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연복 엮음(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첫째 마당: 기도란 무엇인가?
1. 기도/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노예살이하던 히브리인들은
천대와 강제노역에서 벗어나고자
해방의 염원과 소망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그 울부짖음은 급기야 하느님께 미치고
하느님을 감동시키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히브리인들의 염원과 소망을 모아
파라오의 군대를 바다 속에 쓸어넣고
압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해방된 모세와 히브리인들은
야훼께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출애 15:1-18).
예수께서는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조르는 제자들에게
“주의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하느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십니다(마태 6:9-13).
하느님은 본시 착하고 어진 사람들인 우리
노동하는 인간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께
우리와 사회에 진정 유익한 모든 것을 간청할 수 있고,
어머니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간청이 간절하면
그 간청을 모두 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한분 아버지의 똑같은 자녀들인
우리 노동하는 인간들이 서로 아끼고 위해주며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기도하고,
개인적 이기주의와 집단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라고 기도하고,
개인적 범죄와 사회적 범죄에서
해방시켜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면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또한 돈을 인간이나 하느님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회의
우상숭배를 쳐부실 수 있게 해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노동하는 인간들은
우리의 염원과 간청을 아버지께서 들어주실 때마다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드리며,
더욱 더 완전한 해방과 구원을 내려주시도록
기도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 노동자는 작업대를 제대(祭臺)로 삼아
우리의 노동을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일과 기도를 통일시켜야 할 것입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엮음, [예수님과 함께], 일과놀이, 178-180쪽.)
2. 예수의 기도/호세 까르데나스 빠야레스
예수에게 있어서 기도는
불확실성과 고난에 과감히 맞설 수 있는 비결이며,
번민 중에도 시련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예수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의지할 수 있다.
예수는 기도 중에 점잔을 빼거나
격식을 차려서 하느님을 부르지 않고
매우 친숙하게 하느님과 이야기했다.
하느님은 그의 압바(Abba)요 ‘아빠’(papa)인 것이다.
기력이 쇠진할 때조차 예수는
하느님께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으며,
심지어 사면초가의 막다른 지경에서도
예수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예수는 그 잔을 원하지 않지만,
그의 아버지 하느님을 원망하지도 않는다(마가 14:36).
결국 그의 전 생애는
정의와 화해를 이루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마태 6:9-13).
이처럼 예수가 기도 중에 받은 것은
단 한 마디의 위로가 아니라
고난과 시련을 맞이할 힘인 것이다(마가 14:42).
(호세 까르데나스 빠야레스, 이종렬 역, [民衆의 예수 - 마르코 복음에 의한 고찰], 성요셉출판사, 131-132쪽.)
3. 예수의 기도 - 민중의 필수적인 요구/田川建三
기도는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자의 필요에 의한 요구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는 원시 교단의 범례적 기도의 틀을 부셔버리고
민중의 필수적인 요구로서 그 틀을 구축한다.
생활의 실제에 부딪치지 않고서는
영원한 생명 따위를 문제 삼지 못한다.
예수라는 사나이는,
당신은 어떻게 기도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내일의 빵이 필요한데”라고 살짝 토를 달았다.
(田川建三, 김명식 역, [예수라는 사나이 - 역설적 반항아의 삶과 죽음], 한울림, 4쪽.)
4.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뜻은?/문익환
염원, 기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까지
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기도한다”는 것,
즉 주의 기도를 우리들의 기도로 삼는다는 뜻이 되겠지요.
그런데 그 주의 기도가
바로 민중의 기도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1976년 저를 감옥에 집어넣으셨던 것같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말은
민중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기도할 때면
“고난받는 당신의 아들 딸들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고난받는 아들 딸들이 외치는 소리이기 때문에
그 기도 소리를 거절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외치는 노예들의 아우성 소리를
하나님께서는 거절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바로 그런 기도였습니다.
나는 기독교의 대속(代贖)의 교리 같은 것은
잘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거절하실 수 없는 기도,
그 고난받는 당신의 아들 딸들의 아우성,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염원,
즉 종교적 염원과 민중적 염원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종교적 염원과 민중적 염원을 따로따로 가지고 있는 한
우리가 내려찍는 도끼질은 마냥 헛도끼질이 되는 것입니다.
그 둘이 한 초점에 닿아서 내려찍힐 때에만
그 도끼날에 장작은 빠개져 나가는 것입니다.
