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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강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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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해 주신 분들>
이광복 목사 (목양교회시무, 세계성령봉사상 수상) "한성진 목사님의 아가서 강해는 먼저 그 양이 방대하며, 원문 분석이 잘 되어 있으며,
김의환 박사 (전 총신대총장, 칼빈대총장) "목회자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역작을 만드셨군요. 영적체험에서 오는 충실한
송길원 목사 (하이패밀리 대표, 사랑의 교회 협목) "글을 읽다보면 한 목사님이 얼마나 치열하게 깊은 묵상을 했는지
조용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시무) "한 목사님의 저서가 무너진 가정들이 회복되고 성도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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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저자 - 한성진 목사
자세히 보기 - http://cafe.daum.net/agaser?nil_profile=p&nil_Cafetxt=1
(강해 한 편 소개)
제목:일어나서 함께 가자
본문:(아 2:10-13)
주요내용:부활생명론
요 약
우리에게 부활 생명으로 충만할 때 주어지는 삶의 변화는 심히 크다. 이 생명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능력이다. 이 생명을 받으면 율법의 저주 아래 있지 않다. 이 생명은 정서적인 변화를 준다. 이 생명은 주님만을 사랑하게 만든다. 이 생명은 사탄의 참소도 이기는 능력이다. 이 생명은 성도를 현재와 미래에서 온전히 바꾼다. 아직도 죄와 세상과 사망과 사단과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시기 바란다.
설 명
1. 배 경
⇒ 꿈에 솔로몬이 결혼을 위해 가자고 술람미에게 촉구한다.
2. 적 용
(진단) 가정의 분위기가 늘 싸늘합니까?
(해결) 잘못만 지적하는 율법적인 태도를 고치십시오.
3. 부활 생명이란?
1)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능력이다. 11절 "겨울도 지나고"
2) 이 생명을 받으면 율법의 저주 아래 있지 않다. 11절 "비도 그쳤고"
3) 이 생명은 정서적인 변화를 준다. 12절 "지면에는 꽃이 피고"
4) 이 생명은 주님만을 사랑하게 만든다. 12절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5) 이 생명은 사단도 이기는 능력이다. 13절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6) 이 생명은 성도를 온전히 바꾸어 놓는다. 13절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아가 2:10-14
10 (술람미)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원 문
10 아나 도디(내 사랑하는 자가 말하며)
웨아마르 리(내게 이르기를) 쿠미 라크(당신을 위해 일어나소서)
라야티(내 사랑하는 자여) 야파티(나의 어여쁜 자여)
우레키 라크(갈지라)
11 키 힌네(왜냐하면) 핫사타우 아바르(겨울이 지나갔고)
학게쉠(비가) 할라프 할라크 로(미끄러져 갔도다(그쳤도다))
12 한닟차님(꽃들이) 니르우(피어나고(자신을 나타내고))
바아레츠(땅에서) 에트 핮자미르(노래할 때에)
힉기아(이르렀도다) 웨콜 핱투르(그리고 점있는 비둘기의 노래가)
니쉬마(들리는도다) 베아르체누(우리 땅에서)
13 핱테에나(무화과 나무가) 하네타(향료를 넣었고(열매를 맺였고))
팍게하(그 무화과의) 웨학게파님(포도나무는)
세마다르(꽃이피어) 나테누 레아흐(향기를 내었도다)
쿠미 라케이(일어나라) 라야티(나의 사랑하는 자여)
야파티(나의 어여쁜 자여) 우레키 라크(너를 위해 나아가라)
스 토 리
술람미에게 들려지는
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봄 노래는
자기 신부를 속히 왕궁으로 데려가고자
부르는 그녀의 연인 솔로몬의 음성이었다.
그러나 평민 출신임을 문제 삼는 왕궁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술람미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냉담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솔로몬의 설득은 계속되었다.
즉 엄동설한 같은 모든 악조건들은 이미 사라졌고
이제 왕궁은 물론 온 나라에 온통 새 봄이 왔으니
자기와 함께 가자고 거듭 촉구하였다.
