고 나와 핀다
꽂에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절벽이다
-반칠환,<두엄,화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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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대봉으로 오르는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홍도의 관문인 북항과 1구마을 집들 지붕이
섬의 이름처럼 붉디붉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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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타오르는 열기에 모든게 멈춰있는듯 합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추억속으로 살며시 들어가
지나온 시간을 반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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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에도 시들지 않는 도도함으로 꽃들은 꿋꿋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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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대봉까지는 약1시간30분이 소요되는데
한여름 땡볕에 산을 오르는것이 무척 곤혹스러웠지만
이곳에서부터 깃대봉까지는 울창한 동백숲으로 이어져
그나마 조금 수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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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인간적인 높이에서 지각되는 어떤 세계를 기억하기 위한,
휴식,말,혹은 목적 없는 거닐음에로의 고요한 초대이다."
-르 브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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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숲속에 햇살한점 내려앉았고
나뭇잎에 바람 한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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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섬,신비롭고 외로운 섬,
깃대봉으로 오르면서 내려다 본 홍도는 고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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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속에서도 오래 서 있었던 건
울창한 숲과 바다가 더 짚푸른 까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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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전체가 천연보호구역인 홍도는
보통 유람선으로 섬 한바퀴를 도는 해상관광이 유명하지만
홍도의 진수를 만나려면 역시 이곳 깃대봉을 오르면서 만나는
홍도의 숨겨진 속살을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홍갈색을 띤 규암질의 저 바위섬들이 해질녘이면 붉은 색으로
변한다고 해서'홍도'라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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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터널을 빠져나와 정상 부근에 다다르니
왜 이곳 깃대봉이 100대 명산에 드는지 그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시야가 탁트이면서 푸른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내게,바다가 마음을 헹구고 위안을 얻는 곳이라면
땀흘리며 오르는 산은 내일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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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의 푸름,하늘로 녹아드는 듯한 땅의 푸름은
그보다 더 깊고 더 몽환적이고 더 멜랑콜리한 푸름,
우리가 몇 킬로미터나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장소에서도
제일 먼 영역을 물들인 푸름,먼 곳의 푸름이다.
이 빛,우리를 건드리지 못하는 빛,사라지는 빛,
이 빛이 우리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안겨주며,
세상의 아름다움은 정말로 많은 부분이 그 푸른 빛 속에 있다."
-리베카 솔닛,<길 잃기 안내서>중,(김명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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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
이를테면,안개같은 것.
흔들리는 것.
심연을 지나,묻는 것.
- 엄경섭,<흔들리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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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한라산이 부럽지 않다는 섬마을 명산 홍도 깃대봉은
섬에 있는 산 가운데 제주도 한라산,울릉도 성인봉과 더불어
산림청이 뽑은'한국의 100대 명산'에 포함되어 있는 명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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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저 바다를 건너와 이곳 홍도 깃대봉에 섰습니다.
사람들이 남서쪽 끝자락에 떠있는 이 작은 섬을
왜 그토록 가보고 싶어하는지 깃대봉 정상에 오르니
그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폭염에 흠뻑 젖은 땀을 저 건너 해무에 잠긴 흑산도를 넘어온
동풍이 씻어줍니다.바람이 달디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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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뭇잎에는
나뭇잎 크기의 햇살이 얹혀 있고
눈물에는 눈물 크기만한 바다가 잠겨 있다
-유재영,<또 다른 세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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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는 면적이 약 6.47㎢에 불과한 작은섬이지만
기암괴석과 수려한 풍광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홍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유람선을 타고 홍도 33경을 보는 것인데
깃대봉에서 하산 후,홍도 13경이라는 저 시루떡바위를 뒤로하고
서둘러 호후 3시40분에 출항하는 흑산도행 배에 오릅니다.
혹시 홍도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은
홍도에서 1박 후, 다음날 흑산도로 가거나 흑산도를 먼저 본 후
홍도로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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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늘 앞으로 뻗어 있어서 지나온 길들은 쉽게 잊히지만
돌아올때는 지나온 길이 앞으로 뻗었고 갈때 앞으로 뻗어 있던 길이 다시 잊혔다.
길은 늘 그 위를 걸음으로 디뎌서 가는 사람의 것이었고 가는 동안만의 것이어서
가고나면 길의 기억은 가물거려서 돌이켜 생각하기 어려웠다."
-김훈,<흑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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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해서
이름 붙여진 흑산도는 이곳 예리항이 관문입니다.
