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상문동 운문폭포(문동폭포)에서 지은 연구(聯句)> 고영화(高永和)
십청헌 김세필(金世弼, 1473~1533년) 선생은 본관은 경주.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이며 조선중기의 문인이자 학자로, 선생이 후학에 끼친 도학(道學)과 정치사상은 이미 정평을 받은 바 있다. 선생은 사화 분쟁의 시기의 재신(宰臣)으로 두 번의 유배를 당했다. 첫 번째가 폐비윤씨의 묘소문제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갑자사화에 연류되어 거제도로 찬축(竄逐)되었고, 두 번째는 1520년 9월 조광조의 사사가 지나쳤다는 주장으로 유춘역(경기도 이천留春驛)으로 장배(杖配)되었다. 거제유배 時 선생의 유배문학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그것은 그 동안 유배지였던 거제도의 책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거제유배기간동안 그가 쓴 시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당시 갑자사화에 연류 된 약25명이 신현읍일대에서 유배 왔었는데 이들과 주고받은 시운이 첫째이고, 유배지에서 고독한 심정을 표현한 글이 다음이다. 선생은 갑자사화가 일어난 1504년 4월1일 제천 청풍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중형을 선고받고, 1504년 12월 2일 날에야 거제도 유배 길에 올라, 약 10일 후에 거제현 고현성(읍치)에 도착하여, 거제현령으로부터 거제시 수양동 수월리 바닷가 제산마을에다 배소(配所)로 지정받습니다. 이후 1519년, 기묘사화로 유배 온 송재 한충(韓忠, 1486~1521)선생께서 같은 곳에서 유폐되었던 인연이 있었다. 여기 배소에서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날 때까지 거주하셨는데, 1506년 9월10일 날 서울에서 사면서가 거제도에 도착해, 이 날 거제 유배인들 대부분과 함께 오양역에서 배를 타고 견내량을 건너게 된다.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의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는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라” 논어에 나오는 고사성어를, 김세필 선생께서 평생토록 자신은 물론, 제자들에게 강론한 강설이었다.
(1) 고현천 시냇가에서 지은 연구(聯句). 운문폭포
이달 4일, 홍언방과 더불어 이행을 방문하였다. 함께 시냇가에 나가 물의 근원을 찾던 중 한 곳의 폭포(문동폭포)를 발견하였는데 매우 기묘하고 장관이었다. 서로 탄미하던 끝에 다시 약속하기를, 보름날 이윤 자백(子伯), 최숙생 자진(子眞), 홍언승 대요(大曜), 홍언충 직경(直卿), 공좌(公佐,홍언국) 등 제군들을 이끌고 와서 구경하기로 하고 마침내 함께 연구(聯句)를 지어 약속을 다짐했다.
泉石三生夢 수석의 좋은 풍경 삼생의 꿈일러니
樊籠萬里身 만리 길 떠날 몸이 사로잡혀서
今朝高興引 오늘 아침 높은 흥에 이끌렸네 -공석-김세필
夙昔勝流親 옛부터 좋은 풍류에 친하였도다
竹杖敲蒼壁 죽장끌고 푸른 석벽 두드리고 -군미-홍언방
芒鞋踏細辛 짚신으로 고운 풀을 밟아 여기오니 가노라
曾陰遺伏暑 층층 그늘에 삼복더위가 잊게고녀 -택지- 이행
密樹祕遊人 빽빽한 나무 숲에 감춰진 유인(幽人)들
脚戰苔痕澁 다리가 떨리니 이끼 흔적 미끄럽고 -공석-김세필
衣霑水氣新 옷은 물기에 젖어 신선한데
怪禽鳴不見 괴이한 새는 울되 보이진 않네 -군미- 홍언방
餘雨洒猶頻 그치려던 비가 오히려 자주 뿌리는데
遇險疲前陟 험한 곳 만나 전진하기 피로하여라. -택지- 이행
窮源絶後塵 막다른 물 근원까지 내 발길 닿았는데
列屛崖削立 벼랑은 깎아지른 병풍친 듯 서있네 -공석-김세필
驟雹瀑喧嗔 폭포는 성난 우박처럼 울부짖으니
十丈看橫練 가로 펼친 열 길의 비단을 보는 듯 하네 -군미- 홍언방
靑空訝拖紳 푸른 허공에 드리운 띠인가 놀라라
威稜山鬼避 그 세찬 위세에 산새들도 피하네 -택지- 이행
壯觀謫仙隣 웅장한 광경에 적선이 이웃한 듯
幽事妨倉卒 그윽한 모임을 창졸간에 방해하네 -공석- 김세필
佳期待浹旬 아름다운 기약은 열흘을 기다려야지
窪尊天所假 깊고 높은 것은 자연의 힘 빌린 것이네 -군미- 홍언방
廣樂帝還陳 균천광악을 상제가 진(陳)에 돌아오니
翳薈須先剔 무성한 초목을 먼저 베어 버리네 -택지- 이행
風流惜久堙 풍류가 없어진 지 오랜 것이 애석하게 여겨
同舟俱邂逅 함께 뱃놀이하여 모두 해후를 즐기네 -공석- 김세필
一諾肯逡巡 한 번 만나자는 승락 머뭇거리니
物色回秋序 초목에는 가을빛이 벌써 돌아왔네 -군미- 홍언방
關河輾月輪 어려운 여로(旅路)에서 달을 거듭하였으나
更宜携數子 다시금 벗들과 즐김이 좋겠네 -택지- 이행
且可答良辰 또한 이 좋은 날 서로 알려줌이 좋을걸세
寂寞頭渾白 적막한 신세 머리털만 쇨테니까 -공석- 김세필
艱難意自眞 어려운 세상살이 뜻은 절로 참되거니
詩情從跌宕 질탕한 흥취따라 시정(詩情)이 솟아나네 -군미- 홍언방
交道未緇磷 우리의 우정은 결코 변치 않으리라.
