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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의 금강경 핵심강좌 (1회)금강경의 가르침과 공덕
금강경 오가해 번역 32분 중 매 분마다 그 말미에 붙이는 간단한 해설-무비스님-
금강경을 해석하는 방법은 고래로 몇 가지 분류방법이 있으나 천친의 27가지 의심을 끊는 것으로 보는 면과 양무제의 아들 소명태자의 32분으로 나누어 보는 면의 두 가지의 해석법을 가장 많이 취하여 왔다. 그 중에서도 소명태자의 32분류법은 너무나도 알려져서 거의 금강경 해석의 정설로 되어 있다. 이 번역에서도 32분에 의거하여 간단한 해설을 붙인다.
가르치는 입장에 계신 스님들이 이렇게 금강경 회상에 함께 했습니다.
불교공부라고 하는 것은 해도 해도 다 함이 없고, 어쩌면 하면 한 것 만치 더 할 게 있는 것이 불교공부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는 모두가 다 가르친 입장에 있으면서 또 이러한 법석에 동참을 한 것은 뭐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습니다마는,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고, 이 가을에 환희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저가 뭐 이 자리에 있다고 해서 특별히 불교에 대한 견해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스님들 보다 뭐 더 많이 아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마는 누군가 이 소임을 해야 하겠기에 그래서 먼저 이 테잎을 끊었습니다.
앞으로 부산 불교 연합회에서 이러한 기회를 인연으로 해서, 보다 더 훌륭한 기획을 많이 세워서 불교 발전에 이바지할 것으로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대에는, 포교와 전법이 절대 부족한 이 시점에서 불교 중심에 있는 우리 스님들로서 스님의 본분을 다한다는 것, 언제나 경을 가까이하고, 또 포교일선에서 많은 교화활동을 펴는 이러한 그 막중한 소임을 맡고 있으면서 또 그러면서 또 한편 충전하는 마음과 또 이렇게 오셔서 도반들끼리 서로 교류도 하고, 정보교환도 하고 또 반가운 얼굴들도 만나는 이러한 아주 정말 법석은, 이러한 법석은 정말 우리 승려들의 진정한 그 본분에 충실한 일이기도 하면서 또 개인적인 발전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정말 많고 많은 인연을 만납니다.
저는 ‘불교와의 만남’이란 우리에게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가치가 있는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특히 금강경을 앞에 놓고 불교와의 만남의 그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우리 모두 기껏 나무 한 짐의, 그저 일당을 받을 만한 나무 한 짐을 시장에 팔러 갔다가 다이아몬드를 한 짐을 짊어지고 돌아가는 일이 바로 우리 불교가 아닐까? 불교와의 만남이 아닐까 이 생각을 합니다.
저는 진정 그러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기껏 해야 일당 받을 나무 한 짐을 짊어지고 시장에 갔다가 불교를 만나서, 그 불교를 만난 이후 돌아오는 길에는 우리들 짐에 다이아몬드가 한 짐 씩 쌓여있더라고 하는 이 사실입니다.
얼마나 참 신기한 일입니까?
뭐 일확천금이라고 하는 그런 표현 가지고는 도저히 될 수가 없죠.
그야말로 점철성금(點鐵成金)입니다.
물 한 방울 쇠붙이에 떨어뜨렸는데 그 쇠는 바로 황금으로 변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불교와의 인연을 우리는 뭐 어려서 가다보니까 절이더라, 뭐 집에서 도망 나오다 보니까 어느 날 절에 와 있더라, 뭐 여러 가지 인연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불교와의 만남이라고 하는 이 만남의 가치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 왔던 간에, 어떤 경로를 통해서 불교와 만났던 간에, 불교와의 만남의 그 인연의 가치라고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나무 한 짐이 다이아몬드 한 짐이 되고 물방울 하나 떨어뜨리는 것이 황금으로 변하는 일이 되고,
지리일언(至理一言)이 혁범성성(革凡成聖)이라
그런 말도 있죠.
지극한 이치의 한 말씀이 범부를 고쳐서 성인을 만든다
그런 이야기를 우리는 자주 듣습니다. 또는 평생 맹인으로 살아온 사람이 부처님과의 만남, 불교와의 만남을 통해서 눈을 뜬 일이기도 합니다.
