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8:1-7 천국과 어린 아이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18: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미국의 통계이지만 예수를 믿는 나이가 보통 5-20세 사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예수를 믿는 나이가 어릴수록 쉽게 받아드린다는 뜻입니다.
이유는 오늘 말씀과도 관련이 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은 완악(고)해지고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 34개월, 십자가를 지시기 전 2개월쯤으로 추청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지상 왕국을 꿈꾸며 지상에서 예수님이 다스리는 때가 되면 모두가 한 자리씩 차지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제자들이 토론하며 쟁론이 일어났는데 그 주제가 서로 누가 크냐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어떡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크게 될까를 생각합니다.
서로를 비교하며 남들 보다 낫다 싶으면 교만하거나 남들 보다 못하다 싶으면 열등감을 갖습니다.
[롬15: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ㅡ 큰 그릇이 작은 그릇을 품는 법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부한 자와 가난한 자, 건강한 자와 병든 자, 지혜로운 자와 지혜롭지 못한 자.....를 두신 것은 약한 자를 돌보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히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부모는 자식들이 서로 도우며 다같이 잘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신자들이 어떻게 사는 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초대교회는 가난한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행4:34).
[행4:33-35]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신8:17-18]
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너랑 나랑 우리 모두 함께 잘 살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화)신학동기의 제안
양평에 오천 평 땅을 소유하고 있는데 목회하는 동기 목회자들에게 나누어 함께 하는 마을을 세우자.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의 사고방식은 세상 사람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 천국도 세상처럼 크고 작은 지위나 위치에 따라 다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어떤 목회자는 이 땅에서 충성을 다하면 하늘에 상급이 크다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 그래서 교회에서 성도들로 하여금 충성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 여러분 천국이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 굳이 천국을 사모하고 추구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 그래서 본문에서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주님이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천국을 어린 아이와 비교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3절은 구원에 관한 핵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천국은 기적을 행하고 많은 사역으로 가는 곳이 아니라 마음이 어린 아이와 같아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시면서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 곧 겸손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스스로 겸손한 척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 인간적인 의도 즉 노력에서의 낮아짐이 아니라 본래의 자신이 어떠한 존재였는가를 알고 예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알면 자연스럽게 겸손하게 낮아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려면 두 가지 조건을 말씀합니다.
회심과 겸손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되려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세속적이고 완고하고 자기를 높이는 태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지금의 모습에서 바뀌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변화해야 할 변화는 어린 아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단지 어린 아이뿐만 아니라 아마도 3-5살 정도의 어린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육체를 언급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의 태도와 생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존재 자체를 언급하고 계십니다.
사람은 겸손하고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전적으로 부모를 신뢰합니다.
어린 아이는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그는 종종 더욱 자기 중심적이고 완고하며 반항적이 됩니다.
성장해 갈수록 가르치기가 어려워집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 수록 '알아요'라는 태도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위대함은 겸손이지 자기를 높이는 것과 교만이 아닙니다.
교만은 영원한 저주로 이어집니다.
천국은 결코 크고 작음이나 높고 낮음의 세계가 아닙니다.
즉 어린 아이들은 크고 작음 또는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습니다.
즉 어린 아이들은 어떠한 위치(지위)가 아니라 서로 어울림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초등학생만 되도 매스컴을 통해 듣는 것처럼 아파트 평수에 따라 아이들이 끼리끼리를 이루며 논다는 것입니다.
교회란, 바로 세상 처럼 높고 낮은, 크고 작음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예수의 피로 모두가 동일한 존재로 함께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큰 교회 목회자는 큰 목회자들 끼리,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작은 목회자들 끼리 모임을 갖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한국 교회는 직분이 세상 처럼 계급화가 되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직분보다는 형제 자매라는 표현을 저는 선호합니다.
형제라는 성경적 어원은 자궁이라는 뜻입니다.
즉 신자는 한 자궁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즉 고통으로 낳아 하나된 형제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천국에서 큰 자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속함 받은 사실을 깨닫고 겸손하게 섬기는 것입니다.
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18: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당시에는 어린 아이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세상이었습니다. 다시말하면 무시당하는 존재요 보잘것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를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어린 아이의 세계에 없는 높고 낮음, 크고 작음의 세계로 인하여 협력보다는 경쟁사회가 되어져 버렸습니다.
학교가 경쟁하는 곳이 되어져 버렸고 교회가 경쟁하는 곳이 되어져 버렸습니다.
어린 아이의 세계는 계급이 없습니다. 단지 서로 함께하는 세상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한 생명을 크고 작음이나 높고 낮음 같은 눈으로 보는 교만으로 인하여 실족시킨다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주님은 경고하십니다.
교회와 가정이 천국과 어린 아이처럼 새롭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보좌의 기초는 의와 공평입니다.
교회와 신자는 높고 낮음과 크고 작음의 세상살이에서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세상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11:6-10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사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사11: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사11: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사1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11: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ㅡ 이러한 모습이 가능한 일입니까?
ㅡ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통하여 가능합니다.
사나운 양육강식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됨으로 양육강식의 세상이 아닌 서로가 함께 즐거워하고 공평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천국과 어린 아이라는 말씀의 제목처럼 이제라도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모든 사람과 더불어 예수님 십자가의 겸손함으로 화평을 이루어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이 시간 우리를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돌이키도록 은혜와 긍휼과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