尙憶吳門市 오히려 옛날 오문의 저자 생각나네 -택지- 이행
終非北海濱 끝내 북해의 물가는 아니로다
乾坤莽牢落 건곤은 아득히 고요만 한데
日暮倚松筠 해 저문 날에 송균(松筠)을 의지해 섰네 -공석- 김세필
[주1]막다른 …… 닿았는데 : 용재 일행이 산속 깊이 들어왔으므로, 이후 누구도 자신들이 온 곳까지 이를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주2]웅장한 …… 이웃한 듯 : 폭포의 장관을 보러 용재 일행이 온 것을 형용한 것이다.
[주3]균천광악(鈞天廣樂) : 천상의 음악을 말한다. 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이 병이 들어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 말하기를, “내가 옥황상제가 있는 곳에 갔는데 심히 즐거웠으며, 신선들과 균천광악을 들었다.” 하였다.
[주4] 오히려 …… 아니로다 : ‘오문(吳門)의 저자’는 한(漢)나라 때 고사(高士) 매복(梅福)이 문지기로 신분을 감추고 은거했던 곳이고, ‘북해의 물가’는 한나라 때 소무(蘇武)가 흉노에 억류되어 숫양을 치던 곳이다. 여기서는, ‘우리는 매복에 비길 만하지 소무와 같은 신세가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주5] 송균(松筠) : 소나무와 대나무. 사람의 정절을 지칭하는 말이다.
(2) 소요동(逍遙洞). / 거제도에 거제귀양살이 할 때, 마을 소요동에서 이용재(이행), 최충재(최숙생)와 주고받은 시가 매우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질 않다. (洞在海島 時謫巨濟 與李容齋 崔盎齋 唱酬甚多 今多不存) 이행(李荇), 김세필(金世弼).
愧負溪邊躑躅花(春風) 시냇가 봄바람에 한 수 지으니 철쭉꽃이 부끄러워하고
丹楓更奈九秋何 단풍도 늦가을에 접어들었으니 어쩌랴
遊魚得計潭心靜 노니는 물고기 잠잠하니 못물이 고요하고
蒼壁無蹤雨脚斜 푸른 암벽에 빗줄기가 비켜나가 종적이 없구나
勝事從來難屢挹(前) 즐거운 일은 원래 두 번 하기 어려운건데
故人何日許重過(有約) 다정한 친구 어느 날 다시 찾아주겠는가
今朝減却靑春色(林) 오늘아침 갑자기 푸른빛이 가시니
雲外懸流不受遮 구름 밖의 폭포수 더욱 뚜렷이 보이네.
澤堂曰 此在容齋集中 非公詩 乃贈公詩 他無可考 姑存之云 題云 十日書事 ○是日 刪薈蔚于神淸潭之上 欲成四日之約也 택당 왈, (이식 李植 1584~1647, 호 택당澤堂 ) "이시는 용재집에 있다(이행李荇 1478(성종9)~1534(중종29)의 문집). 공의 시가 아니고 공에게 준 시이다. 다른 곳에서는 살필 수 없기에 그대로 둔다" 하였다. 제목은 <십일서사>로 되어 있다. 이날 신청담 위에 구름이 걷혔으므로 사흘 동안 놀려고 약속을 하였다.
(3) 구절향신이래희부지(久絶鄕信人來喜而賦之). 유배지를 찾아온 하인을 만나 가족의 안부를 듣고는 콧등이 시큰하여 눈물을 참지 못하는 심정을 토로하였다.
初欣推枕起 처음엔 기뻐 벌떡 일어났으나
復畏道何事 집안에 무슨 사고 있나 두려워
茫如鉗在口 재갈 문 입처럼 멍하니 있다가
久乃問童椎 한참 만에 아이들 소식 물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