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영혼의 소실/ 황인찬
<당신은 지금 죽었습니다
약간의 경험치와 소지금을 잃었습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그런 메시지가 떠오른 것 같다
스테이터스, 그렇게 외쳐도 무슨 창이 허공에 떠오른다거나 로그아웃이라고 말한다고 진정한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식탁 위에는 1인분의 양식이 있고
창밖으로는 신이 연산해낸 물리 법칙에 따라 나무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너는 분갈이를 해야 한다며
거실에 앉아 식물의 뿌리와 씨름을 하고 있었는데
(이미 구면인 신이 찾아와 내게 말을 건다
<이것이 당신의 영혼입니다>
-작군요
<이것이 당신의 슬픔입니다>
-없는데요
<그것이 당신의 슬픔이군요>
......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나무들의 흔들림이 멈춘다)
회상이 끝나면 어느새 너는 없고 너무 커서 부담스러운 고무나무 한 그루가 거실 창가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이 나무에는 너의 영혼이 깃들었고
이것을 잘 가꾸면 언젠가 네가 열매 맺힐 것이라 믿으며
나는 잘살고 있다
딱히 네가 죽은 것은 아니지만
<당신은 지금 죽었습니다>
다시 내 머리 위 어디쯤
메세지가 떠오른 것만 같았고
-부활은 안할게요
그렇게 말해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황인찬, 계간「어선 테일즈」, 2021년 겨울호
젊은 날 왁자한 서면 거리, 하반신을 검은 고무로 둘러싸고 자라처럼 엎드려 대로를 엉금엉금 밀고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카세트에서는 무슨 노래인가가 흘러 나왔는데, 나는 구슬픈 그의 노래가 그의 영혼인 것만 같이 생각되었다. 그 옆을 무심히 지나치는 젊은 바지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 젊은 바지들의 영혼은 금세 사라지고 말 연기 같은 것이었을까?
2021년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와 카카오브레인이 공동 개발해 탄생한 인공지능 시인 ‘시아’는 인터넷 백과사전과 뉴스로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 근현대시 1만 2,000여 편을 학습하며 시작법을 배운 뒤 올 여름 개인 시집을 발표했다고 한다. 그의 시집을 읽으면 영혼을 만질 수 있을까?… 영혼은 어떤 맛일까? 그에게서는 단 맛이 날까? 내가 맛본 영혼의 맛은 오래전 프랑스 이탈리아 패키지여행 중 담장 너머로 모나코 왕국을 보기 위하여 이동한 일행과 동떨어져 작은 카페에서 홀로 마셨던, 거품 가득한 카푸치노의 달콤하고 씁쓸한 맛, 그쯤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수많은 영혼을 태우고 달리는 버스는 무거울까, 가벼울까. 영혼과 영혼이 만나면 재가 될까, 불이 될까. 영혼을 닮은 얼굴이 있다. 어떤 얼굴은 영혼 너머 영혼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하다. 그는 마치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낯빛 하얀 사제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때 너는 분갈이를 해야 한다며/ 거실에 앉아 식물의 뿌리와 씨름을 하고 있었는데 ” “(이미 구면인 신이 찾아와” “말을 건다” " <이것이 당신의 영혼>”이라고. 영혼은 식물의 뿌리일까. 뿌리를 돌보는 마음일까. 나무와 꽃과 하늘과 바람은 신의 영혼일까. 신은 말한다. 슬픔이 없는 당신들이야말로 슬픔이라고. 그렇다면 영혼은 슬픔일까? 슬픔을 아는 이의 눈동자일까? 슬픔은 깨어남일까? 매 시각 깨어있는 자만이 세계의 슬픔을 인지하고 함께 울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생각하는 영혼의 얼굴들은 모두 조금씩은 쓸쓸하고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딘가에 넋을 빼앗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시 내 머리 위 어디쯤/ 메세지가 떠오른 것만 같았고/ -부활은 안할게요/ 그렇게 말해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젊은이들은 이 땅에 다시 “부활”하고 싶을까. “부활은 안할게요” 라고 말해도 “들어주는 사람” 아무도 “없”는, 이 땅에 다시 태어나고 싶을까. 아무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지옥의 한 때와도 같은 그 시각을 다시 살아내고 싶을까?…
영혼 없이 사는 사람의 삶은 살아있되 죽은 삶일 것이다. “<당신은 지금 죽었습니다>” 신의 사망신고를 듣기 전에 내 뿌리는 살아있는가. 내 나무는 건재한가. 내 슬픔은 현재 진행형인가, 가만히 부끄럽고 무거운 종아리를 만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