또 한참 깊은 잠에 들어서 꿈을 꾸다가 문득 그 꿈을 깨는 일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부처님과의 만남이요, 불교와의 만남입니다.
얼마나 우리가 한번 우리들 자신을 생각해 보면은 얼마나 큰 다행이며, 얼마나 큰 행복이며, 얼마나 큰 수확입니까?
우리들 자신은 이러한 사실을 늘 알 때, 늘 그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감사해하고, 그러한 의미를 돌이켜 볼 때, 정말 진정으로 불교에 대한 신심이 자꾸 자라날 것이고, 정말 이 불교에 생명을 걸고, 아니, 세세생생을 삶을 걸만한 그런 가치라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이 그렇듯이 한 마디로 우리가 불교공부를 왜 하는가? 불교를 왜 믿는가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단장(斷障)과 성덕(成德)에 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끊을 단(斷)자, 장애라고 하는 장(障)자,
(화이트보드에 斷障 成德한문을 쓰심)
기도를 하던, 참선을 하던, 기도를 하던, 주문을 외우던, 절을 하던, 아니면 천도를 하던, 그 의미는 단장(斷障)과 성덕(成德)에 있습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온갖 삿된 견해, 또한 업장이니, 번뇌니 하는 등등 삶의 부정적 요소들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삿된 견해를 통해서 우리가 그 부정적 요소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데, 그러한 모든 것들을 제거하는 일이 단장(斷障)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제거해야할 모든 문제들, 이것을 끊어버리고 제거하는 그러한 일들이 불교공부의 한 면이고,
또 한 면은 성덕(成德)이라고 하는 것,
복덕과 지혜를 이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뭐 기도나 참선이나 간경이나 모두가 거기에 해당됩니다. 그 성덕이라고 하는 것 중에서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견(正見)’입니다.
바른 견해, 특히 금강경을 앞에 놓고 우리가 단장과 성덕의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바로 정견, 바른 견해, 인생에 대한 바른 소견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고, 그 속에는 지혜도 포함되고, 자비도 포함되고, 원력과 교화와 우리가 좋아하는 복덕까지도 포함되며, 또 인생에 대해서 긍정적인 사고, 아주 긍정적인 사고도 그 덕에 포함됩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자꾸 함양하자고 하는 것이 우리가 불교를 믿고 불교공부를 하는 목적입니다.
불교공부 안에는 우리가 그러한 용어를 알든 모르든 간에 이미 포함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불교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라면 금강경을 우리가 앞에 놓고 있는 이 마당에서, 금강경 속의 단장과 성덕의 방편은 무엇인가? 이게 이제 우리가 이제 5일 간 네 시간에 걸쳐서 공부해야할 과제입니다. 금강경에서 본 단장과 성덕의 길? 이것이라고 이제 정리할 수가 있는데,
물론 금강경의 중요성을 뭐 제가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익히 알고 있는 일입니다만, 한국불교의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정해져 있고, 또 역사적으로 밝혀진 바로는 중국의 오조 홍인스님(五祖 弘忍 601~674), 오조 홍인스님부터 금강경이 이 세상에 크게 빛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수 만 종류의 해설서, 강설서, 주설서 이런 것들이 나와 있고, 또 우리나라에서 익히 알려진 것이 강원교재에서 오가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미 오가해를 공부해서 그 금강경의 그 오히려 경론의 내용보다도 더 깊은 의미로 해석한 그런 것 까지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선사들의 그 안목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금강경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강경을 빌미로 해서 사실은 당신들의 고준한 선불교적 깨달음을 피력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금강경 해설서에는 무수히 많습니다.