(강 해)
오늘은 "일어나서 함께 가자" 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을 노래자로 구분하면 술람미의 노래이고 문장으로 구분하면 술람미가 솔로몬의 말을 옮기는 독백형태의 간접화법입니다. 이 역시 술람미의 계속 되는 꿈입니다. 본문에서 신랑은 시각 청각 후각 등에 호소하는 최소한 일곱 가지 이상의 아름다운 비유의 봄 노래로 신부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 부름은 한 마디로 혼인을 위해 속히 왕궁으로 가자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성도들이 경험하게 되는 부활생명의 능력을 발견합니다. 이 부활의 생명은 성도에게 나타나 인생을 변화시키고 환경을 변화시키고 우주까지도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럼 성도에게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란 어떠한 것일까요?
1. 이 생명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11절에 "겨울도 지나고" 그랬습니다.
여기 '겨울'( 호레프)은 '범람하다' '넘쳐나다' 에서 파생된 말로 팔레스틴의 겨울은 비가 와서 물로 범람하는 장마철이며 따라서 매우 추운 때입니다(렘36:22, 암3:15). 마치 우리 나라의 여름이 다습하기 때문에 더 덮게 느껴지듯 이스라엘의 겨울은 장마철이기 때문에 더 춥고 바깥출입이 불가능해집니다. 그런데 이 계절과 혼인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엄밀히 말해서 이 두 가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겨울이든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혼인예식은 언제나 가능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에게 계절이 무슨 장애가 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이 결혼은 권세를 가진 왕의 결혼이 아닙니까? 이로 볼 때 이 계절은 일반적인 계절이라기보다 당시 혼인의 상황에 대한 어떤 비유적인 의미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이 겨울이라는 용어에는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한 왕궁의 싸늘하고 폐쇄된 분위기를 암시되어 있습니다. 즉 지고한 왕과 비천한 산골 처녀와의 결혼인데 어떻게 순탄함만을 예상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이득을 노린 정략적인 결혼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궁전은 여름궁전과 겨울궁전이 있었는데 마치 겨울궁전과 같이(렘36:22, 암3:15) 이 혼인에 관하여 모두들 냉담했습니다. 그러나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솔로몬의 수고가 이를 능히 극복한 것입니다. 우리 기혼 부부에 있어서 고부간의 갈등이 생기면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이 남편입니다. 이 갈등을 통해서 가정은 온통 차가운 겨울처럼 변할 때 지혜로운 남편은 이를 속히 극복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이 간곡한 부름의 이면에 양편을 향한 솔로몬의 노력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부활생명은 우리 성도들에게 신앙의 봄을 가져다줍니다. 여기 겨울은 영적으로 죄악과 사망의 때를 가리킵니다. 이 불신앙의 때는 마치 겨울궁전에 앉아서 여호야김이 여호와의 두루마리 책을 불태웠던 것과 같은 죄악과 사망의 때입니다(렘36:22-30). 겨울이 왜 옵니까? 태양과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태양이신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죄인이요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불신앙 때의 영적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죄로 말미암아 죽어 싸늘한 심령에 독생자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성도는 영원한 속죄를 받은 자요 하나님의 자녀요 새 생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더우나 주님을 사랑함으로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면 아직도 영의 겨울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에 위축되지 말고 화평한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아직도 진리에 서지 못하고 피해 의식에 찬 어린 심령은 술람미처럼 늘 주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와 사망에서 이기는 부활의 봄이 왔다고 말씀합니다.
2. 부활생명을 받은 성도들은 이제 저주 아래 있지 않습니다.
다시 11절에 "비도 그쳤고" 했습니다.
