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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 1장 1-2절
제목: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설교개요
I. 하늘과 땅을 지으신: 언약의 사랑
1. 성경 전체의 주제
2. 사랑의 복음: 시편 8편/ 출애굽기 31장 17절, 시편 121편, 시편 124편
3. 현재의 복음: 로마서 8장 38-39절
II. 태초에 하나님이: 언약의 주권
1. 혼돈과 공허: 이사야 34장 11절, 예레미야 4:23
2. 흑암: 출애굽기 10장 21-22절
3. 깊음: 신명기 33장 13절/ 창세기 7:11, 에스겔 26:19
III. 부활안에서 창조질서
1. 창조 때의 말씀과 성령
2. 부활하신 예수님과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3. 부활의 장자 안에서 만나는 만물의 장자: 골로새서 1장 15-18절
생각할 문제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를 고백할 때 나는 어떤 위로를 얻습니까? 시편 121편, 124편의 저자들에게 배우면서 말해 봅시다.
2. 하나님께서는 혼돈, 공허, 흑암, 깊음을 엿새 동안의 창조를 통해서 제 자리의 질서 속에 두시거나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다시 나타나게 하실 때 그 의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서 우리가 받는 사랑과 보호를 통해서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3. 첫 창조 때 계셨던 예수님과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골로새서 1장 15-18절에서 예수님은 ( )( )의 장자이자 동시에 ( )( )의 장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모든 만물을 대할 때 우리의 결정이 아니라 ( )( )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사랑의 선물로 주신 성경, 그 성경의 첫 구절입니다. 이 첫 구절은 전체 성경의 요약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이 구절은 메아리처럼 우리를 향해 울려 퍼집니다. 우리의 가슴에도 고동치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모든 만물 속에서도 증거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I. 하늘과 땅을 지으신: 언약의 사랑
1. 성경 전체의 주제
첫 인류였던 아담부터 지금까지 창세기 1장 1절을 모르는 하나님의 백성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 각각 시대가 다르고 형편이 다르고 처지가 달랐지만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이 구절을 알았습니다.
이방 땅 우상들로 가득 찬 갈대아 우르에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세기 12장 1절)는 명령을 받은 아브람도 “태초에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조상으로부터 들어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척박한 가나안으로의 미래를 알 수 없는 여정을 떠날 수 있었고 자신의 유일한 적자인 이삭을 바치려 모리아 땅을 향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했습니다.(히브리서 11장 19절)
하나님 백성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창세기를 기록했던 모세는 모세 오경의 첫 구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를 자신의 손으로 쓰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2장 15절에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을 알고 바로는 모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으로 도망갔습니다. 40년을 숨어 살았습니다. 40년 후 호렙산에서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낸다고 하셨을 때 모세의 첫 마디는 “내가 누구기에 바로에게 가며”였습니다. 40년간 바로를 두려워했던 모세에게 자신의 손으로 쓰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는 말씀은 신적인 존재, 가장 강력한 권력자 바로를 향한 자신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골리앗을 향해 나갔던 다윗도 창세기 1장 1절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 어떤 이스라엘 백성도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했던 (사무엘상 17장 24절) 골리앗이 자신에게 다가올 때 다윗의 심장에는 이 말씀이 아로 새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서 3장에 느부갓네살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는데 높이가 30미터 정도 되었습니다. 두라 평지에 세우고 모든 고관들이 절하고 엄청난 규모의 군악대가 연주하면서 절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지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들도 창세기 1장 1절을 암송하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아담 이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진 말씀입니다. 각각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이 말씀을 암송하고 고백했고 이에 합당한 선택을 하였습니다. 역사 속에 존재했던 모든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각자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구절을 알고 암송합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합당한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계시, 성경의 첫 구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모든 하나님 백성이 알았고 자신의 처한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말씀이었습니다.
