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24:5]
이에 제비 뽑아 피차에 차등이 없이 나누었으니 이는 성소의 일을 다스리는 자와 하나님의 일을 다스리는 자가 엘르아살의 자손 중에도 있고 이다말의 자손 중에도 있음이라
이에 제비뽑아 피차에 차등이 없이 나누었으니 - '제비뽑기'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사용하던 방법이다. 한편 여기에서 '나누었으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흐레쿰'은 3인칭 복수 형태로서 이 동사의 주어가 다윗과 함께 사독과 아히멜렉임을 보여주고 있다.
즉, 다윗 왕은 사독과 아히멜렉의 입회하에 공정하게 제비를 뽑게 하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여기서 '피차에 차등이 없이 나누었다'는 말은 엘르아살 자손과 이다말 자손 간에 어떠한 차별도 없이 동등한 입장에서 제비를 뽑게 하였다는 말이다. 즉, 다시 말해서 이들은 서로 동등한 지위에서 24반열의 순번을 정하였다는 의미이다.
이상과 같이 비록 엘르아살이 아론을 계승하여 대제사장 직무를 수행했을지라도 다윗 왕은 엘르아살의 자손들과 이다말의 자손들에게 차등을 두지 않고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봉사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엘르아살 자손들에게 할당된 반차의 수가 이다말 자손들에게 할당된 반차의 수보다 많았던 것은 다만 당시 존재했던 가문의 숫자의 차이로 말미암은 것이었지 결코 다윗 왕이 그들을 차별함으로 인해 비롯된 결과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성소의 일을 다스리는 자와 하나님의 일을 다스리는 자 - 여기서 '성소의 일을 다스리는 자'와 '하나님의 일을 다스리는 자'는 동의 반복법적 표현으로서 궁극적으로 '대제사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본절을 통해 우리는 당시 엘르아살 자손들, 이다말 자손들에게 각각 한 명씩의 대제사장이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솔로몬 때에 아비아달 가문의 제사장직이 폐위되므로 인해 이다말 자손들의 제사장직이 끊기었다. 그것은 바로 엘리 제사장 집안의 죄악 때문이었다.
[눅 20:36]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천사와 동등이요 - 이는 앞절에서 언급된 바 곧 부활한 저세상에서는 결혼이 없다는 말에 대한 보충 설명이다. 결혼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출산을 통한 종족 보존에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새생명을 받아 불멸의 존재로 새로 탄생하는 성도들로서는 더이상 결혼이나 출산을 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천사들의 수효가 창세때로부터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듯이 부활의 생명을 받는 자들의 수효도 만세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더이상 수효를 보충해야 하는 부족함이 야기되지 않는다. 아울러 본문은 부활한 성도의 삶의 양태가 현세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