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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마음의 빚
오늘따라 길을 걷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나를 가려주는 모자를 쓰지 못해서 인건가 싶기도 했다. 밝아 보이는 학생들의 등굣길이 나에게는 왜 이리도 싫은지 날씨마저 좋아서 썩 좋지 않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2학년 3반’
내가 앞으로 1년 동안 함께 해야 될 반이 보였다.
드르륵-
문을 열고 반에 들어갔다. 아이들의 시선이 날 향해 쏠렸다, 그러기도 잠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제각기 무리지어 다시 떠들기 바빴다.
나는 맨 뒷자리 창가에 자리를 잡고 이어폰을 꼽고 엎드렸다.
‘아...시끄러워..어차피 나중에는 다 싸울꺼면서 왜 저렇게 떠드는거야’
내 눈에는 아이들의 떠드는 모습이 가증스럽기만 했다. 얼른 저 들뜬 소리가 없어지길 바라면서 눈을 감았다.
얼마지나지 않아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선생님의 구둣소리가 내 귀에 울렸다.
‘벌써 선생님이 오신건가..’
형식적인 선생님의 소개가 반을 가득 채우고, 나는 창 밖을 보며 하품을 했다.
내 눈에 나무와 하늘로 가득 차 있는 평화로운 풍경이 지속 됐다. 그러다 그 평화를 깬 건 허둥지둥 달려오는 여자애 한명이었다.
“석지연, 석지연! 석지연 안왔어?”
“...네!”
벌써 출석을 부르는 시간이었나 보다 창 밖에 정신이 팔렸던 나는 선생님의 부름에 늦게 대답했다. 부끄러웠다. 날 향해 쏠리는 시선들이 빨리 없어졌으면 했다.
드르륵- 쾅
누군가 문을 쎄차게 여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아이들의 시선은 나에서 문으로 향했다.
“선생님,,, 저 왔어요! 현은혜에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서 자리에 앉아. 아직 출석 중이었으니까 지각은 아닌데 다음에 이러면 지각 체크 할거야.”
“감사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나는 아까 내가 창밖으로 보던 여자애가 저 아이였음을 직감했다. 나와는 다른 밝은 목소리가 점점 나에게 가까워져왔다. 그리고 텅 빈 나의 옆자리가 그 아이로 채워져 있었다,
툭툭 누군가 나의 어깨를 쳤다. 그 손가락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안..어..너 나랑 진짜 똑같이 생겼다. 대박 너 이름이 뭐야? 나는 현은혜야.”
먼저 놀란 마음을 전한 건 은혜였다.
“.....”
말을 할 수 없었다. 말로만 듣던 도플갱어를 학교에서 만나고 같은 반, 내 짝꿍이라니. 여태 나는 지난 1학년때 이 아이를 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고등학교 첫 날 아침이 요란스럽게 끝났다.
학교 수업이 끝났다.
수업시간 내내 나에게 말을 걸어 지적받았던 은혜는 수업시간이 끝나고 나서도 나를 괴롭혔다. 오늘 하루 지쳤던 나는 은혜에게 소리를 지르려던 찰나 은혜는 나를 꼭 껴안았다,
“지연아, 오늘 반가웠어. 내가 너무 귀찮게 했지? 그래도 나는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내일 보자! 집 조심히가.”
오늘 하루 처음으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순간이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심지어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은혜의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정신을 차리고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은혜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내가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얼굴이 똑같이 생겨서 단순 호기심으로 날 바라보는거면 어떡하지’
머리가 아파왔다. 계속해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자리걸음일 뿐이었다. 내일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찍 잠들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 할 뿐이었다.
다음 날, 학교에 도착했고 어제보다 더 밝은 미소로 나를 향해 웃음 짓는 은혜가 보였다. 그 웃음에 홀린 듯 나의 오른손을 양쪽으로 흔들었다.
“지연아, 얼른 와봐. 내가 애들한테 너랑 나랑 진짜 닮았다고 말해주고 있었어.”
은혜는 벌써 여러명의 반 친구들이 생겼고, 은혜는 애들을 나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했다. 얼떨결에 은혜와 내가 반 아이들 중심에 서있게 되고 나는 이런 상황이 싫었다,
빨리가서 내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반 아이들은 신기하다며 친하게 지내자는 말을 하고는 은혜와 쌍둥이 아니냐는 말들과 함께 여러 질문들이 쏟아졌다.
