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제주도 스케치 여행길에 동행했다. 이번에는 공항에서 차를 렌트 하지 않고 일주 버스를 타기로 정했다 많이 걸어야 한다며 출발부터 으름장을 놓는다. 걸을 자신이 없으면 혼자 다녀오겠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아직은 빠른 걸음과 기력이 있어 “걱정마라.”며 따라다녔다.
제주공항에는 국내외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공항을 빠져나온 많은 사람들이 풍경을 찾아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나도 아들이 짜놓은 계획된 일주 버스 정류장으로 행했다.
가는 곳마다 자연 풍경의 천연 전시장이다. 제주도는 천지 창조주로부터 복을 많이 받은 곳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버스 창밖 풍경은 달라진다. 해안을 끼고 뻗은 바다 위로 따사로운 오월의 햇살이 뒤척인다. 밤바다는 고기잡이배들의 집어등이 불꽃을 피우고 있다. 언제 이런 비경을 누린 적이 있었던가 싶다. 유명 맛집을 찾아 입맛에 맞는 해물요리를 먹는 복까지 누린다. 느지막이 주어지 행운을 한껏 즐기기로 한다.
‘월정해수욕장’에 다다랐다. 아들은 열심히 바다를 스케치하며 카메라 앵글에 담기에 바쁘다. 나는 바다에 오면 언제나 엄마 품속에 안기는 듯한 기분을 갖는다. 산호가 부서져 만들어진 하얀 모래와 쪽빛 바다는 바라보기만 해도 즐겁다. 수 없는 문장들이 머릿속에 있건만 눈먼 글귀 하나 낚여지지 않는다.
만장굴을 구경하고 나오니 순환 버스가 출발해버렸다. 다음 버스는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차를 렌트하지 않은 불편이 벌써 시작된다. 눈치 빠른 택시기사가 삼만 오천 원을 내라며 흥정을 걸어온다. ‘선녀와 나무꾼’을 구경한 다음 기다리다 ‘메이즈랜드’까지 태워 주겠단다. 입장료 할인 서비스도 해 주겠다고 한다. 영업 전략이란 걸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선택은 없다.
60~80년대 테마로 구성된 ‘선녀와 나무꾼’ 구경을 마치고 ‘메이즈랜드’에 도착했다. ‘메이즈랜드’에는 세 길이 있다. ‘돌 미로’는 제주 돌담 형식으로, ‘여자 미로’는 애기동백나무로, ‘바람 미로’는 측백나무 울타리로 만들었다. 복잡한 미로를 운동 삼아 걸으며 출구를 찾는 게임이지만 피톤치드와 원적외선과 음이온이 방출되어 건강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미로를 잘못 들어가면 하루종일 헤매게 되니 아들 뒤만 따라오란다. 문득 여자의 일생과 비교되는 길인 듯 ‘삼종지도(三從之道)’가 생각난다. 여자는 출가 전에는 아버지를, 출가 후에는 남편을, 늙어서는 아들을 따른다는 내용이다. 나는 자식들의 길을 터주는 부모의 역할에 서 있다고 생각하건만 지금 마지막 길인 아들 뒤를 따르고 있는 중이다. 만약 내 앞에 아들이 끌어주지 않는다면 복잡한 길에서 허둥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편하다는 이유로 아들이 끌어주는 길을 따르기만 할 일이 아닌 듯 느껴진다. 언젠가 아들은 제 둥지를 찾아 떠나야 한다. 아련하다. 한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어쨌든 지금은 아들이 끌어주는 길을 따라 편하게 출구로 나올 수 있었다.
또 한 시간 남짓 기다려야 한다. 일주 버스 정류장까지는 한참을 더 걸어가야 한다. 내색은 못 하지만 더이상 걷는 건 무리다. 순환 버스 시간표만 원망스럽게 바라보다 버스 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순간 젊은 남녀가 탄 차가 다가온다. 차창 밖으로 아가씨가 얼굴을 내민다. 제주도 관광 위치를 물어도 당연히 잘 모른다고 대답할 참이다.
“어디까지 가세요? 가시는 곳에 내려 드릴 테니 저희 차를 타세요.”
“터미널까지 갑니다만….”
운전석에서 내린 젊은 남자는 뒷좌석에 있는 여행 짐을 트렁크로 옮기며 편히 앉으라고 권한다. 버스는 한참 기다려야 하니 부담 갖지 말라고 아가씨는 당부까지 해 준다. 거절할 입장이, 아닌지라 타긴 했지만, 뜻밖의 친절에 어리둥절하다. 고맙다는 인사만 연거푸 했다.
생면부지의 사람으로부터 친절을 받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우면서도 행운이라 여겨진다. 낯선 지방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 시간가량 달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길옆에 정차시켜 달라고 부탁했더니 기어이 좌회전하여 터미널 앞에 차를 댄다. 고마움에 친절 넘치는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엉겁결에 나오는 인사는 간단했다.
“고맙습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두 젊은이들은 동그래진 눈으로 함박미소를 띈다. 남은 여행 잘하라며 손까지 흔들어 준다. 그들이 즐기는 오붓한 시간이다. 낯선 사람을 자신들의 공간 안에 끌어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을 텐데, 왜 그들은 우리 모자를 태웠을까? 다른 관광객들 속에서 사진을 찍고, 노트에 스케치하는 모습을 눈여겨보았을까. 아니면 엄마를 챙기는 아들을 보고 함께하지 못한 그들의 부모님이 생각났을까. 과분한 호의에 행복한 날이다.
그러고 보니 부산에 올 때 한번 찾아달라는 인사가 빠졌다. 아름다운 귀한 인연을 어설프게 놓쳐버린 아쉬움이 크게 다가온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나에게 베푼 분의 덕을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한참 서서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본다. 편안하고 영원히 복 받는 아름다운 삶이 그들에게 있기를 진심으로 빌어 본다.
첫댓글
데이빗 님, 찾아주심 감사드립니다.
날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감기 조심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