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영웅이 오셨다.
제인은 요하나가 가솔린 냄새를 맡고 입덧을 한다는 말에 램프 불을 켜고 그동안 말려 모아둔 허브 잎
중에 하나를 골라 태웠다. 온 집안에 허브향이 퍼지자 가솔린 냄새를 피하여 방에 누어있던 요하나가
향을 맡고 나왔다.
“제인. 램프에서 나오는 상쾌한 향기에 기분이 아주 맑아지고 살 것 같아. 정말 좋은 향기야.”
“언니 이젠 입덧 괜찮아요?”
“예. 조향사님 하하하.”
체르노빌과 벤은 정겨운 두 사람의 모습에 안심을 하고 가솔린의 진원지라고 생각되는 주차장엘 가보기로
했다. 너무 먼 거리여서 요하나의 예민한 코라도 믿을 수가 없었지만 벤과 함께 확인 차 나섰다.
20분쯤 갔을까? 갑자기 바람을 타고 진한 가솔린 냄새와 함께 도로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빌은 공사 관계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여기에 무슨 길을 만들고 있습니까?”
“주상절리가 국립 관광지로 지정된 것을 모르셨나요? 돈강과 주상절리를 연결하는 도로를 만드는 중인데
곧 완성될 겁니다.”
“예? 그럼 우리가 주차해 둔 버스와 퀴벨바겐 개조차는 어떻게 해 두었나요?”
관계자는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그 버스요? 너무 오래 방치 된 차 같아서 주인이 없는 걸로 알고 우리가 숙소로 쓰고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차는 쓸 일이 없었는데 잘 하셨습니다. 그리고......퀴벨바겐 개조 차를 이곳으로 옮겨 두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아 예. 그렇게 하세요. 마침 그곳에 가야하니 태워다 드릴게요.”
벤과 빌은 차를 타고 도로를 살펴보자 생각보다 빨리 이주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주차장에 도착
해 녹슨 버스에 올라 시동을 걸어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비바람만 면하는 폐물이었다.
식량으로 쓰려고 자루에 담아 두었던 곡식은 흔적도 없고 말 그대로 그들의 임시 숙소였다.
집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들려주자 다시 이주 걱정이 태산이었다. 날마다 가솔린의 냄새가 더욱 가까이
날아왔다. 일주일이 지나고 마지막 공사는 가로수 길을 다지는 것이었다.
요하나는 가솔린을 내 뿜으며 불도저가 다가오고 트럭이 오고 작은 나무를 베어내는 공사 차량을 보아도
작은 허브 향 램프 하나로 입덧이 없었다.
먼저 이주할 곳을 찾아야 했지만 기도할 뿐이었다. 사흘 동안 아침 일찍 일어나 그동안 심어둔 곡물들을
수확해서 개썰매에 싣고 돌아와 곡물창고에 보관해 두기 바빴다. 빌은 집 앞 텃밭에 철 늦게 자란 네그루의
해바라기와 요하나를 보자 오데사 장교의 말 ‘빌을 사랑하는 해바라기 아가씨’ 라는 말이 생각났다.
“해바라기 아가씨? 이주를 하더라도 저 아가씨는 우리가 살았던 흔적으로 남겨두고 가자.”
“좋아요. 해바라기 아가씨라는 말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데요? 하하하.”
사흘 일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한 뒤에 나른한 잠이 들었다. 루카스와 리나는 는 추수를 했으니 내일은
추수 감사 예배를 드리려고 기도와 설교를 준비하려고 교회에 있었다.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나 그러듯이 안전 지킴이 빌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공사 관계자 였다.
“저번에 버스주인 맞지요?”
“예. 무슨 일로.”
“내일은 우리가 쉬는 날입니다. 월요일부터 여기를 진입로로 만들어야 하는데 소음 발생 등 여러 일들이
있을 것 같아 말씀드리려 왔습니다.”