“은혜랑은 원래 알던 사이였어?”
“아니..”
“와 너희 진짜 드라마에서 나오는 막 배다른 형제 아니야?”
“야 김지선 무슨 말이 그렇냐. 지연이랑 나는 운명이지. 뭐 도플갱어 같은 거지. 둘 다 성이 다른데 무슨 배다른 형제야.”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지연아 기분 나쁘게 들렸다며 미안. 같은 반인데 1년 동안 잘 지내보자.”
나는 이런 상황이 낯설었다. 누군가 나를 궁금해하는건 처음이었다. 이런 나를 눈치챘는지 그만 질문하라며 나의 손목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은혜는 미안한 표정과 함께 나에게 사탕 하나를 건넸다.
“아침부터 피곤했지? 그냥 너랑 나랑 닮은게 신기해서 애들한테 말했는데..”
은혜의 말에 나는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 상황이 좋지도 싫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침묵에 은혜는 내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지 쉬는시간 내내 나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은혜야 지연아 같이 밥먹으러가자.”
아침에 나에게 말을 건넸던 몇 명의 친구들이었다. 은혜는 내 눈치를 보았다,
친구들은 배가 고프다고 얼른 일어나라며 재촉했다. 나는 은혜에 손목을 잡고 일어나 밥먹으러가자고 말했다. 우물쭈물했던 은혜의 모습은 사라지고 금방 웃는 얼굴을 지었다.
나는 아이들과 밥을 먹으면서 생각보다 학교생활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너무 고등학교 1학년때 마음을 닫고 생활했던 것 같아서 조금은 마음을 여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와 은혜는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혜의 워낙 밝은 성격 때문에 반애들은 물론 선생님들까지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는 나와 은혜는 반장 부반장이 되었다. 우리는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은혜가 옆에 없으면 어색하고 허전한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우리의 다른 성격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니 이보다 더 완벽한 학교 생활은 없었다.
평화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점점 날씨는 더워지고 여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작년과는 달라진 나의 모습은 여전히 어색하기만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건 나와 은혜의 사이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평화와 우리 사이의 금이 가는 일이 생겼다.
“오늘 체육 나가서 한 대. 다들 체육복 갈아입고 나와.”
다음 시간은 체육이었다. 체육 부장의 말과 함께 나는 체육복을 들었다.
“은혜야, 오늘도 화장실가서 갈아입어?”
“응? 그래야지.”
“안더워? 하복 체육복 가져오지. 왜 오늘도 동복 체육복이야?”
“나 추위 잘 타잖아. 그리고 살 타는 것도 싫어서 그래.”
무더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복 체육복을 입는 은혜였다. 체육복은 물론 교복도 하복을 입었지만 늘 그 위에 후드집업을 입었다. 처음에는 정말 더워서 그런 건가 싶었다. 하지만 땀을 흘리는 은혜의 모습들이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하나,..둘,,,,”
체육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우린 체조를 시작했고, 오늘도 은혜의 얼굴에는 땀이 가득했다. 체조를 한 후 쉴 사람은 쉬고 운동할 사람은 하라는 체육 선생님의 말과 함께 반 아이들 대부분은 그늘로 발걸음을 옮겼다.
땀을 뻘뻘 흘리는 은혜를 보며 다들 더워 보인다며 동복을 벗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혜는 입만 웃어 보일 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 후 시시콜콜 애들과 수다를 떨던 중 이었다.
갑자기 나와 다니는 친구 중 한 명인 지수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야, 지연아 우리 은혜 후드집업 숨겨보자.”
갑자스런 지수의 제안에 나는 고민을 했다. 물론 해서는 안될 짓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호기심으로 인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와 지수는 양호실을 핑계로 아이들이 없는 교실로 올라가 나의 가방에 은혜의 후드집업을 숨겼다.
체육시간이 끝나고 교실에 올라 갔을 때, 역시나 은혜는 후드집업을 찾고 있었다.
“내 후드집업 본 사람, 누가 가져갔어?”
