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뜰새 없이 바빠서 모든 걸 남자친구에게 떠맡기듯 부탁하고 달려온 강진여행. 지도 한 번 들여다 보지 않아서 이렇게나 멀리 있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더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지도 모르겠다. (내 성격에 이렇게 먼 줄 알았으면 또 언제 와 보겠냐며 A부터 Z까지 지도에 있는 모든 관광지를 훑어 리스트업을 해왔을 것이다!)
강진의 크리스마스는 너무나 조용했다. 오후 5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았고 거리는 컴컴했다. 도대체 강진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어디 가서 노는 걸까? 10대로 보이는 몇몇 아이들만이 학교 급식당 같은 분위기의 드넓은 편의점을 지키고 있을 뿐 사람 구경도 어렵다.
배달 어플을 켜니 배달되는 메뉴도 많지 않다. 바다와 인접해있으니 맛있는 회를 먹을 수 있을까 기대했건만 유일한 횟집에 달린 리뷰는 ‘드디어 강진에도 횟집이 생겼다!’였다. 나중에 회를 떠주는 수산물 가게를 봤는데 가격도 그리 저렴하지 않아서 회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마량에 가면 신선하고 저렴한 회를 먹을 수 있다는데 뚜벅이에겐 멀게만 느껴진다.
대체로 강진 읍내의 가게들은 가게 문을 일찍 닫는다고 한다.(8~9시) 강진의 향토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서둘러 이른 저녁을 계획해야 한다.(6~7시)
| 오케이식당
영업시간 : 11:00 ~ 21:00
전화번호 : 061-432-8072
주 소 :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로1길 23-1
대표메뉴 : 백반 7,000원
아침 일찍 강진다원에 갈 예정이었으나 늦잠을 자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강진 읍내를 밍기적 돌아다니다 발견한 오케이식당. 빛바랜 간판이 지난 세월을 말해준다. 오전 11시반, 영업하는 건가 싶어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넣어보니 이미 먹고 간 쟁반이 잔뜩 쌓여 있다.
“이모님 식사 되나요?”
“예. 이리 들어오시요.”
긴 복도를 따라 미닫이문이 여럿. 문을 밀고 들어가니 방안 가득 화려하게 피어 있는 장미꽃이 먼저 반긴다. 옆쪽 미닫이문으로 보아 모든 문을 개방하면 하나의 큰 방으로 이어지는 구조인 듯 하다.
예로부터 남도 밥상이라 하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흰쌀밥에 정성이 담긴 밑반찬으로 차린 백반이 떠올리는데, 강진오일장 근처 골목길에 있는 오케이식당이 바로 우리가 그리던 밥집이다. 메뉴는 7,000원짜리 백반 하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등어찜을 중심으로 곰삭은 남도의 묵은지와 젓갈, 제철 재료로 무친 나물 무침 따위가 상에 오른다.
10여 가지 반찬이 다 맛깔스러워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고민되지만 바쁘게 젓가락을 움직이다 보면 밥 한 공기는 금세 비우게 된다. 밥값이 7,000원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잘 차려진 밥상에 가성비를 논하기보다 강진의 넉넉한 인심과 정을 꾹꾹 눌러 담은 음식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 느루 갤러리앤카페
영업시간 : 11:00 ~ 20:00(주말/공휴일 11:00~19:00)
전화번호 : 061-433-3301
주 소 : 전남 강진군 강진읍 목리안3길 3
대표메뉴 : 아메리카노 4,000원 / 카푸치노 4,500원 / 카페라테 4,500원 / 카페모카 5,000원
강진 읍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고즈넉한 분위기의 한옥 고택과 종종 마주친다. 낡은 기와지붕과 붉은 벽돌담, 연못과 우물까지 대대손손 내려오는 고택을 손수 고쳐 만든 느루 갤러리 카페는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곳 중 하나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라는 뜻의 순우리말 "느루" 700여평의 대지에 사랑채를 단장해 카페를 만들고 마당과 집터는 활짝 열어둬 여행객이나 동네 사람들이 언제든 잠시 쉴 수 있는 쉼터를 제공한다. 커피는 물론 직접 방앗간에서 갈아온 서리태로 만든 라테와 쑥라테, 대추차 등 다양한 마실 거리과 간단한 쿠키와 케이크가 준비되어 있다.
어여뿐 찻잔에 제공된 카페라테(4,500원)와 쑥라테(5,500원) 그리고 당근 케이크(5,500원)
카페 뒤로 돌아가면 벽돌담을 지나 고택과 이어지는데 사람이 거주중인 것 같아 잠시 망설여졌다. 고택 바로 옆이 갤러리와 펜션인 것으로 보아 아마 느루 카페 주인장이 머무는 곳이 아닐까 싶다. 마천루가 좋아 어디든 여행지에 가면 꼭 그곳에서 가장 높다는 곳을 찾아 전망을 내려다 보곤 하는데 사실 난 고층 전망보다는 넓은 마당을 선호한다. (고층이 좋은 건 내려다 보이는 모든 곳이 내 마당같이 느껴져서 인걸까?) 한옥은 우풍도 심하고 관리가 어려워 살기 여간 불편하다는데 언젠가 고택을 고쳐 지어가며 살고 싶다는 소망이 있어 그런지 그저 부럽다.
기와 위로 소복하게 쌓인 눈이 아름답다.
고택을 가로질러 느루 갤러리와 느루 민박이 모습을 나타낸다. 느루 갤러리에서는 많은 작가들의 무료 전시가 열린다고 하니 잠시 들러 강진의 멋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방문했을 땐 바다를 주제로 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차도 마시고 세미나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카페 옆 쪽문. 사진에는 다 담지 못했지만 고양이가 제법 많다. 가까이 다가가니 한 고양이는 양쪽 눈이 모두 없다. 카페에서 길고양이를 돌봐 주시는 듯 하다. 강진 맛집을 검색하면 정보가 많지 않은데 읍내가 작아 그만큼 식당도 보기 드물다. 나름 산보하듯 거닐며 숨겨진 맛집과 지역 카페를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원래는 강진 최초의 음식점으로 80년 세월을 이어왔다는 아귀탕집, 대흥관에 갈 생각이었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땐(오전 11시반) 예약이 모두 완료되었다고 해서 못갔다. 방이 많은 식당인 것 같았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예약이 모두 찬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 앞에도 못 먹고 발길을 돌리는 분들이 있어서 정말 맛집인가 싶었다. 아마도 사전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인 듯 했다. 아침 메뉴로 아귀탕은 별로 안땡겼는데 못가니까 더 가고 싶어 졌다. 사람 마음이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