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장석용 춤비평가] 김옥련발레단이 지난 7월10일(목)과 11일(금) 부산 해운대문화회관 해운홀에서 공연한 『운현궁의 봄』은 김동인의 동명소설을 발레로 무대화한 작품이다. 안무가는 발레에 대한 근접을 걱정하는 관객을 위해, 춤 장르의 구분 없이 우리 것을 발레에 과감히 수용한다. 그녀가 온 몸으로 써내려간 ‘발레소설’은 의식적 고품격을 지양하고 민중 속에서 시대를 항변한다.
김옥련, 부산 발레를 활성화 시키는데 매진해온 그녀는 자신의 기본 생활을 희생하고 발레로 여는 새로운 부산을 꿈꾼다. 현대 발레를 지향하면서 클래식 발레나 낭만 발레를 지지하는 주변으로부터 그녀의 발레 메쏘드에 대한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강하게 자신의 지지자들과 연구에 몰두하면서 발레의 시대적 가치와 ‘새로운 전통의 형성’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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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련 안무의 '운현궁의 봄' | 『운현궁의 봄』은 요즈음 시대상과 다를 바 없는 조선 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열강들의 개화에 대한 압력에 대항,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난국을 타개하고자하는 뜨거운 노력이 펼쳐진다. 크게 부각되는 것은 민중의 피폐함과 처참한 수탈의 현상이다. 역사에 묘사된 인물들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 조선 말 ‘쇠락의 서술구조’가 리버럴 휴머니즘에 극적으로 담긴다.
서막: 이 땅에 조선 건국이념과 유학의 엄숙함이 도도하고 자리 잡고 있음을 알리는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빠른 템포의 양반춤 사인무가 선보인다. 전통무 공연으로 착각되는 이 장면은 김옥련 발레의 전개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온다. 극이 전개되면서 궁금증은 서서히 해소된다. 고도의 대중친화적 전개는 노련하고 현명한 안무가의 절제와 조화로움의 추구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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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련 안무의 '운현궁의 봄' | 1부: 사물의 탄생을 묘사한다. 징, 꽹과리, 장구, 북의 탄생, 만남, 엇박, 어울림의 과정을 조선말 양반과 유학의 병폐에 찌들어 신음하는 민중들의 심정으로 빗대어 표현한다. 안무가는 ‘숲속의 발레’의 낭만이나 우아한 기품의 발레를 지양하고 ‘민중의 발레’를 옹호한다. 그녀의 동작 하나, 하나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기도문의 한 언어이자 눈물방울이며 절규이다.
2부: 구한말 제국주의의 난립 속에 바람 앞 등불 같은 조선의 처지, 그 속에서 고통 받는 양민들의 희생, 탐관오리들의 폭정, 무너지는 주권의 실상, 최후까지 견지되는 유학정신까지를 ‘늑대’, ‘풍어제’, ‘난전’, ‘서쪽하늘’ 네 장면으로 엮어 ‘혼돈의 극치’에서 몸부림치는 서사적 풍자로 자신의 입장을 뚜렷하게 밝히는 독창적, 진보적 발레체계를 구축한다.
3부: 통합의 정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분, 연령, 성별을 초월한 통합의 춤사위로 국론분열과 일그러진 역사를 포용하면서 대통합의 시대적 소명을 한국춤과 발레의 적조(適造)로 풀어낸다. 폭풍같은 한 시기를 마무리하고, 심연에서 솟아오른 심해어의 찬란한 비늘을 보듯, 출연진 모두는 고귀한 숙명의 어우러짐을 보인다. 김수환 추기경의 바보전법을 응용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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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련 안무의 '운현궁의 봄' | 해운대문화회관 상주단체 김옥련발레단(KOR Ballet Company)이 보여준 겸양지덕은 타 장르에 대한 존중과 엄정한 조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김옥련의 기법과 안무가로서의 안무의도는 분리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지만 그녀의 춤 풍토와 춤 장르에 대한 개선의 비전과 노력이 그들의 주장보다 한층 더 심오한 신비적 통찰력을 소유하고 있다.
김옥련 발레단(1995년 창단)은 부산을 지역 기반으로 하여 『해운대 연가』, 『여우, FOX』, 『분홍신 그 男子』, 『인포미선...인생을 포기한 미선』, 『운수 좋은 날』, 『거인의 정원』 등 60여 편의 세계초연 창작 발레를 발표하면서 장르 간 크로스오버를 시도해오고 있다. 불도저처럼 자신의 발레를 키워나가는 거침없는 질주, 그 불굴의 의지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김옥련은 『꿈속의 꿈』 ,『숲속친구 백화점 나들이』 ,『아기다람쥐 또미』 등 어린이 발레를 통해서 유소년 축구처럼 어린이들을 발레 친화적 춤 인재로 키우는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녀는 ‘소외지역 찾아가는 발레’ 공연,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도 하고 있다. 이 작업들은 부산 발레를 키워가는 커다란 프로젝트로서 이번 공연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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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련 안무의 '운현궁의 봄' | 턱없이 열악한 공간과 건조한 조건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명성황후를 연기해낸 김옥련, 심리묘사의 커다란 한 축인 대원군 역의 박재현, 상황을 정리해내는 연극배우 권철 씨와 김미경 노련한 내레이션, 명성황후의 시해를 알리는 소프라노 김현애의 아리아, 국악합주단 여덟 명의 연주 등 발레, 전통 춤, 현대무용, 사물, 소리, 대사에 걸친 연기는 눈물겹도록 가상하다.
이 작품에는 붉은 갓, 전자음악과 전통음의 혼합, 발목 묶인 여인의 현실, 징을 목 건 산고의 고통, 한복입은 발레리나, 악기를 상징하는 춤꾼들, 지전무를 추는 발레리나, 열강을 나타내는 늑대, 상황을 표현하는 영상, 명성황후 시해 장면, 무당의 제의(祭儀),격랑속의 바다와 어부, 비닐, 전통악기, 난, 가마의 방황 등에 걸친 많은 상징들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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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련 안무의 '운현궁의 봄' | 좁고 낮은 무대에서 최상의 작품을 선보인 연출가 유상흘과 어울린 유은주, 김옥련, 박재현, 박광호, 박영진, 절먼봇, 손영일, 최연순, 김인하, 서정애, 오상민, 박성규의 춤연기, 조희규(해금), 강원집(대금), 박태영(피리/태평소), 권다정(아쟁), 김지우(가야금), 주은지(거문고), 최정욱(장구), 김보연(꽹가리)의 연주 등은 인상깊은 부산 발레의 분투를 보여주었다.
우리춤 정서와 김옥련의 발레 표현미와의 만남은 낡아빠진 사회와 가치를 거칠게 풍자함으로써 그녀의 발레를 격상시킨다. 뜨거운 조선말의 비망록과 회고는 ‘불꽃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여 배신과 음모, 심각한 갈등과 입장들을 정리하고 반성케 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혼돈과 산만함에서 ‘선(善)’과 ‘새 생명’에 대한 메시아적 의연함을 보여준 이번 공연은 그래서 값지다.
장석용 춤 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