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지혜 있는 자의 대비” 知恵ある者の備え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 전세계는 이른바 신종 폐렴 때문에 떨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호주 산불 소식이 계속 보도되더니만, 지금은 온통 신종
폐렴에 대한 뉴스 뿐입니다.
하기야 그렇겠지요. 아무리 사상 유래 없는 화제로 인해서 그 넓은 숲이 불에 타버리고 수많은 동물들이 희생된다 하더라도,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어느 정도 안정 되어야 동물이고 자연이고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제 당장 사람들 자신이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데, 그런 와중에 코알라나 캥거루한테까지 신경을 쓸 여유는 없어서인지도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처럼 신종 폐렴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책임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 그리고 자신의
국민을 지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만, 이처럼 신종 폐렴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나날이 증가하는 확진자 수와 함께, 이 또한 나날이 늘어가는 사망자 수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단 신종 폐렴 때문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합니다. 몸 어딘가가 좀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갑자기
정밀검사를 좀 해보자고 해요. 그래서 검사를 했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3개월 남았습니다. 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무리 믿음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할렐루야” 할 사람은 없겠이요.
자기 자신은 물론이지만 내 주변 사람의 죽음은 이는 슬픈 일임이 분명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슬픔일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 말씀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 그보다 조금 앞부분에 나와 있는 구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말씀이죠. 전도서 7장 4절입니다.
전도서 7장 4절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伝道者の書 7章4節
知恵のある者の心は喪中の家にあり、愚かな者の心は楽しみの家にある。
그리고 조금 앞에 있는 전도서 7장 2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祝宴の家に行くよりは、喪中の家に行くほうがよい。そこには、すべての人の終わりがあり、生きている者がそれを心に留めるようになるからだ。
이 두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본다면,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지혜자의 마음이 바로 초상집에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 안에 있어서 생각해 본다면,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끝이 아닌, 누구나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를 보면, 일상생활에서 죽음이라고 하는 것을 가깝게 느낄 기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반면에 일본을 보면
일반 주택가 여기저기에도 자연스럽게 크고 작은 공동묘지가 있어서, 한국보다는 비교적 죽음이라고 하는 것을 가깝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한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간에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두려운 것은 당연하겠지요. 자, 그렇다면 왜 죽음이
두렵겠습니까. 여기에는 물론 남겨진 가족이나 해야 할 일들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는 죽음을 염려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두려워하는 이유는 아니겠지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아, 죽을 때는 아프거나 괴롭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 있겠습니다만,
글쎄요, 저도 다행이 아직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씀을 드릴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런데 우리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하는 점은,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어야만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이 있는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가, 아, 죽을 때 아플까 봐, 괴로울까 봐 두려워해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 다른 데에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히브리서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そして、人間には、一度死ぬことと死後にさばきを受けることが定まっているように、
사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요즘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남성 만담 콤비가 있습니다. 지금 현재 나이가 30대 중반인데 이 사람들이 콤비를 맺은 게
2007년이라고 하니까 이제 12년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이 12년 동안, 말하자면 한 번도 떠 본적이 없는 사람들, 자기들 말에
의하면 주변 사람들한테서 한 번도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작년에 텔레비전에 출연한 것이 잠깐 나온 것을 포함하면
2~3번 정도 밖에 안 되고, 텔레비전에서 자신들의 공연을 한 것이 연말에 있었던 만담 대회 딱 한 번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있던 전국적인 만담 대회 M1 이라고 하는 큰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을 하고, 뿐만 아니라 우승을 하는 바람에 이 사람들의
인생은 단 하루 밤 사이에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뭐 텔레비전 출연 요청이 전국 각지에서부터 몰려들어서, 지금은
거의 잠을 잘 새도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저도 이 사람들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참 재미있어요. 그 중의 대표적인 공연제목이 <시리얼>을 주제로 한 것입니다만, 잠깐 내용을
소개 하자면 이렇습니다.