팔레스틴의 겨울은 기압이 불규칙하여 비가 자주 내립니다. 팔레스틴은 국토는 작으나 바다와 사막과 고산을 끼는 등 지형과 지세가 매우 다양하여 지역마다 강우량이 크게 다릅니다. 서부 경사지의 경우에는 연간 600-1000mm, 동부 다마스커스의 경우 250mm에 불과하나 레바논 산악지대는 연평균 강우량이 1270mm에 달하며 예루살렘의 연평균 강우량은 660mm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배경이 되는 예루살렘의 경우 겨울인 12-3월의 강우량이 일년 강우량의 80%를 차지하며 그것도 가장 추운 1월에 가장 많은 비가 내립니다. 이 비는 농사에 유익한 8, 9월의 이른 비나 3, 4월의 늦은 비와는 달리 겨울의 추위와 냉기를 더욱 강화시키는 을씨년스런 비입니다. 이 겨울비를 맞으면 깊은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비는 은혜나(호6:3, 욜2:23, 요7:37-39) 시련과 고난을(마7:25, 27) 상징하기도 하나 본문의 비는 참소하는 혀를 북풍의 비에 비유함을 볼 때(잠25:23) 국왕의 위신과 명분을 내세워 시골 처녀와의 혼인을 반대했던 초기의 신하들의 계속되는 간언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간언은 술람미가 왕의 배우자로서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 궂은 겨울비는 영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치 않다고 정죄하고 심판하고 저주하는 율법의 상징입니다. 비란 물방울로서 성경에서 물은 말씀인데 여기 겨울비는 고통을 주는 물이기 때문에 이것은 율법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율법은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존재가 아니라고 정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에게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요5:45) 말씀하셨습니다. 혹은 이 비는 살인적인 우박으로 바뀌어 내리기도 합니다. 이는 심판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그런데 거듭난 성도들은 이제 저주와 심판의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가 받을 율법의 저주와 심판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롬7:4에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했고, 롬8:1에 "그리스도 예수 안의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느니라" 했습니다. 갈3:10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고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더 이상 율법의 정죄와 저주를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칭의는 물론 이제 성화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부활 생명의 충만이 중요합니다.
3. 부활생명은 성도들에게 정서적인 변화를 줍니다.
12절에 "지면에는 꽃이 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계절을 가장 잘 알려 주는 것은 꽃입니다. 사람이 만든 달력은 틀려도 꽃은 정확합니다. 그래서 꽃은 계절의 시계입니다. 그러므로 지면의 꽃은 봄이 왔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봄이 오면 꽃은 왕궁이나 어느 지역이나 차별하지 않고 온 나라에 가득히 핀다는 사실입니다. 이 꽃의 일차적인 의미는 이스라엘입니다. 사27:6에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했습니다. 즉 술람미를 왕후로 맞이함을 왕궁은 물론 온 이스라엘이 기뻐함을 비유합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왕과 백성의 결혼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백성들에게는 대단히 의미 있는 혼인이었습니다.
이처럼 영적 이스라엘인 성도의 심령에도 부활의 영이 오시면 꽃이 핍니다. 그 꽃은 기쁨과 평안의 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갈5:22-23). 이 축복은 봄이 그렇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심령에는 누구에게나 옵니다. 그러나 죄인의 심령은 결코 봄이 올 수 없습니다. 이 핀 꽃이 더욱 활짝 피려면 사랑하는 하나님을 늘 생각하시면 더욱 활짝 핍니다. 그러니까 성령으로 피고 사랑으로 더욱 핍니다. 저는 꽃을 바라보면서 나의 마음도 이 꽃처럼 주님을 향해서 얼마나 활짝 피어 있는가? 그러나 사랑하는 주님을 바라본다면 굳게 닫힌 심령도 봄의 꽃처럼 활짝 필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을 바라본 스데반과 같이 천사의 얼굴과 같게 될 것입니다.
4. 부활생명은 우리에게 온전히 주님만을 사랑하게 만들어줍니다.