뭐 이러한 것들도 우리가 일찍이 공부했던 바라고 생각합니다. 5일간 10시간에 걸쳐서 제목을 ‘핵심강좌’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만, 물론 금강경을 다 짚고 넘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핵심이 되는 내용은 좀더 역설하면서, 반복해서 역설하면서 말씀을 드릴 그런 계획으로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받은 이 교재는 관음사 지현스님께서 편찬을 한 고려장경본을 토대로 해서 이렇게 편찬했는데, 이 책을 내가 처음 만나고 너무나도 환희스러워서 제가 만 여권 이상을 찍어서 전세계 금강경 독송본을 이것으로서 통일하자, 하는 그런 내 나름대로 작은 원력을 세워서 이 책을 옛날에 한참 보급을 많이 했었습니다. 어느 날 해인사에 가서 법당에 들어가서 금강경 독송본이 뭔가 하고 살펴봤어요. 그랬더니 참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팔만대장경을 모셔 놓은 해인사에서 그 대적광전에 독송본으로 만들어 놓은 금강경이 너무 초라했었습니다. 그 인쇄한 것이 곧 그 활자하며 종이하며 책 제재하며 너무 초라했었습니다.
그래서 참 좀 슬픈 마음을 가져서 더욱 이 책을 독송본으로 늘 보급을 해야 되겠다하는 그런 생각을 늘 했었는데 마침 이제 이런 기회가 되어서 또 이걸 이제 지현스님이 여러 권 가지고 있던 책을 오늘 이렇게 법공양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요 그냥 금강경 활자로 만든 책하고 다릅니다. 그걸 아셔야 돼요.
내가 이것을 보급하려고 했던 의미가 바로 그것인데, 금강경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금강경의 한 자, 한 자는 바로 불교의 신심으로써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그런 그 슬픈 원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고려인들의 그 참 높고 높은 그런 그 신앙심이 한 자, 한 자 다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비록 이것이 복사본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그들의 신심에 인해서 써지고, 조각하고, 정말 몽고병들의 눈을 피해가면서, 정말 이제 대장경 천년 축제가 열리고 있는 이 시점입니다마는, 천 년 전에 그렇게 한 자 한 자 새겨졌던, 그래서 불교의 정신, 불교의 신심으로써 나라까지 구한, 개인의 인생을 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까지 구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한 자, 한 자에 담겨 있다고 하는 것, 이와 같이 소중한 교재입니다.
이 좋은 우리의 금강경 본을 가지고 있으면서, 전국에서 그 조잡하기 이를데 없는 그런 그 활자본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걸리어서 그래서 내가 이것을 보급하는 데 힘썼는데 여러 스님들 모두 다 주지로 사시고 포교 일선에 계시니까 이 책을 많이 복사를 해서 개사찰에서 전부 독송본으로 사용했으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내가 이걸 상당히 내가 만 여권 이상 찍었으니까 돈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좋은 점을 내가 좀 더 선전을 하면은 대개 독송본을 보면 32분 제목을 다 넣어 놨어요. 넣어 놨는데 스님들은 32분 제목을 안 읽고 넘어갈 줄 알지마는 그 날 처음 온 신도들은 당신의 선망부모를 천도하기 위해서 함께 동참하고 싶은데 어디를 읽고 어디를 안 읽어야 되는지를 도대체 모르는 거야.
그 문제 하나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수십 년 간 우리는 그런 본을 독송본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지현스님이 제목을 위로 올려 버렸습니다.
독송하는데 하나 걸리지 않습니다. 이 점이 정말 내가 고민했던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는 어떤 강원에서 보면은 49재 들어가가지고 금강경을 독송하는데 거기에 이제 반은 한글이요, 반은 한문본이야.
그러나 한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스님들임에도 불구하고 한글본을 떡 펴놓고 읽고 있는 거야. 물론 읽기는 편하겠지요.
물론 한문 읽는 것 하고 한글 읽는 것 하고 무슨 차이가 있느냐 물론 따질 수는 있겠습니다마는 그때마다 내가 법문하러 가서 그런 모습을 보면 사실 조금 챙피해요. 좀 떠듬거려서라도 한문본 좀 읽었으면 좋겠는데 싶은 생각을 해요. 그런데 버젓이 한글본, 한문이 하나도 없는 한글본 만 떡 이렇게 펴놓고 신도들하고 같이 읽는 거야. 그런데 그런 문제를 또 깨끗이 해결한 책이 이거야.
얼마나 깨끗이 해결했습니까? 한문 글자 큼직하게 해 놨지, 한글을 읽는지 한문을 읽는지 모르는 거야.