2. 사랑의 복음: 시편 8편/ 출애굽기 31장 17절, 시편 121편, 시편 124편
하늘과 땅을 지은 하나님을 부르는 모든 백성들의 유익에 대해서는 특별히 시편 121편과 124편이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시편 121편은 단수 곧, ‘내가’ 천지를 지은 여호와를 아는 사람의 유익을 말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에게서로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설명은 시편 121편에서는 나의 도움을 요청하는 시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 시는 계속해서 2인칭 인칭대명사 ‘너’를 사용해서 천지를 지은 하나님이 너를 실족하지 않게, 너를 지키기 위해서 졸지도 않고, 너의 오른편에서 그늘, 해와 달도 너를 상치 않도록 네가 모든 환난을 면하고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않도록 네 영혼을 지키시겠다고 고백합니다. 이 모든 중심에 창세기 1장 1절, 곧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셨다는 것이 중심이 있습니다.
시편 124편은 공동체 곧, 우리라고 하는 이스라엘에게 닥친 위험을 말하면서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 중심에도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창세기 1장 1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 위기, 환난, 두려움, 절망 속에 있는 나와 우리가 거듭 의지해야 할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시편 121편과 124편의 고백은 창세기 1장 1절을 읽고 고백했던 모든 나와 모든 우리의 고백을 압축하고 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를 고백하는 모든 자들에게는 이 두 시편이 말하고 있는 축복이 함께 했습니다.
범위를 좁혀서 엿새동안 하나님께서 하신 일만 제한해서 봅시다. 엿새동안 하나님의 모든 창조는 마지막 날에 있었던 사람의 창조라는 클라이막스를 향해서 배치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살기에 합당한 땅을 얻기 위해서 하나하나씩 질서 있게 배치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배치된 땅에 드디어 창조하신 사람을 두십니다. 엿새 동안의 창조도 하나님이 사람을 향해 가진 사랑, 사람을 위한 섬세한 배려가 가득합니다. 이렇게 엿새동안 하나님의 질서 지움의 목적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8편은 하나님의 창조, 주의 이름의 아름다움을 말하면서 그것과 함께 하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가자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의 창조를 통해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일이 사람을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는 목적을 위한 것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3. 현재의 복음: 로마서 8장 38-39절
우리를 사랑하는 예수님 안에서도 이 사랑은 확인됩니다. 로마서 8장 38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 세계의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고 오히려 그 사랑을 증거해 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모든 피조세계 속에서 우리는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II. 태초에 하나님이: 언약의 주권
1. 흑암: 출애굽기 10장 21-22절
3. 깊음: 신명기 33장 13절/ 창세기 7:11, 에스겔 26:19
“천지를 지으신” 여기에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사랑의 언약관계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권세와 주권을 분명하게 하십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나타난 네 가지 혼돈, 공허, 흑암, 깊음은 하나님과 주권적 언약을 암시합니다. 먼저, 흑암부터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시면서 흑암을 밤이라는 자리에 위치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원래 있었던 흑암(창1:2)은 있어야 할 질서 속에, 하나님의 통제 아래 놓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에게 종 되었던 자기 백성을 건져 내실 때 직접 창조하신 피조세계에 주신 질서를 스스로의 전능으로 흔드십니다. 출애굽의 아홉 번째 재앙에서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 위에 3일 동안 흑암이 있게 하셨습니다. (출10:22) 그러나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는 곳에만 빛이 있도록 하십니다. 목적은 스스로 최고의 주권자, 신적인 존재라고 믿는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시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가장 밝은 낮인 제 육시로부터 구시까지(오후12시-3시) 흑암이 덮혔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이처럼 흑암은 엿새 동안의 창조를 통해서 하나님의 질서와 통제아래 있다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능과 공의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서 십자가에서 흑암이 낮을 덮어버리기도 했습니다.
