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때 국왕은 일월신(日月神)에게 정초에 배례를 했으며, 팔월보름이면 달밤에 여성들이 길쌈을 끝내고 가무백희를 했는데 이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때 달을 즐기며 술을 벗삼아 완월장취(玩月長醉)하는 풍습이 전해졌다.
완월(玩月)의 완은 ‘완’(翫 : 가지고 놀 완)과 같은 뜻이며, 상월(賞月)로도 쓴다. ≪고려사 高麗史≫에 의하면 예종 2년(1107) “중추절이므로 왕이 문신들을 이끌고 중광(重光)의 편전에서 완월하며 영월시(詠月詩)를 지었다”고 하였다.(한민족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달을 보면서 춤도 추고 시도 짓고 즐기는 풍류의 뜻을 가진 단어다.
마산 완월동에서는 마산만에 휘영청 떠오른 밝은 달을 볼 수 있다.
부산 완월동에서는 부산만에 휘영청 떠오른 밝은 달을 볼 수 있다.
송도중학교는 그대로, 송도상고(商高)는 부산관광고로.
'송도입구'에서 하차를 하니 고신대복음병원의 거대한 건물이 보인다. 장기려박사~!
얼마만에 오는 송도인가?
송도는 무척 변해 있다. 내가 보고 기억하고 있는 송도가 아닌 낯선 송도이다.
보수천의 끝이 송도해변이었는데 그 물길이 보이지 않는다.
좁은 해안은 아주 넓어졌다. 케이블카가 있던 거북섬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송도와 암남공원을 구경할 수 있는 케이블카가 이색적이다.
구름산책로를 통해서 거북섬으로 갔다.
갈매기들, 관광객이 던지는 새우깡에 높이 날지 않는다.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의 꿈>.
높이 나는 새가......멀리 본다.
새우깡에 맛 들인 갈매기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
송도해변을 따라 걸었다.
암남공원으로 가는 갈맷길, 난 이 길을 처음 걷는다.
아버지는 이 길을 자주 걸으셨을 것이다. 이곳은 아버지의 낚시터였다.
불편한 몸으로 낚시장비와 아이스박스를 메고 절뚝이면서 걸으셨던 길.
아버지의 취미는 낚시와 온천장에서의 온천욕이 전부였다.
배움이 부족하고 가진 것은 없고 처자식은 먹어살려야 했던 시절, 그 암담함과 스트레스.
이 바다가 아버지를 위로하지 않았을까?
암남공원입구 주차장엔 낚시꾼들로 붐빈다.
고등어새끼(고도리)를 낚는다고 한다. 해가 졌다. 감천항까지의 갈맷길걷기는 다음으로.
다시 돌아갔다.
영도는 어둡다. 절영도쪽은 민간가 거의 없어 어둡다.
남항동쪽도 예전처럼 밝지는 않다.
1970년대 영도인구나 지금의 영도인구나 별차이가 없다. 10만이 조금 넘는다.
점차 감소하고 있다.
대평동이나 남항동에 있는 수리조선소나 한진중공업 같은 대형조선소를 다 철거하고
해양레저단지로 조성하는 것이 관광부산을 위해 좋을 것 같다.
아마 그렇게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송도해변을 지나고 남항대교 지났다.
부산공동어시장 가기 전에 허름한 횟집들. 자연산만 판다는 곳이다.
이곳은 아는 사람만 오는 곳이다.
충무새벽시장이나 충무해안시장이나 변함은 거의 없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와 마찬가지.
자갈치도 그렇다. 대형건물이 몇 곳 들어 섰지만 옛그림과 비슷하고 느낌도 그렇다.
향수.
그리움의 충족.
그래서 나는 이곳이 좋다.
18번완당집. 중학교 때 처음 먹어본 꿈 같은 신기한 맛.
예전 제일극장 앞의 이곳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완당이다. 지금도 맛 있다. 7,000원.
부평시장(깡통시장)에서 부산어묵을 샀다.
서울에 사는 고향친구에게 일부 택배로 보내고 몇 봉지는 배낭에 넣었다.
<마차중학교에서 전학, 1972년4월6일에 입학한 모교. 당시는 평준화로 토성중학교>

<오늘 걸었던 길. 다음엔 감천항까지>

<예전 케이블카 있던 거북섬으로 가는 길>

<구름산책로 전경>

<거북섬과 송도케이블카. 우측 해안선 따라 저 보이는 작은 섬까지. 암남공원입구까지>

<영도구 대평동, 영선동....우측로가 절영로....태종대 가는 길>

<동삼중리에 솟은 아파트, 밤에 불빛이 안보인다. 사람이 안 사는 모양이다>


<사람과 갈매기가 신났을까? 아니다. 새우깡 파는 아저씨가 신났다>



<단기 4294년이면 서기로.....1961년>

<송도 송림공원>

<송도해변, 예전엔 폭이 좁았었다. 생활하수 유입으로 악취도 심했고. 해수욕은 못했다>

<단속을 하는데...용왕신께 빌 일이 뭔가? 아직도 굿판이....>

<산책로를 잘 만들어 놓았다. 아버지는 바위를 비집고 절룩이면서 걸으셨겠지?>

<저 낚시꾼에게서 아버지의 그림자를 봤다>

<황사가 있는 날, 아쉽지만...남항대교가 보인다>




<암남공원입구 주차장/유료>

<촛불을 밝히고 용왕께 빌 일이 뭘까? 그저 인간의 욕심일까? 그냥 이해하자>

<불빛이 들어온다. 야경을 볼 수 있어 좋다. 게으름 피웠지만>

<남항대교 야경>

<산책로는 가로등이 있어 늦게까지 걸을 수 있다>



<야간의 송도해변. 젊은이들은 추위가 없다>

<가수 현인선생, 부산출신의 인테리였구나>


<구름산책로 야경>

<여러 색으로 변한다>

<남항대교 야경, 송도를 지나 자갈치로 가는 길에 봄>

<냉동창고건물, 방파제 구실을 하였다>




<이곳 횟집은 자연산만. 이곳서 오래 살았던 어부들이 운영하는 횟집>

<어시장은 새벽에 활기차고 밤엔 조용하다>

<충무새벽/해안시장...아직 여인숙이 있다니.....옛날 그대로이다>

<자갈치꼼장어거리>

<영도다리 야경이라고 찍었지만....롯데몰 자리에 부산시청이 있었다>

나는 강원도 영월군 북면 마차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마차국민학교를 졸업했고, 마차중학교 입학 후 한달 후 부산 토성중학교(구/현.경남중학교) 졸업.
국립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해운대구 우1동), 장전동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우1동과 장전동은 동래구였다.
지금은 해운대구 우1동, 금정구 장전동이다.
창원과 부산에서 직장생활했고,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서 2년, 강릉시 옥천동에서 1년 살았다.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에서 군생활했다.
1995년12월에 김해시로 이사, 현재까지 살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김해가 고향이겠지만 나에겐 영월과 부산이 고향이다.
첫댓글 잘봤습니당^^
저도 어린시절 남부민동에서
살았고 송도 토성동 부평동 자갈치
추억들이 함께했던 장소입니다
잠시 옛 생각해보면서~~ㅎㅎ
^*^ 남부민1동,,,2동,,,3동, 161번과 17번 버스.....아미동, 초장동, 충무동..다 같은 동네.
추억을 공감하여 주어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