다시 12절에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 구나" 했습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팔레스틴에는 약 350종(H. B. Tristram의 주장)에서 413종(F. S. Bodenheimer의 주장)에 이르는 많은 새들이 서식하고 성경에 나타나는 새의 종류만도 50가지나 됩니다. 이곳은 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않는 아열대성 기후와 천연적인 서식처가 많아 철새나 텃새가 많습니다. 특히 이곳은 지리적으로 지중해와 아라비아 사막 사이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유럽이나 아시아로 찾아가는 철새의 대 이동로이며(렘8:7, 호11:11) 중간 서식처이므로 철새들이 많습니다. 본문의 새는 봄의 철새를 의미하는데 이 철새는 무리를 이루며 수효가 많고 소리가 크며 동일한 소리를 반복함이 그 특징입니다. 특히 그 새 중에서 반구 즉 비둘기의 소리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여기 '반구'( 토르)는 스트렙토펠리아(Streptopelia) 속(屬)에 속한 작고 연한 회색의 산비둘기 종류로 어떤 종류는 목에 둥근 띠를 띠고 있기도 합니다. 팔레스틴의 비둘기는 봄을 알리는 중요한 철새로서(아2:12, 렘8:7). 봄부터 여름 동안에는 산울타리나 관목 사이에서 계속하여 노래합니다. 그런데 이 소리는 짝을 찾는 소리입니다. 또 반구는 충직하고 깨끗하고 정결하며 품위 있는 소리를 냅니다(James Smith). 또 비둘기는 애정이 강해서 짝을 찾기까지는 그 소리를 그치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여기서 이러한 비둘기를 등장시킨 것은 그 상징하는 바가 큽니다. 여기 반구의 의미는 혼인의 때를 알리는 상징으로서 온 나라의 신하들과 왕실의 모든 사람들과 백성들이 두 사람의 결혼을 적극 소원하여 충성된 마음으로 정중하게 머리를 조아려 수없이 아뢰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비둘기가 목에 띠까지 둘렀으니 틀림없는 신하의 모습입니다. 그들의 아룀은 비둘기의 울음소리처럼 단순한 아룀의 도수를 넘어 우는 듯한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리가 솔로몬에게는 우는소리가 아니라 듣기 좋은 노래하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새의 노래할 때가 가까웠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신령한 의미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들은 그 생명의 능력으로 인해 이제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주님만을 사랑하는 능력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성도들은 여기 비둘기의 심정과 같이 주와 함께 살고 주와 함께 죽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배척하고 주님만을 사모합니다. 주님을 사모하는 그 심정은 비둘기가 짝을 찾는 것과도 같이 간절합니다. "사랑하기 원합니다 이 내 맘에 이 내 맘에 사랑하기 원합니다 이 내 맘에 이 내 맘에 이 내 맘에 사랑하기 원합니다 이 내 맘에" 이것이 우리의 찬송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16) 말씀합니다.
5. 부활생명은 사단의 참소도 이기는 능력입니다.
13절에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했습니다.
여기 '무화과'( 파그)는 겨울의 시련기 후에 익은 과실로 처음 익은 봄 무화과입니다. 본문의 '푸른 무화과'( 파그, 아2:13, 계6:13, 사34:4)는 가을에 열려 겨울을 지내고 잎이 가지에 생기기 전에 열리는 이른봄의 청과입니다. 이 파그 무화과의 열매는 겨울을 거치는 동안 메마름과 강풍과 추위로 떨어지기 쉬운데 떨어지지 않는 무화과는 남아서 6월에 익게 됩니다. 이 무화과를 성경에서는 비쿠라 즉 '처음 익은 무화과'( 비쿠라, 사28:4)라고 합니다. 또 봄에 열려 8월부터 익기 시작하는 무화과는 '늦 무화과'( 테에님, 민13:23, 삿9:11)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푸른 파그가 비쿠라로 변했다는 것은 잘 익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익었고'( 하나트)는 '향기를 내다' 는 뜻으로 무화과가 잘 익었음을 가리킵니다.
여기 무화과는 온갖 시련과 갈등과 탈락의 과정을 통과한 과실이요 과실의 내부에 그 꽃을 숨기는 여성적인 그 특징을 종합할 때 이는 입은 다물고 있으나 술람미의 강력한 경쟁자들인 왕궁의 여러 비빈과 궁녀들을 암시한 것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술람미의 유일한 경쟁자들로서 서릿발이 서도록 냉정하게 술람미가 이 황후의 대열에서 파그 무화과처럼 탈락하기를 가장 고대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살벌한 세계입니다. 오뉴월에도 서릿발이 선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이 세계에는 투기가 있고 미움이 있고 모함이 있고 저주가 있고 고통이 있으며 절망도 있고 가슴앓이를 하다가 죽는 일도 발생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마음은 떨어지기를 바라는 파그 무화과가 아니라 잘 익고 향기 나는 비쿠라 무화과로 바뀌었습니다. 이 모든 것의 결과에는 솔로몬 왕의 숨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솔로몬은 이제 술람미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의 주는 교훈은 풍성한 부활생명을 힘입을 때 사탄의 참소도 이긴다는 것입니다. 이 이김은 마치 솔로몬이 왕실과 술람미를 동시에 설득해야 했듯이 예수님의 보혈은 하나님 앞과 양심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혈 공로로 우리는 이미 의롭다고 하나님 앞에서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사실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를 알지만 부활생명의 강한 지원을 받지 못하면 잘 믿어지지 않고 사단의 참소를 당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욥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제는 듣기만 하지 말고 주님을 뵈옵는 충만한 은혜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이 생명은 그 어떤 것도 다 이기는 능력입니다. 즉 죄도 저주도 세상도 마귀도 죽음도 절망도 다 이깁니다. 그래서 롬8:37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온 자는 결코 내어쫓지도 않으시고 다시 떨어지지도 않는 비쿠라 무화과로 변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임한 새 생명의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이 생명은 이기는 생명입니다.