(문익환, [통일과 민족교회의 신학], 통일신학동지회 엮음, 한울, 13-14쪽.)
5. 기도에 마술이란 없다/존 쉘비 스퐁
기도는 기회가 균등하며
아무도 현재 상태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제되지 않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적절한 정치적 행동을 취한다.
기도는 모든 사람들 속에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거룩한 핵심이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나에게 기도하는 일과
깊이 있게, 풍성하게, 온전하게 살아가는 일은
이처럼 거의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아마도 이것이 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살전 5:17)라고 말한
의미일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기도하는 일인 것처럼 살아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과 사랑과 존재로 나아가도록
요청하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말이다.
내가 결코 보증할 수는 없지만,
인생을 이런 방식으로 살아갈 때는
엄청난 영적 에너지가 사회 전체로 파급될 것이다.
이런 영적 에너지는
온전함과 치유를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이런 인간관계의 힘 때문에
인생이 완전히 바뀌고 상처들이 치유된 경우들을 많이 보았다....
기도는 이처럼
생활의 모든 가능성에 대해 개방하는 과정이며
그 가능성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행동하는 과정이다.
기도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나 기쁨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내가 열정적으로 놀랍게 소진되도록 살아갈 때,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나와 더불어, 혹은 나 때문에,
그렇게 살도록 초청할 때,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기도다....
기도에 마술(magic)이란 없다....
오직 삶의 깊이에 대해 개방하도록,
그리고 그런 깊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부르는
요청만이 있을 따름이다.
(존 쉘비 스퐁, 김준우 역,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한국기독교연구소, 179-183쪽.)
6. 기도/루이 에블리
하느님이 우리를 초대하시기에 우리도 그분을 초대한다.
하느님이 우리를 찾으시기에 우리도 그분을 찾는다.
하느님이 우리를 갈망하시기에 우리도 그분을 갈망한다.
하느님이 우리들에게 기도하시기에 우리도 그분께 기도한다.
기도의 진정한 의미와 기도의 어려움은 거기에 있다.
기도란 인간의 생각이나 야망, 망상, 자기암시 따위가 아니다.
기도는,
인생의 그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진심으로부터 충실하게 직면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준비하는 것을 말한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폐쇄시킨다.
그 안에 들어앉아 스스로 고립된다.
그렇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다르다.
우주 안에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이 존재함을 믿는다.
(루이 에블리 지음, 김수창 역,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가톨릭출판사, 7-8쪽.)
7.기도하는 것은/J. 바니에
우리 모두는 자신의 기도 리듬을 찾아내야 한다....
기도란
침묵과 휴식과 영성으로 이루어진 내밀한 정원과도 같다.
그러나 이 정원으로 통하는 문은 수만 개가 넘으며,
우리는 저마다 자기 문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특정한 정화력이 오로지 성령으로부터만
흘러나온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느님께 넘겨드리고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 존재의 방향타를 잡으시도록
허용하는 것이다(157).
(J. 바니에 지음, 성찬성 역, [공동체와 성장], 성바오로출판사, 157쪽.)
8. 기도는 삶이다/헨리 나우웬
기도는 단순히 그리스도인의 하루 일과의 필수요소나
어려울 때 도움의 출처가 아니다.
주일 아침이나 식사시간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기도는 삶이다.
기도는 먹고 마시는 것, 움직이고 쉬는 것,
가르치고 배우는 것, 놀고 일하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스며든다.
기도는 우리가 있는 곳에 하나님도 함께 하신다는
끊임없는 인식이다.
그분은 좀더 가까이 와서
당신이 주신 삶의 선물을 마음껏 누리라고
언제나 우리를 부르신다.
(헨리 나우웬, 윤종석 역, [꼭 필요한 것 한가지, 기도의 삶], 복 있는 사람, 39-40쪽.)
9. 기도/조지 맥클로오드
우리들의 기도생활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
우리의 바쁜 생활은 이쪽에 있고
신은 어딘가 다른 쪽에 있다는 따위의 생각이 그렇다.
이런 생각 때문에
우리는 저녁 때 하루 일이 끝나고서야
열심히 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진공 이외의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해
우리는 어리둥절해진다.
우리는 “신령한 생각들”을 갖고 이 진공을 메우려 한다.
이렇게 애를 쓰면 쓸수록 사정은 더욱 절망적이 된다.
그래서 결국 “나는 기도하는 타입이 못 돼”라고 자조하게 된다.
