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을秋分이 지나고 나니 파란 하늘이 제법 높다 하늘이 높음을 어찌 알까 하얀 가을 구름이 있기 때문이다 고추잠자리가 날 만도 한데 석 달 동안이나 이어진 지루한 장마 덕일까 요즘은 날벌레조차 없다
서울대학교 시험림을 병풍으로 사방을 둘러친 우리절은 서울에서 30분 거리이지만 꽤나 깊은 산중에 속한다 건강을 위한답시고 종로 대각사 주지를 절반 남짓에서 접은 채 우리절에 내려와 석장을 건 지 벌써 여덟 달을 훌쩍 넘기고 있다
며칠 전에는 젊은 납자가 찾아와 예를 갖추고 자리에 앉더니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묻는다 "큰스님 질문이 있습니다" 그는 내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죽은 사람에게 경은 왜 읽습니까?" 나는 그의 질문이 끝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생각이었다
내가 아무런 답이 없자 알약 한 줌을 입에 털어 넣듯 차 한 잔을 단숨에 털어 넣고는 손등으로 입술을 닦는다 그가 다시 묻는다 "산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죽은 사람에게 경은 왜 읽습니까 망자가 알아들을까요?" 내가 상대를 진정시켰다
"산 사람은 스스로 읽기에 굳이 경을 읽지 않아도 되지만 죽은 사람은 경을 읽을 수 없겠지 그러나 들을 수는 있거든....." 이어져야 할 내 말을 중간에 끊는다 "큰스님 이해가 안 갑니다 죽은 사람이 어찌 들을 수 있습니까?"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몸을 떠나 영靈으로 듣거든"
그가 곧바로 치고 들어왔다 "비록 몸이 있더라도 딴짓을 하면 듣지 못할 수 있지 않습니까 몸도 없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내가 웃으며 답했다 "칵테일 파티 현상이지" 그가 물었다 "칵테일 파티 현상이요?" "그렇다네, 효과가 매우 크지."
죽은 자에게 있어서 경전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자동차를 운전하다 길을 잃으면 늘 다니던 길이 아닐 경우 내비게이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저승길이 초행인 망자에게 로드맵이며 내비게이션인 경전 말씀은 마디마디 쏙쏙 들어올 수밖에 없다
길 잃은 자에게 로드맵이 필요하고 내비게이션이 필요하듯이 누구에게나 초행길인 명로冥路는 도로 지도 로드맵이 필요하다 지도를 읽을 줄 모르는 이가 혹여 길을 잘못 들게 되면 말로 알려 주는 내비게이션이 더없이 필요하다
경을 경經이라 한다 지날 경經으로 새기고 경서 경經으로 새기며 날줄 경經이며 길 경經이다 젊은 납자가 벌떡 일어서더니 예를 갖추고는 말했다 "큰스님, 감사합니다 이제 독경의 뜻을 알았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먹장 구름이 절로 걷힌 곳에 파란 하늘 흰 구름이 미소를 짓듯이 이토록 끈질긴 '코로나19'가 어서 걷혔으면 싶다 그리하여 가을 햇살처럼 웃으면 웃는 모습을 서로 마음껏 볼 수 있도록 마스크를 벗어 던질 날을 기대한다
-----♡----- 우리절에서는 지난 9월 6일부터 오는 2021년 1월 10일까지 코로나19 방역기도 중이다 누구나 동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