다급한 은혜의 목소리의 지수가 말했다.
“은혜야, 얼른 체육복 먼저 갈아입어. 우리 다음 시간 역사야. 체육복 입으면 혼난다.”
“아니..하.. 누구야! 누가 가져갔냐고!”
처음으로 듣는 은혜의 화난 목소리였다.
은혜의 목소리의 다들 움찔했고, 어느새 쉬는 시간이 오분도 남지 않았다.
나 또한 은혜의 처음 보는 화난 모습에 내 가방에서 후드집업을 건냈다.
“저기,, 은혜야.. 있잖아 우리가 그냥 장난...”
내 말이 꺼내기도 전에 은혜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후드집업을 확 낚아챘다.
나의 손은 잠시 떨렸다. 그리고 나의 행동을 후회했다.
황급히 교복을 갈아입고 온 은혜는 학교가 끝날 때까지도 나에게 말을 건내지 않았다.
나는 가방을 먼저 챙겨나가는 은혜를 붙잡았다.
“은혜야, 미안해.. 정말로.. 지금 당장 내 사과 받아주지 않아도 괜찮아..정말 미안해.”
은혜와 나는 교실 한 가운데 우뚝 서있었다. 침묵이 우리를 겉돌았다.
“지연아, 나 너한테 말할거 있어. 오늘 시간되면 우리집 갈래?”
침묵을 깨고 나온 은혜의 의외의 한마디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은혜와 함께 은혜의 집으로 갔다.
은혜의 집 앞에 도착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우리를 맞이한건 텅 빈 넓은 거실이었다.
은혜는 저 멀리 이미 본인의 방으로 향하였고 은혜를 따라 조심스럽게 은혜의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은혜의 후드집업을 벗자 은혜의 팔뚝에는 피멍이 가득했다.
“너...이게 무슨일이야...은혜야..”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은혜의 몸에 상처들만이 내 눈에 가득할 뿐이었다,
“봐. 내가 그동안 긴 옷을 입을 수 밖에 없던 이유야.”
나는 오늘 했던 내 행동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지연아, 우리 엄마 아빠 이혼하고 아빠랑 둘이 살아.”
“설마...”
“맞아, 우리 아빠가 그런거야. 엄마랑 이혼하게 내 탓이라고 하면서 맨날 때리더라.”
담담한 은혜의 말은 나를 더욱 아프게 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입을 떼지 못했다.
“있잖아, 나 도망가고 싶어. 나 좀 도와주라.”
점점 몸이 벌벌 떨리는지 은혜는 나에게 부탁했다.
“내가 지연아 경찰에도 몇 번 신고했는데 있잖아 꼴에 부모라고 아무도 안잡아가더라. 살려줘 나좀.. 지연아 제발.. 나 좀 제발 살려줘...”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은혜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우리 둘은 한바탕 엉엉 주저앉아 울었다.
“은혜야, 우리집에서 자고갈래?”
나는 은혜에게 우리집에서 자고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은혜는 고개를 젓고 의미심장한 마지막말만 하고 나보고 아빠 오실 시간이 됐으니 얼른 집에가라고 했다.
“지연아, 내가 만약에 갑자기 새벽에 문자를 보내면 도와달라는 신호야. 그리고 우리집 비밀번호는 0314#이야. 꼭 기억해줘.”
나는 은혜의 집을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섰다.
집에 도착해서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단순 나의 호기심이 알고 보니 상대방은 큰 상처가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오늘 본 멍투성이 은혜의 몸을 잊을 수 없었다.
나는 계속 뒤척이고 새벽이 돼서야 겨우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래도 늦게자도 다행이었던건 다음 날이 주말이었다.
늦게 잔 여파때문인지,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에 일어났다.
잠시 기지개를 폈다.
“아 맞다.. 오늘 애들이랑 은혜 생일선물 사러가기로 했지.”
시간을 보니 벌서 약속시간이 삼십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얼른 씻고 애들과 약속한 장소인 지하철역으로 달려갔다.
“헥헥,, 애들아 미안해. 내가 많이 늦었지? 얼른 선물 고르러가자.”