한문이 익숙한 사람은 한문을 읽고, 한문이 서투른 사람은 한글을 읽고, 이 문제도 도 이렇게 해결을 했어. 또 어떤 본들은 한글을 또 주먹만 하게 하고 한문은 조그마하게 하고 이것도 잘못된 본이에요.
이게 가장 이상적으로 만들어진 독송본이다.
첫째 고려장경이라고 하는 것에 제일 큰 의미가 있고, 그 다음에 제목을 이렇게 위로 올렸다고 하는 것, 그 다음에 한문과 한글을 이렇게 함께 했다고 하는 것, 좋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이게. 경을 대할 때 마다 정말 신심이 우러나고 또 이것은 사경본으로 쓰는데 너무나도 좋은 교재입니다. 사경본으로 사용하는데.
왜냐? 이게 구양순[歐陽詢; 557∼ 641;중국 당대(唐代)서예가]체로서, 정말 천하의 해설체로서, 또 사경체로서 최고 좋은 글씨체가 구양순체입니다. 이게 전부 고려장경 구양순체를, 천하의 명필을 모아놓고 3개월 이상 구양순체를 교육시켰습니다.
전부 선비들에게 구양순체를 훈련을 시켜가지고 글자가 전부 통일되게 해놨어요. 그래서 고려장경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구양순체 이고, 한 사람이 쓴 것 같습니다. 이게 많은 수 십 명의 선비가 썼지마는 전부 구양순체로 통일되게, 한 사람이 쓴 것 같이 쓰도록 그렇게 만들었어요.
사경본 글씨체로서 제일 좋은 체이기 때문에 또 그렇습니다. 이런 점들도 이게 우리 것이니까 프로인 우리 스님들이 정말 잘 알고 있어야 되고 이것이 이제 신도들에게도 교육이 되어야 된다고 하는 그런 점에 있어서도 또한 이 교재를 정말 자랑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뭐 자주 이야기가 되겠지마는 무상(無相)으로 위종(爲宗)하고 무주(無住)로 위체(爲體)하고, 묘유(妙有)로 위용(爲用)이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무상(無相), 없을 무(無)자 형상 상(相)자입니다. 무상(無相), 무상, 상이 없어야 된다 하는 그것이 으뜸입니다. 위종이란 말은 가장 으뜸이 된다는 뜻입니다.
무상으로 으뜸을 삼고, 무주(無住), 머물지 않는다, 머묾이 없는 것, 그것으로써 체(體)를 삼는다는 것입니다. 체(體)라하고 하면 얼른 머리에 잘 안 떠오르죠. 바로 몸 체(體)자입니다. 우리 몸이 묘용, 묘유로 위용이라, 무상이지만 미묘하게 있는 존재하는 것으로써 그 작용을 삼는다 하는 것은 그것은 우리가 쉽게 이해하면요
몸짓입니다. 몸짓.
몸에서 몸짓이 나오는 거예요. 체에서 작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체가 뭘까? 체가 뭘까? 늘 우리가 뭐 진리 자체, 무슨 뭐 신체, 등등 뭐 체라는 말 불교를 설명 하는데 너무 아주 중요한 낱말이 됩니다마는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 육신을 먼저 떠올리면, 몸이 있고, 몸짓이 있어요. 우리가 지금 손을 움직인다든지 고개를 돌린다든지 뭐 입을 들썩인다든지 하는 것은 전부 몸짓입니다. 몸이 있음으로 해서 몸짓이 있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마음이 있음으로 해서, 마음이, 심체(心體)가 있음으로 해서 심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렇게 이해하면 아 마음에도 그럴 수 있겠구나. 마음에 뿐만 아니라 우리 육신에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에는 전부 체(體)가 있고 용(用)이 있습니다. 또 거기도 상(相)이 있어요. 그래서 체(體)· 상(相)· 용(用) 이 삼대(三大)가 정말 모든 존재의 이치를 이해하는데 가장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금강경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새로운 것을 갖다가 무슨 물건 설명하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그것도 특히,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또 사람이 살아가는 일을 중심으로 해서 그 원리를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이 금강경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와 체와, 처음에 무상이라고 했습니다만, 상과 체와 용, 이것을 우선 이제 그렇게 이해를 하고 금강경 제목을 한번 살펴보면 ‘금강반야바라밀경’이죠.
