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무역은 정부나 국가에게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았다.
그것은 순수한 경제사업으로서, 수요 공급의 원칙에따라 자유시장에 의해 조직되고 자금조달이 이루어졌다.
민간 노예무역 회사들은 암스테르담, 런던, 파리 주식거래소에서 주식을 판매했고,
좋은 투자처를 찾는 중산층 유럽인들이 이 주식을 샀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회사는 배를 사고, 선원과 군인을 고용한 뒤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사서 미국으로 수소했다.
노예는 대형 농장의 주인에게 팔렸고,
그 수익은 다시 설탕, 코코아, 커피, 담배, 면화, 럼주 같은 농장의 산물을 구매하는데 쓰였다.
이들은 유럽으로 돌아와 설탕과 면화를 비싼 값에 판매한 뒤,
다시 돛을 달고 아프리카로 향하여 같은 영업을 되풀이했다.
주주들은 이런 사업 방식에 매우 만족해했다.
18세기 내내 노예무역 투자에 대한 연간 수익률은 약 6퍼센트였다.
현대의 컨설턴트라면 누구나 재깍 인정할 만한 엄청난 돈벌이였다.
이것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옥에 티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이윤이 공정한 방식으로 얻어지거나 공정한 방식으로 분배되도록 보장하지 못한다.
그렇기는 커녕, 이윤과 생산량을 늘리려는 갈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성장이 최고의 선이 되고 다른 윤리적 고려에 의한 제약을 받지 않을 때,
그 성장은 십사리 파국으로 치닫는다.
기독교나 나치즘 같은 종교는 불타는 증오심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자본주의는 차가운 무관심과 탐욕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햇다.
대서양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인에 대한 인종적 증오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주식을 구매한 개인이나 그것을 판매한 중개인, 노예무역 회사의 경영자는
아프리카인에 대해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탕수수 농장 소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농장주들이 농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고,
그들이 원한 유일한 정보는 손익을 담은 깔끔한 장부였다.
대서양 노예무역이 그것만 아니라면 흠이 없었을 기록에
새겨진 유일한 오점이 아니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앞장에서 이야기했던 뱅골 대기근 역시 이와 비슷한 역학에 의해 유발되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뱅골인 1천만 명의 삶보다 자기 이익에 더 신경을 썼다.
인도네시아에서 네델란드 동인도회사가 벌인 군사작전에 돈을 댄 것은
자기 자녀를 사랑하고, 자선사업에 돈을 내고, 좋은 음악과 미술을 즐기는 네델란드의 정직한 시민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바, 수마트라, 말라카 주민들이 겪는 고통은 중히 여기지 않았다.
지구의 한켠에서 현대 경제가 성장하는 데는 수없이 많은 범죄와 악행이 뒤따랐다.
480-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