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나돈 ‘탄핵 찬성’ 62명…날 힘들게 한 명단 속 그 이름 [박근혜 회고록 33]
박근혜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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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을 때 나는 청와대 관저에서 홀로 생중계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심정은 담담했다. 탄핵안 가결 직후 수화기를 들어 국무회의를 소집하라고 참모진에게 지시했다.
“이번 국무회의를 간담회 형식으로 소집하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 직후 최재경 민정수석의 사표도 수리했다. 사실 최 수석의 사표를 수리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최 수석은 탄핵안이 가결되기 16일 전인 11월 23일 사의를 표명했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뒤를 이어 10월 31일 임명됐으니 한 달도 채 안 돼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한 달도 안 돼 물러난 민정수석
최 수석은 검찰 특수수사본부(특수본)가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의 중간수사 결과를 11월 21일 발표하면서, 내가 최서원 원장 등과 상당 부분 공모관계에 있다고 밝힌 것을 두고 “책임지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시기에 민정수석이 청와대 내부에서 중심을 잡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더 계셨으면 좋겠다”고 만류했다. 하지만 최 수석은 자유롭게 외부에서 재판 등을 돕는 것이 오히려 제약이 없을 것이라고 나를 설득했고, 나는 사표를 수리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2016년 11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정무직 임명장 수여식에서 최재경 민정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최 수석은 임명장을 받고 닷새 뒤인 11월 23일 사의를 표명했다. 중앙포토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참모들은 내게 면담을 요청해 최 수석의 사표 수리를 보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 참모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 민정수석까지 사표를 내고 나가면 마치 가라앉은 배가 된 것같이 외부에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설득했다. 다른 참모는 “위기인 만큼 일단 민정수석이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야 실시간 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요청이 이어지면서 나도 당분간 사표 수리를 보류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돼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면서 사표 수리를 더는 미룰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최 수석은 후임으로 조대환 변호사를 추천했다. 처음에는 민정수석을 공석으로 두고 선임비서관인 민정비서관으로 수석 역할을 대행시키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조언을 구하자 한 참모는 “권한 정지가 되면 구체적으로 민정수석이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기 때문에 굳이 수석을 임명하지 않고 민정비서관으로 대행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의견을 줬다. 또한 조 수석 임명을 두고 참모진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당시 조 수석을 임명하지 않는 것이 옳지 않았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