물론 저녁 때의 기도생활이 우리를 쇄신해 주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 그 저녁 시간도
우리의 할 일이 너무도 많고 무거워서
이 일들을 걸머진 채로
신 앞에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시간들이었던 것이다.
종교적인 순간이란 실제적인 것에서 꽃을 피운다.
우리는 기도생?걀?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을 벗어나서 생명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요한1서 3:14).
10. 고상한 그리스도인/블룸하르트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아주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는
하느님 나라를 발견할 수 없다.
그대만 잘 먹고
굶주리는 이웃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고상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이 점을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나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부르짖는
바로 거기에 예배가 존재한다.
참된 하느님 섬김이 존재한다.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포도원을 가꾸며
거기서 일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아무 종교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말없이 일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인간이 자기의 권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바로 그것이 종교며 기도가 아니겠는가?
(손규태 편저, [혁명적 신앙인들], 한국신학연구소, 24쪽.)
11. 하느님께 바쳐지는 기도/구띠에레스
하느님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뉘우치는 마음을 원하신다(시편 51:17-19).
하느님은 우리가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기를 원하신다(요엘 2:13).
하느님은 인간들이 이 세계 속에서 체험하는
갖가지 불의와 고난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바쳐지는
봉헌물들과 기도를 원하지 않으신다.
성서의 하느님께 바쳐지는 기도는
역사를 회피하는 용의주도한 한 방식일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그러한 불의와 고난, 역사가 생생하게 담긴 말마디들을
발설할 수 있는 분명한 기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해방하시고 정의를 실행하시는
하느님께 바쳐지는 기도는
우리를 역사 과정으로부터 물러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속에 깊이 잠겨들어
우리 자신이 책임 있게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연대를 이루도록 촉구한다.
(구스따보 구띠에레스, 황종렬 역, [생명이신 하느님], 분도출판사, 18-109쪽.)
12. 기도/지성수
기도는 먼저 무엇을 구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헤아려 보고
자신이 하려고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돌이켜 보고
자신이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묻는 것이어야 합니다.
기도는, 남과는 온갖 수다를 떨면서도
자기 자신과는 도무지 이야기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여야만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에게 있어서 기도란 탄원이나 호소가 아니라
깊은 신뢰와 순종의 표시였습니다.
예수는 겟세마니의 기도를 통해
이것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피가 땀같이 나도록 기도했다는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예수의 기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호소했던
예수는 그때 무엇을 느꼈을까요?
아마도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갈보리산이
예수의 육체적 고통의 절정이라면,
겟세마니 동산은
예수의 심리적, 정신적 고통의 절정이었을 것입니다.
겟세마네의 기도를 통해
예수는 자기를 완전히 버리고
자신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며,
또한 맹목적인 신뢰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성자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라!
아니, 기도를 단호히 물리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말한 것을 진정 아멘으로 받아들입니다....
10분 기도하는 것보다
20분 기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야말로
하나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무조건 기도하면 된다고 믿는 것이
바로 기도의 미신입니다.
(지성수, [뒤집어 보는 성서이야기], 예루살렘, 134-135쪽.)
13. 은자의 세속기행/판화가 이철수
일가족 집단 몰사!
일가족 연탄 피워놓고 자살!
한 가족이 오른 방세 마련 못해 자살!
한 가족이 자살!
한 가족이 자살! 한가족이 자살!
근래 수없이 듣는 이야기고 보는 이야기입니다.
죽음이 흔해진 것입니다.
봄비 오는 날 저렇게 환히 피어나는 목련이
아름다워 보이는 제 눈은,
그러므로 썩은 동태 눈깔입니다.
목련이 피었습니다.
라일락은 꽃피려고 채비합니다.
복숭아도 연분홍으로 속살 드러냅니다.
제일 흐드러진 것은 사꾸라 꽃입니다.
그 꽃잎 지듯이 연약한 생명들이 소리없이 죽어갑니다.
방금도, 하늘에 올리는 기도문 같은 유서를 남기고
식솔과 함께 이승을 떠난 어느 사내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기도를 접수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일을 해결하실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는
번짓수가 틀렸다고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닫힌 방안에 연탄불을 피울 게 아니라
주먹을 부르쥐고 방문 밖으로 뛰쳐나와야
일이 되고 번짓수도 찾아집니다.
([살림] 90년 5월호, 한국신학연구소, 31-32쪽.)