아, 자기 어머니가 좋아하는 아침 식사가 있는데, 그게 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럼 그게 어떻게 생긴
음식이냐고 물으니까, 딱딱하고 달짝지근한데 우유를 부어서 먹는 음식이라는 거예요. 아, 그래? 그럼 그거 시리얼이네……라고 하니까,
상대방이 하는 말이, 자기도 시리얼인줄 알았는데, 어머니가 하는 말이, 자기 인생 마지막 식사로 먹어도 좋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래? 그러면 시리얼은 아니겠네……그러면서 하는 말이 인생 마지막 식사가 시리얼이라도 좋을 리가 없잖아. 시리얼은 아직
수명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거야……뭐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그게 무슨 재미
있냐고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실제 내용을 보면 참 재미있어요.
뭐, 시리얼이 수명에 여유가 있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인지 아닌지는 제쳐놓더라도, 우리고 열심히 공부도 하고, 학위나 자격증도 따고,
취직이나 사업을 해서 돈을 벌고 하는 것은 모두가 다 수명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을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오직 그것으로 채워지기만 하면 충분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 하면 우리는 언젠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 앞에
있는 심판대에 섰을 때 당당할 수가 있겠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어디 취직을 하려고 한다면 그 응시자격 중 하나에 대부분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없는 자”라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꼭 여권을 가지고 있어야만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결격사유가 없으면 된다는 것인데, 그런데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어느 날 당장 급하게 중요한 해외파견업무가 생겼어요. 여기만 갔다 오면 정말 출세코스라고 할 수 있는데, 회사 사장님이 자기를 불러서
당장 출발할 수 있냐고 합니다. 그래서 언제 가야 합니까 하고 물으니까. 당장 내일이라도 출발해야 한다는 거예요.
자, 이는 정말 좋은 기회인데 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권이 없어요. 요즘 같으면 신규 발급의 경우에 보면 한국은 2주 정도는
걸린다고 합니다. 일본도 신규 발급은 아무리 빨라도 1주 정도는 걸릴 거예요.
그것도 옛날에 비하면 무척 빨라진 편이죠. 옛날에는 신원조회다 뭐다 해서 몇 개월까지 걸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 제가 아직 여권이 없습니다. 오늘 신청하면 아무리 빨라도 1~2주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 그러면 어쩔 수 없네. 다른 사람을 보내야지…… 이렇게 될 수도 있는 노릇이지요.
해외파견이 아니라 해외여행이라 하더라도 가장 처음에 해놓아야 하는 것은 여권 문제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외국어를 잘한다
하더라도 이 여권이 없으면 출국 자체를 할 수도 없고, 출국을 했다 하더라도 입국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해외에
간다고 한다면 이 여권이나 특히 비자 문제 같은 것은 제일 나중이 아닌 제일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언제 부르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미래의 일에 대해서 말해주겠다는 사람들은 많아요. 토정비결(おみくじ)이다
뭐다 해서 장래 일을 맞춘다고 하는데, 성경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전도서 8장 7절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何が起こるかを知っている者はいない。いつ起こるかを、だれも告げることはできない。
전도서 7장 14절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順境の日には幸いを味わい、逆境の日にはよく考えよ。これもあれも、神のなさること。後のことを人に分からせないためである。
성경에는 분명히 우리는 장래 일을 알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알지 못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알지 못하게 하셨느냐 하면,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어, 왠지 일이 잘 풀려요. 만사형통이에요. 그런가 했더니 이제는 또 일이 잘 안 풀려요. 이를 병행하게 해서 장래에 정말 내가
잘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를 사람 스스로의 힘으로는 알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시기 위해서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하나님께서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셨다는데, 그걸 자기는 안다고 하는 사람은 뭐겠습니까. 그건 거짓말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래 일이 궁금하다고 말씀하신다면, 이제 새해도 되었으니 제가 특별히 오늘은 여러분께 여러분의 장래 일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뭐냐 하면, 간단합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면 잘 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면 잘 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예,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 외에 답은 없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항상 말씀을 드리는 것처럼,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지금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는데 내가 5분 뒤에 신호에
걸릴지 안 걸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언제 부르실지, 누구를 먼저 부르실지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기쁨으로 주님을 만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지만 두려움이 없을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무슨 준비를 해야만 할까요.
