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죽은 자의 집 청소 ④ 왜소한 밤의 피아니즘*》
이렇게 일하다가는 제명에 살기 힘들겠다고 생각하던 어느 여름밤, 간장에 버무린 돌게의 딱딱하고 살 없는 다리를 씹다가 문득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마음먹었다.
한 달이 넘도록 황사가 하늘을 뒤덮은 채 이상 고온 현상이 이어지고, 그 와중에 홀로 죽어버린 자의 냄새를 참지 못한 이들이 곳곳에서 아우성쳤다. 그들의 이유 있는 항의를 받아들인 집주인과 유족들의 다급한 요청에 따라 속절없이 도시 여기저기 불려 다녔다. 일이 드문 겨울철도 걱정이지만, 짧은 기간에 업무가 몰리는 여름철도 가시덤불 위의 여정이다. 혓바늘이 돋고 입술 가장자리가 찢어지고 관절과 근육은 제짝이 아닌 것처럼 제각기 겉돌며 덜걱거린다. 특히 육체에서 가장 왜소한 손가락은 마디마디 저리고 쑤신다. 비타민과 항생 소염제, 피로해소제를 섞어서 들이마신들 이미 시들어진 꽃에 물만 성실하게 갈아주는 꼴이다.
그날도 일이 길어져 때늦은 저녁 식사를 하는데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르더니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듯 순식간에 내 마음을 물들였다. 매일 밤 어설프더라도 내 손으로 직접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며 조화롭고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면 그 순간이나마 온갖 피로와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만을 안식을 얻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인과성이라곤 전혀 찾을 수 없는 즉흥적인 생각이지만 한번 그런 기대가 생기자 피아노만이 내게 남겨진 유일한 출구인 양 점점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피아노 수업해 줄 수 있는 작곡가를 온라인 음악 커뮤니티에서 찾아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조언에 따라 중고 디지털 피아노를 사들이고 밤에도 연습할 수 있도록 헤드폰을 주문했다. 또 하농과 리얼북 같은 트레이닝 교재와 악보집도 구했다.
그리하여 한 육체노동자의 우악스럽고 핏줄이 도드라진 손가락이 피아노의 새하얀 건반을 누르는 낯선 장면을 매일 같이 내려다보게 되었다. 어떤 날은 십 분도 채 못 미치는 시간 동안, 또 어떤 날을 초저녁 뉴스가 시작할 무렵부터 자정을 넘기도록, 일 없는 주말엔 마음껏 피아노 앞에 머물렀다.
―제가 가르치는 실용음악과 입시생보다도 열심히 하시는 것 같네요.
실력은 기대만큼 쉽게 늘지 않았지만, 젊은 작곡가는 몇 년 동안 나를 다정하고 끈기 있게 다독여 주었다.
내 첫 피아노 연습곡은 김소월의 시에 구슬픈 멜로디를 붙인 동요 <엄마야 누나야>. 어째서일까, 어른이 되고서 이 노래에 더 매료되었다. 군사훈련을 마치고 한 육군보급창의 경비 중대에 배치되면서 초소에 나가서도 수없이 이 노래를 불렀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랫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이 마지막 대목을 부를 때면 마음 한구석이 저민다. 강어귀에 쏟아지는 찬란한 햇빛에 모래톱이 빛나고, 우거진 갈대가 바람 부는 방향에 따라 부스스 고개를 떨구는 미지의 강가. 소년은 정말 그런 곳에 가고 싶었을까? 지금 여기를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저 이곳만 아니라면 세상 어디라도 좋지 않았을까?
건반 위에 왼손가락을 그러모아 “쿵짝짝” 왈츠 리듬을 누르며 오른손가락으로 그리운 멜로디를 따라가자니 초소에서 마주했던 기나긴 밤의 적막이 시나브로 나를 감싼다. 습기를 막으려 철모 안쪽에 접어놓았던 신문지 냄새가 정말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때는 하루빨리 구속에서 벗어나 또 다른 어딘가, 진짜 있어야 할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그것이 밤마다 초소의 강철 사다리 아래를 서성이며 이 노래를 부른, 숨겨진 이유인지도 모른다.
존 레넌의 <오 내 사랑 oh my love>는 피아노로 도전한 첫 팝송이다. 시간제로 빌리는 스튜디오의 업라이트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와 손가락을 번갈아 쳐다보며 한 음절씩 더듬더듬 건반을 누르는데, 흐리마리한 기억 속에서 불현듯 보았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남대교 위의 기다란 교통정체 대열에 끼어 핸드 브레이크를 당겼다. 내 앞차가 더 나아갈 기미가 없어 체념하며 라디오를 틀었을 때 마침 형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출근하는 아침 일곱 시는 누군가 죽었다는 농담을 하기엔 너무 이른 시각이다. 평소와 달리 목소리가 격앙된 형의 전화를 받고도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한동안 실감할 수 없었다.
화장로에 시신을 밀어 넣기 직전에 본 아버지는 평생 보고 자란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소한 얼굴이었다. 집 앞 개천에 떨어졌기에 물에 온몸이 부풀고 얼굴마저 불어 터져 있었다. 눈두덩과 이마, 볼이 심각하게 부어올라서 얼굴이 정상 크기가 아니었다. 화장터 유족 대기실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에 표기된 아버지 이름 앞에는 ‘故’라는 한자가 덧붙어 있었다. 이름 뒤에 표기된 ‘화장 중’이라는 빨간 문구를 지켜보며 내가 본 낯선 얼굴이 진짜 아버지의 얼굴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끝내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나는 바람을 보고, 또 나무들을 바라봅니다.