둘째 마당: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의 기도
1. 오늘의 주기도문(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은 우리 삶의 뿌리가 되시며,
희망의 꽃이 피어나는 밭이 되십니다.
진리와 정의, 평등과 사랑이 당신께로부터 솟아납니다.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우리는 이 세상에
당신의 이름보다 더 높은 이름이 없음을 믿으며,
우리의 삶 속에서 당신의 이름이
찬양받으셔야 함을 믿습니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가 모든 이기적인 욕심과 목표를 떠나,
당신의 백성인 가난한 형제들과 함께,
이 땅에서 불의와 억압과 폭력을 몰아내고,
사랑과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당신의 나라를 이루게 하옵소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내일에 대한 막연한 걱정에 매일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우리의 힘과 지혜를 쓰게 하옵소서.
가진자들의 욕심으로 더 이상
가난한 이웃들이 고통받지 말게 하옵시고,
삶에 필요한 것들을 누구나 골고루 나눠 갖는
사회를 이루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당신은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를 여셨습니다.
우리도 우리를 오해하고 비방하고 억압하는 이들을
용서하고 깨우쳐서,
그들도 삶의 참가치를 맛보며 살 수 있게 하려 하오니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당신의 뜻에 따라 살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모든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고,
진리의 길을 가도록 도와주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한국민중교회운동연합 민중찬송가편찬위원회 편, [민중복음성가], 사계절.)
2. 우리는 빛이 되렵니다/어느 노동자
주님! 우리는 빛이 되렵니다.
어둠을 깨는 아침햇살처럼
우리는 이 땅의 승리와 기쁨의 빛이 되렵니다.
우리는 새벽이 될 것입니다.
그 어둔 밤을 외롭게 지켜온 촛불처럼,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
저 들판을 초록으로 물들이는 보리의 싱싱함같이,
힘겨운 시간 시간을 이겨 나가는 이들을 위하여
우리는 해방의 희망을 가져 오는 새벽이 되렵니다.
어느 틈엔가 우리들 곁에서 짓밟혀 죽어 버린
진실과 정의와 양심과 평등을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는 현장의 등불이 되렵니다.
녹슨 쇠를 녹여 강철을 만들어 내는
용광로의 푸르디 푸른 불꽃처럼
모든 녹슬고 길들여진 오염된 생각들을 녹여,
새롭고 깨끗하게 빚어내는 튼튼하고 강한 빛이 되렵니다.
그리하여 억압과 착취의 노동현장의 빛이 되고
외세와 군부독재의 횡포로 얼룩진
어둔 역사의 빛이 될 것입니다.
뜨겁고 환하게 타오르는 역사의 빛이 되렵니다.
주여! 함께 하옵소서. 아멘.
(이근복, [현장에서 만난 예수], 나눔사, 44쪽.)
3. 하느님께 보내는 편지/어느 농부
봄이 왔습니다. 화창한 봄날이.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니 농민들에게는
아름답고 화창한 봄날이 어둡고 암담하네요.
이유야 꼭 꼬집어 말할 수 없어도
우리는, 아니 농부들은 그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리 화창한 봄날,
거름 주고 논밭 갈고 씨를 뿌리면 무엇합니까?
그 다음에 무더운 햇볕 아래서
땀이 아닌 피와 눈물을 흘리며 농약 치고, 거름 주고,
잡풀 뽑고,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죽도록
일을 해야 하는걸요.
무슨 소리냐구요?
결실의 계절, 풍요의 계절, 수확의 계절 가을이 있는데
왜 푸념이냐구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볼 때는 풍요롭게 보일지 몰라도,
기를 쓰며 이를 악물고 거두어들인 농산물 팔아서
작년, 아니 사실은 몇 해 전부터 진 빚 치닥거리하다 보면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도 갚기 힘에 벅차요.
그러니 그 돈 주고 나면
우리들의 주머니는 벌써 찬 바람 쌩쌩 부는 엄동설한인 걸
어찌해야 좋습니까?
그러니 그것을 생각하면 이 봄이 지겹지 않겠습니까?
죽도록 일해야 남는 것은 빚뿐이요,
그나마 믿었던 몸뚱아리마저 쑤시고 저려,
올 농사 생각하면 죽고만 싶은데 그래도 어떡합니까.
남아 있는 자식들 공부는 시켜야지.