숨을 헐떡이며 나는 애들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애들은 괜찮다며 얼른 선물고르러 가자며 말을 했다.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잠시 접어두고 은혜의 선물고르기에 몰두하기로 했다. 애들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선물을 고민하고 있을 무렵에 핸드폰에 진동이 울린 것도 모른체 나는 은혜를 생각하며 애들과 돌아디니기 바빴다.
은혜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과 나는 애들 몰래 똑같은 책갈피 두 개를 사서 하나는 내가 가지고 하나는 은혜에게 주기로 결심했다.
어느새 해는 지고 애들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갈 무렵, 나에게 문자 하나가 와 있었다.
‘도와줘’
은혜의 문자였다.
벌써 세 시간 정도가 지났다. 나는 황급히 은혜에게 전화를 하며 뛰어갔다.
안내원의 음성사서함으로 넘아간다는 말이 나오고 계속 전화를 걸어보지만 똑같은 안내원의 말만 핸드폰에 울릴 뿐이었다.
은혜의 집 앞에 도착했지만, 은혜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은혜를 기다렸지만 은혜의 모습은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날, 학교에 일찍 도착해 생일선물과 편지를 챙겨 은헤의 사물함에 몰래 넣었다.
한 두 명씩 아이들이 오면서 교실의 빈자리들이 채워져 가는데 은혜는 오지 않았다.
혹시나 지각을 하는 것일까 기다려 봤지만 선생님의 조레시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다음 날 그리고 그 다음 날도 은혜를 기다렸다. 나는 이대로 안되겠다 싶어서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혹시 은혜 왜 학교에 안나오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음.. 은혜 아버지께서 은혜가 아프다고 며칠 못나온다고 전화가 왔거든.”
“네?”
“마침 잘왔다. 이거 가정통신문인데 반장 너가 은혜한테 가져다줘.”
“네..”
별 수확없는 선생님과의 대화였다. 그 날 내가 은혜의 문자를 보고 바로 갔더라면 은혜는 오늘 학교에 분명히 나왔으리라.
나는 오지 않는 은혜의 빈자리를 보면서 마음만 무거워져 갔다.
학교가 끝나고 가정통신문을 전해주러 갔지만 역시나 은혜를 볼 수 없었다.
나는 우편함에 가정통신문과 이미 지나버린 은혜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편지를 넣었다.
유난히 하늘이 맑은 오늘이 은혜와 처음 만난 학교의 창 밖 풍경 같았다.
그리고 오늘 새벽이었다.
지이잉---
두 번의 문자음이 울렸다. 눈이 번쩍 뜨이고 문자를 확인했다.
‘ㄷㅇ호’
은혜였다.
나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문을 박차고 은혜의 집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나는 은혜의 집 앞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미리 112를 핸드폰에 누르고 도어락 앞에 서서 떨리는 손으로 비밀번호를 눌렀다.
‘0...3..1..4#’
띠릭--
소리와 함께 도어락이 열렸다.
칠흑같은 어둠만인 나를 반기고 후레쉬를 켜 은혜의 방문을 찾았다. 떨렸다. 소리를 낼 수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은혜의 방을 간신히 찾고 방문을 열었다.
겁에 질려 눈물이 가득 고여 앉아있는 은혜가 있었다.
“은혜..”
쉿-
은혜는 조용히 하라며 손짓 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하라고 내게 귓속말을 했다. 화면이 켜져 있는 핸드폰을 들고 112에게 전화를 했다.
그 순간 방문이 덜컥 열렸다.
은혜의 아버지였다.
은혜와 나는 그만 겁에 질려 핸드폰을 땅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은혜의 아버지는 나와 은혜를 보고 혼란에 하는 듯 했다. 그리고 이 순간에 나는 은혜를 방문 밖으로 밀치고 내 핸드폰을 던졌다.
“얼른!!!”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일으킨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은혜의 아버지는 우리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은혜의 아버지의 옷깃을 붙잡고 일부러 실랑이를 벌였다.
“야 이거 안놔?”
나의 머리부터 시작해서 여기저기를 무자비하게 때렸다. 아파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안간힘을 써서 붙잡았다.
아저씨의 알싸한 알코올 향과 아픔이 몰려오면서 나는 표정이 점점 굳어져만 갔다.
