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經)의 사건을 열국지에서 찾다/이명철
나는 요즘 각기 다른 세 권의 책을 읽는다. 불교에 관한 서적, 시경, 열국지(列國志)가 그것이다. 그 중 시경의 녹의(綠衣)를 읽다가 근 3000년 전에 위(衛) 나라 왕조의 문란했던 남녀 관계가 시경(詩經)의 詩와 같은 시대, 같은 나라, 같은 사람임을 확인하고 사건의 전말을 열국지(列國志)에서 찾아보았다.
殷이 망하자 패(邶)ㆍ용(鄘)ㆍ위(衛)로 나뉘어졌다. 시경(詩經)의 주남(周南) 소남(召南)이 황하 상류 서쪽 지방의 노래라면 패풍(邶風) 위풍(衛風)은 황하 하류 동쪽 지방의 노래이다.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이 음란한 사건은 황하 하류에 있는 衛나라에서 발생한 일이다.
시경(詩經) 패풍(邶風)의 綠衣(초록색 저고리)는 위나라 장공(莊公)의 후비(后妃) 장강(莊姜)의 詩다.
綠衣(초로색 저고리)
‘綠兮衣兮 綠衣黃裏(녹혜의혜 녹의황리)(초록빛 저고리라 녹색 옷 노란 안감)
心之憂矣 曷維其已(심지우의 갈유기이)(마음에는 시름이 어쩌면 멎으려나)
綠兮衣兮 綠衣黃裳(녹혜의혜 녹의황상)(초록빛 저고리라 녹색 옷 노란 치마)
心之憂矣 曷維其亡 심지우의 갈유기망)(마음에는 시름이 어찌 잊을 수 있겠나)
綠兮絲兮 女所治兮 녹혜사혜 여소치혜)(초록빛깔 녹색 실로 자네가 옷감짜네)
我思古人 俾無訧兮(아사고인 비무우혜)(허물짓지 아니했던 옛사람을 생각하네)
絺兮綌兮 淒其以風(치혜격혜 처기이풍)(굵고 가는 칡베 옷 찬바람 스며드네)
我思古人 實獲我心)(아사고인 실획아심)(내 생각 옛사람을 생각하네.’
莊姜은 아들이 없어 위장공(衛莊公)으로부터 냉대를 받았으나, 대규의 소생을 양육해 임금으로 삼았더니, 위장공의 서자 주우(州吘)에게 시역당해 대규가 진(陳)으로 도망갈 때 莊姜이 녹의(綠衣)라는 시를 써주었다.
녹의에서 옷의 색깔이 나오는데, 正色은 賢者, 間色은 小人을 비유하며, 정색은 靑 赤 白 黑 黃 이고, 두 가지 이상을 섞어 만든 색을 천하게 여겼으며, 정색은 정실(正室)을 간색(間色)은 妾室을 의미하기도 했다. 또 불교에서는 정색을 오방색이라고도 한다.
위장공(衛莊公)의 정실부인이 장강이고 첩실이 이강(夷姜)이며, 위장공의 아들이 위선공(衛宣公)이다.
이 무렵 괴외(위장공)의 아들 위출공이 군주가 되어 아버지를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고, 괴외는 위나라로 돌아와 자신의 아들을 내쫓고 위장공(위대부에게 살해됨)이 된다.
자로는 괴외의 조카인 공회를 섬기고 있었는데, 공회는 위장공에게 붙잡혀있는 상황이었다. 자로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공회를 구출하려다 위장공이 보낸 뛰어난 무사 두 명에게 얼굴에 칼을 맞아 갓끈이 끊어져 갓이 땅에 떨어졌다. 그러자 자로는 "군자는 죽더라도 갓을 벗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갓을 다시 쓰고 정좌했고, 무사들은 자로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를 죽였다. 하지만 위장공은 그의 시신을 소금에 절여 해(醢)로 만들어 공자에게 보냈다. 공자는 통곡을 하며 시름시름 앓다가 얼마 못 가 죽게 된다.