그래서 나처럼 촌놈이 아닌, 빚더미 위에 앉아서
죽음까지 생각하는 바보 인간은 만들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이집, 저집, 이사람, 저사람에게 알아보고 하여
내일은 어디든 가서 사채라도 내어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우리 농민들의 현실을 하느님은 아시는지요.
우리 농민들이 죄가 많아서 그렇다면
그 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죄를 주시려거든,
아니 농민들에게 죄를 주시려거든,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와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만 해주신다면
우린 모두 죽어도 좋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제발 부탁입니다.
진정 죄가 있다면 그 죄를 후손에까지 물리지 마시고,
이 나라 이 백성을 위해서라도
우리 농민들에게 어느 정도 빚이나 갚고
자식공부나 마음놓고 시킬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렇게만 된다면 죽더라도 한이 없겠고
웃으며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벼락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이왕이면 후손을 위해서 돈벼락을 내려주십시오.
그래도 하느님,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지
지금 보니 3월인데도 찬 눈보라가 치네요.
차라리 봄이 오지 말았으면 합니다.
하느님을 원망해서 드린 글이 아니오니
널리 양해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어느 못난 촌놈이.
4. 도시빈민/돌산교회 부활절 봉헌 기도/최 영감
무덤 속같이 절망과 포기만이
음흉하게 도사리고 있는 이 곳 돌산마을에
다시 부활해 갖고 찾아오신 주님을 말이여라우,
찾을려고 하지 않았고
볼려고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사실을 믿을려고 하지 않았던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지요잉.
주님의 부활의 승리의 씨앗은
돌산마을에 많이 뿌려졌지만 말이어라우,
저희들의 마음에 받어
세상살이에 너무 쫓기고 세 끼 밥 먹느라고
부활의 씨앗을 가꾸거나 받아들인다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어라우.
변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들의 형편이 그렇다 하는 말씀이지라우.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저희들에게 주신 부활의 소식을 감사하는 뜻에서
작은 정성을 바쳤는디요.
비록 적은 물질이지만
귀히 쓰여지도록 도와 주셔야겠어라우.
아직도 부활의 기쁜 소식을 모르는 이곳
돌산마을에 사는 우리 이웃들이 많이 있어라우.
저희들이 정성으로 바친 적은 물질이 쓰여지는 곳에
부활의 승리의 기쁜 소식이 전해져서 말이어라우.
이 곳 돌산마을이 온총 부활의 잔치를 벌이는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이동철, [짓눌러도 할렐루야], 동광출판사, 218-219쪽.)
5. 주여 오소서 - 구속 노동자 석방을 위한 기도/정명자
주님
이 혹독한 추위처럼 우리의 가슴은 얼어붙었고
이 매정한 어둠처럼 우리의 가슴은 답답합니다
사랑이 사랑을 낳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불신과 의혹과 미움을 낳고
이 때문에 우리는 해고인생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고 천당 가자”
“예수 믿어 구원 얻자”
“예수 믿어 복 받자”며 안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주여
당신은 누구의 편에 서 계십니까
우리 노동자들과 거리가 먼
저 우뚝 솟은 교회당 꼭대기에서
늘어나고 높아지는 수많은 빌딩을 흐뭇하게 내려다보며,
건물을 짓기 위해 피땀 흘리면서
위험스런 작업을 하면서도
저임금, 장시간, 특근을 강요당하며
피곤이 겹쳐 병들어 가는
노동자들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실 거라는
우리의 응어리진 가슴을
주여
당신이 계신다면 오셔서 녹여 주소서
블랙리스트라는 희귀한 잡신 때문에
일터에서 쫓겨난 것이 억울하여
노동부에 진정, 항의하러 갔다가
경찰이라는 자들에게
노동부 직원이라는 자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그것도 억울한데
그것도 부족해
폭력범이 되어 감옥에 갇힌
지선, 용자, 순애, 정희, 현경이 엄마, 옥섭이, 세정이 아빠, 귀화
이들을 주여 기억하십니까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법치국가요 민주주의 국가인 이 나라에서
버젓이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요
주님은
갇힌 자에게 해방을
주린 자에게는 배부름을
눌린 자에게는 자유를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데
이것은 허구입니다
성경은 하나의 낡은 고서에 불과합니다
교회는 자기 구원에 급급해 있고
세상은 갇힌 자의 목을 누르고
주린 자의 창자를 쥐어짜고
눌린 자의 숨통을 조입니다
주님
당신이 계신다면
이
답답하고 삭막한 우리의 가슴을 위로하소서
감옥에 있는
지선이들에게 오시고
엄마, 아빠, 형제, 자식들을 감옥에 두고
걱정 근심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친지들에게 오소서
엄마를 감옥에 보내고
여기저기
낯설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외로와하는 현경이들에게 오시고
아빠를 그리워하는
세정이들에게 오소서
또한
일에 질려
하루라도 좋으니 잠이나 푹 잤음 좋겠다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오시고
자기밖에 모르는 모든 이들에게
용자, 옥섭, 지선, 순애, 정희 귀화의
양심이 되어 오소서
(정명자 시집, [동지여 가슴 맞대고], 풀빛, 49-53쪽.)
