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의 유혹자 뱀
창 2장 15절-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시고 사명을 주셨는데,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 일차적 인간의 사명이였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농부가 농사를 지으면 새들이 와서 곡식 알갱이를 따먹게 된다. 그럴 때 사람이 자기 형상 비슷하게 세워놓는 허수아비, 하나님 당신 형상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에덴 동산에서 지키며 다스리게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대로 자기 사람을 만드시되 살아있는 형상, 실상이신 하나님,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명령하셨는데, 앞으로 성경 공부할 때, 하나님께서 명하셨다. 말씀하셨다고 할 때는 정신을 차리고 들어야 한다. 무엇을 명령하셨는가를 올바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실수 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이것이 명하신 말씀이다.
아담이 이 말을 들을 때에 어떤 자세로 어느 정도 알아들었는지 모르지만,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도 성도님들이 설교나 강의 들을 때,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때는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여기에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죽으리라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담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죽음이란 문제는 인간에게 쉽지 않다. 육체의 죽음으로 끝나는가? 사실은 아니다. 죽음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죽음을 신학적으로 다루면 복잡하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 자체, 죄의 삯은 죽음 등 여러 가지가 나오고, 또 죽음이 육체의 죽은 외에 영혼이 불과 유황에 들어가는 것이 둘째 사망이다.
사망이라는 것 자체가 영혼이 소멸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지금도 많다. 죽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학적 문제가 된다. 여기부터 공부할 꺼리가 나온다. 죽는다는 것은 어떻게 된다는 것이며 그 다음은 또 어떻게 되는지 질문할 수 있다.
아담은 알지 못하면서고 묻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지으시고, 아담 안에서 돕는 베필을 만드셨다. 그리하여 아담과 하와는 그리워지고, 가까워지고 서로 마음이 끌리게 하셨다. 하와는 아담과 달리 처음부터 아름다움으로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이끌어 아담에게 소개하자 아담은 놀라운 말을 했다. “이는 내 살중의 살이요 내 뼈중의 뼈로다.” 자기 것을 어떻게 알아봤을까요?
이름을 짓기로 남자에게 취하였으므로 남자라고 한다. 남자란 말은 이쉬란 히브리어... 여자란 이샤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하와가 지음 받기 전이다. 사실 하와는 모르고 있었다. 아담과 하와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죽음을 잘 알지 몰랐다.
오늘날도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 갈 때 죽음을 잘 모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 담대하다.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이렇게 하면서 죽은 다음에 지옥이 있다는 것을 모르니까 사람들이 인생을 진지하게 살지 못하고 죽는 것도 함부로 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 시험이 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였다. 아담과 하와는 결국 사탄의 꾀임을 받게 되고…
지난 시간에도 살 펴 보았듯이 아무 경험도 간증도 역사도 경험도 없었다. 혼자 결정하고 선택하는 기로에 서있었고,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전례가 없는 삶을 출발하고 있다.
또 뱀이 누구인지 어떠한 존재인지 알지 못하고 유혹을 받게 된다. 현대인들도 대부분 잘 모르고 있다.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자기 자신도 잘 모르고 뱀도 모르기 때문에 얼마든지 사람들이 속을 수 있고, 속아 살고 있다. 그래서 진리를 알지 못하면 반드시 속아 빠지게 되고, 자유가 없게 된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다.
성경을 보고 진리를 알아야 참 자유를 지킬 수 있다. 민주주의를 한다고 자유가 온 것이 아니다. 진리를 알았을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창세기의 뱀, 사탄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고, 뱀이 말한다 하니까, 신화나 전설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신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정말로 뱀을 표현해야 맞는 것이다. 왜냐면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역사, 종말, 계시록 까지, 뱀과 용의 형상으로 사탄이 자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꿈을 꾸었다. 큰 뱀이 나타났다. 용이 나타났다 할 때는 영적인 의식 세계에서 사탄이 침입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 수 있도록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이다.
우리가 용 그림을 자세히 보면, 머리는 돼지, 사슴 뿔, 뱀의 몸을 가지면서 봉황 발을 가지고 있는 이상한 동물의 조합같이 나타난다. 세상적인 표현으로 길몽이고, 태몽이면서 세상의 큰 권세를 잡을 사람이다. 큰 사람 될 것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용이라는 것은 여인들 꿈속에 나타나게 될 때, 용꿈을 꾸었다 하면서 아주 좋은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는데, 신학적으로 볼 때 아주 악한 꿈이다.
옛날에 왕이 앉아 있는 의자에 보면 용상이라 하는데, 임금님이 입는 옷은 용포, 임금님의 얼굴을 용안이라고 하고, 용머리가 새겨진 비녀를 용잠이라고 하고, 임금님이 죽으면 용어라고 하고, 수염은 용수, 임금님 부채는 용선이라고 하고, 왕의 눈물은 용무라고 하고, 임금님 수레는 용가라고 한다. 전부 용이다.
동양문화권과 서양 문화권에 용은 어디에도 없지만, 사람의 의식 무의식 속에 등장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창세기를 통해서 사탄 마귀가 의식 속에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고, 전각이나 왕궁이나 절에 가서 건물 단층한 것을 보면 용그림이 많이 나온다. 용조각도 많이 나오고, 비석이라든지 여러 곳에 용이 여의주를 다투고 있는 조각을 하고 있다.
여의주라는 말은 구슬인데, 뜻대로 되어지는 구슬로 뜻대로 되어지는 구슬은 권력이다. 권력 쟁탈전을 신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세상 권세를 잡으려고 하는 것은 용들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 용 그림이 나오고 조각이 나오는 것은 세상 사람들 속에 용이 들어 있으니까 나오는 것이다. 세상사람들 무의식 속에 사탄 마귀 귀신들의 의식이 들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용꿈으로 무의식 속에 나타난다. 이러한 것을 신학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창세기 이다.
뱀의 이야기는 점점 더 권세를 부풀려 나오는 것이다. 옛뱀, 용이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고, 마귀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성경이 보여주니까, 신화나 전설로 잘 못 표현된 것이 아니다. 오는 시대에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의식, 무의식 속에 나타나는 용이 사탄인지 알게 되는 위대한 정보가 창세기부터 나온다. 당시 아담은 몰랐지만, 현대를 사는 요한계시록까지 알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를 주는 책이 창세기인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