홍도에서 약 30분이면 도착하는 흑산도는
섬의 규모가 홍도에 비해 무척 큰섬이었습니다.
흑산도를 여행하는 방법은 버스,택시 투어,도보여행이있는데
무더위에 도보여행은 일찍감치 포기하고 택시를 탔는데
말그대로 주마간산식의 여행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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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는 시간 여유가 있다면
섬의 곳곳을 도보로 여행해보고 싶을 정도로 매혹의 섬이었습니다.
흑산도 관광은 택시나 버스를 타고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섬을 한바퀴 일주하는 코스입니다.
택시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이분께 예약하시길.
흑산도에서 태어나 흑산도를 너무 잘 아시는 조말례기사님
(사진 예쁘게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달라고 하셨는데
너무 늦게 올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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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정두수,<흑산도 아가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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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는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이 있었고 주인은 없었다."
-김훈,장편소설<흑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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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가 쌓아 올렸다는 반월성터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상라봉은 흑산도 최고의 조망 포인트였습니다.
예리항 앞바다와 12굽이 용고갯길,다도해를 수놓은
크고 작은 섬들 사이 수평선으로 해무속의 홍도가 아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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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속에 한반도 모양의 있는 '지도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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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물가에서부터 수심이 깊었다.
햇빛이 깊이 닿지 못해서 물색이 어두웠고,먼바다 쪽은 더 검었다.
검은 바다를 다 건너가려면 한평생으로도 모자라지만
검은 바다가 끝나면 푸른 바다가 열리고
푸른 바다를 건너가면 붉은 바다가 열리고
붉은 바다를 건너가면 하얀 바다가 열리는데,
하얀 바다는 바람의 나라라고..."
- 김훈,장편소설<흑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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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이름 모를 섬들,호젓한 고독도 감미로운 곳,
부드러운 바람만이 오고 가는 곳,
짙푸른 어둠과 미로속에서 찾으려던 꿈,
그 옛날 유배객들이 절망과 고통속에서 헤매였던 꿈,
그렇게 저 바다에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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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는 과거 유배의 섬이었습니다.
손암 정약전은 15년 유배생활동안 이곳에서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자산어보'를 집필했고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동생 정약용을
그리워했지만 결국 동생을 만나지 못하고
이 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면암 최익현도 강화도조약에 반발해
이곳에서 3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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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 선생의 유적지가 있는 산중턱에 자리잡은 사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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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 저 소나무 한그루처럼 살수 있으면 충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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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형제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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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롭게 보이는 바다,사시사철 푸르고 윤기나는 숲,
넉넉한 자연을 품고 있는 머나먼 남쪽의 섬,
그 섬이 흑산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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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섬의 발을 씻어 준다
돌발톱 밑
무좀 든 발가락 사이사이
불 꺼진 등대까지 씻어 준다
잘 살았다고
당신 있어 살았다고
지상의 마지막 부부처럼
섬이 바다의 발을 씻어 준다.
- 조 명,<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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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섬사람들의 것이지만 섬이름은 섬사람들의 것이 아닙니다.
섬을 부르는 이름에는 대부분 섬 바깥의 시선이 반영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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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몸 한가운데 불멸의 아귀
그곳에 홍어가 산다
극렬한 쾌락의 절정
여체의 정점에 드리운 죽음의 냄새
오랜 세월 미식가들은 탐닉해 왔다
홍어의 삭은 살점에서 피어나는 오묘한 냄새
온 우주를 빨아들일 듯한
여인의 둔덕에
코를 박고 취하고 싶은 날
홍어를 찾는 것은 아닐까
해풍에 단단해진 살덩이
두엄 속에서 곰삭은 홍어의 살점을 씹는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젊은 과부의 아찔한 음부 냄새
코는 곤두서고
아랫도리가 아릿하다
- 문혜진,<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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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뒤돌아보지 않기 위해 뒤돌아보는 내가 있다
-김선재,<언젠가의 석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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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섬 너머로 해가 저물면 섬의 하루도 비로소 저뭅니다.
저무는 바다 앞에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석양 앞에서는 왜 마음조차 더 유순해 지는지.
단 한순간이라도 온전히 마음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거스르지도 애쓰지도 않고,
그냥 마음가는 대로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자고
생각하지만 삶은 늘 녹록치 않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듯한,
그러나 가득한 곳이'흑산'의 바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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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선한
"허기는 욕망의 바탕이다."
-파스칼 키냐르,<심연들>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