6. 청년/성 요셉 축일에 드리는 기도(83.3.19)/한희철
주님 저희에게로 돌아와 주십시요.
우리가 감히 지려고 하는 십자가를 보시고 여기에 오십시오.
저희는 회개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저희 교회에서 내쫓는,
아니, 당신이 도저히 머물 수 없는 교회로 만든 자들은
우리 자신들이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세상을 위해 지는 십자가를 보시고
다가오신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한 손에 들 수 있는 금십자가를 쥐고서도 당신을 불렀던
우리 교회의 잘못을 용서하소서.
피땀을 흘려도 다 질 수 없는 십자가를 등에 업고
당신을, 당신의 손길을,
당신의 위안을, 당신의 능력을 기다리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배부르고 편안합니다.
저희는 아직 당신의 은혜를 간청할 때가 아님을 느낍니다.
우리는 이미 풍성히 받았습니다.
우리의 나약한 믿음이 그 은총을 눈치채지 못하고,
또는 너무 쉽게 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신 사랑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며 감사할 줄은 알았지만
당신께 보답할 줄은 몰랐습니다.
당신의 뜻을 세상에서 이루는 아들 딸이 되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품 안에만 주리를 틀고 앉아 있으려고 했습니다.
이젠 일어서서 가야겠습니다.
당신께서 갈릴리에서 하시던 일을 계속하기 위해
이 땅의 갈릴리는 어디를 막론하고 찾아가겠습니다.
당신의 손길을, 이웃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며 ?類載〈?
소외된 현장으로
우리는 용감히 걸어 가겠습니다.
우리는 혼자
뿔뿔이 흩어진 힘으로 살지 않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는,
또 그리스도가 주재하시는 교회로서 살겠습니다.
우리는 홀로 교회가 될 수 없음을 압니다.
우리는 당신을 주인으로
둘 이상이 모여 서로 위로하며 서로 용서하며
당신이 하시던 일을 끊임없이 계속하겠습니다.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십자가를 함께 짊어져 주시고
우리가 십자가 밑에 지쳐 쓰러졌을 때는
당신의 생명수로써 일어나게 하소서.
저희의 안이한 믿음을 회개시켜 주소서.
잘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저 소외된 형제들의,
저기 저 소외된 형제들의 갈구를
귀기울여 듣게 하소서.
그리고는 당신의 뜻을 우리 교회를 시켜 세상에 펴십시오.
당신을 부적이나 혹은 반지처럼 지니고 사는 자들을
교회에서 쫓아내시고,
달콤한 잠에 취해 있는 교회는 박살을 내어
깨어나게 하소서.
주님 당신은 사흘만에 교회를 다시 지으신 분입니다.
저희를 잠들지 않게 지켜 주소서.
그리고 당신의 부름에 귀기울이게 하소서.
(서울대 민주열사 추모사업위원회 편, [산 자여 따르라], 거름, 174-175쪽.)
7. 부유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한 기도/까시아노 플로리스탄
주여,
우리는 우리의 안락한 작은 세계에 앉아서,
그가 왜 도둑질을 하기에 이르렀는지를
묻지도 않은 채 도둑질한 사람을
단죄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도둑질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범인이 누구입니까?
소위 그리스도교 세계의 탐욕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주님,
고도의 소비가 이루어지는 국가에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교 신자들,
다름아닌 그들이 경제력과 군사력과 기술이 없는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약탈하고 있습니다.
다름아닌 부유한 나라와 부자들이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모든 선익을 나누어 주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희생시켜 계속해서 부를 쌓고 있습니다.
오, 주님,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별수 없이
도둑질을 하게 방치한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용서하십시오.