위선공(衛宣公)의 이름은 진(晋)이다. 음탕해서 아버지 위장공의 첩 이강(夷姜, 夷는 小國의 이름)과 관계해서 아들까지 낳았다. 그 아이를 여염집에 보내서 양육시켰다. 아이 이름은 급자(急子)다. 위장공이 세상을 떠나자 위선공이 즉위를 했다. 원비(元妃)인 형비(邢妃)를 박대하고, 서모인 이강과 부부생활을 했다.
위선공은 뒤에 이강을 정실 공비로 책봉하고 급자를 세자로 삼았다. 뒤에 제나라와 정략결혼을 체결, 제나라 여자 선강을 세자 급자의 비로 맞이하기로 되었는데 선강의 미모를 보고 미혹하여 선강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였다.
선강에게서 두 아들을 낳고 수와 삭이라 이름 지었다. 그 뒤 이강은 총애를 잃고 자결했다. 선강이 공자 삭과 함께 급자를 모함하자, 급자의 아내를 빼앗은 일로 인해 급자를 미워하고 있던 위선공은 급자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내고 경로에 도적을 두어 죽이게 한다. 그러나 공자 수가 이 계획을 듣고, 급자를 다른 배(또는 말)에 태우고 대신 죽는다. 그러나 급자는 나중에 도착하여 도적에게 이름을 밝히고 스스로 죽었다. 이에 위선공은 삭을 세자로 세웠다. 이에 대한 노래가 《시경》에 이자승주(二子乘舟)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선강은 제희공의 장녀다. 그녀는 시아버지와 살고, 차녀 문강은 그 이복(異腹) 오래비 제양공(齊襄公)과 관계를 맺었다. 선강과 문강은 자매간이다. 이 자매가 세계사에 길이 남을 패륜 자매로 명성을 떨쳤다. 위선공은 며느리를 빼앗아 아내로 삼고, 그가 죽자 그의 자식 공자 석(碩)은 서모(庶母) 선강과 같이 사니, 원래 내려오는 집안 물정이라 족히 이상할 것도 없다고 당시 세상 사람들은 비아냥댔다. 위장공 때부터 약해지기 시작한 위나라는 몇 대 못가 망하게 된다.
위선공의 행동에 대해 염옹(공자의 제자)은 이렇게 한탄했다.
"아비의 첩이 어찌 자식과 사통했는가/ 위나라의 음란함이 취우로 드러났네/ 이강은 목을 맸으나 때는 이미 늦었도다/ 정절을 지키다가 삶을 마쳐야 했거늘/며느리를 어찌하여 아내로 삼았는가/ 자식은 서모를 중음했으니 응보로다/ 이강의 불륜을 선강이 이어 받았구나/ 집안내력이 그러하니 기이할 것 없네."
(이는 후일 아들 수왕의 비 양귀비를 빼앗은 당 현종, 문제의 후궁 선화부인과 사통한 양제 등과 비견되기도 한다.)
옛말에 “자식을 사랑한다면 올바른 도리로써 가르쳐 나쁜 길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하며, 교만하고 사치스러우며, 음란하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은 바르지 못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네 가지는 총애와 녹봉이 지나치게 많은 데서 오는 것이다. 대체로 총애를 받으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교만하면서도 자신을 낮추며, 억지로 자신을 낮추면서도 원한을 품지 않으며, 분하면서도 자중하는 자는 드문 법이다.” 이는 위선공과 그 아들 석, 제희공의 딸 선강과 문강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이 대목 글 마지막에 ‘부불삼대(富不三代)’라는 말이 있다. 아들은 아버지가 고생하며 재산을 모으는 과정을 보았기 때문에 그런대로 아버지가 물려주신 재산을 지킬 수가 있다. 하지만 고생을 전혀 모르고 자란 손자는 자칫하면 ‘교사음일’에 빠져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물려주신 재산을 몽땅 말아먹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동서고금(東西古今), 국가나 가정, 개인을 막론하고, 교만하고 사치하며, 음란하고 방종하면 망하는 것은 정한 이치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실감하면서도, 막상 실천에 옮기려거나, 내 아들 내 손주들에게 가르쳐 보려고 하면 영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수행삼아 독서로 에너지를 충당해가며 포기 하지 않고 계속 실천과 가르침의 노력을 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