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길 데생
최 화 웅
해가 서산마루를 넘는다. 맨몸으로 나서는 산책길이 그지없이 자유롭고 편안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더위에 지친 몸을 휘감는다. 수평선 위로 뜨는 초저녁 별자리가 하늘의 전설을 들려준다.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몸과 마음이 더불어 느끼는 시간이다. 이 또한 넉넉히 받아들여 천천히 그리고 충분히 맛본다. 왕복 5km 남짓한 거리를 일주일에 서너 번 걷는다. 엘사는 오늘도 변함없이 지그재그로 보폭(步幅)을 맞추며 나선다. 노상 고맙다.
파스텔톤 노을빛이 아름답게 번진다. 생명의 빛을 품은 장 피에르 레노의 빨간 화분이 고즈넉한 포구를 내려다본다. 해변 따라 옛 정취 머금은 저녁안개 피어 해변을 감싼다. 빛과 어둠이 자리를 바꾸며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땅거미 내려앉을 때 밀려오는 물결 그리움으로 아우성친다. 흥에 겨운 버스커들 덩달아 외친다. 그 뒤로 테라스에서 흐르는 연인들의 밀어, 땅거미 지는 초저녁거리에 등불을 밝힌다. 여름밤은 그렇게 상상과 비약의 의외성을 거침없이 연출한다.
아름드리 종려나무 사이로 바다빛 미술관이 문을 연다. 얀 카슬레의 ‘은하수 바다’가 어두운 밤하늘을 아름다운 별빛으로 수놓는다. 허기진 바다는 불그림자 길게 물고 희미해져가는 옛사랑의 추억으로 출렁인다. 주말 바다에는 사람들로 넘쳐 한층 시끄럽고 어지럽다. 그러나 옛 남천동 어촌계를 돌아 나오면 매미울음 들리고 고추잠자리 부딪힐 듯 앞을 스친다. 바다 한가운데 멈춰선 유람선의 불빛이 여름밤의 신비를 머금었다. 어둠 깃드는 먼 바다에는 하늘과 맞닿은 한줄 수평선이 떨리는 가슴으로 포옹한다. 백남준의 ‘디지테이션’이 만남과 헤어지는 삶을 나누는 동안 수평선은 형성과 사라짐의 굿판을 펼친다.
광안대교 밑으로 한여름밤을 지나는 범선 홀로 외롭다. 레이저빔이 죽은 물고기의 영혼으로 살아나 번득인다. 동쪽 끄트머리 장산 아래로 뻗어 내린 순한 동선 따라 마린시티의 빌딩숲과 동백섬 누리마루, 그 너머 산허리를 자르고 휘도는 달맞이 고개 뒤로 망망대해(茫茫大海)가 대양으로 이끈다. 서쪽 끝 이기대 장군봉으로 뛰어넘은 스카이라인이 도회의 실루엣을 그린다. 뜻밖의 블루문이 해변에 윤슬을 피워 눈부시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선율이 여린 감성을 흔든다. 문득 머리 위로 그리운 여름밤의 별자리가 쏟아진다. 두 발로 걷는 반듯한 걸음이 군중을 헤치고 세상 속으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일찍이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 바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 바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끊이지 않는 육당의 파도가 데빼이즈망의 미학(美學)을 담아낸다. 걷는다는 것은 몸의 건강 못지않은 영혼의 맑은 씻김으로 나를 새롭게 한다. 광안리해변의 동쪽 끄트머리 민락동 어촌계에는 어느 날 독일 그래피티 아티스트 헨드릭 바이키르히가 은퇴어부, 박남세 옹의 초상을 그리고 그의 입을 통해 “역경이 없으면 삶의 의지도 없다.”는 메시지로 우리 마음을 씻어준다. 그는 이 풍진 세상의 무당인가 사제인가. 주말에는 맨몸으로 하룻길을 나서보자. 두 발로 걷는 것은 언제나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삶의 확장이다. 두 눈 부릅뜨고 반듯하게 걷는다는 것은 내일로 가는 우리의 자화상이어라.
* 위 글은 8/22(토)자 부산일보 '토요에세이'에 게재된 원고를 수정한 것입니다.
첫댓글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 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네요.
바이키르히는 "역경이 없으면 의지도 없다."고 했습니다.
강화도의 가뭄은 어떤가요?
남북간의 대결구도로 힘들진 않으세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바닷길을 산책하는 것 또한 멋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멋을 느끼기보다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광안리해변은 말로 다 하지 못하는 생각과 사연들이 널렸습니다.
오늘이 처서, 이제 가을 절기를 맛보셔야죠.
길을 걸으며 느끼며 눈에 보이는 듯한 파도소리, '역경이 없으면 삶의 의지도 없다.'
또 하나의 삶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봐요. 감사합니다.
거침없이 다가오는 바람과 물결이 저의 영혼을 깨웁니다.
이 가을에는 살아온 만큼 책임지는 참믿음을 가질려고 다짐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더위도 한풀 꺽인것 같습니다.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시몬씨, 데레사자매님도 잘 계시죠?
지난 여름은 더운 먼큼 위대했습니다.
산과 들에는 풀벌레울음이 밤바람에 업혀옵니다.
반듯하게 걷는다는 것은 내일 가는 우리의 자화상이다.^^살아가려는 의지의 삶이
두 발로 서서 반듯하게 걷는다는 것.
그것은 오랜 인류의 꿈이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열망일테지요.
오늘을 산다는 의미는 오늘의 충실만으로 모자랄 것 같습니다.
서산마루를 넘는 파스텔톤의 해를 바라보며, 언제나 그렇듯 함께한 사람과
욕심없는 마음으로 걷는 광안리 해수욕장의 그 길을 상상해봅니다.
나도 한번 그 길을 걸어보고 싶다...
이 풍진 세상의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하늘 아래 사람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너무 많은 종류의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가톨릭의 다양성입니까? 기도합니다.
"그들을 모두 아우르시고 먹여 살려달라구요."
아름다운 기억의 광안리 해변과 남천동이 그리워지네요.
두 분의 마음과 몸, 늘 행복과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