주여, 소비와 향락만을 좇는 우리 사회 풍토가
살아남기 위해 구걸하거나 도둑질을 해야만 하는
가난하고 굶주린 수많은 사람들을 양산해 왔습니다.
그들보다도 오히려 우리를 먼저 용서하십시오.
주여,
우리 부유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주신 음식과 옷과 집을 주지 않음으로써
심각한 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양심의 가책을 느끼도록 해주십시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우리 자신의 잘못과 우리 나라의 잘못들을
인정하고 고백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당신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지금 여기에서 세계 모든 형제자매 가운데서
낙원이 시작되도록 해주십시오.
주여,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아멘.
(헨리 나웬 외, 심정순 역, [예수 수난 묵상 - 십자가의 길], 일과놀이, 246-247쪽.)
셋째 마당: 세계의 명기도문
1. 성령이여 오소서/에릭 밀너 화이트
오 하나님, 성령이시여
우리에게, 우리 가운데에 오소서.
바람으로 오셔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소서.
불로 오셔서 우리를 태우소서.
이슬로 오셔서 우리를 신선하게 하소서.
많은 사람이 죄를 깨닫고 변화되어
거룩하게 되게 하소서.
주의 선하심과 크신 영광 가운데 살게 하소서.
주께 간구하나이다.
2. 경배/마거릿 크로퍼
인간의 머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각,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인간의 몸 속에 있는 하나님의 고통을
나는 경배합니다.
3. 갑작스러운 기도/제인 머천트
주님, 주님 향하여
다른 바람은 없습니다.
다만 주님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나의 마음에 아무런 간청이나 소원도 없고
탄원할 것도 하나 없습니다.
나의 영혼이 바라는 오직 한 가지는
주님을 경배하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4. 나의 목마름이시여/성녀 게르투르트
사랑의 하나님,
나의 구세주시여,
당신은 나의 목마름,
내 지성의 굶주림이십니다.
하지만 당신을 맛보면 맛볼수록
나의 굶주림은 더해만 갑니다.
당신의 샘을 마시면 마실수록
나의 목마름은 더해만 갑니다.
오소서, 주 예수여.
어서 오소서.
5.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작자 미상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을 존경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사랑이시고
당신의 성품은 연민이시고
당신의 모습은 기쁨이시고
당신의 말씀은 진실이시고
당신의 영혼은 선함이시고
당신의 거룩하심은 아름다움이시고
당신의 뜻은 평온이십니다.
당신을 섬김이 우리의 완전한 기쁨이며
당신을 아는 가운데 영생이 보장되나이다.
6. 어린이의 기도/마틴 루터
친애하는 예수님,
거룩한 아기시여,
나는 당신께 부드럽고 깨끗한 침대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내 마음은
주님을 지키는 고요한 침실입니다.
7. 성령께/크리스티나 로제티
당신은 바람처럼
우리의 발걸음에 앞서 가십니다.
당신은 비둘기처럼
우리를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십니다.
당신은 물처럼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하십니다.
당신은 구름처럼
우리의 시험을 막아 주십니다.
당신은 이슬처럼
우리의 무기력함을 소생시키십니다.
당신은 불처럼
우리의 찌꺼기들을 제거해 주십니다.
8. 내가 구하는 오직 한 가지/줄리앙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내게 당신을 주소서.
당신 한 분으로 나는 만족하나이다.
내가 구하는 오직 한 가지는
당신께 합당한 자가 되는 것.
당신께 합당치 못하면
나는 언제나 궁핍한 자가 되오니,
나는 오직 당신 안에서만
만물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9. 인생의 출발점에 서서/작자 미상
사랑하는 주님,
인생의 출발점에 서서
나는 간절히 두 가지를 알고 싶습니다.
내가 누구이며,
내 평생에 당신께서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지금 알고 싶습니다.
가르쳐 주실 수 없습니까, 주님?
10. 라일락 향기/앨리스 죠이스 데이빗슨
방금 나는
사방 어디에나 피어 있는
짙은 라일락 향기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방금 나의 걱정거리도
물거품처럼
연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피우신 꽃들의
향긋한 꽃내음이 주는 기쁨에!
11. 다른 나라 사람들은 굶고 있는데/어느 여고생
하나님,
설거지할 그릇에 감사드립니다.
많은 얘기를 담고 있는 그릇들입니다.
수북히 쌓인 그릇들 곁에 서니
우리 모두 넉넉하게 살고 있는 느낌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굶고 있는데
우리는 끼니를 걱정하지 없습니다.