금강은 뭡니까? 다이아몬드죠. 다이아몬드의 특색은 뭐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마는
첫째, 빛난다는 뜻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아주 빛나요. 그래서 값이 비쌉니다. 그 빛은요 인조로 만든 것 하고 비교가 안 됩니다. 아주 빛납니다. 아주 빛나요 다이아몬드는.
또 날카롭습니다.
이 다이아몬드의 그 날카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물질로도 그걸 능가할 수가 없습니다. 그게 두 번째고, 그 날카로움이 또 다이아몬드의 두 번째 특색이에요.
그 다음에 다이아몬드의 세 번째 특색은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견고하다. 그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로써만 깎지, 다른 물질로써, 다른 뭐 쇠붙이로썬 도저히 다이아몬드를 깎지를 못합니다.
다이아몬드만이 다이아몬드를 깎을 수 있어요. 그래서 견고하다는 뜻이니까.
빛나고, 날카롭고, 견고하다, 이것을 왜 뭐 다이아몬드 공부하자고 모인 게 아니니까, 이거 왜 이렇게 금강, 다이아몬드를 앞에다 두는가? 제목에서 부터...
비유죠.
불교에는 참 비유가 많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써 이해한다. 그런 부처님의 말씀이 있듯이 비유를 먼저 떠억 이렇게 먼저 듭니다.
무엇이 빛나고 날카롭고 견고하단 말인가?
바로, 반야입니다. 지혜입니다. 다이아몬드 같은 지혜, 그런 말이죠.
금강반야!
그럼 그 다이아몬드 같은 그런 지혜를 가지고 어쩌잔 말이냐?
바라밀, 바라밀하자는 것입니다.
바라밀은 ‘저 언덕에 이른다’이것을 저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다’, 그 뜻입니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에요.
다이아몬드 같은 지혜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경, 가르침, 이 뜻입니다. 간단하게 해석하면,
‘다이아몬드와 같은 지혜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르침’!
그 모든 문제라고 하는 것은 뭐겠어요?
단장과 성덕입니다. 모든 부정적인 장애를 다 제거할 수가 있고, 또 우리가 필요한 뭐 지혜나, 덕이나, 자비나 지혜나 이 모든 것을 다 구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거예요.
이게 바라밀입니다.
무슨 저 언덕에만 이르고 이 언덕 몰라라 하는 게 아닙니다.
이 언덕, 저 언덕 문제를 다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그래야 금강반야가 돼죠.
‘금강반야(金剛般若)’란 게 이게 보통 반야입니까?
‘금강반야(金剛般若)’란 게 참 무서운 반야에요.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을 어떤 표현에는 ‘벼락을 치다’, 라고 이렇게 표현해요. ‘벼락 치다’!
벼락을 치면 번개가 번쩍이고 소리가 나오고 정말 깜짝 놀랍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삶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모든 부정적인 번뇌, 망상을 다 사라지게 하는 그런 그 능력을 가진 가르침이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교리상으로 뭐 이런 저런 이야기는 가능하면 생략하고, 우리 삶에 이제 어떤 그 눈을 뜨게 하고, 효과가 있고, 또 우리 삶의 어떤 감동을 주느냐 이게 중요해요.
옛날 선배스님들이 해석한, 뭐 당나라 때 훌륭한 해석, 뭐 전부 그 해석이 많은데 그런 해석 다 소개하는 것, 아무 이 자리에서 별 의미 없다고 봅니다. 결국은 이것이 우리 삶에 있어서, 내 인생에 있어서 과연 의미를 갖는가? 조금이라도 우리 금강경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내 삶의 눈을 조금이라도 열어줄 수 있고, 뭔가 덕이 되어서 돌아가야지, 그 뭐 이론적인 것, 책 보면 더 많이, 더 자세히 더 잘 되어 있는 것, 그런 이야기할, 진부하게 하자고 모인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번 금강경 강의는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되 참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내용,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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