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필리피노들은 비굴하고 자존심도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지나 길거리에서 만나는 필리피노 들은
돈 몇푼 벌려고 별의별 말을 다 동원하여 갖은 아양을 다 떨며
악의없는 표정과 티없이 맑은 미소로 친절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필리피노들이 자존심도 밸도 없는 민족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380여년간의 식민통치 역사를 통하여 국가의 근대화와 정치체제 및
사회기반시설을 갖추게 된 필리핀은
단일민족의 기치를 자랑삼아 내세우며 이 논리에 의하여 펼치는
우리나라의 국민총화 정책과는 달리
각기 다른 인종과 지방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포용력이 강한
다양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즉, 필리피노들을 일률적으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울러 필리핀에는 각기 다른 사회적 계층이 있다.
정치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권력집단과
경제권을 장악한 소위 부루주아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은
다분히 경직된 가풍을 지키고 살아가며,
자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에 대해서도
신분이 검증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다지 호의적이지도 않다.
예컨대 외국인이라고 자세를 낮추며 굽실거려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신분임을 의미한다.
고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식당이나 호텔 및 백화점과 같은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나 종업원들은, 속마음이야 어떻든 언제나 밝게 웃으며
몸에 밴 친절한 서비스 정신으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필리핀 사회의 대다수를 이루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은 수백년간 남의 비위를 맞춰주며 살아가는 방법만이
생존의 최 우선 법칙이라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아무튼 나는 어떤 계기로 그들의 해맑은 미소 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모든 행동에 앞서 명분을 중시한다.
처음의 친절은 이유없이 베풀지만
두번째 친절은 첫번째 친절의 댓가가 얼마였는지에 따라
영악하게 친절의 수위를 조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기에 필리피노와 친해지려면 처음 만남부터 각별히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써야만 한다.
선진국에서 왔다고 잘난척이 지나쳐서 필리피노를 업신여기는 느낌을 주거나
못 알아듣는 외국어로 모욕을 주거나 하면, 한번 스쳐가는 단기 여행객이라 할지라도
현지인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쉽다.
특이 필리피노들은 체면을 중시하므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모욕 당한 것을 참지 못하고 보복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필리피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면
그들이 웃는 만큼 따라 웃어주고, 그들이 친절하게 밀착해 오는 만큼 다가가면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는 길에 한 발자국 내 디딘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