이 쌓인 그릇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무 잘해 주신다는
증거입니다.
12. 나를 사랑하심으로/성 프란체스코
주여,
나를 사랑하심으로
황공하옵게도 당신이 죽으셨나이다.
당신 향한 사랑 때문에
나도 죽을 수 있게 도와 주소서.
당신의 꿀 같은 사랑으로
내 마음을 달게 하시고,
당신의 불 같은 사랑으로
하늘 아래 모든 것으로부터
내 마음을 빼내어 가지소서.
13.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로버트 헤릭
하나님!
나에게 약간의 빵과 기름을 주소서.
한 움큼의 고기와
그 고기를 끓이기 위한 빈 냄비를 주소서.
14. 아프리카 소녀의 기도/작자 미상(아프리카)
오 크신 주님이시여,
내 마음 속에 촛불을 밝히사
그 안에 있는 것을 보게 하시고
당신이 거하실 곳의
쓰레기를 말끔히 치우게 하소서.
15. 그리스도의 몸/아빌라의 테레사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몸을 갖고 계시지 않으나
당신은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몸은 그분이 일하실 수 있는
그분의 손일 뿐입니다.
당신의 몸은 그분이 세상으로 나가실 수 있는
그분의 발일 뿐입니다.
당신의 몸은 세상에서 고통받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그분의 눈일 뿐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몸을 갖고 계시지 않으나
당신은 가지고 있습니다.
16. 종의 기도/성 어거스틴
당신의 종들인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불타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형제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자신에 대해서는 강철 같은 마음을 갖게 하소서.
17. 첫 번째 기도/템플 가이드너
오 하나님,
내가 언제나
당신을 섬기고
이웃을 돕는 일 외에는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계시나이다.
18. 읽기를 배운 후에/어느 중국 여인
많은 사람이 글을 읽을 수 없음에
주여, 우리들 각자가 성경 되게 하소서.
책을 통해 당신 말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에게서 당신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19. 중보기도/테야르 드 샤르뎅
오, 주님,
당신께 기도하오니
지옥불이 나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이들까지도
삼키지 못하게 하소서.
나의 사랑하는 하나님,
이런 무례한 기도를 용서하소서.
20. 우리의 사랑에 능력을/코위
우리 주 예수여,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주소서.
우리의 사랑에 능력을,
우리의 겸손에 힘을,
우리의 열정에 순수함을,
우리의 웃음에 자비를,
우리의 마음에 당신의 평화를
심어 주소서.
21. 어린아이와 같이/키에르케고르
하늘에 계신 아버지!
당신의 생각으로 우리의 잠든 가슴을 깨우실 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놀란 새와 같이 깨우지 마소서.
하늘의 미소로 잠에서 깨어나는
어린아이와 같이 우리를 깨우소서.
22. 주의 인도하심을 바라며/미켈란젤로
오 주님,
내가 당신의 성령에 의지해 기도할 수 있다면
내 기도는 참으로 향기를 발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면
내 마음은 메마른 흙 같아
아무것도 스스로 채울 수 없나이다.
당신은 모든 선하고 경건한 일의 씨앗!
당신이 허락하실 때에만 그 씨앗은 싹을 틔웁니다.
당신의 유일한 진리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지 않는다면
그 길을 찾을 자 아무도 없나이다.
주께서 길을 인도해 주소서.
23. 사룸의 작은 기도문/사룸
하나님,
내 머리와 나의 지혜 속에 함께하소서.
하나님,
내 눈과 나의 시야 속에 함께하소서.
하나님,
내 입과 나의 말 속에 함께하소서.
하나님,
내 마음과 나의 생각 속에 함께하소서.
하나님,
내가 죽어 세상을 떠날 때에도 함께하소서.
24. 백 배의 고통을 더 주소서/성 프란체스코
주 하나님,
이 고통을 주신 당신께 감사하나이다.
내 주여,
당신의 뜻이라면
백 배의 고통을 더 주소서.
당신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짐이
나에게는 넘치는 위안이 되오니,
당신이 주시는 고통을
내가 진심으로 받아들이겠나이다.
25. 고난/어느 인도인
주여,
고난의 십자가에
감사의 사다리를 놓아
주의 발에 입맞춤하게 하소서.
첫댓글 아주 절실한 기도문들이네요. 구구절정절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문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