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작물의 마지막 조합도 습한 기후권에 적응한 것이지만,
그림 19.3에서 가장 뜻밖의 것이기도 하다.
바나나와 아시아참마와 토란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이미 1400년대에 널리 퍼져있었고
아시아벼도 동아프리카 해안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재배되었다.
그러나 이 작물들의 발원지는 동남아시아 열대지역이었다.
따라서 마다가스카르에 남은 인도네시아인의 흔적에서 집작할 수 있듯이,
선사새대에도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연결 끈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면,
아프리카에서 이런 작물을 재배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르네오섬을 떠나 동아프리카 해안까지 항해한 오스트로네시아안이
아프리카 농경민에게 자신들의 작물을 선물로 준 뒤 ,
아프리카 어부들을 데리고 동쪽으로 항해해 마다가스카르에 정착한 까닭에
아프리카에는 오스트로네시아인의 흔적이 남지 않은 것일까?
아프리카 토종 작물, 즉 사헬 지역과 에티오피아와 서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작물이
모두 적도 북쪽에서 기원했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다.
적도 남쪽에 기원을 둔 아프리카 토종 작물은 단 하나도 없다.
이런 현상에서, 적도 북쪽에 뿌리를 둔 니제르콩고어족 언어 사용자들이
적도 부근의 피그미족과 적도 이남의 코이산족을 몰아낼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코이산족과 피그미족이 농경을 시작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농경민이 되기에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우연하게도 아프리카 남부의 야생식물이 작물화하기에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투족과 백인 농경민 또한 수천 년의 농경 경험을 물려받은 후손이엇음에도,
아프리카 남부에 자생하는 식물을 식량용 작물로 개발해내지 못했다.
아프리카에서 가축화한 동물종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작물화한 식물보다 훨씬 빨리 요약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축화한 게 확실한 동물은 칠면조처럼 생긴 뿔닭(guinea fowl)이 유일하다.
뿔닭의 야생 조상이 지금도 아프리카에만 서식하기 때문이다.
소와 당나귀 돼지와 개, 집고양이의 야생 조상은
북아프리카뿐 아니라 서남 아시아에서 서식햇기 때문에,
그 가축들을 어디에서 먼저 가축화했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지 증거에 따르면,
당나귀와 집고양이는 이집트에서 가장 일찍 가축화한 듯하다.
최근에 확인된 증거에 따르면, 소는 북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
그리고 인도에서 각각 독자적으로 가축화했고,
그 세 종류의 소가 모두 지금 아프리카에서 기르는 소의 품종에 영향을 주었다.
그 밖의 포유류 가축은 다른 곳에서 가축화한 뒤 아프리카에 전해진 게 분명하다.
그 가축들의 야생 조상이 오직 유라시아에만 서식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프리카에서 기르는 양과 염소는 서남아시아에서,
닭은 동남아시아에서, 말은 남러시아에서 가축화한 게 분명하고,
낙타는 아라비아에서 가축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프리카의 가축 목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뜻밖의 특징은 이번에도 부정적이다.
가축 목록에 아프리카의 자랑거리이자 개체 수가 많은 대형 포유동물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얼룩말과 영양, 코뿔소와 하마, 기린과 물소 등 어느 것도 가축하하지 못햇다.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이런 현실은
적도 이님에 작물하한 토종 식물이 전혀 없엇던 것만큼이나
아프리카의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 재배되는 주요 작물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지만,
이것만으로도 그중 일부는 아프리카 안팎 모두에게 멀리 떨어진
발원지로부터 전해졌다는 걸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에도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 식물과
가축화할 수 있는 야생 동물을 주변 환경에서 물려받은 '운 좋은 ' 종족이 있었다.
밀과 소고기를 주식으로 하던 영국 정착민이
오스트레일리아 수렵.채집 원주민을 삼켜버린 결과에 비추어볼 때,
아프리카에서도 '운좋은 ' 종족이 자신들에게 허락된 이점을 활용해
그렇지 못한 이웃 종족을 삼켜버렷을 것이라고 유추해야 마땅하다.
끝으로 이제부터는 고고학적 기록으로 눈을 돌려,
누가 누구를 언제 삼켰는지 추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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