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통(答通) 도계서원 김섬, 김습 추배에 대한 익산향교 회답서 (1961년)
전북 정읍시 이평면 도계리에 있는 도계서원(道溪書院)은 정읍시 문화재자료 79호로 이희맹, 김제민, 최안, 김지수, 김제안, 김흔, 김섬, 김습 등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이를 기리는 서원이다. 이희맹은 조선 전기 문신이며 김종직의 제자로 성균관 재학시절부터 문장과 인품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성종 23년(1492)에 장원급제하여 등용되어 여러 벼슬자리를 거쳤다.
김제민(1527∼1599)은 이항(李恒)의 제자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임진왜란시 의병을 모아 왜군과 싸워 공을 세웠다. 현종 14년(1673)에 이희맹, 김제민과 더불어 조선 중기 의병장 최안과 조선 중기 문신 김지수를 모시기 위해 세워졌으며 그 이후 숙종 23년(1697)에 김제안을, 헌종 6년(1840)에 김흔을 추배(追配)하였으나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고 1913년에 유허비를 세웠다
본 사료는 1962년 4월 18일 도계서원 중건(重建)을 앞두고 고부향교(古阜鄕校)에서 김섬(金暹)과 김습(金習)의 위패를 추가(追加)로 모시고자 경통(敬通)을 통하여 익산향교에 의견을 묻자 익산향교 전교(典敎) 이종두, 유도회 지부장 김창원 등 관계자 36명이 연명(連名)하여 김섬, 김습의 업적를 기리기 위하여 위패를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는 결론을 담은 답통문서(答通文書)로 이로 인한 결정에 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유물명 : 답통(答通) ST832303 (익산향교 발행 문서)
- 유물명 : 답통(答通) ST832304 (임실향교 발행 문서)
- 유물명 : 답통(答通) ST832305 (진안향교 발행 문서)
- 김습(金習, 1574~1638) : 자(字)는 계응(季鷹)이며, 호(號)는 안식와(安息窩)이며 의성 김씨이다. 김제민(金齊閔)의 조카로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門人)이며, 문장(文章)과 학업(學業)이 크게 나아가니, 사림(士林)이 추중(推重)하였다.
곤궁(困窮)하게 살면서 효성을 다하여 시묘(侍墓) 하였고 말과 행동이 정대(正大)하니, 김장생(金長生)이 천거(薦擧)하여 경기전(慶基殿) 참봉(參奉), 태능참봉(泰陵參奉)에 제수되었으며 1636년인 인조(仁祖)14년(丙子)의 병자호란(丙子胡亂)에 의병(義兵)을 일으키다 도중에 병으로 집에 돌아 왔고, 1638년인 인조(仁祖) 16년에 세상을 떠났다.
- 김섬(金暹, 1560~1619) : 의성인((義城人)이다. 자(字)는 이승(李昇)이고, 호(號)는 퇴휴재(退休齋)이며, 김제민(金齊閔)의 다섯째 아들로 어려서부터 과묵하고 경학(經學)의 깊은 뜻을 관통(貫通)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모두 이재(異才)라 여기고 사림(士林)의 종장(宗匠)이 되리라 했다.
할머님을 정성껏 봉양하여 집안을 잘 지켰고 또 군곡을 모아 아버지의 진영(陣營)에 보냈으며 상(喪)을 당하자 시묘(侍墓)를 정성껏 하였다. 천거(薦擧)되어 선공감역(繕工監役), 군자감(軍資監) 부정(副正)에 제수되었으며 벼슬에서 물러나 천태산(天台山) 기슭에 집을 지어 퇴휴(退休)라 하고 학문에 정진하여 후 진양성에 온 힘을 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