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호
윤판사의 희망 편지
1. 고통의 어둠 속에서 피어난 꽃 ~~ 윤재윤 님/ 판사
지난 6월29일은 삼풍백화점이 붕괴 사건이 일어난 10년 되는 날이었다.
그날 한 일간신문에 삼풍참사 10주년, 꽃피운 삼윤장학회 라는
제목의 짧은 기사가 실렸다.
삼윤장학회는 삼풍참사 때 세 딸을 잃은 정광진 변호사가
그 다음 해에 세 딸의 보상금과 사재를 털어 세운 장학재단이다.
그의 장녀인 고 정윤민 씨가 당시 국립맹학교 교사로 일했기 때문에
맹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립되었고, 세 딸의 이름을 합하여
이 장학회 이름을 삼윤 이라고 정했다.
이 장학회는 해마다 4.200만 원을 맹학교 학생들에게 전했고
지금까지 880명이 그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삼풍참사 때 나는 서울고등법원에 근무하고 있어 바로 눈앞에서
현장을 목격했다.
퇴근시간 무렵, 믿기 어려운 붕괴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붕괴 현장의 참혹함과 생사 확인을 하려는 가족들이 필사적인 몸부림,
더딘 구조작업의 안타까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평소 자주 들르던 백화점이었기에 내 충격은 더욱 켰다.
며칠 뒤 정 변호사가 세 딸을 한꺼번에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법조계에서 인간미 넘치는 소탈한 성품으로 존경받던 정 변호사에게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생명보다 소중한 세 딸을 동시에 잃은 슬픔과 고통은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그 뒤 정 변호사가 딸들을 기리며 장학회를 설립했다는 소문만 들었는데
그는 깊고 어두운 고통을 겪으면서도 오히려 남을 위해 장학회를 세우고
10년 동안이나 이 사업을 이끌어 온 것이다.
이 느낌은 성북동의 길상사를 찾았을 때 받았던 감동과 비숫했다.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유명한 요정이었는데
주인인 김영한 여사( 법명 吉祥華) 가 천억 원이 넘는 재산으르 법정스님에게
증여하여 도심 속의 사찰로 거듭난 곳이다.
7천 평에 이르는 경내에서 40여 채의 작은 집이 있어서
기도처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 들를 때마다 서울 한복판이란 사실을 잊을 정도로 숲이 우거지고
그윽하여 마음이 평안해지곤 한다.
숲 속 여기 저기에 편안한 모습으로 거니는 사람들을 보면 한 사람의
선행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유흥장소가 청정도량으로 바뀐 모습에서 물이 아니라
마음이 문제임을 깨닫기도 한다.
김여사는 길상사 개원법회에서 평생 어리석게만 살아왔는데
이 일을 해서 정말 마음이 편하다 과 말했다고 한다.
격변의 시대에 여자 혼자 대규모의 요정을 경영한 그녀의 삶에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80세가 넘어 외로운 삶을 정리하면서 남긴 것이기에 위 인사말이
법상치 않게 들린다.
어떤 이는 가장 세속적이었던 곳이 영적 중심지로 변화된 것을 가리켜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세속적~ 세상의 일반적인 풍습에 속하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둠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 잘못 없이도 환경이나 상황 때문에 어두운 경험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어둠은 피할 수 었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고통으로 인하여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지는가 하면
고통으로 상하고 파괴되기도 한다.
필립 얀시는 고통에 대하여 우리를 멈춰 세워 우리로 하여금
다른 가치를 생각하게 만드는 초월의 소리 라고 했다.
일부러 고통과 어둠을 찾을 필요야 없겠지만 우리 삶에 불가피하게 찾아오는
어둠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고통을 겪으면서 용기,희생, 너그러움,긍휼함과 같은 덕목을
배워 마음이 넓어진다.
※긍휼~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서 도와줌
고통의 현금이 아닌 금괴와 같아서 당장은 사용할 수 없고
쓸모없어 보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영혼을 진정으로 부유하게 하는 보물이다.
삼윤장학회와 길상사는 어둠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딘 두 분의 마음에서 피어난 꽃들이다.
그들이 마주했던 어둠의 깊이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그 꽃의 아름다운과 향기는 알 수 있다.
그 꽃으로 인하여 얼마나 만은 사람이 도움을 받고 희망을 갖게 되었는가.
때때로 이런 꽃향기를 맡을 수 있기에
세상살이가 아무리 험할지라도 살 만하다고 믿는다.
※길상사(吉祥사)
상서롭다~ 복되고 좋은 일이 있을 기미가 있다.
길상사의 역사
본래는 대원각 이라는 이름의 고급 요정이었으니
요정의 주인이었던 고 김영한 (1916~ 1999) 법명 길상화) 이 법정 스님에게 자신이
소유한 요정 부지를 시주하여 사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김영한은 일제 시대의 시인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등장하는 나타샤로 알려져 있으며
백석은 연인이었던 그녀에게 자야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처음 1985년에 김영한으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희사해 절을 짓게 해달라고 요청을
받고 법정은 이를 간곡히 사양하였으나.
김영한은 10년 가까이 법정을 찾아와 끈질기게 부탁했고
이에 법정 또한 이를 받아들여 1995년 6월 13일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하여 처음 사찰이 되었고 조대 주지로 현문이 취임하였다.
1997년에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재등록되었고
같은 해 2월 14일에 초대 주지로 청학이 취임하였다.
김영한은 평생 백석의 생일인 7월1일에는 식사를 하지 않았고,
길상사에 기부된 김영한의 대원각 재산은 시가 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그 많은 재산이 아깝지 않느냐 는 기자의 물음에 김영한은 1000억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하다 고 대답했다고 할 정도로 백석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1999년 11월14일에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유해를 눈이 오는 날
길상사 경내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길상사 경내의 길상헌 뒤쪽 언덕에는 김영한의 공덕비가 세워졌다.
1.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곤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고조곤히~ 고요히, 소리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