6. 부활생명은 성도의 전인격을 온전히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다시 13절에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했습니다.
여기 '포도나무'( 게펜)는 고대로부터 감람나무 무화과나무와 함께 이스라엘 농업의 주요 농작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포도나무의 꽃은 늦봄인 6월에 핍니다. 그러니까 이 꽃이 개화되면 봄이 완전히 무르익었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 포도나무 말고 더 이상 봄의 연장을 표현할 나무가 없습니다. 포도나무는 성경에서 대부분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의 상징으로(시80:8-13, 렘2:21, 사5:1-7, 호10:1), 신약에서는 천국과 교회의 상징으로(마20:1-16, 21:28-32),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비유하였습니다(요15:1-11). 또 잘 익은 포도는 사랑스런 아내나(시128:3) 악인의 심판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계14:18-19).
즉 본문의 포도나무는 상기의 복합적인 특징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왕궁 그리고 제사장과 선지자들 심지어는 악인들까지도 두 사람의 혼인을 소원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마치 합창하는 듯한 강한 인상을 풍기는 포도나무의 그 향기를 토하는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백합의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백합이 진동하는 향기로서 그 소리를 대신하고 있구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포도원의 많은 포도들의 향기이니 이것은 나팔도 보통 나팔이 아닙니다. 이것은 상징적으로는 혼인을 지지하는 압도적인 분위기를 묘사합니다. 그리고 더 지체해서는 안 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만약 더 지체한다면 왕의 구혼을 거절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부활생명의 이 상황이란 참으로 주님의 사랑이 강권하시는 심령 상태 그러니까 마음과 뜻과 정성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게 하실 것을 암시합니다. 이 생명은 성숙한 영혼을 가져와 주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깊이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강권시키고도 남게 합니다. 이 사랑을 깨달을 때 어떤 고난인들 순종하지 못하겠습니까? 나아가 이 강력한 부활의 능력은 주의 재림의 날에 우리를 온전한 육체로까지 바꾸어 놓으실 것입니다. 나아가 우주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꾸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은 포도원의 토하는 포도향기처럼 주의 호령과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들릴 때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성도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부활의 주님과 함께 동행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10, 13절에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에서 술람미의 완고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증거는 본문의 간접화법 채용, 권유를 알면서도 현재 방안에 거함, 부르는 호칭의 간절함, 일어나라는 권유에서 보는 술람미의 자세, 가야할 이유의 다중성, 그 호소의 간절성, 가자는 권유의 반복함, 혹은 14절에서 응답의 재 촉구, 3:1-4에서 신랑을 잃은 사건, 그리고 앞 절에서 솔로몬의 엿보는 자세 등에서 그 증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즉 솔로몬의 지나칠 만큼의 애정과 자상함과 노력 등의 표출은 곧 술람미의 완고함을 역설적으로 암시합니다. 이것은 고도의 시문학적인 기법입니다.
그런데 여기 솔로몬은 술람미에게 함께 가자고 말합니다. 이는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가는 당시의 혼인 풍습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즉 신앙생활이란 나 혼자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동행함을 가리킵니다. 본래 결혼이란 두 사람이 한 몸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한 몸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때로는 일생 갈등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혹시 부부가 함께 동행하는 것을 원치 않는 가정 있습니까? 아가서를 통해서 우리의 가정도 성숙해 질 수 있기 바랍니다. 이 한 몸 되는 삶의 원리가 바로 성도가 추구할 영적 삶입니다. 그래서 엡5:31-32에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랑 예수님이 인간이 되기까지 낮아지셨으니 이제는 우리도 전적으로 낮아지고 죽어지고 순복해야 할 차례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저 높고 빛나고 아름다운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결론>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와 한 몸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부활 생명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죄와 사망과 세상과 사단과 저주를 이기고 에녹과 같이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귀한 신부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