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은 1957년 배심원 제도를 다룬 법정 영화이다. 살인 혐의를 쓴 한 소년에 대한 재판에서 11명의 배심원이 그의 유죄를 인정하는데 단 한 명이 반론을 제기, 토론을 하여 무죄로 풀려나는 이야기이다.
정적이 감도는 법정. 침묵만이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한 소년의 살인사건에 관한 재판은 이제 최종 결정만을 남겨두고 있다. 미국에 살고있는 18세의 스페인계 소년이 자신의 친아버지를 예리한 나이프로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이미 재판장은 소년의 유죄를 예상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최후의 판결을 앞둔 12명의 배심원들은 최종결정을 위한 회의에 소집되고, 자신의 결정에 관해 투표를 하게된다. 결과는 12명의 배심원 중 1명을 제외한 11명 전원이 스페인계 미국소년을 유죄로 판결을 내린다.
유독 만장일치의 유죄 결정을 반박하고 다른 배심원들의 회유에 맞서 완강히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단 한 명의 배심원. 그는 사건의 정황을 미루어 볼 때 절대로 이 사건은 소년의 범죄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끝까지 소년의 무죄를 주장한다. 이로 인해 나머지 배심원들과의 설전은 계속되고 그 소년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사건을 처음부터 되짚어 간다.
소년의 유죄를 확신하는 배심원들과 무죄를 밝히려는 그와의 대립이 점차 거칠어지자 배심원들은 일단 그의 주장을 들어보기로 하고,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시신에 있는 상처와 소년의 키를 비교하고 사건을 목격한 증인들의 증언이 과연 신빙성이 있는지 되짚어 보는 등 상황을 재현하면서 설득있고 논리적인 그의 주장이 계속되는데..
극작가 레지널드 로즈 (Reginald Rose)는 1954년, 미국의 CBS 텔레비전 단막극 시리즈《스튜디오 원》(Studio one)을 통해 방영된 60분짜리 단막극《12인의 성난 사람들》의 각본을 썼고,[1][2] 그해 다시 이를 토대로 동명의 희곡을 발표했다.[3] 3년 뒤, 1957년에 그는 이 희곡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하였다. 그가 직접 영화 각본을 썼고, 배우 헨리 폰다와 함께 공동 제작을 맡았으며, 신인 감독 시드니 루멧이 연출을 맡아 완성이 되었다.
1. 마틴 발삼 : 고등학교 미식축구 코치 9번째 사회자. 6:6으로 갈릴 때 유죄를 들었으며 중립적임.
2. 존 피들러 : 회사원 5번째 6:6으로 갈릴 때 무죄를 들었음. 41초를 잴 때 시계를 가져다주었음. 소심함.
3. 리 J. 콥 : 통신회사 사장 12번째 마지막으로 무죄를 함. 아들이 20살 때 가출하였음.
4. E. G. 마샬 : 주식중매인 11번째 6:6으로 갈릴 때 유죄를 들었음. 보수적임.
5. 잭 클러그먼 : 언급되지 않음. 3번째. 빈민가에서 자람. 6:6으로 갈릴 때 무죄를 듦. 볼티모어 오리올스 팬.
6. 에드워드 빈스 : 페인트칠 하는 사람. 6번째 6:6으로 갈릴 때 무죄를 듦. 웃어른에 대한 예의가 바름.
7. 잭 워든 : 세일즈맨. 7번째. 6:6으로 갈릴 때 유죄를 듦. 무죄로 바꾼 이유는 논쟁하기 싫어서임. 야구 외에는 관심이 없으며 양키스 팬임.
8. 헨리 폰다 : 건축가. 1번째. 실질적인 주인공. 맨 처음으로 무죄를 듦. 마지막에 이름이 데이비드라고 언급함.
9. 조셉 스웨니 : 은퇴. 2번째. 가장 나이가 많음. 11:1일 때 무죄를 듦. 8번에 대한 가장 큰 지지자. 마지막에 이름이 맥카들이라고 언급함.
10. 에드 베글리 : 차고 소유자. 10번째. 6:6으로 갈릴 때 유죄를 듦. 편견에 사로잡혔음.
11. 조지 보스코벡 : 유럽식 시계공. 4번째. 6:6으로 갈릴 때 무죄를 듦. 토론에 적극적이며 민주주의 지지자.
12. 로버트 웨버 : 광고계에서 일함. 8번째. 6:6으로 갈릴 때 유죄를 듦. 토론에 별 관심 없음.
1957년 독일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 & OCIC상 수상.



글: 이승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