“아 예. 괜찮습니다. 우리는 곧 이사를 갈 겁니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말을 들은 루카스는 그들이 내일이 쉬는 날이라고 하자 공사 관계자들을 초청해서
추수 감사 예배를 함께 드리자는 생각에 물었다.
“내일은 쉬는 날이라고 하셨지요?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될까요?”
“예. 말씀하세요.”
“내일 우리가 추수 감사예배를 드리는데 모두 오셔서 예배 후에 점심도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아 예 감사합니다. 크리스천이군요. 예배가 난생 처음이지만 모두 모시고 오겠습니다.”
“아멘~”
공사관계자가 돌아가고 온 가족은 내일 쓸 음식을 만들기에 바빴다. 잘 익은 포도주도 준비하고 호밀 빵도
만들고 양젖으로 만든 치즈도 한 몫하고 연어와 오리 요리도 그들을 위하여 만들었다. 이것이 주상절리를
떠나는 마지막 성찬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다음 날. 일찍 공사 관계자 15명이 오고 숲정이 교회는 사람의 향기로 가득했다. 루카스의 설교아래 모두
감동의 시간이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어 그리로 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그리로 가는 자가 적음 이니라.”
“아멘.”
“좁은 문 그분이 우리를 인도 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 길을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의 박수를 올립시다.”
행복 나눔의 식사를 마치고 그들이 돌아갔다.
다음날. 이삿짐을 정리하고 모두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바깥마당 대문을 흔드는 소리가 났다. 개들이
짖어대고 우리에 양들도 울어댔다. 식구들은 도로 공사 관계자인가 생각했다. 아니면 관광객들이 호기심에
대문을 흔드는 소리로 여겼다. 빌이 밖으로 나왔다.
대문 밖에는 건장한 중년 남자가 검정 가방을 들고 텃밭에 네 그루의 해바라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옆모습을 보니 자신처럼 거무스름한 피부의 남자였다. 빌은 관광객이 또 얼마나 시시콜콜 많은 이야기를
물어볼까 미리 짐작하고 차단하려고 조금 귀찮은 듯 말했다.
“여긴 주상절리 안내소가 아니고 가정집이니 돌아가 주십시오.”
“아. 나는 관광객이 아닙니다.”
“그러시면?”
“나는 루카스 씨를 만나러 온 사람인데 어떤 관계이십니까?”
“예?”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이름까지 알고 묻자 지인이라 생각하고 대답했다.
“저는 루카스씨 사위입니다.”
“사위라 하하하. 나는 저 해바라기의 나라 우크라이나에서 온 하리코프입니다. 루카스 씨에게 하리코프가
왔다고 전해 주십시오.”
빌은 하리코프의 웃음에 자신들의 전부를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빠른 걸음으로 돌아와 루카스에게 소식을
전했다.
“밖에 우크라이나에서 오셨다는 하리코프라는 분이 찾아 오셨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하리코프? 오~영웅이 오셨다. 내가 직접 나가 환대해야겠다. 모두 따라 나와서 인사를 드리자 하하하.....”
“예? 영웅이요?”
영웅이라는 말에 제인과 빌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빌은 벤에게 하리코프가 누구냐고 물었다.
대답보다 빠른 것은 가족의 밝아진 웃음이었다. 루카스는 겉옷을 고쳐 입고 머리와 얼굴까지 살피고
마치 귀하신분을 맞이하는 듯 나섰다. 그 사이에 벤은 숨 쉴 틈도 없이 빠르게 말했다.
“1차 대전 때 막시 밀리언 목사님이 크리스천 모병관을 할 때 아버지와 하리코프 씨도 모병 해 갔어요.”
제인이 생각 난 듯 말했다.
“아~그 분은‘복면 신사’라고 삼촌에게 들은 것 같아요.”
“제인 맞아. 불속에서 막시 목사님을 구하려다가 온몸과 얼굴에 화상을 입어 복면을 썼는데 건축회사 직원
들이 신사답다고 복면 신사라고 불렀다고 했어.”
