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을 보겠습니다.
1 아내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비록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아내의 말없이 행하는 행실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2 그들은 여러분의 경건하고 순결한 행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어서 7절도 보겠습니다.
7 남편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도 아내가 여성으로서 자기보다 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사람으로 알고 존중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을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관습에 물들지 말고, 가정을 소중히 여겨서 남편과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절제되고 올바른 행실은 기독교인으로서 당연한 도리일 뿐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이방인들에게도 인정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3~16절도 보겠습니다.
13 여러분이 뜨거운 마음으로 선한 일을 하면, 누가 여러분을 해치겠습니까?
14 그러나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며, 흔들리지 마십시오."
15 다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하게 높이며, 여러분이 가진 소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하십시오.
16 그러나 온유와 두려움으로 답변하십시오.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비방한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팽창해가던 초창기에 교회는 생소한 문화로 많은 오해를 받았습니다. 당시 교회는 별도의 건물이 없이 교인들의 가정을 돌아가며 모임을 가졌습니다. 식사 때마다 시행했던 성찬식이 특히 오해를 불러왔습니다. 떡을 뗄 때마다 늘 선포된 말씀이 '받아먹어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라는 것이었고, 포도주를 나눌 때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나의 피다' 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어느 집에서 흘러나오는 이런 말을 들은 사람 중에 기독교인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오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오해를 해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런 식의 문화충돌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보여준 높은 도덕성과 어려움을 당한 이웃에게 내민 구제의 손길로 교회는 이방인들의 의혹의 시선을 상당 부분 떨쳐내고 점차로 제국 내에서 의로운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찬식 문제 뿐 아니라 유일신 종교인으로서 우상숭배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다신교를 믿는 이방인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의 이유와 소망을 묻는 사람들에게 언제든 답변할 수 있도록 늘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19~21절을 보겠습니다.
19 그는,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선포하셨습니다.
20 그 영들은, 옛적에 노아가 방주를 짓고 있는 동안에, 곧 하나님께서 아직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하지 않던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방주에 들어감으로써 물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21 그것은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 선한 양심을 가지려고, 하나님께 드리는 호소입니다.
예수께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선포하셨답니다. 개신교의 교리에는, 사람이 죽은 후에 갈 수 있는 곳으로 천국과 지옥 두 곳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그 중간단계가 있다고 암시하는 듯합니다. 천주교의 교리에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전통 교리는 과학과 합리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참고는 될 수 있겠으나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21절에는 세례문제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이, 베드로전서가 세례예식 때 참석자들에게 주는 말씀으로 보는 이유가 되는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