I see the wind. Oh, I see the trees.
모든 것이 내 마음속에 선명합니다.
Everything is clear in my heart.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한 인간이 그토록 극단적으로 화를 낼 수 있을까? 왜 한 번 솟구친 화는 누군가에게 쏟아내기 전에 절대 가라앉지 않을까? 언제 터질지 예측할 수 없는 우수한 성능의 폭탄은 누구도 손에 쥐려고 하지 않는다. 늘 짧게 깎아 올린 스포츠형 머리에 작은 키이지만 탄탄한 몸집이던 아버지는 누구라도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친구라 부를 만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다정함을 오래도록 동정했다. 폭탄에 묻은 흙을 손수 털어내고 맑은 물에 씻어서 가슴에 고이 품은 유일한 사람이기에, 그것을 만지는 인생은 온통 고충과 상처로 얼룩질 수밖에 없기에.
나는 구름을 보고, 또 하늘을 바라봅니다.
I see the clouds. Oh I see the sky.
모든 것이 이 세상 속에 선명합니다.
Everything is clear in our world.
한남대교 위의 자동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다시 불러낸다. 느리게 치는 멜로디 속에서 여전히 모든 것이 선명하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여기 아닌 곳, 당신이 없다면 어디라도 좋을 또 다른 곳으로 떠나고자 얼마나 많은 것을 계획하고 수정하고 또 버렸는지….
―그래도 지금은 좋았던 일만 생각난다.
어머니는 형이 보살피는 집을 떠나 때때로 내가 사는 곳에 와 지내면서 불쑥불쑥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꺼내놓았다. 달갑지는 않지만, 과거만 휑뎅그렁하게 남겨놓은 채 훌쩍 떠나버린 이를 그리는 심정을 어떻게 탓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이 지나자 어머니는 다시 쇠약해졌다. 지병이 재발해서 손녀들이 재잘대는 집을 떠나 적막한 병실로 돌아갔다. 추억을 촛불 삼아 겨우 지탱해온 삶은 언뜻 불어온 바람에 어이없이 꺼져버렸다. 남편을 태워 보낸 화장터에서, 화염에 육신을 내준 그 누구와도 다를 바 없이 어머니도 한 줌의 재만 남기고 떠났다.
밤은 청하지 않아도 기어이 찾아온다. 밝아오는 아침을 누구도 외면하지 못하듯 어둠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단 하루의 유예도 없이 매일 밤 나를 방문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 하는 일이다. 때로는 그 무심함에 질리고 때로는 그 변함없음에 안도한다. 그토록 장엄하고 공평무사한 밤이 찾아오면 모든 생각이 작고 부질없다.
―그래도 아버지는 늘 너를 생각하셨다.
느닷없이 어머니가 건넨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엔 그 말이 떠오를 때마다 화가 났지만, 또 어느 흐린 날엔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한번 피아노 앞으로 의자를 바싹 끌어당긴다.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이 내 밝고 어두운 기억처럼 장황하게 펼쳐져 있다. 그저 한 소절을 치고는 한동안 생각에 잠긴다. 또 두세 마디를 잇달아 치고는 멈춰서 새로운 생각에 사로잡힌다. 지금, 이 손가락은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것일까. 내 기억을 더듬고 있는 것일까? 이쯤 되면 음악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너무나 길고 단절된 리듬과 멜로디다. 하지만 그것이 하찮고 미련한 생각으로 왜소해진 밤을 위로해주는 나만의 피아니즘인지도 모른다.
나는 슬픔을 느끼고, 또 꿈들을 느낍니다.
I feel the sorrow. Oh I feel dreams.
모든 것이 내 마음속에 선명합니다.
Everything is clear in my heart.
어떤 날은 아버지가 그립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지친 밤에는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언젠가 냉랭한 태도로 입을 굳게 다문 내 앞에서 눈물을 참지 못하던 아버지의 약해진 얼굴도, 물불 못 가릴 정도로 화가 나서 지르던 고함소리도, 병석에 누운 어머니의 파리한 손을 붙잡고 기도하던 유난히 짧고 두툼했던 손도 모두 생각난다.
내 감정은 피아노 건반처럼 밝고 어두운 것, 기쁘고 서글픈 것으로 온통 뒤섞여 있다. 언젠가 어머니처럼 나에게도 아버지의 좋았던 기억만 떠오르는 날이 찾아올까? 자연의 섭리처럼, 청하지 않아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밤의 장엄함처럼, 모든 왜소한 것이 사라지고 오직 사랑의 기억만이 나를 감싸는 그런 시간이 정말 찾아와줄까?
* 피아니즘 (pianism) 피아노를 연주하는 기법. (인터넷에서 퍼옴)
웬만한 음악학부 피아노과에선 피아니즘에 관한 수업이 있답니다.
더욱더 체계적으로 기법에 대해 파고들어 가는 거죠.
우리 학교에도 피아니즘 발달사라는 강의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