빌은 복면 신사가 복면이 아니고 화상치곤 깨끗한 얼굴이라 의아했다. 리나가 말했다.
“이상하다? 숲정이에 왔을 때 보았는데 검은 복면을 했었는데? 어쨌든 그분이 하리코프라면 나가서 환영해
드리자 영웅이 오셨으니.”
“예.”
가족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밖에서 중년의 남자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뜨거운 포옹을 풀지 않고
있었다.
“루카스. 참으로 오랜만이야 반갑네. 반가워.”
“영웅 하리코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한다.”
식구들이 모두 나오고 맨 먼저 하리코프의 얼굴부터 보았다. 목과 얼굴 피부가 당겨 다소 울퉁불퉁 했지만
화상의 그림자는 크게 드러나지 않아보였다. 루카스가 물었다.
“하리코프 화상소식은 키예프에게 들었네. 그런데 얼굴이 생각보다 좋은데?”
“전에 숲정이에 갔을 때는 수술 중이라 복면을 쓰고 다녔지. 전쟁 후에 자네가 귀향할 때 운전병으로 자넬
훔쳐보았을 때도 복면을 했었지. 막시 목사님께서 저명한 외과 의사에게 특별히 당부해서 여러 차례나
수술을 한 결과라네.”
“수술결과가 완벽해.”
“주님의 이름으로 아멘. 루카스 모병 동기 하하하.”
“그렇군. 모병동기 하하하. 자넨 건설사업에 무척 바쁠 텐데 어떻게 왔나?”
“하지만 여길 찾아올 시간은 있지. 하하하하.”
루카스는 가족을 소개하고 인사를 나눈 뒤 하리코프가 말했다.
“루카스. 폴란드 숲정이 마을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나?”
“숲정이? 마음이야 있지만 1년 전에 벤과 사위 체르노빌에게 들은 바로는 폭격으로 지옥이었다고 들었네.
자네라면 가고 싶겠나?”
“하하하하........”
루카스는 하리코프의 웃음에 의미를 모르고 따라 웃었다.
하리코프의 호탕하고 긴 웃음에 식구들은 하리코프의 웃음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체르노빌은
숲정이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는 물음과 ‘건설사업’이라는 말에 한 생각이 떠올랐다.
목걸이 함을 찾아오던 날 숲정이를 나설 때 건설장비와 자제를 실은 차량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자 하리코프가 특별히 지목하여 물었다.
“체르노빌. 자네 웃음의 의미는 무언가? 한번 들어보자고.”
“예. 제가숲정이 마을 입구에서 건설장비 차량을 보았습니다. 혹시.”
“오 자네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군. 나도 그때 ‘슈빔바겐’과 ‘퀴벨바겐’차량을 개조한 차를 보았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차가 주차장에 있더군. 하하하.”
두 사람은 개조 차와 건설장비트럭으로 구면이었다. 하리코프가 말했다.
“자네 눈빛을 보니까 예사 인물이 아닌 것 같아서 물어보는데 전에는 무얼 했지?”
“저는 한때 우크라이나 군인으로 정비병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특등사수로 뽑혀 우크라이나 장군님
경호병을 했습니다.”
“아하~ 여러 가지로 뛰어난 실력을 가졌군. 그래서 이렇게 예쁜 아내를 얻고 앞으로 루카스의 대를 이어
숲정이를 이끌어갈 튼튼한 제목이 되겠어. 하하하.”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목 감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사격이라면 자신 있어도.”
“사격? 나도 막시 목사님 경호원으로 사격이라면 자신 있는데 한번 겨루어 볼까? 만약에 나를 이기면 여기
모두에게 아주 큰 선물을 나누어 주겠네 하하하하.......”
“하하하 제가 이길 것은 당연한데 그 선물에 모두가 만족 할지 그게 궁금합니다.”
“와우~ 자신감 충만. 나는 빈말을 마음에 담지 않는 사람이라네. 그리고 내 인생에 지는 게임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내일 아침에 동이 트면 저 해바라기 가운데 구멍을 뚫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