여러분들도 경험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뭐, 공항에서 자기 나라에 들어갈 때에는 그런 걱정은 없겠습니다만, 남의 나라에 들어갈
때에는 입국심사를 할 때 긴장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여권은 물론이고 비자도 있고, 필요한 게 다 갖춰져 있다고 하면 긴장할
일도 없겠지요.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여권과 비자는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얼마나 공부했는지, 어느 학교, 어느 직장에 다녔는지, 어떤 학위나
자격증을 땄는지, 얼마나 재산을 얼마나 모았는지,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물어보실까요?
예수님의 판단기준은 간단합니다. 바로, 성경 말씀을 얼마나 지켰느냐 입니다. 쉽죠? 어려우신가요? 성경말씀, 어떻습니까. 너무
두꺼운가요? 괜찮습니다. 확, 줄여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22장 40절에 보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律法と預言者の全体)”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すべての律法と預言者)” 이것이 곧 성경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 무엇이겠습니까.
마태복음 22장 37절~40절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あなたは心を尽くし、いのちを尽くし、知性を尽くして、あなたの神、主を愛しなさい。』
これが、重要な第一の戒めです。
『あなたの隣人を自分自身のように愛しなさい』という第二の戒めも、それと同じように重要です。
この二つの戒めに律法と預言者の全体がかかっているのです。」
이 성경은 단 두 마디로 줄인다면, 첫째는 하나님 사랑이요, 둘째는 이웃 사랑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 중 어느 하나만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에요. 요즘은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나라들도 많다고는 하지만, 비자가 필요한 나라에
들어가는데, 여권만 있고 비자가 없다거나, 또는 비자가 있는데 여권의 유효 기간이 끊겼어요. 그러면 어느 쪽이라 한다 하더라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이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따라서 저 사람은 하나님만 사랑하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이웃만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는 올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만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요, 이웃만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은 이웃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마땅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도 올바로 사랑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웃을 올바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올바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과 “말씀”과 “행함”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어떻게 믿어야만 합니까. 그 믿어야 하는 방법이 바로 성경에 적혀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은 믿음이 좋다고 우겨봤자 성경에서
벗어난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왜 우리의 구주가 되였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려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왜 그것을 믿을 수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성경에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유일하고도 완전한 하나님 말씀이신 성경에 적혀 있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이제 우리에게 믿음이 있습니다.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성경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인가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대해서, 분명 사랑하는 마음은 있어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아무 것도 안 해.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거기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고린도후서 5장 10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私たちはみな、善であれ悪であれ、それぞれ肉体においてした行いに応じて報いを受けるために、キリストのさばきの座の前に現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행한 것을 따라 받는다고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전도서 7장 4절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伝道者の書 7章4節
知恵のある者の心は喪中の家にあり、愚かな者の心は楽しみの家にある。
아직도 제가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만, 제가 아직 학생시절 때, 뭐, 남자 혼자 사는데 제대로 해먹는 게 있나요. 지금은 그래도
학생식당 밥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는데, 저 때까지만 하더라도 저희 학교 식당이 뭐, 좀 글쎄요. 좋게 말하자면 비만을 방지할 수
있는 상당히 건강한 식단이었습니다. 그러던 상황에서 어느 한참 위 선배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 집들이를 하신다고 해서
갔습니다. 그랬더니 거 참 좋더군요. 뭐가 좋냐 하면, 그 때 중국 음식을 배달을 해주었는데 이 음식이 끝없이 나와요. 그 때 신혼집
아파트니까 그리 넓은 편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만, 거기에 제법 꽉 차는 인원수가 모였는데, 그런데도 먹어도 먹어도 음식이
끝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때 저 혼자서 적게 잡아도 4~5인분은 먹은 것 같아요.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 때 제가 한 말이 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집들이만 같아라. 저는 집들이라고 하는 것을 그 때 처음 가봤는데, 집들이가
그렇게 좋은 것인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말이에요. 그런 집들이나 잔칫집 같은 곳 지혜가 필요해요? 아니에요. 그냥 나오는 음식 먹고 마시고 즐기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지혜자의 마음이 어디에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초상집에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다른 사람 만이 아니라
나도, 언젠가 주님께서 부르시는 때가 되면 이와 같이 주님 앞으로 떠나게 된다는 것을 알고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진정한 지혜자의 마음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대비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말씀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리고 행함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해감으로 말미암아, 언제라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여권과 비자를 마음에 품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는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지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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