2. 혼돈과 공허: 이사야 34장 11절, 예레미야 4:23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혼돈과 공허도 하나님의 주권적 언약을 위한 수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의 창조의 과정에서 없어졌던 혼돈과 공허를 복귀시키기도 하십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자기 백성에게 경고하시기 위해서 창조주 하나님은 “땅을 혼돈하고 공허하게 하시고 하늘에 빛이 없도록” (렘4:23) 하십니다. 자기 백성을 구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심판아래 두시기도 하십니다.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렘4:28) 혼동하고 공허함이 엿새 동안의 창조를 통해서 질서와 채움으로 완전해 변화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 자신의 주권을 보이시는 수단으로 이것을 돌아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신 것은 나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사랑의 언약 속에서도 자기 백성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예배를 잊지 않도록 흑암, 깊음, 혼돈, 공허라는 장치를 두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라는 단어로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합니다. “태초에”는 어떤 시작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도 없고 어떤 조건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이 가진 권세만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뜻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만을 증거 하지 않고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을 증거합니다. 사람이 자신에게 주신 사랑을 받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그 분의 권세를 인정해야 함을 시위합니다. 하나님만이 영광 받으시고 예배받으셔야 하는 유일한 분이라는 창조의 최종적인 목적을 우리가 인정해야 함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III. 부활안에서 창조질서
1. 창조 때의 말씀과 성령
2. 부활하신 예수님과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창세기 1장 2절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영은 수면위로 운행하시니라.”고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운행하신다는 동사는 어떤 일을 막 시작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신명기 32장 11절 “독수리가 자기의 새끼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업고 받기 전에 자기 새끼 위를 날고 있는 모습을 운행한다라는 동사를 써서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창조를 위해서 수면위에서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3절부터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엿새동안의 창조를 실행하십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창조 때의 말씀, 곧 영원하신 로고스가 이 창조에 함께 하셨음을 뒤이어 보여줍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3절에는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고 다시 한 번 창조 때에 하나님의 로고스가 함께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로고스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중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창조 때 함께 하셨던 로고스, 곧 하나님의 독생자와 엿새동안 창조를 수면위에 운행하시며 준비하시던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골로새서 1장 16절에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그로 말미암아 그를 통하여 그를 위하여” 만물이 창조된 분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오순절에 파송받으셔서 우리의 탄식과 피조물들의 탄식에 탄식하시면서 함께 하십니다. 로마서 8장 22절에는 피조물이, 23절에는 우리가, 그리고 26절에는 성령님께서 탄식, 곧 한숨 쉬십니다. 성령님의 탄식은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는 탄식, 우리의 양자될 것을 향한 탄식에 함께 하십니다.
3. 부활의 장자 안에서 만나는 만물의 장자: 골로새서 1장 15-18절
골로새서 1장 15절과 18절에 병행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15절에서 그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입니다. 직접적으로 번역하자면 모든 피조물의 장자입니다. 18절에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신 이입니다. 죽은 자들의 장자입니다.
부활은 죽음의 죽음입니다. 모든 인류는 죄의 삯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 아래 있는 존재였습니다. 부활은 인간에게 드리워진 죽음을 역전해서 생명을 여는 구속사건입니다. 부활은 만물에게도 전혀 다른 의미와 목적을 주었습니다. 원래부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된 바로 그 피조물이 창조될 때 원래의 위치를 회복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몸’으로 부활했습니다. 몸의 부활을 통해서 단지 우리 영혼의 문제만이 아니라 창조세계의 물리적인 세계는 새로운 역사, 시간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몸으로 부활하셔서 물리적 만물에게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 부활에 동참한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이제 부활생명에 속한 삶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존재하는 세상 만물을 삶 가운데서 만납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현대인들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한마디로 현대인들 자유로운 자아의 자율적인 결정을 추앙합니다. 그러나 부활생명안에서 부활의 장자에게 접붙여진 자들은 부활을 통해서 우리 삶의 터와 정황이 된 창조질서라는 객관적인 질서, 법칙, 원리에 자신의 결정을 맞추어야 합니다. 인간 자율의 이성적 판단으로 우리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장자 안에서 회복된 창조질서의 터, 상황, 원리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 기독교적 삶의 원리였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아담 이후 모든 백성들이 다 알고 있는 하나님의 첫 계시의 말씀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이 말씀을 알아왔고 이 말씀 때문에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돌이켜 이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인생 길을 Turn돌이킴이 있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유일한 도움입니다. 천지를 지은 여호와의 이름만이 나, 그리고 우리의 유일한 도움, 유일한 보호, 유일한 기초입니다. 창조 때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독생자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은 지금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를 암송하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한 분으로 우리의 창조주가 되어 주십니다. 태초에 천지를 지으신 삼위를 믿는 믿음과 믿음이 주는 담대함이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