그 동안 은혜는 어떻게 웃으면서 학교를 다닌걸까..
몇 분 지나지 않아 싸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에 아저씨는 날 향해 씨익 웃었다. 아저씨는 라이터를 키고 침대를 향해 불을 붙였다. 그리고 날 방 문에 가두고 밖에서 걸어 잠궜다.
쾅쾅--
나는 방문을 열어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손잡이를 돌렸지만 방 문은 열리지 않았다. 불은 점점 거세지고 연기만이 방 안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
“제발 아무나 와줘..제발!!”
나는 울부짖었다. 아무나 들어와 나를 살려주었으면 했다. 가족들이 보고싶은 날이 올 줄이 오늘일 줄은 몰랐다.
점점 의식은 희미해지고 그 순간 내 몸은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내가 눈을 뜬 건 며칠 뒤였다,
내가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고 우리 엄마가 울면서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너 미쳤지? 너가 제정신이 아니지? 너 도대체..”
엄마는 날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그 후 정신이 없는 하루의 나날이 연속 되었다. 경찰은 물론 기자까지 정말 여러 사람들이 나의 병실을 들락거렸다.
많은 사람들이 왔었지만 은혜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내가 퇴원을 하는 날에도 여전했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저 허무함이 남을 뿐이었다.
학교를 다니기 싫어졌다. 그래서 나는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핑계로 잠시 아무 곳도 나가지 않고 천장만 바라보면 잠만 잘 뿐이었다.
‘내가 지금 집에서 뭘 하는 걸까.. 내가 그 날 은혜에게 가지 않았더라면..어떻게 됐을까’
나는 은혜의 모습이 궁금했다.
물론, 은혜의 아버지는 지금 교도소에 계신다.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은혜의 근황이 궁금해서 여러 기사를 봤지만 이 사건은 나와 은혜가 닮았다는 사실에만 주목하여 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기삿거리만 가득했다.
나는 잠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어 엄마 옆으로가 앉았다.
“왜? 어디 몸 안좋아?”
걱정스러운 듯 날 향해 엄마는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엄마 근데 나 배다른 형제 있어?”
“으휴, 아직 치료받아야 되나 보네. 쓸데없는 소리하지말고 밥이나 먹어.”
엄마는 혀를 끌끌차며 말했다.
내가 은혜와 배다른 형제이길 바라는 일말의 희망 때문에 질문 했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은혜가 보고 싶었다. 그냥 그 마음뿐이다.
등교 첫 날,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웠다. 나는 아직 은혜에게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못한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문득 은혜의 서랍 안에 나의 생일선물이 그대로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몸도 어느 정도 좋아졌다.
고2 등교 첫 날과 같은 찝찝한 기분이었다. 학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아직 해결해야할 일들이 나에게는 남아있었다.
교실에 도착해서 아이들은 나를 영웅 취급했다. 그리고 은혜는 그 날 이후 학교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며 너무 매정하지 않냐며 은근히 은혜를 까내리기 바빴다.
난 아이들의 말을 무시하고 은혜의 사물함을 바로 열어보았다.
무언가 있었다.
나는 편지와 포장된 작은 상자에 써있는 내 이름을 보고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아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기에 편지와 상자를 열어볼 수는 없었다. 그저 가방에 챙겨 수업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유난히 느렸던 선생님이 종례 그리고 날 따로 불러낸 선생님의 말씀은 나의 마음을 모르는 듯 느리기만 했다,
난 집으로 달렸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시야가 흐렸지만 집으로 달려가 편지와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에는 새 핸드폰과 우리 둘이 찍은 사진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편지에는 단 두 마디 만이 적혀있었다.
‘지연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웠어.’
나는 소리를 내면서 엉엉 울었다. 내가 그 날 은혜를 찾아갔던 행동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나와 성격은 다르지만 얼굴은 똑같았던 나의 첫 친구였다.
어쩌면 우리가 형제였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은혜가 내가 느꼈던 죄책감이 들지 않았으면 했다.
은혜또한 내가 그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은혜도 나와 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나는 은혜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 편지를 내 서랍 안에 간직했다.
사진 속에서 너와 내가 웃고 있는 모습으로 꼭 만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